교회출석중단이유 (10-완) 예수이전의 하나님 행적이 너무 폭군 같습니다.

 

(의심 10) 회개할 시간도 주지 않고 또 거역할 줄 미리 알고도 큰 벌을 줍니다.

 

잠시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실수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며 회개할 시간도 없이 바로 즉사 당했습니다. 이렇게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어디에 갔는지는 너무도 자명합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좋으신 하나님이 맞는 건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불순종하고 타락할 것을 이미 알고 "내가 그들을 버릴 것이다"라고 미리 예언한 신명기 31장 16-18절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봤자 어차피 타락한 후에 침략 받고 온갖 괴롭힘 당하다가 노예로 끌려갈 걸 전부 다 알고 계셨다는 뜻 아닙니까? 이미 결말이 정해져있는 멸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버리는 등, 이런 폭군 하나님을 어떻게 좋으신 하나님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보내주셨다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며 납득하고 끝내기에는 하나님의 지난 행적이 너무도 폭군 같아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 겁니까?

 

(변증 10) 하나님의 모든 형벌에 반드시 그분만의 거룩한 뜻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뤄야 할 “하나님이 너무 폭군 같다”는 의심은 셋으로 나눠지네요. 성경의 두 가지 사례를 들었고 또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님만으로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고 납득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인용하신 두 성경사례가 변증 9와 마찬가지로 앞뒤문맥의 뜻이 과연 그러한지 먼저 살펴보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행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지적하신 대로 잠시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실수했는데 하나님이 잘못을 회개할 시간도 안 주고 즉사시켰다면 정말로 폭군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를 자세히 살피면 잠시 실수한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아래에 링크한 사도행전설교와 성경문답에서 이미 다뤘지만 다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행5:1,2)

 

처음부터 소유를 판 대금에서 부부가 공모하여서 얼마를 감춘 것입니다. 물론 소유를 팔아 전액을 다 헌금할 의무는 없으며 자기들 몫으로 남겨둘 수는 있습니다. 헌금은 자발적으로 자기들 마음이 가는 대로 액수를 정해서 내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얼마를 감추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정말로 생활비가 필요해서 따로 떼어놓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장절의 구분 없이 앞뒤를 잘 살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바로 앞의 구절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숨겼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6,37)

 

당시 막 설립된 기독교 최초의 예루살렘 교회는 아무래도 인적 물적 자원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북 아프리카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으로 제사장 출신) 요셉이 밭을 팔아서 ‘그 값을’ 즉, 자기 몫으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액을 헌금했습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대로 믿음이 아주 좋은 자였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 일로 인해 교회 안팎에서 많은 이로부터 큰 존경도 받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한 이유도 그 앞 32-35절의 설명대로 막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에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 중에 핍박한 사람이 없도록 누구라도 밭을 팔아서 그 값을 가져오면 사도들이 필요에 따라 나눠줬습니다. 성도와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 소유를 전혀 아끼지 않고 모두가 기꺼이 헌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요셉이 교회에서 칭찬 받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사람들 위에 높아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공모하여서 숨겼다는 것은 처음부터 진정한 헌금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교회의 사역을 훼방하는 흑암의 자녀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음흉한 속내를 베드로는 꿰뚫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점쟁이처럼 남의 일이나 생각을 알아맞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기독교가 막 태동하여서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려는 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고 하늘 보좌로 승천하셨습니다. 사도들끼리 힘을 합쳐 십자가 복음 사역을 주님처럼 권능이 넘치게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부터 몇 번이고 성령이 오면 제자들더러 해야 할 일을 다 알게 해주고 당당하게 해낼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그 권능이 베드로 같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역사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과 하나님은 절대 속이지 못한다고 선언한 까닭입니다.

 

앞선 9번 변증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군이 시작되려는 시점에, 또 엘리사가 선지자 사역을 막 시작하는 시점에 그 일을 훼방한 사탄의 종들을 하나님은 엄하게 벌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마12:31,32)

 

틀림없이 이 부부는 자기 땅이 어디에 얼마큼 있는데 그것을 팔아 헌금하겠다고 미리부터 큰소리로 자랑했을 것입니다. 사도들도 그 땅이 얼마쯤 될 것이라는 시세도 알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이 헌금한 액수를 보자마자 그 시가에 훨씬 못 미친다고 알았고 그 순간 성령이 강력히 역사하여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심판의 선포를 내린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편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심판받았습니다. 모든 정황상 이 일을 주모한 자는 남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내 삽비라에게는 베드로가 회개할 기회를 주려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행5:8) 삽비라는 남편 아나니아가 벌을 받아 죽은 줄 모르고 대답한 것입니다. 사전에 부부가 단단히 공모했기에 서슴없이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질문을 했을 때라도 삽비라가 실토했다면 살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의 결론을 어떻게 내립니까?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행5:11) 교회 안팎으로 성령의 권능과 그에 순복하는 사도들의 권위가 아주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없어도 제자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역이 얼마나 신령하고 거룩한지 불신세상에까지 널리 전해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교회 안에 십자가 복음 사역을 방해하려는 흑암의 세력을 처음부터 발도 못 붙이게 철저하게 막으심으로써 기독교와 교회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우신 것입니다.

 

2. 신명기 31:16-18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신31:16-18)

 

언뜻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죄를 범할 줄을 미리 알고도 그 땅에 강제적으로 밀어 넣고서 큰 벌을 내린 것 같이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출애굽 한 이후로 계속해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원망하고 대놓고 거역했습니다.(8번 변증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하나님이 이때에 비로소 그들이 그런 줄을 아시고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으로 진군케 하신 하나님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15:4-7)

 

하나님은 모세 때로부터 약 500년 전 그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미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도 거역했고 앞으로도 거역할 줄을 아셨지만 당신께서 행하신 약속을 지키려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진군시킨 것입니다.

 

주목할 사항은 그 일에 평생을 두고 헌신한 모세는 오히려 약속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척박한 광야생활에 대해 계속해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격분해서 하나님이 말로 명해서 물을 내라고 했는데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냈다는 정말로 사소해 보이는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사실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에게 화를 낸 것인데도 하나님이 백성의 지도자로 세운 자는 당신처럼 끝까지 인내하며 지도해야한다는 뜻이었습니다.(민20:7-13) 하나님은 이처럼 개인 지도자는 물론 이방의 죄보다 제사장나라로 세워진 이스라엘이 그 책임을 못할 때에 더 엄격히 벌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사실은 아브라함의 약속은 창조 때에 이미 아담에게 주신 약속의 연장선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 때부터 아담이 당신을 거역할 줄 알고도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이 거역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해줄 계획이 인간을 만들기 전부터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요1:1) 인간이 자발적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셨기에 인간을 절대로 기계나 짐승으로 만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타락하자 먼저 찾아와서 구원해주신(창3:9) 후에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창3:15)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었고 그 후손들에게 당신을 알게 하시고 열방에 당신을 증거할 제사장 나라로 세우며 율법을 주었습니다. 모세가 사십 년을 광야에서 그들에게 여호와를 가르치고 온갖 이적으로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체험케 했어도 여전히 당신께 거역 대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럴진대 다른 열방은 더 그러했습니다.

 

창조 때부터 타락 후 인간의 심령이 어떠할지 꿰뚫어 아시는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그 완악한 심령을 깨끗케 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또 그 계획을 이루려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하고 유다 지파의 다윗 가문에서 구주 예수님을 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또 거역할 줄 알았지만 그들을 이미 탈출시킨 애굽으로 돌려보내어 다시 노예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심판해 죽이실 수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럼 그들보다 더 사악한 모든 인류를 몽땅 다 죽여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쩔 수 없어서 가나안에 들여보낸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그 모든 것이 당신의 인류를 향한 영원한 계획에 들어 있었고 또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이라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그대로 시행한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이로부터 약 1500년 후에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궁극적으로 달성되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

 

실은 이 질문은 그 자체로 큰 모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들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가출하는 바람에 공부는 전혀 못하고 온갖 범죄를 저질러 결국 자기 인생을 완전히 망가트렸습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부모는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로선 아들이 가출하기 전부터 오래 동안 타일러보고 야단도 쳐보고 원하는 것을 사주기도 하는 등 모범생이 되도록 열과 성을 쏟았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했고 결국은 비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럼에도 나중에 부모더러 왜 내가 실패할 줄 알았으면 말렸어야지 가만두었느냐고 원망하는 꼴입니다.

 

3. 예수 십자가는 기독교의 전부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목표로 삼아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인간이 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제 멋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아는 백성마저 자기들 형통과 출세만을 위해서 하나님께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자기 종처럼 부려 먹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될 줄 미리 다 아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비해 놓았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을 구원해주신다는 창세기의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통해서 당신께서 이뤄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를 그렇게 이끌어왔으니 사실상 십자가로 향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예수님이 반드시 오셔야만 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오셔서 행한 일과 그 의미와 결과는 물론 앞으로 십자가로 인류 역사를 어떻게 완성시킬지에 관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성경이 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통해 계시한 하나님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 바로 그것입니다.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온갖 모순과 잘못을 드러내고 또 교리적으로 일부 잘못 가르치는 것들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의 주제가 예수님이므로 기독교도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입니다.

 

“단순히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보내주셨다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며 납득하고 끝내기에는 하나님의 지난 행적이 너무도 폭군 같아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죄인은 당신이 죽기까지 절대적으로 사랑하시고 그 죄는 당신이 죽기까지 절대적으로 저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드러난 증거도 없으며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도 이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할 줄 알고도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나, 가나안에서 거역할 줄 알고도 그 땅으로 인도했고 그 잘못에 대해 형벌을 주신 이유도 다시 강조하지만 오직 하나 예수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인들로 하여금 “나 같이 흉악하고 고집스런 죄인도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시면서까지 살리시고 사랑해주셨다”는 고백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는 전부 그것이며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자 본질이자 전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7-12)

 

열 가지 변증의 결론

 

주신 질문을 열 가지로 나눠서 간단히 변증해드렸습니다. 질문을 더 세분화해서 더 깊이 변증해드릴 수도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기 쉽도록 제 나름대로 줄였습니다. 이미 교회를 출석하신 경험이 있기에 기독교적 용어나 교리 등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특별히 어려운 설명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혹시라도 더 의심나거나 궁금한 사항들이 생기면 언제든 부담 갖지 마시고 연락 주십시오.

 

저의 변증으로 형제님의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온전히 생기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교회와 목회자와 교인들에게서 너무나 실망스럽고 심지어 악한 모습도 많이 볼 것입니다. 성경에서 더 난해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구절들도 계속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관건은 형제님이 하나님과 정말로 온전한 인격적 관계를 맺어서 일대일로 교제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택하신 당신의 자녀를 개인적으로 거룩하게 보호 인도하시기에 기독교 신앙은 한 죄인이 그런 거룩한 인도를 받아 거듭나서 주님을 따라가며 살아가는 삶 자체입니다. 도덕적 수양과 종교적 경건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신자에게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적 반응일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그런 관계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기독교가 잘못이라고 비난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의 밖에서 그분의 사랑을 제대로 체험도 하지 못하고선 하나님의 사랑이 틀렸다고 혼자서 허공에 대고 고함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성경에서 언뜻 하나님마저 아주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사를 많이 접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성경을 깊이 공부해보면 그 말씀들이 너무나 정미하고 완전하여서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절대로 경시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직접 사역했던 시대가 끝났으므로 기독교 신앙은 절대적으로 성경에서 시작하고 성경에서 마칩니다. 성경을 제대로 모르면 올바른 신앙이 형성될 수 없으며 형제님이 지금껏 비난 내지 의심해왔던 바로 그런 모순된 신앙 밖에 가질 수 없습니다.

 

형제님도 성령의 간섭으로 하루 속히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주님을 자신의 구주로 온전히 영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랬다면 성령의 역사로 그 첫 사랑을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을 이처럼 사랑하신 은혜에 너무 감사하다는 고백으로 매일을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9/3/2021) 

 

 

행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구원 받았는가?

성경문답
 

날마다순종

2021.09.03 17:57:06
*.14.99.253

이번 시리즈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 또 다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 오묘하고 신비한 경륜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없는 긍휼로 귀결 완성됨이 왜 오직 예수인지 새삼 또 느끼며 감사와 찬양드립니다.  

GodisGood

2021.09.04 08:25:11
*.172.110.74

이곳 저곳에서 얼핏 들은 성경 지식으로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오해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삶에서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에 피할길은 오직 하늘 뿐이었습니다. 그 때에야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 당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살아 있어서 나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면 응답해 달라고 울부짖으며 외쳤습니다.

 

그 때의 응답은 말씀으로 돌아가라, 성경으로 돌아가라였습니다. 그로부터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그전에도 성경을 읽었지만 한번도 순서대로 읽은 적도 없고 완독 한적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잠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습니다 하면서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어 가면서 성경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들이 살아 있어서 내 주위에서 펼쳐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를 마칠 때에는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로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질문에서 응답까지 마치 나의 과거 삶을 다시 보는 데자뷰를 느꼈습니다. 질문과 응답에 감사드리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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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출석중단이유 (10-완)-예수이전의 하나님 행적이 너무 폭군 같습니다. [2] master 2021-09-03 396
45 교회출석중단이유 (9)-(민11:1,33 왕하2:23,24) 너무 화가 많고 잔인한 하나님 같습니다. [10] master 2021-09-02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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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교회출석중단이유(7)-신앙이 사후세계만을 위한 것인가? master 2021-08-25 217
42 교회출석중단이유(6)-현실을 바꿔주지 않는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나? master 2021-08-19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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