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조회 수 141 추천 수 1 2021.08.10 17:25:38

유다는 정의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는 기가 막힌 현실과, 민족을 각성시켜 외세를 몰아내는데 앞장 서야 할 지배계급인 제사장과 귀족들이 오히려 로마에 빌붙어 자신들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통탄할 현실, 그리고 비록 거짓과 사기로 탈취했더라도 엄연히 아브라함과 이삭의 장자로서의 권리를 가진 야곱의 후손인 자신들이 팥죽 한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에서의 후손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로잡아줄 정의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정의가 바로 설 수만 있다면, 이 한 목숨 초개와 같이 던질 각오도 돼 있었습니다.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점점 더 가난해지며, 오직 권력과 재물이 최고의 가치가 된지 오래이고, 힘과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더러운 세상,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천대받고 모욕받는 이 참담한 현실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과 싸우고 세상을 이기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로마의 막강한 군대와 싸울 군사력도, 타락한 지배계급과 맞설 사람이나 돈도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스스로 하늘에서 왔다고 주장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적을 행하는 예수를 따른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타락한 지배계급을 거침없이 질타하고, 문둥이, 창녀, 세리 같이 유대사회에서 배척받고 소외된 이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예수에게 매료된 것도 한 이유입니다. 
'그래! 속는 셈 치고 한 번 믿어보자.' 어쩌면 진짜 그리스도 일지도 모르는 예수 일행의 돈궤를 맡아 표나지 않게 돈을 빼돌려 열심당에 전달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남몰래 돕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로마에 대항할 독립군을 만들 꿈도 꾸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돈궤에서 빼돌릴 수 있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고, 예수는 그를 따르려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흩뜨리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과 돈을 모아 힘을 기르든, 하늘의 권세로 뒤집어 엎든, 어쨌거나 엉망진창인 이 세상을 바로잡아보겠다는 마음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예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갈 무렵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이제 죽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제나 저제나 반신반의 하면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삼년 넘게 좇았는데, 때때로 자신의 죽음을 말하기는 했지만 그저 해보는 말인 줄 알았는데, 예수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까지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어떤 말로도 그의 결심을 꺽을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랍비, 랍오니라고 불리는 자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세상에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따르려는 더 많은 사람들을 무책임하게 버려두고 자기의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런 예수를 이해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도무지 그가 하겠다는 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죽는 것이 어째서 '의'가 되는지 유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로마와, 타락한 이 세상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냥 죽어버리겠다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니. 예수는 죽어버리면 그뿐이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희망과 기대로 이 암담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유다의 실망은 곧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분노도 컸습니다. 믿고 따랐던 스승에게 뒤통수를 얻어 맞고 버려지고 배신당할 위기에 처한 제자는 판을 뒤집을 마지막 승부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예수님을 판 유다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악하거나, 그 일을 위해 따로 선택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는 누구못지 않게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이었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실천력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을 오해했을 뿐입니다. 세리 출신인 마태가 있음에도 일행의 돈궤를 맡은 것을 보면 유다 또한 남 못지 않은 배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배움이 어쩌면 그의 회심을 방해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유다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자기만의 가치가 있습니다. 공평치 못한 세상을 보며 창조주를 탓하고, 불의가 승리하고 진실이 패배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기호

2021.08.11 00:04:07
*.38.61.99

유다는 배신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러나 유다 입장에서 보면 스승이신 예수님이 배신자입니다. 유다의 믿음을 저버렸으니까요. 
유다는 끝까지 자기가 정한 정의의 틀 안에서 삽니다. 무죄한 분을 팔아 넘긴 자신의 죄를 스스로의 목숨으로 갚으려 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숨으로는 어떤 죄도 갚을 수 없습니다. 크든 작든, 중하든 사소하든, 죄는 오직 생명으로만 갚을 수 있는 바, 우리는 모두 생명이 없는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삼년반을 동고동락하면서도 유다는 그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다른 진리가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개월, 혹은 몇 년, 심지어 한 평생 크리스천으로 살았어도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유다를 배신자 정도로 치부하고 하나님의 택정을 복불복 정도로 하찮게 여기는 까닭은 아직 나의 죄를 참으로 모른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가룟 유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나 그를 편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그'보다 더 악한 죄인입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가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한 까닭이 그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을 잡으러 다닌 과거 때문이거나 자신을 낮추는 겸양의 표현이 아닙니다. 참으로 믿는 자는 그 고백 말고 달리 고백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master

2021.08.12 04:44:24
*.16.128.27

기호님 계속해서 유다에 대해 은혜로운 의견을, 제 이전 글들과 궤을 같이하는,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일(8/15)의 설교에도 같은 맥락으로 짧게 언급하겠습니다. 방문자님들도 아래의 제 이전 글들과 함께 이번 주일 설교도 꼭 참조해서 유다를 택하신 주님의 뜻을 새로운 차원에서 깊이 묵상하며 알아나가시길 바랍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진짜 이유 (마태복음강해 #236 - 마26:14-16)

 
 

mango

2021.08.17 08:32:57
*.175.139.87

글을 읽고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내자신을 의인이라 착각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내모습에 지쳐 있었는데, 실은 내가 유다와 같은 죄인일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뻔 했습니다 은혜를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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