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의 사전적 의미는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어 감” 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형통하다 했을 때 결과적으로 그 뜻하는 바가 성공했거나 일이 잘 풀렸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형통하다라고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일이 잘 되었을때 우리는 그의 형통함을 보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일을 풀어나가는 과정중에는 좀처럼 형통함을 보았다고 이야기 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보디발의 집에 가기전에 이미 요셉은 형통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사람의 집에 있으니”(창 39:2)라고 기록하여 그가 이미 형통했음을 이야기 해주면서 그 주인도 “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처음부터 그가 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추정컨대 이미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는 그 노상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형통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형통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성경에서 이 형통의 의미를 이야기 해주는 구절을 찾아보다가 간접적으로 형통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구절을 찾았습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느니라” 는 잠언 28:13의 말씀을 근거로 성경이 말하는 형통의 의미를 나아가서 보디발이 보았던 형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위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조금 고쳐서 이해하면 어떨까요?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형통하리라"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과 형통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을까요? 하나님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이겠죠. 

다시 말하면 죄를 자복하고 죄를 버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고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하나님의 긍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결과로서  말해주는  형통과는 맥락을 달리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이미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만약 어떤 사람이 형통하다고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주변환경과 조건은 형통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죠.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형통했다고 기록할 때 요셉의 처지는 형들에게 배반당하여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가기 전까지 몇달이 걸렸는지 혹 몇년, 며칠이 걸렸는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환경 속에서 이미 성경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김”을 받은 것을 그저 요셉의 처지가 너무나도 딱해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긴 것이 아니라 앞서 살펴본 형통의 전제 즉 죄를 자복하고 죄를 버리는 요셉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요셉이 형통하게 된것입니다. . 

 

보디발이 보았을 요셉의 형통함이 바로 이런 요셉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죄를 자복하고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기로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성들 말이죠.

이는 흔히 이야기 하는 정직이나 성실함 등을 모두 포괄하여 죄를 멀리하려는 사람에게 전 인격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선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그것은 모든 사람이 알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이죠. 막연하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고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 

한마디로 이 모습이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처음 봤을때 그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보았을까요

그저 용모가 단정한 소년정도로 그래서 호감가는 정도의 인상을 받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같이 지내보니 기존 종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본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범사에 형통함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본 것은 다른 종들과 달리 이 요셉이  죄를 멀리하는 모습입니다. 

죄를 멀리하기 때문에 거짓말도 하지 않고 죄를 멀리하기 때문에 남을 헐 뜯지도 않고 죄를 멀리하기 때문에 주인이 보든 보지 않는 언제나 양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등 보디발이 본것은 이 모습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요셉의 “죄를 자복하고 멀리하는 “  전 인격적인 모습을 형통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의 묵상을 통해 제가 형통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늘 제가 형통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서 제가 형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네요.

 

amazing_grace

2021.02.09 01:01:55
*.98.93.215

귀한 묵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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