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제일 먼저 외쳤던 소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은 의로운 자라고 생각하여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보고 세례요한은 소리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느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마 4:7-8).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전파했던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4:17).
오순절날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자 성령의 권능을 받고
베드로와 열한 사도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마음에 찔림을 받은 자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탄식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그날에 회개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삼천명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할 일은 "회개"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첫번째 조건이 "회개"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기 위해 회개한 후에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출발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는 구원 받은 자답게,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 자신의 더러움을
날마다 회개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였느니라"(요일 1:9).
목회자는 설교를 통해 회개를 외쳐야 합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안주하며 살아가려는 성도들에게
세례 요한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쳐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얼마남지 않은 이 시대에 신랑되신 우리 주님을
맞이하는 거룩한 신부로 단장할 수 있도록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갈 때 넉넉하게 영원한 구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단 것을 원한다고 단 것만 죽으면 결국은 죽게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원하고, 성도들이 기뻐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설교를 해야 합니다.
제 자신 또한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심장을 찌르는 설교를 할 때 싫어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성도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면서까지
때로는 도전적인 설교를 해야하는가?
부담을 주는 설교를 해야하는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은
"나는 타협하지 않는 그런 설교를 좋아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설교는 회개를 외치는 것입니다.
탄식하게 하는 설교입니다.
그러나 설교에 회개를 외치지 못하면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마음에 맞는 설교는 그들을 죽이는 독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