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hyjesusonly.com/questionok/73375
이 부분에서 4번째 추가 질문이
"하나님과 기독교의 개념자체가 전해지지 않은 종족과 민족은 인간 상위의 존재나 절대자를 인식해도 그것이 하나님으로 발전하고 '복음 전도이 없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도달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목사님께서는 명확하게 "그렇다. 복음 전도 없이 토착적으로, 혹은 인간 자의적으로 절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인간 본연의 원죄에 대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심판하지는 않으신다" 라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부가 설명은 뭔가 주장의 근거로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는 명확히 제가 죄인임을 압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스스로 악한 의지가 가득하고 스스로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복음이 당도한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를 알게 되고 죄를 고백하고 거듭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동일한 반대급부로 고대 한국 사회에 누군가는 저와 같은 상황인데 단순히 '복음이 전도되었다' 라는 사실만 다른 상태라면 그는 지옥에 갈 거라는 것이 아래 말씀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현재 미전도 지역 아프리카와 고대 한국이 전도가 되지 않은 영적 상태가 같고, 또한 인간 자체가 완악하여서 설령 복음이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극소수의 선택받은 인간'들만이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은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 고대 한국/아메리카와 현대의 미전도 아프리카 대륙이 같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대의 한국인은 복음이 다다르지 않아서 절대 다수의 고대 한국인들은 아마 지금도 영벌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영벌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미전도 지역 아프리카 지역은 다릅니다. 우리 성도가 미전도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그 몇 억의 인구 중에 단 한 영혼이라도 '미래에' 구원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미전도 종족과 미전도 지역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왜 기도하겠습니까. 이미 영벌에 놓인 존재와, '아직' 영벌에 놓이지 않은 존재 라는 차이 때문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고대의 한국/아메리카와 현대의 미전도 아프리카 대륙은 같은 선상에 놓이지 못합니다.
제가 가진 이 풀리지 않는 불만은 결국 이것입니다.
저는 저의 죄성을 압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복음이 전파된 대한민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지하고 그분을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에 태어났다고 하면, '동일한 죄성'을 가진 저 자신이 제 자신의 힘만으로는 목사님이 말씀하신대로 도저히 자력으로 '절대자와 예수그리스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었고 지금 영벌을 받고 있을것입니다.
저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구원을 받은 것은 비기독교인 시각으로는 '전적으로 우연'이고 기독교인 시각으로는 '전적으로 은혜' 입니다. 저는 당연히 제가 이런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아님도 알고있습니다. 인류는 아담의 원죄 이후로 모두 타락했고 도무지 악한 것 밖에 없는 것이고, 제 자신이 그러니까요. 저는 죽어 마땅한 존재이기 때문에, 현대에 태어나든 고구려 시대 태어나든 영벌을 받을만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저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 구원받았고 고구려 시대에 태어났을 수도 있는 저는 그런 '행운'이 없어서 영벌을 받습니다.
일차적으로 '도무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구원을 받았다' 는 것에 대한 여호와에 대한 감사함은 분명 존재하지만 '도무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데 굳이 왜 날 구원한 거지? 왜 ? 나를? 나는 특별나게 다른 시대의 '나' 와 다른 게 없고 차이점이라면 오로지 현대 기독교 복음을 접했다 라는 차이 밖에 없는데? 내가 복음이 전혀 당도하지 못한 장소에 있거나 복음이 전혀 당도하지 못할 시간대에 있었다면 나는 분명 지옥에 갈 놈인데 단순히 내가 복음이 당도한 시간과 장소, 이 두 가지 요소가 아다리가 맞아서 우연히 예수님을 접하고 구원받은거다' 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공평성에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거는 감사한거고, 그와 별개로 '공평하지 않다 나는 편애받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고 있는겁니다. 마치 회사에서 상사가 나를 이유없이 편애하는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나는 편애받은 이유가 없는데? 왜 나를 편애하지?' 라는 생각입니다. 복음을 전해주셔서 나를 구원해준게 고맙기는 한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저 자신의 죄성을 알고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왜 나를 구원한거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왜 구원한건지 제발 알려달라' 라는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고민을 하지 않을때는 단순히 '아 나는 구원받았어. 감사해 좋아라' 수준이었는데 오히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가 구원받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존재인데 왜? 굳이? 나를? 구원 하신거? 대답해줘' 가 된 것입니다.
억울한사람(성경탐닉자)님 구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구원은 시대와 장소와는 무관하게, 심지어 십자가 복음의 전파 여부 이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성령으로 간섭하여서 스스로 천하 죄인임을 철저히 각성시키고 그 죄를 스스로는 씻을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긍휼(신약 시대 이후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 소망하며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서 이 땅에선 천국을 향해 나그네의 삶을 살은 자에게 그분께서 은혜로 주십니다.(사실은 성령의 간섭 이후에 그렇게 살게 됨, 설명의 편의상 한 문장으로 표현했음) 제 모든 글에서 (특별히 구약시대의 한국이든 이스라엘이든) 구원에 관해서 밝힌 원리입니다. 이에 대해선 히브리서 11장의 구약 선진들에 대한 설명을 다시 잘 읽어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어도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편 103편의 고백도 꼭 천천히 묵상하여 보십시오.
"저는 명확히 제가 죄인임을 압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스스로 악한 의지가 가득하고 스스로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복음이 당도한 대한민국에서 기독교를 알게 되고 죄를 고백하고 거듭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 우선 신약시대이고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고 난 이후에 형제님이 태어났으니까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듣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여긴 것은 하나님이 구원으로 택하여서 성령이 간섭하여 회심으로 인도해가나는 과정 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무관하게(마치 구약시대처럼) 일종의 회심이 일어난 것인데, 나중에 구체적으로 접할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준비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미전도 지역 아프리카 지역은 다릅니다. 우리 성도가 미전도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그 몇 억의 인구 중에 단 한 영혼이라도 '미래에' 구원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미전도 종족과 미전도 지역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왜 기도하겠습니까." - 물론 신약시대 신자로서 미전도종족의 전도를 위해서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미 성경에 예수님이 모든 신자에게 마지막 지상 명령으로 계시했고, 또 모든 성경 진리가 십자가 복음만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므로 시급하게 모든 종족에게 전해져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 진리를 절감한 신자로선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그런 기도를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구원받지 않았다) 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개별적인 구원은 신자들이 간절히 기도했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원리대로만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순신장군이 구원 받았는지에 관한 글에서 밝혀 놓았듯이,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시대와 지역에서 구원이 이뤄질 숫자나 확률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구원 주시겠다고 작정해서 성령이 역사하면 아브라함처럼 구원 받는 것입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거는 감사한거고, 그와 별개로 '공평하지 않다 나는 편애받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고 있는겁니다. 마치 회사에서 상사가 나를 이유없이 편애하는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나는 편애받은 이유가 없는데? 왜 나를 편애하지?' 라는 생각입니다. 복음을 전해주셔서 나를 구원해준게 고맙기는 한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 물론 어느 누구도 자신이 택함 받은 조건과 이유는 평생을 두고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구원하신 목적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구원이 단순히 천국 입장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죄와 싸워 이겨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거룩하게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고 그런 삶이 너무 은혜롭고 좋다고 체험하는 신자는 오직 감사와 경배와 찬양만을 삼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둘째는 세상을 거룩하게 바꾸기 위해서 소금과 빛으로 서야할 소명을 실현하라고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사탄에 미혹된 죄인들의 비참한 실정을 안타깝게 여기는 신자는 자기를 택하여서 주의 일꾼으로 불러 주신 목적에 너무나 감사하며 평생을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서 그 소명을 실현하려고 헌신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아래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특별히 둘째 글을 읽으면 하나님이 예정에서 불공평하다는 불평 내지 의심은 조금 줄어들 것입니다.
신자로선 내가 택함받은 이유는 몰라도(천국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나), 택해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큰 기쁨과 감사로 절감하기에 한걸음씩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물론 요한을 제외한 열두 제자들 모두가 순교하는 자리에까지 갔습니다. 끝까지 또 기꺼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수행한, 인간으로서 감히 누릴 수 없는 최고로 복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건 천국에 가서 물어봐야할 문제 입니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하나님은 모든 일들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 입니다
이 질문은 마치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 떄문에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정 즉, 창세전의 택함 교리는 그냥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들을 택하셨다.. 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말고 멈추어야 하기 떄문입니다
이 질문은 마치 하나님은 어떤 기준으로 구원 받을 자들을 택하셨을까 ?? 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숨겨진 뜻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무의미한 일 입니다
천국에 가서 물어봐야될 문제라는 뜻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