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문자적 의미도 모르는 여성신학자들

창세기 강해 (32)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성경이 말하자면 기독교가 여성을 비하하거나 남성에 비해 열등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자들이 많다. 하나님의 이름에 왜 아버지라는 호칭이 붙어야 하는지 따진다. 가뜩이나 하나님이 잘못하면 벌만 주는 무서운 분으로 연상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따뜻한 사랑으로 끝까지 용서하며 품어주는 어머니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중성으로 표기되어야 한다고 여성신학자들이 주장한다. 최근에는 실제로 하나님과 연관된 단어나 구절에 문법적으로 남성으로 표현된 것을 전부 중성으로 바꾼 성경까지 등장했다.

 

본문은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되는 구절의 하나로 제시된다. 왜 여자만 잉태 출산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나아가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지 따진다. 남녀는 하나님 앞에 평등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언뜻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창조 경륜과 그 뜻은 물론 오늘의 성경본문이 말하는 바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다.

 

여자가 출산하는 것이 불공평하려면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아담이 전혀 벌을 받지 않았어야 한다. 아담도 벌을 받았기에 아담과 이브 각자의 죄질에 따라 받은 벌이 적절한지 따져야 합리적이다. 단순히 출산의 고통이 극심하다는 이유로 더 무겁고 차별적인 벌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즐거운 고통

 

먼저 창조의 경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은 이것이다. 남녀의 신체구조, 기능, 특성이 처음부터 똑같았다면 왜 여성만 출산 고통을 주었느냐는 반발은 타당하다. 이브가 범죄 후에 여성으로 바꾼 것이 아니다. 창조 때부터 이브는 난소와 자궁을 지니고 출산의 역할을 맡게끔 만들어졌다. 거기다 아담과 이브는 범죄 전에 이미 육체적으로 연합하여 한 몸이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생식기관을 갖고서 성적결합을 통해서 이 땅에 생육 번성 충만하도록 창조되었다.

 

본문도 “잉태의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잉태의 고통은 있었는데 그 세기가 아주 더 크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신 목적이 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사회에선 부부 부모자식 간에도 참 사랑이 실종되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비슷한 엄마의 모성애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계승시키라는 것이다. 극심한 산고(産苦) 끝에 얻은 자식인지라 저절로 극진히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또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만들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겪는 고통은 육신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짜증나고 고달프고 아프고 불편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엄마에게 물어보라. 자식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고통인가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또 자식이 원수처럼 미울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고통은 어서 빨리 끝나기만 바라고 그 여파가 거의 전부 부정적이다. 반면에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을 두고 불행이라고 나아가 하나님의 엄청나고 차별적인 벌이라고는 아무도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힘들긴 해도 기쁘다고 할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재미로 살고, 또 부부 사이도 자식 때문에 사랑이 더 깊어지고, 최소한 부부 간의 사랑이 식어져도 자식을 위해 다시 힘을 합치게 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아무리 미운 자식, 불구자 자식이라도 그 자식이 너무 밉고 싫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엄마는 단 한 명도 없다. 그 정반대로 그럴수록 더 애처롭고 애틋하게 사랑할 것이다.

 

요컨대 어떤 엄마도 자식을 벌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보람으로 여긴다. 왜 같은 여성으로 하나님이 차별했다는 반발과 궤변을 늘어놓는가? 그렇게 주장하는 본인에게 자식이 있다면 그 사랑 또한 엄청날 것이 틀림없는데 그야말로 위선적 주장이지 않는가?

 

논리적으로 따져서 범죄 하기 전에 이미 여성은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면, 여성을 태어난 것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럼 또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게 한 것부터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따져야 한다. 이는 그분에게 너무나 큰 불경죄일 뿐 아니라 인간이 문제 삼을 범주를 넘어섰기에 성립조차 안 되는 질문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왜 날 낳았느냐? 차라리 나를 낳지 말지!”라는 불평이 욥처럼 단순히 고통스런 인생에 대한 자책 한탄이라면 괜찮다. 만약 진심이 담겼다면 아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천하의 패륜적 발언이다. 하나님에게 그렇게 대든다면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게 아예 인간이길 거부하는 것이다.

 

너무 이상한 성경해석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이브가 받은 두 번째 형벌도 여성을 차별하는 의도는 전무하다. 이브의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원죄 하에서 영혼의 실질적 죽음이 태생적 숙명으로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 쪽에서 원상회복시킬 목적으로 이브로 잉태케 하여 육신의 생명부터 이어가는 산 자의 어미가 되는 일방적 은혜를 베풀었다.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인간의 영혼에 실질적 생명도 부여하여 구원하려는 계획이 이브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죄가 출발된 자리로 되돌리려는 조치였다.

 

둘째 형벌도 동일한 맥락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뜻은 추호도 없다. 죄가 들어온 경로와 과정이 어떠했는가? 이브가 먼저 사탄의 꾐에 넘어갔는데 그 현장에 아담도 있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모든 정황상 아담이 이브를 만류했거나 본인은 망설였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지 않냐?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했는데...” 최소한 재확인은 했을 것이다. 이브는 망설이는 아담에게 “제일 영리한 뱀이 뭐라고 했어?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해서 못 먹게 했다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다른 모든 과일보다 색깔과 모양도 좋지 않은 제일 못 생긴 저 과일만 먹지 말라니 뱀이 말한 대로 뭔가 신비한 능력이 들어있는 것이 틀림없어! 정말 하나님처럼 아니 슈퍼맨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라고 강요 설득 혹은 재촉했을 것이다.

 

그런 재촉조차 하지 않았다 쳐도 아담으로선 아직은 이브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다. 이미 이브가 먹었는데도 당장은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자기가 먹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이브만 죽거나 벌을 받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을 것이다. 남자 체면과 책임도 있고 해서 더 이상 따지지 않고 받아먹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가정의 대표자요 영적 지도자로 세웠다. 아담에게 이브를 권면하고 이끌 책임이 있었는데 지금 에덴동산에서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이 벌은 일차적으로 그 창조의 질서를 원래 계획대로 되돌리려는 뜻이다. 나아가 이것은 절대 벌이 아님을 간단한 비유로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엄마 아빠가 외출하면서 맛있는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이들더러 절대 먹지 말고 나중에 돌아와서 생일 파티하면서 함께 먹자고 했다. 동생더러는 형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조용히 공부하고 있으라고 말하고는 외출했다. 동생이 케이크가 먹고 싶어 안달하는 것을 형이 말렸지만 듣지 않고 기어이 한 조각 퍼서 먹었다. 형으로선 나중에 동생만 벌 받을 것이고 또 이미 케이크는 잘라져 있고 자기도 먹고 싶던 차라 함께 먹었다.

 

부모로선 나중에 당연히 벌을 내려야 한다. 동생더러 혹은 둘 다 손을 들고 벌을 세우든지 저녁을 굶겨야 한다. 그런데 동생더러는 “앞으로도 엄마 아빠 없을 때는 형 말을 꼭 잘 들어야 해!”라고, 또 형에겐 “동생을 잘 가르쳐!”라고 한 셈이다. 원래의 가정규칙을 재확인한 것뿐이다. 형과 동생 사이의 질서를 바로 잡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사실상 동생에게 유익이고 복이다. 이를 두고 동생을 차별했다는 해석은 결코 나올 수 없다. 그런 해석을 하는 자가 더 이상하다.

 

개역성경에는 “남편을 사모하고”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사모하다’ 원어의 뜻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다. 영어성경에선 명사로는 욕망, 동사로는 자기 원대로 한다는 뜻을 지닌 ‘desire’로 번역했다. 원어에 가장 근접한 번역본으로 알려져 있는 최근의 표준새번역본에선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쉽고도 정확하게 번역해 놓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거나 남녀차별의 의미는 전무하다. 아내더러 남편을 먼저 제 마음대로 조종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들수록 남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개역성경의 ‘사모’(思慕)라는 단어가 주는 아내 혼자 애타하거나 목마르게 남편을 사랑하라는 어감도 전혀 없다. 이 구절을 두고 여성신학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성경의 문자적 의미도 모른다는 것을 반증한 꼴밖에 안 된다.

 

하나님은 이브에게 생명을 잉태케 했고 남편에게 순복하게 하는 벌을 주었지만 창조의 질서와 계획을 재확인한 것이다. 기왕에 저지른 죄로 겪은 여파 부작용을 통해 하나님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절감했기에 그 후손들에게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교육을 시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생육번성 계획

 

남자와 남편이 여자와 아내를 지배 통솔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계획에는 아예 없다. 하나님은 남녀에게 동일한 신분, 자격, 특권을 부여했다. 기능과 특성만 다르게 만들었다. 특별히 둘이 반드시 한 몸으로 연합해야만 제대로 살 수 있다. 결혼은 서로 다르지만 완전한 개체로서 즉, 1+1=2가 되는 연합이 아니다. 혼자선 도무지 살 수 없는 부족하고 연약한 0.5+0.5=1이 되어야 온전한 부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가 없이 혼자선 자립도 안 되는 불완전이다. 각자가 부족하고 그것도 전혀 다르게 부족한데 어떻게 상대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동일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반 쪽 끼리의 연합에는 지배자가 애당초 있을 수가 없다. 대표자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남편이자 아버지에게 가정의 범사를 주도할 더 무거운 책임을 부여했다. 여성신학자들의 논리대로 하자면 오히려 남자를 차별한 셈이다. 어쨌든 하나님의 뜻은 남자더러 당신과 더 깊은 교통을 하고 기도하면서 가정을 당신의 뜻과 계시대로 이끌라는 것이다. 가정이라는 교회의 목사는 남편과 아버지라는 가정에 대한 당신의 원래 목적과 계획을 다시 상기확인 시킨 것이다.

 

이전에는, 아니 저희 때만 해도 엄마가 아이를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명도 넘게 낳았다. 그것도 무통분만 주사나 소파수술도 없을 때였다. 말하자면 여자 인생의 황금기인 20-40대를, 아니 수명이 짧았기에 인생 전부를 자녀 출산과 양육에 다 쏟아 부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억울하고 불공평하다고 반발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남편에게 그 많은 자녀와 아내의 의식주를 전담 조달할 책임이 맡겨졌다. 남편과 아내 맡은 역할이 누가 큰지, 어느 쪽이 더 힘든지 따지자는 뜻이 아니다.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기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아담과 이브가 받은 벌을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 각자가 자기 맡은 서로 다른 역할과 의무의 범위를 넘어서 배우자를 자기 기분대로 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아담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작금 엄마들이 한두 명의 자녀를, 그것도 무통분만으로 낳고선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본문이 벌이라고 해도 그 벌을 훨씬 적게 받았다. 아니 평생에 딱 한두 번 받았다. 이게 과연 불공평한 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이혼은 더 늘고 아이도 부모를 우습게 아는 세태가 되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그분의 참 사랑을 계승 확장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엄마들도 크게 예외는 아니고 본문의 뜻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늘어나는 것은 엄마의 인간적이고도 일방적인 사랑뿐이다. 정확히 말해 자식으로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게 지혜롭게 만들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주려는 욕심이다. 쉽게 말해 자식으로 남들보다 뛰어나게 만들려는데 모두가 다 뛰어날 수는 없으니 경쟁의 당사자인 자녀들에게는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전에는 열 명 가량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일이 신경 써줄 여유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자랐다. 그럼에도 형제간의 사랑은 더 순수했고 부모에게 효도도 더 잘했다. 죄송하지만 여성적 하나님이 더 옳다는 주장은 시간과 여유가 남아돈다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살펴본 대로 성경의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의미를 모른다는 반증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5:22-33에서 본문을 어떻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가? 아내는 남편에게 범사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순종하라고 한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명한다. 분명히 아내가 남편에게 범사에 순종하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했다.

 

그럼 솔직히 말해 순종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어렵겠는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은 실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골치 썩을 일도 없고 책임 질 일도 없어 너무 편하다. 반면에 참 사랑은 우리 모두 경험하듯이 너무 힘들다. 죄로 찌든 본성 때문에 사실은 불가능하다.

 

지난주에 하나님은 이브로 잉태케 하는 것이 당신의 사랑을 전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지금 바울은 남편의 첫째 소명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다. 이는 너무나 고귀하고도 막중한 사명이다. 아내에게도 너무나 귀한 은혜다. 우선 아내는 그 많은 자식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하므로 반드시 남편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니고는 사랑을 받을 상대가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아내의 애정 결핍을 채워주라는 정도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당신을 교회에 주심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남녀 간의 에로스 적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이 분홍빛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온갖 크고 작은 문제들과 끊임없는 씨름이다. 부부가 힘을 합치지 않고는 이겨내지 못한다. 반 쪽 끼리의 결합이라는 원리가 모든 가정사에 적용되어야만 한다.

 

거기다 인간은 오직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존재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위에 두는 원죄 하에 태어났다. 조금만 자존심이 상해도 죽으면 죽었지 결코 견디지 못한다. 부부싸움 하다가 무심결에 던진 말이 상대에게 극도의 모멸감을 주어 이혼까지 치닫는다. 실제로 이혼 변호사가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남자가 너무 찌질하다.”고 한 말이 씨가 되어 이혼까지 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죄인끼리의 결합에서 사랑해야 하는 책임은 더 힘들다. 예수님은 교회를 어떻게 사랑했는가? 하나님 본체이신 당신에게 온갖 모멸, 수치, 고통을 안기며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인간은 피조물 주제에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당신께서 인간의 죄악은 물론 허물, 약점, 상처, 찌끼, 수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다 감당하시고 대신 죽으셨다. 그 은혜를 깨달아 진심으로 그분께 항복하는 자는 끝까지 품어주신다.

 

남편도 아내에게 바로 그런 모습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아내의 약점과 허물과 상처는 물론 죄까지도 감싸 안아 줄 수 있어야 한다. 고멜의 음란한 죄를 용서해준 호세아처럼 말이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이브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듯이 해야 한다. 그 고백은 이브가 죽으면 내가 죽는 것이요, 이브가 아프면 내가 자동적으로 아프다는 뜻이지 않는가? 부부는 부끄러워서 감추어야 할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에 남편이 그렇게 사랑한다면 어떤 아내가 순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부는 서로에게 배우자가 없다면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전혀 없다고 절감해야 한다. 본문의 뜻은 남편이 아내를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면 아내는 자연히 남편을 존경하고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형벌은커녕 차별도 전혀 아니며 도리어 이만한 복과 은혜도 없다.

 

가정이 교회처럼

 

바울은 본문을 풀어 설명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유비에 비추어 가정에 적용시켰다. 부부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스런 교회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가정이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두 말할 것도 없다. 교회 공동체는 바로 참 사랑으로 묶어진 부부 가정처럼 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또 그러려면 교인부부는 반 쪽 끼리의 참사랑의 연합이어야 하고 그 가정은 예수님이 머리이자 참 주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남편은 장로이고 아내는 성가대원으로 주일마다 최고 좋은 옷으로 빼입고 경건하게 성경을 가슴에 품고서 만나는 성도마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경건하게 기도한다. 그러다 예배 마치고 주차장에만 가면 서로 냉랭해지고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우기 시작한다. 또 그래서 자식들이 아빠 엄마처럼 예수 믿으려면 차라리 믿지 않겠다고 교회 출석도 않는 경우가 주변에 너무 흔하지 않는가? 예배는 아무 소용없고 헛되고 헛된 믿음일 뿐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완벽한 믿음과 실천은 불가능하기에 온전한 사랑은 더더욱 힘들다. 목사 장로도 부부 싸움을 할 수 있고 자식이 부모 말에 거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가 믿음을 대체한 것으로 만족하거나 그것이 전부인 줄 착각해선 안 된다. 십자가 안에서 완전히 그 존재가 뒤집어진 그래서 예수만이 주인이 된 참 믿음이 아니면 참 생명이 없다. 참 생명이 없으면 참 사랑도 할 수 없다. 아예 구원조차 의심해 봐야 한다.

 

신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창조 시에 부부와 가정에 대해 가졌던 소망과 계획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본문이 범죄한 이브에게는 벌이 아니라 넘치는 은혜와 사랑임도, 최소한 원래대로 회복하려는 뜻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종교의 탑을 쌓아선 안 된다.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이 자기에게 충만히 채워지도록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타락한 자기 본성으로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죽고 자신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져야 한다.

 

사랑은 그 본질상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 끝까지 사랑하려면 반드시 상대의 약점, 상처, 아픔, 잘못, 죄를 끝까지 품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쉽게 자기 욕망(desire)대로 따르게 되며 또 그러면 한두 번의 잘못만으로 파탄에 이른다. 남편이 끝까지 참아주고 품어주는 사랑을 한다면 아내는 저절로 기꺼이 순종하게 될 것이다.

 

며칠 전 한국 TV의 대담프로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한국의 현재 결혼평균지속 기간 이 겨우 13년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백세 시대라면 단순 수치 계산만으로는 4-5번씩 결혼 이혼을 반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신자에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 국민 평균이니까 신자 또한 동일하다.

 

이 얼마나 참담하고 통탄할 비극인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 아니 아예 그분은 안중에도 없다. 현세대에 참 사랑이 완전히 실종된 탓이다. 특별히 신자 불신자 모든 가정의 목표가 한두 명밖에 없는 자식을 화려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남들보다 앞장세우려는 것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엄마의 탐욕적 사랑이 있다.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부터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도록 지혜롭게 만들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있다. 심지어 교회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아니 대입특별새벽기도회를 적극 주관하거나 고등학생들은 교회모임은 물론 예배에 불참도록도 방치함으로써 앞장서서 그 원죄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나님의 사전에는 남녀차별이란 아예 없다. 육신의 부모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다고 했다. 그러나 열 명씩 자녀를 낳고도 엄마가 전혀 불평하지 않았을 이전까지 뿐이다. 지금은 한두 명밖에 없는 자녀인데도 부모 각자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밥 먹듯 이혼하고 아이마저 학대한다. 아이가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비뚤어진 탐욕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원인은 오직 하나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분리된 탓이다. 신자는 예수십자가 은혜보다 기독교라는 종교에 몰입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창조의 목적, 가정을 향한 그분의 계획을 알지 못하면 부부사이는 틀어지게 마련이다. 본문이 형벌이 아니요 하나님만의 애끓는 사랑의 표현임을 모른다면 사태는 점점 악화될 뿐이다. 신자 부부가 온전히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은 더 타락하고 인류에게 소망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1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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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죽 옷에 숨겨진 비밀 (창세기강해 #35 - 창3:20.21)

하나님의 가죽 옷에 숨겨진 비밀 창세기강해 (35)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0,21) 긍휼의 심판 하나님은 당신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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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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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로봇에게 지배받는 까닭 (창세기강해 #34 - 창3:17-19)

인간이 로봇에게 지배받는 까닭 창세기 강해 (34)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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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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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남성이 되는 필요충분조건 (창세기강해 #33 - 창3:17-19)

완전한 남성이 되는 필요 충분 조건 창세기 강해 (33)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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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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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문자적 의미도 모르는 여성신학자들(창세기강해 #32 - 창3:16)

성경의 문자적 의미도 모르는 여성신학자들 창세기 강해 (32)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성경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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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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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주부의 너무나 고귀한 영적사명 (창세기강해 #31 - 창3:16)

가정주부의 너무나 고귀한 영적사명 창세기 강해 (31)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선악과 금령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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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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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시험을 대행해주는 목사들 (창세기강해 #30 - 창3:14,15)

사탄의 시험을 대행해주는 목사들 창세기 강해 (30)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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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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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와 신사임당의 회초리 (창세기강해 #29 - 창3:14-15)

예수 십자가와 신사임당의 회초리 창세기 강해 (2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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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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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없다. (창세기 강해 #28 - 창3:14,15)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없다. 창세기 강해 (28)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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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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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포세대의 유일한 해법 (창세기 강해 #27 - 창3:11-13) [1]

7포세대의 유일한 해법 창세기 강해 (27)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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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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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문을 항상 빼곡 열어놓는 불신자들 (창세기강해 #26 - 창3:8-10)

옷장 문을 항상 빼곡 열어놓는 불신자들 창세기 강해 (26)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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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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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 믿는 신자임이 정말 확실한가? (창세기강해 #25 - 창3:7)

당신은 예수 믿는 신자임이 정말 확실한가? 창세기 강해 (25)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3:7) 마귀의 자녀인 불신자 불신자들이 들으면 크게 반발하겠지만 성경은 그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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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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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을 하나님도 용납하신다. (창세기강해 #24 - 창3:6,7)

인간의 탐욕을 하나님도 용납하신다. 창세기 강해 (24)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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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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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같이 선악을 아는 인간 (창세기강해 #23 - 창3:4,5)

하나님 같이 선악을 아는 인간 창세기 강해 (23)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사탄이 아담과 이브를 죄에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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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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