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7:12-18 저주의 기도를 해도 되는가? 10/21/2017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게 하소서.”(18절b)
오늘날의 신자가 구약성경을 읽으면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나 표현들이 많다. 예레미야도 본문에서 하나님에게 동족을 저주하며 열배의 재앙으로 심판해 달라는 간구까지 한다. 유대인들이 형편없어 추악해 보이는 반면에 아무리 선지자이지만 너무 냉혹하게 여겨진다.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히브리어 특성은 있는 사실 대로 평이(平易)하고 서술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그만큼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세태에 대해 실제로 가졌던 이해, 인식, 감정, 믿음을 한 치의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평소 하나님과 끊임없이 친밀하게 교제 즉, 씨름해본 자라야 가능한 표현이다. 또 원수나 동족에 대한 저주의 기도 또한 그만큼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동시에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위중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 죄악의 실상은 과연 무엇인가?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13절) 간음같이 추하거나 살인같이 폭력적인 죄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호와를 버린 상태로 즉, 아무 종교가 없는 상태로 머문 것이 아니다. 대신에 이방의 여러 우상 신들을 섬긴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것도 불충분한 설명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게 해보라고 예레미야에게 재촉했다. 여호와를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다. 유다에 여호와의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부추겼다. 여호와를 믿으면서 우상 신들을 함께 믿은 것이다. 본남편이 버젓이 있는데도 간부(姦夫)를 집안에 끄려 들여 함께 사는 꼴이다. 나아가 예레미야가 그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했는데도 완악하게 눈도 깜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따져봐라. 그 자리에 벼락을 내려 몽땅 죽여도 시원치 않을 죄가 아닌가? 심판을 받고 또 받아도 차고 넘치는, 예레미야가 간구한 대로 열배의 재앙을 받아 마땅한 죄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 선지자가 동족을 그렇게 심하게 벌하게 해달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내게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라고 항변했다. 거짓 선지자들의 듣기 좋은 말에 넘어간 유다 백성들이 심판이 임한다는 예레미야의 경고가 실현될 기미가 안 보이니까 정말로 네 말이 하나님의 계시라면 그 증험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따지고 든 것이다. 신명기 18:22에 선지자가 자기 한 말에 증험이 없으면 거짓 선지자라고 선언한다. 지금 거짓 선지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거꾸로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라고 덮어씌우고 있다. 위에서 말한 죄에 또 다른 죄를 추가했다. 완전히 사탄의 종과 노예가 되었다. 선지자로선 너무나 그들이 안타깝고 그 뒤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에 대한 분노를 도무지 주체할 수 없어서 열 배의 재앙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과연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십자가 복음을 순전하게 전함으로써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취급을 받고 있는가? 또 그런 상황에서 그가 가졌던 분노를-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과 동일한 심정에서 절로 나오는 의로운 분노를 품고 하나님에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요컨대 정말로 불신 세상을 죽도록 불쌍히 여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