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6:4-6) 이미 얻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4-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신자가 구원을 얻은 후에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핵심 근거로 드는 구절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앞뒤 문맥의 뜻을 찾고 히브리서의 전체 주제와 비추어봅시다.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 첫 번째이자 결정적으로 잘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구절만 골라 읽거나, 어떤 구절을 읽든 자기 생각으로 해석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고난 중에 있으면 위로와 힘을 주는 구절을,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하나님의 신원(伸冤)을 바라는 구절만 찾아 읽습니다. 또 현재 읽고 있는 본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해보려는 노력은 아예 하지 않고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구절과 단어에만 초점을 맞춰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해버립니다.

 

성경해석법을 배워보지 못한 일반 신자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비록 신자가 그렇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살아 운동력이 있어서 때로는 정말로 궁급한 신자에겐 큰 은혜를 끼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전문 사역자는 절대로 그래선 안 됩니다.

 

말하자면 자기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비슷한 맥락의 구절을 찾아서 억지로 그 의미를 짜내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본문 자체의 뜻을 즉, 저자가 당시의 독자에게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의미로 말했는지 밝혀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도 가장 먼저 그것부터 가르친 후에 실제 삶에 적용하는 차원에선 조금씩 넓혀나가도 되는 것입니다.

 

본문 자체가 말하는 바

 

상기 본문은 언뜻 신자가 죄나 잘못을 범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이 말씀을 살피면 그 적용되는 대상이 구원 받은 신자라고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타락한 자들이 지닌 믿음을 묘사한 네 가지 표현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 넷은 “1) 한번 비췸을 얻고, 2)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3)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4)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입니다. 모두 일회성의 은혜를 받았다는 뜻이지 지속적으로 은혜 안에 거(居)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생명의 빛에 한번만 비췸을 얻었습니다. 골고다 십자가 현장의 로마 군병들도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의 광채가 분명히 그들의 심령에 비췄기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거듭나서 구원 얻은 것은 아닙니다.

 

둘째,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습니다. “하늘의 은사”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gift)”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에 베푸는 여러 모양의 귀한 선물 중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면 최소한 “하늘의 은사를 받고”라고 표현해야 타당합니다. 구원은 본질적으로 맛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성령에 참예한 바 된 것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것을 뜻합니다. 성령이 당신의 뜻대로 각 신자에게 나눠주는 영적 선물을 말합니다.(고전12:4-11) 그런 은사를 받은 신자는 당연히 또 자연히 성도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자기 은사를 사용하게 됩니다. 맛만 보았다는 것은 그런 사역을 한 적이 없으며 또 그럼 그 은사를 소유한 적도 없다는 뜻입니다. 불치병을 앓는 불신자가 신유의 은사로 병을 낫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막상 예수를 믿지 않는 경우로 말 그대로 단순히 성령의 역사에 참여한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찬가지로 ‘맛보고’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예언도 수긍했습니다. 불신자가 전도 집회에 와서 말씀에 찔림을 받고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평소 교회에 출석하여서 말씀대로 따르지 않고 특별히 종말론적 가치관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비록 그 실천이 더딜지라도 그런 가치관이 확고히 서있지 않다면, 구원 받은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저자는 네 번이나 일회성을 의미하는 용어를 사용해서 타락한 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그랬다면 분명히 강조하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완전히 들어와서 거하는 즉, 거듭나서 구원 받은 신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락을 하되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형태로 배교한다고 합니다. 온전히 구원을 얻은 자라면 예수님의 은혜를 철저하게 부인하며 모욕하는 방식으로 거역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내주하므로 일시적으로 하나님, 교회, 성도들에게 상처받고 실망하여 신앙을 게을리 할 수 있어도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저자가 “예수를 현저히 욕보인다.”고 강하게 표현한 의도는 고의적으로 철저하게 예수님을 대적했음을 드러내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스스로 악의를 갖고 타락한 자에 대한 경고이지 하나님이 예수 믿은 후에 잘못을 범했다고 구원을 취소시킨다는 뜻과는 무관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작 배경과 동기

 

본문의 뜻을 더 정확히 알려면 히브리서를 저작하게 된 당시 상황부터 살펴야 하는데 그래야만 그 저작 동기와 강조하려는 주제가 분명해집니다. 먼저 서신을 받아 읽을 수신자들은 책 제목이 말하는 대로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자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임을 믿고 초대교회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으므로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역사로 인식했습니다. 생전의 주님의 가르침과 사역도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입증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영광의 빛의 비췸을 받았으며, 오병이어의 기적 현장에 참예했을 수 있으며, 산상수훈과 종말에 관한 설교에 감동받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재능과 특기를 활용해서 봉사했을 것입니다. 상기 본문의 표현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런데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자 자기들 세력의 약화될 것을 염려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집요한 위협과 핍박이 그들에게 가해졌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박해는 유대교로부터 온 것입니다. 유대인 신자들로 유대사회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아예 파문 추방했습니다. 이방인처럼 구원 받지 못할 죄인 취급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예수 십자가 은혜로만 구원 얻는 것은 틀렸고 반드시 지금까지처럼 모세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부추겼습니다.

 

이처럼 현실적 핍박 위에 영적인 공격까지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가해지자 서서히 재차 유대교로 돌아가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래서 초대 교회 안에 동요하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십자가 복음의 충족성 완전성 유일성 절대성에 대해 변증할 목적으로 저작된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과 그 십자가 희생 죽음을 구약의 제사장과 율법에 따른 제사에 비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인간 제사장과 달리 주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잇는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메시아라고 변증했습니다.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어야만 인간의 죄를 대속할 제물로서 완전한 조건과 자격을 갖춘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정체성을 변증한 후에 율법구원과 은혜구원을 대조합니다. 율법의 짐승 제물의 대속 효과는 행위로 범한 죄들만 그것도 일 년이라는 단기간만 미친다고 합니다. 매년 짐승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반면에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바쳐진 대속의 효과는 영단번(永單番 once for all)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 없어졌습니다. 율법의 한시적이었던 제사법도 폐지되었습니다.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8-20)

 

간단히 말해 율법에 따른 행위 구원은 틀린 것이므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실현한 은혜의 구원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는 책이 히브리서입니다. 자꾸만 율법을 따라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교회 안팎의 유대주의자들의 주장 위협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상기 본문이 예수 믿은 후에 잘못을 범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의미라면 신자는 반드시 또 오로지 자신의 행위를 올바르게 세우는 일에만 믿음을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또 은혜구원은 틀렸기에 다시 행위구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히브리서 전체가 힘써 금지하고 있는 권면과 정반대의, 의미가 됩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헛되고 헛된 것으로 전락되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 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한 저자가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고자 한 편의 편지를 작성하는데 서로 다른 의미를 그것도 반대되게 쓸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경의 저자가 일구이언 한다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히브리서의 구조와 주제

 

저자가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어떻게 반박하고 있는지 책의 전체 구조를 간략하게 훑어봅시다. 먼저 1장에서 2:4까지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천사와 대조해서 변증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지만 죄에 묶인 백성들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자손(유대인)을 위한 하나님의 충성된 대제사장이었다고 선포합니다.(2:17)

 

이어지는 3장에선 유대인들이 그렇게 귀하게 여기는 율법을 여호와께로부터 수여 받아 선포하고 가르친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우월하다고 변증합니다. 그리고 4장에선 믿음으로만 얻는 안식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히브리 선조들이 약속은 받았으나 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는데(4:1), 그 이유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3:8,9)

 

단순히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히브리 선조들이야말로 출애굽 전후에 상기 본문(6:4,5)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도 맛보고 성령에도 참예했고 말씀과 내세의 능력도 맛보았습니다. 시내 산의 화염 가운데 강림하신 여호와를 멀리서 목격했고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도 들었으며 온갖 이적을 체험했으며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도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그분과 피의 제사로 세운 제사장 나라 언약을 끝까지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예 스스로 완악하게 거역했습니다. 겉으로는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랐으나 육신에만 할례를 했지 심령에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형식적 문자적 습관적으로만 지켰지 율법의 정신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택했고 기적으로 보호 인도했으며 거룩한 율법을 수여했기에 구원은 이미 얻었다고 과신했고,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간주해서 외모로 차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살지 못하고 대신에 그분을 시험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율법은 다가올 십자가 구원약속의 표징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래서 4장 말미에 그리스도의 은혜에 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5,16)

 

이런 예수님의 은혜 구원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멜기세덱과 비교하여 변증한 후에 교인들의 신앙적 배반에 대해 경고합니다.(5장) 그 후에 상기의 본문이 이어지는데 그 전에 6:1,2에서 유대 기독교인들이 배교하여 타락하는 즉, 유대교로 재개종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6:1,2)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를 순전히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간단한 진리를 말합니다. 먼저 그 도를 버리지 말라고 권합니다. 그런데도 그 권면에는 귀를 막고 대신에 “죽은 행실을 회개하려” 하고 또 “유대교 식의 세례와 안수를 행하려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런 일들은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참된 교훈”을 다시 닦는 일이므로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그보다는 완전한데 즉, 십자가 은혜 구원의 절대성 유일성 충족성 완전성을 다시 견고하게 붙들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 이후로는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 은혜를 세밀하고도 깊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과 대제사장직의 기원을 비교한 7장,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말한 8장,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완전성을 말하는 9장, 그리스도 희생의 영원성을 말하는 10장으로 이어지고 10장 후반에는 변치 않는 믿음의 능력을 설명합니다. 그후 11장에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후에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 얻은 믿음의 선배들을 열거했습니다.

 

본문 해석의 결정적인 열쇠

 

주목할 것은 상기 본문의 다시 타락한 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힌트가 본문의 앞과 뒤에 나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각기 하나씩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하는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4:2) “저희와 같이”에서 ‘저희’는 바로 약속을 받고도 하나님을 시험하여 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히브리인 선조들을 지칭합니다. 마침 그들의 선조 가운데는 본문이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울왕인데 구약시대에는 종종 그러했듯이 성령의 일회성 은사를 받았으나 구원을 받지 못했지 않습니까? (삼상10:9-13,16:14)

 

따라서 유대교로 재개종하여 십자가를 욕보인 자들에 관해 4:2에서 이미 그 선조들처럼 복음 전함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은 자라고 설명했기에  6:2이 말하는 바도 당연히 그와 같은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 저자가 비교적 짧은 책에서 자신의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전해들은 복음에 반드시 믿음으로 화합해야 구원을 얻으나 그러지 못했다면 아직 구원 얻지 못한 자입니다. 단순히 예수를 믿어보려고 교회 생활을 시작한 자들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 완전히 항복하고 그분의 참 생명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난 자들이 다시 할례, 제사, 안수, 세례, 인식일 규정 등을 지켜야만 구원 얻는다는 유대교 교리를 쫓을 리는 없습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12:15,16) 본문 뒤에 나오는 결정적인 힌트입니다.

 

교회 내에 다시 타락할 자가 있는지 잘 살펴서 믿음으로 잘 세워주어야 하는데 혹시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파는 자가 있는지 주목하라고 합니다. 야곱의 형 ‘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현실적 필요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상속권을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던 자였습니다.

 

상기 본문에서 타락한 자는 초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기독교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 손해 내지 핍박이 두려워서 쉽사리 유대교로 재개종한 자들입니다. 율법의 짐승 제사와 인간 장로들이 제정한 종교적 규례들을 지켜야만 구원이 보장된다는 가르침에 현혹되어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물론 메시아 되심을 아무 미련 없이 포기했습니다. 에서처럼 처음부터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입니다. 구원 받은 신자(信者, believer)가 아니라 교회의 일원(敎人 church member)이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유대인 신자더러 완악하게 하나님께 패역했던 선조들의 실패를 따르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이자 간절한 호소입니다. 예수 믿어 이미 구원 얻은 신자가 잘못을 범하면 그 구원이 취소된다는 의미는 전혀 없으며 또 성경전체에 그렇게 말하는 바도 없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당신의 독생자를 다시 현저히 욕보일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4/19/2019   


master

2019.04.19 05: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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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 기독청년이 언뜻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 넷에 관해 개인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세 구절은 이미 답변 글을 올렸으나 그 동안 다른 일들이 바빠서 이제서야 마지막 네 번째 구절에 관한 답변을 올립니다.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샬롬!

옷자락

2019.04.20 00:13:16
*.170.222.121

아멘 !!!

 

 

창세기 15장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20장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창세기 21장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세기 22장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사무엘하 11장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사무엘하 12장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시편 119편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히브리서 12장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로마서 7장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로마서 8장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요한복음 21장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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