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묵상] 버려두심 vs. 내어주심

조회 수 851 추천 수 79 2011.01.01 20:24:31
버려두심과 내어주심은 은혜의 두 축이다.
버려두심의 반대가 내어주심이요,
내어주심의 상극이 버려두심일까?
아니다.
버려두심과 내어주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버려두심의 핵심은 내어주심이요,
내어주심의 중심에는 버려두심이 있다.

죄인은 죄로 인한 사망의 심판이 예비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죄와 죄인을 분리하여 구별하신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극도로 싫어하셔서
죄를 용인할 수도 없을 뿐더러 죄에 대한 심판을 행하시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그를 돌아보시고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다.

버려두심은 공의의 발현이요
내어주심은 사랑의 표현이다.
버려두심에는 고통과 심판이 내리고
내어주심에는 위로와 구원이 오른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은
어떤 땐 나를 위해 버려 두시고
어떤 땐 나를 위해 내어 주신다.

버려두심의 대상은 죄인된 ‘그들’이요 (롬1장)
내어주심의 대상은 구원받은 ‘우리’이지만, (롬8장)
궁극적인 주님의 은혜는 동일하다.
버려두심에는 주님의 안타까운 눈물이 있고
내어주심에는 주님의 기꺼운 웃음이 있다.
버려두심도 은혜요, 내어주심도 은혜이다.

버려두심은 나의 어그러짐에서 비롯된다.
내가 범한 죄악으로 인해 주님과 나 사이가 어긋나 버렸다.
어그러짐으로 인한 우선적 처리방안은 버려두심 밖에 없다.
버려두심이 내 극악한 죄에 대한 일차적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버려두심에는
내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과 배려요,
최후 심판을 미루시는 용납과 길이 참으심이요,
못난 나를 향한 끝없는 덮으심과 인자하심이 깃들여 있다.

그래서 버려두심의 이면에는 내어주심이 있다.
집나간 탕자를 한없이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죄인된 나를 위하여 내어 주시되,
독생하신 아들을 주시기까지
당신의 생명을 스스로 희생하시기까지
그렇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내어주심과 버려두심의 클라이막스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내어주심의 최종적 표현이자
버려두심의 파라독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 형장의 여섯 시간 동안
아버지는 아들을 죄인처럼 버려 두셨다.
아니, 버려두심의 심판을 몸소 행하셨다.
십자가는 죄인된 나를 위한 내어주심이요
내 죄의 심판을 대신한 버려두심이었다.

그러기에,
버려두심은 내어주심의 현장이요
내어주심은 버려두심의 일부이다.
주님은 버려두실 때도 나와 함께 하셨고
내어주실 때도 나와 같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나와 함께 동고동락하신다.

변화막측한 나의 유한한 시간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이 만난다.
그 거대하고 도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버려두심은 내어주심이 되고
내어주심은 버려두심이 되어 순환한다.
그렇게 내 인생의 시간도
내어주심과 버려두심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서서히 돌아가는 은혜의 싸이클이다.

오, 내어주심의 은혜여..
아, 버려두심의 은혜여..



(묵상한 말씀)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1:28)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2)

이선우

2011.01.07 18:38:58
*.120.153.150

그동안 미루었던 해설편입니다.

어느날 로마서 1장을 읽으면서 버려두심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버려두심은 28절 말씀 뿐 아니라 24절과 26절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버려두심에 대한 내용을 보면, 24절-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고, 26절-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고, 28절-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따라서, 버려두심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적 판단, 나아가서 일차적 심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죄의 양태적 결과는 더러움(24절)과 부끄러움(26절)과 상실함(28절)이었습니다. 특히, 상실한 마음이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내 죄에 대한 가장 큰 결과는 상실한 마음, 즉 하나님과 끊어져 있는 상태로 즉시 연결됨을 봅니다.

버려두심이 개역한글에는 ‘내어 버려두심’으로, 개역개정에는 ‘내버려 두심’으로 표현되어 있고, NIV에는 ‘gave over’로, KJV에는 ‘gave up’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버려두심에 대한 이 구절을 보면서 의외로 버려두심의 원뜻이 내어주심(give)의 의미를 내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탕자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이라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스스로의 의지로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이를 강압적으로 막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요구대로 재산을 분할해 주도록 허락했습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이 행위는 버려두심이었습니다.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 아들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먼저였습니다. 이후의 전개과정을 보면, 아버지는 집나간 탕자를 한없이 기다립니다. 그 버려두심의 이면에 흐르는 것은, 아버지의 절절하고 애끓는 내어주심의 마음이었습니다.

버려두심의 클라이막스를 저는 십자가에서 보았습니다. 내게 있어 십자가는 내어주심의 극치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버려두심의 파라독스라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독자 이삭을 향하여 칼을 높이 들었던 그 처절한 심정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갈갈히 찢기며 외치는 절규의 버려두심 속에 나를 향한 구원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그 외침은 버려두심의 정화이자 내어주심의 카타르시스였습니다. 그러기에, 버려두심과 내어주심은 당초부터 하나였던 것입니다. 버려두실 때도, 내어주실 때도 주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지은 시편 90편을 통해서, 인간의 유한한 시간과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사이에 크나큰 괴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시간이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로 하나님의 시간이 나의 시간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버려두심이 내어주심으로 승화하는 아름다운 시간의 만남이었습니다. 버려두심이 나의 수평적 시간이라면, 내어주심은 하나님의 수직적 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수평의 시간과 수직의 시간이 만나 십자가를 이루었습니다. 그 주님의 시간이 지금도 내 안에서 유한한 나의 시간을 움직이고 있는 동력임을 깨닫습니다. 내어주심과 버려두심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서서히 돌아가는 은혜의 싸이클로 말입니다. 이곳 라스베가에서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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