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자 보도에 따르면 휴스턴의 Baylor 의대에선 부모가 태아의 성(性)을 고르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시험관 임신으로 아기를 가질 200쌍의 부부에게 그 성을 선택한 이유와 기대에 관해 자세하게 조사를 한 후 실제로 원하는 성의 아기를 갖도록 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태아의 성별 선택은 워낙 예민한 문제라 캐나다, 영국 같은 나라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 대학도 아직은 전면 허용이 아니라 연구 목적에 한해 허용 받았고 또 그 허락을 얻는 데만도 9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문제는 특정 성별(性別)에 따른 유전적 질병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학적 차원에서 검토만 되었는데, 비록 200쌍으로 제한되었지만 실제 임상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번 조사가 의학적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따른 성별 선택(social sex selection)”에 관한 연구라는 것이다. 아무리 연구이지만 순전히 부모의 필요와 이유로 성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말하자면, 딸만 여럿 둔 부모가 아들을 꼭 한명 두기 원하면, 혹은 아들보다 예쁘고 재롱부리는 딸을 두고 싶으면 그대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혹자(或者)는 원치 않는 성을 임신하여 중절해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미리 선택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반면에 어떤 이는 부모가 원하는 성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되면 결국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만 유전적 질병을 예방하고 또 자기가 원하는 성의 아기를 가질 수 있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 반대한다. 단순히 사회적 공평성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기어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제치기 시작한 것이다. Boston 대학의 법윤리학자 George Annas가 염려한 대로, 성의 선택이 가능해지면 앞으로 눈이나 머리 색깔, 가문 혹은 인종 선택(trivial issues) 같은 문제에도 별로 반대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한번 상상해 보라. 아기를 자기 입맛에 맞추어 주문형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과연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헤라클레스의 체격에, 아인슈타인의 지능에, 헤르만 헷세 같은 감성에, 간디 같은 인격을 가진 자만 원할까? 또 그런 사람들로만 가득 찬 세상이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 반대로 가지려는 자는 없을까? 그래서 상상만 해도 너무나 끔찍하지만 슈퍼맨 같은 체격에 여자의 생식기를 갖추어 주거나, 혹은 그 정반대로 하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을까? 그래서 남자가 아기를 낳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이 Illinois대학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태아의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주부가 아직은 59%이다. 그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온갖 죄악과 재앙이 세상에 난무하게 되었지만 그 상자에 유일하게 남은 것은 희망이었듯이, 59%나 반대하는 주부들 때문에 미국은 아직 희망이 있는가? 아니면 41%나 찬성하니까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셈인가?
이는 여론 조사상의 수치로만 따질 문제가 절대 아니다. 아마 대세는 시간이 갈수록 찬성 쪽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수십 년 후의 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라. 그래서 내가 순전히 부모의 편의적 결정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나지도 못한다면, 아니면 부모와 전혀 딴판인 이상한 형태의 모습으로 태어 난다면…
태아 선택을 반대하는 한 주부가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아기의 출생은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어떤 의학평론가는 태아 선택이 가능해지면 아기를 ‘갖는(having)’ 것이 아니라 아기를 ‘만드는(making)’ 셈이 된다고 분석했다.
세상의 희망은 판도라의 빈 상자가 아니다. 태아의 성별은 자기가 고르는 것이 아니며 출생은 참으로 경이로운 기적이라고 믿는 자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믿으며 그 뜻대로 사는 자다. 기왕에 열려진 판도라의 상자를 제 자리로 되돌려 놓을 자는 오직 신자들 뿐이다.
그래서 신자는 반드시 이 59%의 수치가 더 내려 가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도록 하나님을 삶에서 증거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그들에게 끼쳐야 한다. 그렇게 하기 싫다면 도저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세상이 곧 닥칠 것을 각오하든지…. 다른 말로 하면 오래 사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10/28/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