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한 성경적 해석

조회 수 11093 추천 수 172 2006.11.25 23: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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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 부목으로 재직 하다가 목회생활을 접고 일반 직장과 일용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홈피를 개설하여 홈피의 주된 업무가 꿈 해석 또는 꿈 풀이가 된 사이트가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 꿈에 대한 실화가 여러 번 기록 되어져 있는데 모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를 운영 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이 꾸는 모든 꿈이 하나님의 뜻으로 꾸어지는 꿈은 아닐 것인데 마치 그러한 양 많은 이들이 꿈을 물어오고 그 꿈을 일일이 풀이를 해주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바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지 않고 정당한 행위인지요, 전 마치 점술사나 무당을 연상케 되더군요.

그는 또 홈피를 동해 자신의 어려운 생활을 피력하며 헌금을 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헌금이라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교회도 아니요 성전도 아닌 온라인상의 꿈 풀이 사이트에 헌금이라니 헌금이라고 위장한 복채를 요구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군요.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몇 번 참 안되었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하다가 중단했는데  꿈 풀이를 더 잘하기 위해 영성과학을 배우는 학교에 입학하는데 500 여만 원의 헌금을 해달라고 끊임없이 종용하고 있습니다, 영성과학은 기독교는 물론 성서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간이 만든 학문으로 이 수업을 받음으로 해서 꿈 해석을 더 깊게 분석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람의 설명이자 학비를 지원해 달라는 구실이었습니다,

첫 번 질문은 : 하나님의 이름으로 꿈을 해석해 준다는 행위가 있을 수 있는지요?
둘째 질문   : 목사안수를 받고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목회를 그만 둔 일반사회인이 된 자에게 계속 목사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것이며 목사님이라고 불러주기를 요구하는 것이 가한 것인지요?
그는 또 자신의 부인을 스스로 "사모"라고 지칭 하고 있습니다. 사모라고 불러야 옳은 걸까요?

[답변]

질문하신 내용은 사실 성경을 구태여 살펴보지 않고 상식적으로만 따져도 여러 모순과 잘못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오히려 신자들이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성경적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이 홈피의 “잘못 가르쳐진 성경” 사이트의 글 #3: “요셉은 꿈꾸는 자가 아니었다.”라는 글도 함께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꿈의 의미

꿈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누구나 체험하는 대로 꿈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아무 스토리 없이 뒤죽박죽 자기와 별로 연관이 없는 황당한 내용으로만 꾸는 것입니다. 깨어나서 기억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꿈입니다. 흔히 말하는 개꿈으로 일종의 환상(Fantasy)입니다.

둘째는 평소 때에 관심을 두었거나 염려하고 있던 것들이 꿈에 재연(再演)되는 것입니다.  힘들었던 문제가 자기 소원대로 풀리거나, 어렸을 때의 희망이 실현되어 너무 신났는데  결정적 순간에 갑자기 깨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누워 자면서도 잠재의식 속에서 사고 활동을 지속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꿈을 꾸었기에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꿈을 꿀 때는 잘 몰랐는데 너무나도 선명하고도 명료한 내용인지라 깨고 나서도 정확하게 기억나며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이는 꿈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자기와 연관되는 내용이 없는데도 스토리가 아주 일목요연합니다. 자신의 자의식과 상관없이 꾸었기에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존재가 준 어떤 징조(sign)나 경고(warning)로 간주합니다. 그 후 현실에서도 실제로 꿈과 똑 같거나 비슷하게 혹은 연관된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지나고 나면 그 꿈대로 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둘째 종류의 꿈은 사실 해몽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이 마지막 종류의 꿈을 꾸게 되면 지난 경험에 비추어 자연히 해몽을 잘 해 미리 대처하고 조심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또 사람들의 그런 불안 심리에 편승하여 필연적으로 해몽 전문가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징조나 경고의 꿈을 꾸게 되는 근거가 과연 무엇일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론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인간 무의식의 세계는 동물 같은 본능적인 감각뿐 아니라 너무나 신비하고 그 능력이 무한하기에 그 무의식이 그런 꿈의 근거라고 합니다. 실제로 인간은 전체 두뇌 능력의 5%도 다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인간의 비상한 두뇌 능력이  자신은 전혀 기억 못하는 지난 체험과 그동안 축척된 지식과 현재 되어가는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분석한 후에 스스로에게 경고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스캇 펙은 “우리가 자신을 의식하는 자아로 정의할 때 무의식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식이란 의식을 무의식과 일치시키는 과정이다”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이 마주 보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의식과 무의식이 마주 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의 무의식이 바로 신이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인 것이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아직도 가야할 길 The Road Less Travelled, 1978. 의식의 진화 편)  

그가 비유로 말하긴 했지만 무의식 자체가 신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단이나 하나님 같이 전적으로 영적인 존재가 인간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영혼(무의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셋째 꿈은 사단이나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을 매개체로 해서 그런 꿈을 꾸게 한 것입니다. 영혼의 분야는 인간의 지정의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기에 심리학적으로는 무의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단은 자기 종에게,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꿈을 통해 그 뜻을 드러내 보일(啓示 Revelation)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영적 존재가 자기 뜻을 꿈을 통해서만 계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꿈이 그 계시의 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꿈들이 바로 이 셋째 의미의 꿈이며 또 그런 계시는 오늘 날에도 사람과 경우에 따라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

꿈을 통해 징조나 경고가 사단과 하나님 둘 다에게서 올 수 있다면 그 다음에 따져야 할  문제는 1)신자에게도 사단이 꾸게 하는 꿈이 있을 수 있는지, 2)사단의 꿈과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구분하는 지, 3)그 꿈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일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한 신자는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또 성령이 이미 내주하여 성령의 전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사단은 일시적으로 훼방하고 조종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 사단이 전혀 그럴 수 없다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엡6:10-18)고 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꿈과 연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신자도 때로는 사단이 주는 가위 눌리는 꿈을 꾸지 않습니까?

그런 가위 눌리는 꿈을 제외하고는 사단과 하나님의 꿈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둘 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을 정도로 스토리가 분명한 꿈이며 때로는 같은 혹은 비슷한 내용으로 연속으로 꾸게 되니까 꿈의 형식과 내용만으로 구분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좋은 일이라고 무조건 하나님의 일이 아니며 나쁜 일이라고 당연히 사단의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어떤 선택의 문제를 두고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그 이후에 나타나는 여러 대체 방안 중에 도대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외형적 요건만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주는 꿈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신자가 신앙 상에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가 기도하면 또 목사와 상담하면 족집게처럼 여러 대체 방안 중에 하나님의 뜻 하나를 정확하게 선택해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대체 방안이 하나님의 것일 수 있고, 반대로 전부 사단의 것일 수 있으며, 또 각기 여러 개씩 둘 다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꼭 하나를 하나님의 뜻으로 고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할 때도 많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을 점쟁이처럼 인식하거나, 기도나 믿음을 여러 대체 방안 중에 하나를 골라내는 수단과 능력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란 신자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가기 위해 동원되어져야 합니다. 신자가 기도로 알게 된 하나님에게 자신을 맞추어서 반응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매사에 믿음을 최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할 부분은 사단이 인간을 조종하여 달성하려는 목적과 하나님이 성도로 하여금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비교해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으로 하나님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등지게 만드는 것이 궁극적이자 유일한 목적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흉계가 산산이 부셔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가장 손쉽게 동원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인간으로 잘 먹고 잘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단은 일종의 비상수단으로 인간에게 겁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고는 절대 곤경에 빠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 받은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능력을 발휘해 사람들을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 주는 메시야로 변질시키려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당연히 사단은 사람을 항상 안락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예수를 찾지 않게 만들려 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단의 반대입니다. 사람에게 고난을 주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단의 수단과 반대되는 하나님이 가장 자주 동원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도 사단과는 반대의 목적, 즉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님의 발아래 복종케”(엡1:22,23) 하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품 안에서 의와 거룩과 생명의 삶을 살게 하며 또 당신의 사랑을 주위에 나눠주어 성도들끼리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꿈을 하나님과 사단 어느 쪽에서 꾸게 했는가 구분하는 기준은 나온 셈입니다. 사단은 항상 한 개인의 입신영달,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에 관계한 꿈만 꾸게 합니다. 쉬운 예로 돼지꿈이나 용꿈을 꾸게 해 복권을 사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게 노력하고 일하지 않는데 일확천금을 주는 법은 없습니다.(살후3:10) 점쟁이에게 꿈을 해몽하려 가는 사람도 전부 동업을 하거나 결혼해도 된다는 징조인지 아니면 반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인지 물어보지 않습니까? 한 마디로 자신의 길흉(吉凶) 여부만 묻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꾸게 하는 꿈은 다릅니다. 물론 신자 개인의 보호와 인도에 관한 징조 내지 경고의 꿈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신자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전체 교회의 덕을 세우며 또 당신께서 이루실 사역을 준비시키고 나아가 그 세대와 역사 전체에 대한 경고의 뜻을 포함합니다. 개인적인 꿈도 예컨대 누구를 용서치 못하고 미워하고 있었는데 자신을 질책하며 사랑으로 용서하라는 메시지가 꿈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꾸게 하는 개인적인 내용의 꿈은 대개의 경우 신자가 평소 때에 기도했던 문제들에 연관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 당신의 뜻을 명료하게 보여주어 오해를 하지 못하게 다른 계시들, 예를 들어 그 전날 말씀으로 큐티 한 내용이나 혹은 성도들과 상담한 내용과 꿈의 내용이 일치하도록 합니다. 다른 말로 남에게 꼭 해몽을 부탁하지 않아도 평소 기도와 말씀에 열심이었던 신자라면 스스로 하님이 주신 꿈인지 나아가 그 꿈의 뜻까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꾸게 한 꿈들의 예가 있습니다. 먼저 요셉이 꾼 꿈(창37장)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될 야곱가문에게 20여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계시하셨고 그 꿈이 발단이 되어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실 일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또 바로가 꾼 꿈을 통해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었다고 그의 개인적 길흉으로 연결된 꿈이 결코 아닙니다. 바로의 꿈 내용은 애굽에 풍년과 흉년이 겹칠 것이라는 것이었지 요셉 개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것도 그 꿈을 정확하게 해석할 만큼 영적 통찰력이 깊었고 또 그 대책도 아주 지혜롭게 세웠기 때문일 뿐입니다.  

다니엘이 해석해준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의 꿈(단2,4장)에도 이방 땅의 역사마저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 있었는데 바벨론의 장래와 나아가 수백 년간 진행될 세계 역사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꿈을 해석해주면서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 것을 누구에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장구하리이다.”(단4:25-27) 꿈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교만이 극에 달한 왕이 회개하면 나라 전체도 견고하게 서게 될 것이므로 바른 정치를 베풀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공동체, 또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이방나라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주관하는 역사 전반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날도 나라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꿈을 비롯한 여러 통로로 하나님의 징조와 경고의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북한의 공산독재 정권과 남한의 기복주의 교회 및 백성들의 죄로 인해 한국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이므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꿈 전부가 거창하거나 심오한 일에 관한 것이라고 간주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개인적인 꿈도 꾸게 합니다. 그러나 그 개인적인 내용도 반드시 성도 본인과 이웃 성도와 전체 하나님 나라가 거룩하게 서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별은 이렇게 따져보면 아주 쉽습니다. 점쟁이에게 찾아 가는 사람치고 “나는 어떻게 하면 더 의롭고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남들을 더 사랑으로 섬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죄악을 씻어내고 더욱 의로운 백성과 나라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는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오직 사업, 학업, 결혼, 취직, 출산 등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만 따집니다. 한 마디로 개인의 길흉에 관한 것뿐입니다.

반면에 신자가 진정으로 기도하면서 이루어 내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꿈을 통한 계시의 내용도 당연히 바로 그 기도했던 일의 응답이거나, 신자가 미처 모르는 당신의 교회와 역사 전체를 거룩하게 이끄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관한 것 아니겠습니까?

직업적인 해몽

남이 꾼 꿈을 전문적으로 해석해 주는 행위에 대해서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대로 꿈을 꾸게 하는 하나님과 사단의 목적이 확연히 구분되면 그 해석도 쉽게 구분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징조나 경고의 꿈은 요셉의 경우처럼 쉽게 해석이 되므로 구태여 해몽 전문가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꼭 드러내어야 할 당신의 뜻은 반드시 신자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 주십니다. 신자는 마음을 열고 간절히 듣고자 준비만 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18:10,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점쟁이와 무당을 극도로 혐오하고 저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길흉을 말하는 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점쟁이들의 전문 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꿈을 해석해서 개인적인 길흉을 말해 주는 것 아닙니까?

물론 성경에도 다니엘 같이 다른 사람이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이 꾼 꿈의 내용까지 알아맞힌 후에 그 꿈을 해석해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세운 신령한 선지자(先知者)였습니다.

“네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화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 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신18:13-15).

신자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 쫓되 그 뜻은 바로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직업적으로 꿈을 해몽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아 그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말만 들으라고 합니다. 선지자란 구약의 모든 선지자의 예에서 보듯이 당연히 성도들의 죄를 통박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전체 하나님 나라가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가도록 하는 것만 전하지 개인의 영달은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선지자가 자신의 꿈을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하는 것도 엄중하게 금했습니다. 자칭 선지자라고 하면서 영적으로 깨인 사람이 자신의 꿈도 제대로 해석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의 꿈을 해석하는 것은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는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떻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렘23:28,29,32)  

꿈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기도 힘든데 남에게 100% 완전하게 전하기는 더 힘듭니다. 자기의 상황을 자기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인이 모르면 다른 사람도 모릅니다. 성도 각자에게 성령이 와 계시기에 정말 간절히 그 뜻을 알게 해 달라고 하면 어떤 형태로든 알게 해 주십니다. 꿈을 비롯한 하나님의 계시에 제 삼의 해석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목사에게 꿈에 관한 상담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석이 성도 개인이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도록 하며 전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 꿈은 아예 무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자신의 인간적 뜻과 욕심이 반영 되었거나 사단이 심어준 꿈이라는 뜻인데 그것을 따르고 조심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꿈은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이긴 하지만 그리 자주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계시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고 주로 기도했던 문제인지라 본인이 곰곰이 따져보면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가 선지자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욜2:28)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완수하시고 약속대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모든 신자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개인적인 교통이 가능하여 모두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여타 방식의 어떤 계시라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이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9)라고 했듯이 귀를 열고 주님께 엎드리면 성령이 귀 있는 자에게 분명히 들려주십니다. 만약 들리지 않는다면 아직도 신자에게 성전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라고 고백한 그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질문하신 케이스와 목사 호칭 문제

성경은 꿈을 직업적으로 해석해 주는 자, 특별히 개인의 세상적 길흉을 말해주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그분은 질문자님이 지적하신 대로 성전에서 성도들의 꿈을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온라인 상에서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자의 개인적인 꿈까지 해석해주면 바로 길흉을 말해주는 복술자 수준입니다.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고 있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그것도 헌금을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나 모릅니다.

또 헌금이란 말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주는 것은 후원금일 뿐입니다. 나아가 헌금을 액수를 정해서 하라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미리부터 제한하는 행위입니다. 헌금이란 어디까지나 신자가 자의로 믿음의 분량에 따라 기쁨으로 감사하며 해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없는 세속 학문을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헌금을 하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그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그 사이트는 꿈을 심리학적 또는 과학적(아마 주술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겠지만)으로 연구하는 동호인 사이트로 바꾸고 그에 따라 모든 명칭, 호칭, 용어도 바꾸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처럼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지만 하나님과 성경의 뜻에 비추어보면 너무나도 큰 잘못을 눈도 깜짝 않고 저지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에 대한 호칭은 항상 다른 사람과의 상호 관계에서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본인이 남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와 남이 자기를 불러 줄 때, 두 경우에 다 적합해야 할 것입니다. 또 무엇보다도 현재 맡고 있는 직무와 적절하게 연관되어야만 합니다.  

원칙적으로 목사가 복음 전파에 연관된 일에 전문적으로 종사하지 않고 세속적인 직업으로 완전히 전환했으면서도 그 직업에 따른 호칭보다 먼저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해선 안 될 것입니다. 일부러 목사라는 호칭으로 이익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고는 그럴 수 없습니다.

반면에 남이 자기를 불러 줄 때는 목회 할 때에 이미 알았던 사람과 목회를 그만두고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의 두 경우를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상호 익숙해진 호칭으로 계속 불러주는 것을 구태여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회사의 사장이었던 사람이 그 회사를 그만두었어도 보통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알게 된 자의 경우는 목사가 자기를 어떻게 소개했느냐 따라 달라질 것인데 그럴 때에는 당연히 현재 맡고 있는 직분에 맞는 호칭을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목회에서 완전히 은퇴했거나 개인적으로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다면 경우가 다릅니다. 목사라고 소개해도 큰 하자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하는 일에는 사실 은퇴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평생을 두고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한 자입니다. 목회를 은퇴한 후에도 선교사로, 문서선교로, 교단 관계 일로, 혹은 사회봉사로, 최소한 집에서 기도하면서라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종사합니다. 그렇기에 목사라 불러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목사라는 호칭으로 자기를 남에게 소개하거나 남들에게 그렇게 불리거나 간에 목사 본인의 양심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또 사모의 호칭도 자연히 그 목사 남편의 양심에 따라 정해질 것입니다. 만약 본인이 목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기에 미흡한 점이 많다면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 또 목사라는 호칭으로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 연관 없이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들면 아주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항상 성도 개인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그래서 성도들이 모인 하나님 나라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성도나 그 성도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가게 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면 가시적 조직체에 공적으로 속하든 안 속하든 목사는 목사입니다. 심지어 은퇴하고 병약하여 집에서 혼자 말씀보고 기도만 해도 목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교회를 하고 있어도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목사 자신의 이름만 높이려 들면 그는 아무리 사회적으로 또 교회 내에서 목사라는 호칭으로 대우 받아도 하나님 앞에서 목사는 아닌 것입니다.    

11/25/2006  


김문수

2006.11.26 12:38:44
*.168.183.198

아멘!!

예수를 바로알고 예수를 바로믿고
예수를 바로 전하는 일이 쉬운것같지만??

작금의 현실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이 말씀을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로? 진짜로? 말씀 그대로 구세주 이신가 ?
의문이 들게 할정도로 수많은 혼란요소들이 발생했는데. 서로 진짜로 자기들이 예수똑바로 믿고 있다고하니.....

진짜 예수만을 바라본것같은 사도바울도
자기의 허물과 자기의 무능력과 자기죄성에 괴로워하며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 감사한다고 고백했는데........

수많은 이단들은 말할가치도 없고
수많은 믿는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전체는
예수님관점을 철저하게 깨달았던 사도바울의 무시무시한고백
나는 죄인중의 괴수 오직 예수님공로와 은혜라는 고백과

최춘선 할아버지의 역시 무시무시한 고백
나는 죄인중의 괴수 오직 예수님공로와 은혜라는 동일한 고백이
왜 그렇게 자동으로 고백했는지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생각해봐야할것같습니다.

다시한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아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는 하나님말씀!!
날마다 고백할수밖에 없는 하나님말씀!!


백운산

2006.11.27 12:15:56
*.85.148.42

목사님! 오늘에야 목사님의 귀중한 글을 보았습니다
인생여정에 너무도 많은 덫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속담 같이 제 스스로의 판단이 서지않을때 염치불구하고 속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응애하고 태어나 강보에 쌓여 어머니 품안에 안겨 교회를 다니던 세월이 50년이 흘렀습니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읆는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귀동냥 50년에 성경 몇번 읽은게 제가 소유한 하늘 지식의 전부이니 초라하기 그지없으며 가막눈 신세이나 세상 모든것을 버리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를 얻고 주님께 발견되기위해 목숨을 다하여 노력 합니다
오늘의 남은 시간도 주님의 은혜가운데 평안 하시기 바랍니다 - 아멘 -

김문수

2006.11.27 13:31:42
*.91.197.7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아멘!!

운산 형님!!
정말 감동입니다!!
형님 께서는 저보다 훨씬 깨끗하신분입니다!!
형님 께서는 이미 주님께 발견되셨으니
오히려 주님께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면
주님께서 기뻐하실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샬롬!!



사라의 웃음

2012.12.05 22:17:42
*.109.85.156

목사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이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자들은 아무리 큰 교회에 있어도 복음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만 높이려 하기에 세상에선 목사로 불리워 지지만 하나님 앞에선 절대로 목사가 아님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정말 죄를 통박하여 어서 어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그래서 성품이 예수 안에서 변화되어지길, 거룩하여 지기를 목숨을 걸고 기도하며 애를 쓰며 전하는 분이 하나님 앞에서 참 목사로 인정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임을....

성도들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거룩으로 지어져 가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이며 살아야함을 배웁니다. 이 땅에서 먹고 사는 일에 힘을 소진하거나, 이 세상에서 자신의 어떠함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 정말이지 항상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해석하려하는 모습들, 스스로 너무나도 자주 속아 넘어가는 자기 중심들.... 말씀에 비추어 보며 발견되어지고, 그 자리에 머뭄에서 이젠 회개하여 옳은 길로 돌아서길 늘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순간 기도하여야함을 또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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