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그대로 완전히 믿어야 하나요?

조회 수 3009 추천 수 84 2006.08.26 16:36:09
[질문]

어제 저녁 Discovery channel에서 The Exodus decoded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8시에서 밤 10시까지 두 시간동안 진행되었는데, 영화감독 제임스 케머런이 제작을 맡았더군요.

당연히 반 성경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재미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프로에서는 다음의 맥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모든 주제마다 증거가 있더군요.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출애굽을 신화로 생각하면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로 이집트에 거주했다.-기록이 있음, 고대어로 Yakov(야곱)이라는 이름의 유대인이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들어왔었다.-이것도 기록이 있음, 그의 아들은 왕가의 문양을 사용할 정도로 권세가 있는 사람이었다.-왕가 문양을 사용해서 만든 돌 판에 새겨져 있음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시기부터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어느 시기인가에 이집트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 우박, 암흑, 개구리, 매뚜기 떼가 이집트를 습격한 적이 있다. 모세라는 사람이 아하무세 라는 이집트왕의 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빼갔다. 아하무세의 아들은 일찍 죽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 다 미이라가 남아있습니다.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엑소더스를 하던 거의 그 시기에 그리스 남쪽의 산토리니 섬이 어마어마한 사이즈로 분화를 합니다. 즉 출애굽기의 10가지 재앙은 바로 이 화산의 영향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를 둘러싼 지진대의 영향으로 큰 화산이 터지면서 이산화탄소가 지표로 올라 왔고....
이로 인해 나일강은 색깔이 빨갛게 변했을 것(이런 예가 있음).
개구리나 메뚜기의 습격은 지표온도의 변화로 인해 자주 일어남
화산재가 수백 킬로미터를 덮으면 해를 가려서 낮에도 어두워집니다(이것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죠) 지표에서 올라오는 이산화탄소는 사람을 죽게 합니다(아프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게, 이집트에서는 장자를 반드시 바닥에 가깝게 잠들게 한다고 합니다. 이게 일종의 특권이라는 거죠. 즉, 장자들이 땅에 가깝게 잠을 자고, 지표를 덮은 이산화탄소가 장자들을 죽게 만들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겁니다.
또 대규모의 쓰나미가 일어나면서 홍해의 지층이 변화되어 아래 부분이 올라오고 이 길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을 건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석유층에서 뿜어져나오는 연기와 불을 의미한다.

자 이렇게 재미난 프로를 보면서도 역시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의견은 당연히 나뉘어지겠죠. .거 봐라..무슨 기적이냐, 순전히 자연현상이다....아니다 하나님께서 화산을 쓰셨을 가능성은 왜 생각하지 않는냐 등등....

그런데 이 프로를 보다가 모든 가족이 신앙인인 저희 집에서 약간 언쟁이 있었습니다(이 부분이 오늘 제 질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나일강이 핏물로 변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서는 화산으로 인해 이산화탄소가 올라오면 호수가 피 빛으로 변해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젊은 저희 부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른들께서는 성경의 말(피)을 100% 문자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이 프로그램은 거짓말쟁이이다...즉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시는 겁니다.

저와 아내는 과학을 공부한지라, 반성경적일거라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이 오히려 '출애굽이란 충분히 일어났을 가능성이 잇는 일'임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받아들였고, 어른들은 '성경을 100% 신뢰하지 않고 만들었고, 또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을 어겼으므로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믿어서는 안 된다'로 결론을 내리신겁니다.

이게 제 질문입니다.
정말 성경은 100% 문자적으로 그렇다고 믿어야 하는 건가요?
저는 예수님의 오병이어나, 나사로의 살리심, 예수님의 부활, 처녀수태, 앞으로의 재림, 천지의 창조....등등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름대로 성경에 대해 근거를 들이대려는 노력을 꼭 나쁘게만 보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과학을 한 사람이라 그런지...
사실 무조건 교회에서 '성령체험 하면 다 바뀐다' 이런 말도 자주 들으니 싫더군요.
너무 많은 교회들이 획일하게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불건전'으로 묘사하고 그 대상들을 심판하는 자세로 돌변하잖습니까.

성경은 정말 100% 믿어야 진짜 믿음인가요? 그렇게 믿어지지 않으면 제가 부족한건가요?

[답변]

성경도 문학작품이다.

정말 과학도다운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과학적 상식과 논리적 추리력을 갖춘 신자라면 누구라도 동일한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우선 “성경을 정말 100% 믿어야 진짜 믿음인가요?”라는 질문은 “성경에 쓰인 그대로 문자적으로 100% 온전히 믿어야 진짜 믿음인가요?”라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 답은 한 마디로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과학도이신지라 아마 딱 부러진 답이 아니라고 여기실 것이므로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동일한 본문을 두고 신앙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문자적으로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된다는 상대주의적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두고 문자적으로 100% 믿어야 할 부분이 있고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든지 그 기록에 오류가 있으니 믿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록된 모든 사건은 분명히 있었고 또 그 기록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와 교훈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는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임은 절대로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문자적 기록을 완전히 믿어야 하느냐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성경도 일종의 문학적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또 문학적 표현이라는 의미는 과학적 리포트나 논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과학도이신지라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힐 것이라 믿습니다. 문학이란 비유, 과장, 강조, 생략, 상징 등의 수사법이 동원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성경 독자는 반드시 표면에 기록된 문자보다 내면에 숨겨진 저자의 의도를 추적해야 합니다.

또 성경은 형식적으로는 산문과 운문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화체, 전기, 역사적 기록 같은 일반적 문학의 장르와 예언, 묵시, 율법, 찬양 같은 성경 특유의 장르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본문이 이들 가운데 어떤 장르에 해당하는지부터 먼저 구별한 후에 각각에 맞는 해석법이 동원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성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수십 명의 저자들이 저작한 책입니다. 따라서 오늘 날의 독자가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장애들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즉 저자와 독자 사이에 엄청난 시간적, 문화적, 지리적, 언어적 간격이 존재하기에 그런 간격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전문적 지식과 해석법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 저자에게 성령을 통해 영감을 주셔서 당신의 뜻을 계시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가장 큰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적 관점과 지성만으로 이해해서는 그 뜻을 결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 따라서 독자도 반드시 기도하여 성령의 인도로 그 뜻을 살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학을 하지 않은 일반 평신도의 입장에서 어느 부분을 100% 문자적으로 믿어야 하고 또 어느 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지 구분이 참으로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그런 구분에 도움이 되도록 ‘성경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평신도도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했습니다. 과학적, 논리적 지성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개발된 오늘 날의 신자들은 “만인신학자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각 교회에서 평신도들에게도 조직신학, 신구약 개론, 아니면 최소한 성경해석학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해석학이 수학적 공식처럼 성경 해석의 난제들을 절대로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성경 체계의 대략적 뼈대만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 인간 신학자가 하나님 계시의 신비를 전부 파헤쳐 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지정의와 상충은 되지 않지만 여전히 그것을 초월하는 영역에 속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해석의 가장 큰 기준은 성경 전체에 드러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속사적 뜻과 목적입니다. 그것은 물론 예수님 앞에 겸비하게 나오는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해 주시겠다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신구약 성경 해석의 가장 중요한 열쇠가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은 왜 예수님이 수난의 종으로 올 수 밖에 없었는가, 신약은 그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신 일과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결과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를 정확하고도 온전하게 믿는 믿음만이 성경 해석의 절대적 키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어야 하느냐는 의문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질문자님께서 예를 든 대로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 같은 초자연적 사건 때문일 것입니다. 이 또한 성경 전체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믿음으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재앙과 그런 기적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의 기적을 해석하는 관점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분석을 내어 놓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이는 새로운 이론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장자의 침상이 맨 밑바닥에 자리해 있었기 때문에 땅에 깔린 이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지표에 깔린 가스가 어떻게 애굽의 모든 집의 장자 침상 높이까지만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는지 더더욱 신기하지 않습니까? 기적을 믿지 않는 어떤 선생이 홍해는 갈대밭이라 얼마든지 걸어 건널 수 있었기 때문에 기적이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그렇다면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 물에 바로의 군대와 병거가 다 수장(水葬)될 수 있었다니 말입니다”라고 반문했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동일한 기록을 두고도 각자의 믿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내용은 정반대로 갈라집니다. 믿음이 확고하게 서있는 자들에게는 과학적 지식이 믿음을 방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믿음의 가장 기초는 화산의 폭발도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는 데 서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화산 폭발에 연관된  온갖 자연 현상이 열 가지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최근의 과학적 연구는 출애굽의 재앙들이 이집트의 자연 현상과 상당히 잘 들어맞을 뿐만(G. Hort, "The' Plagues of Egypt") 아니라 그 순서에 있어서도 정확하다(D. M. Beegle, "Moses, the Servant of Yahweh")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과도한 강우로 나일 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아비시니아와 에디오피아 고원의 밝고 붉은 빛의 토양과 붉은 빛의 편모충이 씻겨 내려와 강물이 붉고 탁하게 변하고 고기들이 죽게 됩니다. 죽은 고기떼는 개구리가 강변을 떠나고 병균에 감염되어 갑작스레 죽게 만듭니다.  '이'와 '파리'는 나일 강의 홍수가 물러간 후에 고인 웅덩이에서 대량으로 부화될 수 있고 가축들의 죽음은 오염된 개구리로 인한 탄저열(炭疽熱-anthrax) 때문으로 봅니다. 독종 또한 파리 떼에 물림으로써 생기는 탄저병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침 내린 우박과 뇌우로 삼과 보리는 망쳤지만 밀과 나맥은 아비시니아 고원의 비 때문에 생긴 엄청난 메뚜기 떼가 망쳤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짙은 어둠은 2월말 또는 3월초에 남쪽으로부터 이집트를 2-3일 정도 계속 강타하는 “모래 폭풍(bamsin)"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기의 과학적 논문에서도 장자를 죽이는 마지막 재앙만은 자연 현상과 전혀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드디어 디스커버리 채널이 이것마저 과학적으로 추론해 내었습니다.  신자도 이런 과학적 이론을 많이 접해보고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믿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화산이든 홍수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수도 없이 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 인정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중에 어떤 것이 꼭 맞다고 믿거나 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기적을 일으켰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또 기적은 매번 인간 지성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문자적으로 꼭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뜻은 홍수나 화산 같은 다른 자연 현상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출7:20)의 기록 그대로 모세가 지팡이로 치니 즉시 피로 변하고 고기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 어쩌면 가장 큰 가능성입니다.

문제는 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정도로 강물이 붉은 빛으로 썩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신자가 확실히 믿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학적 논문이 아니라 단순히 피로 변해 고기가 죽었다고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사실은 분명히 믿으면서 방법론적으로 여러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인정하는 것을 두고 나쁜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 과학자들의 추리나 설명이 그 사실을 부인하는데 동원되었다면 몰라도 오히려 그런 사실이 일어났다는 것을 더 확실하게 뒷받침 할 목적이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신자들이 이런 부분에 아주 민감한 이유는 기적을 자연 현상과는 일절 결부시키지 않으려는 고착화된 태도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음이여”(사49:16)이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100% 믿어야 한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에게 손바닥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무지무지하게 커야 하며, 하나님은 항상 그 손바닥을 보시고서야 우리에 대한 인도를 하신다는 뜻이 되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시적인 상징과 비유의 수법을 동원해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반면에 출애굽 기사는 실제 사건을 기록한 산문이니까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반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자님의 경우 어쨌든 나일 강이 피로 변하고 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사실만은 절대로 믿었지 않습니까? 또 그 프로그램을 보고나서 더 확신을 했지 않습니까? 그 분석대로 완전히 믿지는 않고 단지 한 가지 개연성으로만 인정했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자적으로 믿는 자와 질문자님의 차이는 그 기적을 온전히 믿었다는 면에선 전혀 없고, 단지 그 기적의 과정에 관심을 가졌느냐 아니냐의 여부뿐이지 않습니까?

이전에 신앙이 아직 미숙한 과학 분야의 박사(오래되어 전공을 기억하지 못함)가 자기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만은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동식물 중에 단세포 생식을 하는 일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에 인간의 처녀 임신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초점은 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신 하나님에게는 어떤 일도 불가능할 리가 없는데다 실제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보니까 동정녀 임신을 더 확고하게 믿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의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신자에게 한 가지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재앙을 겪고도 바로의 마음이 오히려 더 완악해진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그런 재앙을 한두 번 당하면 당장 항복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의 근본적인 죄성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그가 처음에는 재앙의 엄청난 규모에는 놀랐지만 차츰 수습이 되어가면서 어쨌든 애굽에서 이전에 겪었던, 아니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자연 현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애굽의 술사들도 재앙을 흉내 내었기 때문에 바로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에선 완전히 항복을 했습니다. 자신의 장자가 죽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자기가 죽을 차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과학적으로 추리하면 다른 것은 다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이었는데 이번만은 도저히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라 진짜로 잔뜩 겁을 먹은 것입니다. 그야 말로 하늘에서 영적인 사자가 내려와서 심판했다고 인정한 셈입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분석이 아주 흥미롭다는 것이 바로 이런 측면 때문입니다. 그 분석에선 가스 때문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눈에 안 보여도 측정할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되어 있지만 당시로선 가스는(과학도가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냄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도저히 구별해 낼 수 없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과학적 탐구와 연결되니까 오히려 더 정미해지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나 놀랍고 오묘해서 소름이 끼치지 않습니까?

기적의 성경적 이해

흔히들 기적을 자연 현상과는 전혀 별개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일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일 강이 피로 변한 것도 아무 자연 현상 없이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자,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렇게 되라고 말씀만 하자 순간적으로 바뀐 것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이 말씀 한 마디로 무(無)에서 만물을 창조했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 이후에는 이미 만들어진 자연계 안에서 하나님이 그 운행 법칙을 깨트리거나 비상한 방식으로 운용하여 일어난 일이 기적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자연계의 기존 법칙과 현상을 동원해서라도 당신의 뜻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는 자연계 현상도 당연히 포함하여 세상만사를 오직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로선 이 세상이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서 스스로의 의지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물론 사계절 같은 자연계의 정해진 법칙은 인정했지만 그것마저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는 증거로 여겼습니다.

요컨대 자연계의 일상적인 일이나 비상한 일이나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그 속에 당신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비상한 현상을 두고 초자연적인 기적이라고 흥분하기 보다는 그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기적은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그들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뜻에서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는 아무리 비상한 일도 사실 하나님이 다 하셨기에 구태여 기적이라고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적은 분명히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자연계 안에서 비상한 모습으로 간섭하신 증거입니다. 그러나 많은 기적을 목격하고 그 자체를 믿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목격된 이적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그 계시를 발견하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동일한 기적을 보더라도 해석하는 자들에게 따라서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에서 보듯이 자연현상을 동원해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과 자연계 현상을 인간의 합리적, 경험적, 과학적 논리로만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기적이 무려 열 번이나 있어도 바로처럼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하는 아주 타당한(?) 근거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불신자들, 타종교인들, 자유주의적 신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적을 단지 자연 현상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것에 반발하기 위해서 반드시 문자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너무 가난한 신앙입니다. 또 기독교가 과학을 부인한다는 비난을 면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과학은 결코 신앙과 상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 안에서 과학을 하여야 올바른 과학이 됩니다. 아무런 이성적 분석과 판단 없이 무조건 믿는 것은 맹신입니다. 전혀 믿을 수 없는 엉터리를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 이 둘과 다르며. 오히려 올바른 과학의 토양 위에서 더 온전해집니다.  

참 과학이란 하나님이 인간이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당신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릴 대상으로 자연계를 만드셨다는 것과 또 인간의 유익을 위해 그 안에 일정한 법칙을 부여하셨다는 것을 믿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법칙을 창조주 신앙 안에서 분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이 없는 세속적인 과학자들로선 단지 인과율에 근거하여 자연 현상을 분석하므로 기적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그 인과율조차 하나님이 만드셨고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신자 과학자는 자연계 안의 기적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오히려 그런 현상을 성경 기록과 연결해서 밝혀낼 책임마저 있습니다. 단순히 어느 쪽의   과학적 지식이 더 뛰어난가를 증명하려 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연마저도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에 동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신자들에게 심어 주어야 합니다.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자연 현상으로 분석했을 때에 불신자는 “봐라! 어떻게 하나님의 기적이냐? 단지 화산이나 홍수의 부작용들이 나타난 것뿐이지!”라고 강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그런 추론으로 기적의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졌기 때문에 성경 기록을 더 신뢰하는 쪽으로 적용합니다. 또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런 기적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춥니다.

성경적으로는 아무리 비상한 일도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로선 기적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와 신비한 모습으로 일어났는가 보다는 왜 하나님이 꼭 그런 상황에서 그런 기적을 일으켰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적의 사건(Event) 자체보다는 시점(Timing)이 더 기적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열 가지 재앙의 순서마저도 자연현상과 성경 기록이 일치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들이 그렇게 분석해 낼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의도적으로 기적을 그런 순서로 연출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불신자들이 그것을 꼬투리 삼아 기적을 부인할 것까지 아셨고 또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개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사6:10)고 하신 말씀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      

마지막 열 번째에 가서야 장자가 죽는 재앙이 일어났는데 앞에서 살펴 본 대로 그 순서에도 분명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구름기둥 불기둥의 기적으로 보호하고 인도하셨지만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뒤에는 바로의 군대에 쫓기는 진퇴양난에 몰아 넣으셨습니다. 바다가 갈라지는 다음 순서의 기적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어떤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예로 여호수아와 제사장들이 당장에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요단 강 급류에  믿음으로 한 발을 내딛자마자 물이 갈라졌습니다. 가나안 전쟁을 치루기 전,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자 제일 먼저 이 요단 강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동행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홍해의 큰 은혜를 상기시켜 담대하게 만들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전 회중이 일곱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돈 후에야 순간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전에는 도저히 함락될 것 같이 보이지 않았던 철옹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같이 합심하여 오직 순종으로 인내하는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모든 세상적 인간적 자원과 힘을 끊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거의 일상사처럼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의 신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상사처럼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신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기적이 실제 그대로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기적에 대해 너무 문자적 기록에만 집착할 필요도 없지만, 반대로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두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살펴본 대로 기적은 각기 일어난 상황에 고유의 뜻이 있지만 그 일반적인 뜻은 크게 세 가지로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그 통치가 어떠한지 보여줍니다. 하나님 왕국의 확장과 성도의 유익을 위해 역사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의 역할과 소명을 당신께서 보장해줍니다.

질문자님도 창조주 신앙에 바탕을 둔 참 과학을 하셔서 자연법칙을 성경 기록과 연결해 그분의 뜻을 밝혀내어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는 일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
8/26/2006

김형주

2006.08.27 07:33:18
*.173.42.18

아멘!!!
저는 성경을 처음에는 그냥 고전 내지는 훌륭한 교양 서적 정도로 생각해서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심을 안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기계공학을 전공한 관계로 우리 생활에 쓰이는 모든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고 복잡한 수고 과정을 통해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지는데 하물며 인간이 저절로 생겼다면 그걸 어떻게 믿을수가 있겠습니까?
성경 기록의 사실성에 대해 믿기는 믿되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좋은 답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허경조

2006.08.28 12:44:33
*.113.44.57

저의 교회는 맨하탄에 위치해있고 그레서 많은 유학생들이 출석하고 있읍니다. 이분들은 반이상이 초신자이며 상당수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때는 저의 교회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그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상당한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읍니다.
이틀전에 이질문과 목사님의 복음적인 가르침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어제 성경공부시간에 어떤 젊은 분이 이질문을 해주셨고
저는 그분에게 상세히 목사님의 가르침을 전달할수 있었읍니다. 같이 듣던 모든 분들이 흥미있게 또한 들을수 있었고 그분이
그프로를 녹화했다고 하자 서로 빌려달라고 하는것 이었읍니다.
목사님에게 이런 말씀에 대한 통찰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속해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큰은혜가 흘러나오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유상

2006.08.28 20:42:05
*.170.40.27

허경조 님의 간증이 이번 질문과 답변에 딱 들어 맞는군요. 정말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2.11.20 21:45:30
*.109.85.156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적을 자연을 통하여서도 일으키시고, 초자연적으로 일으키시고, 그 초자연적인 것 또한 자연을 통하여서 일으키시기도 하시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상사였 듯, 우리 신자들에게도 이것이 우연인가? 싶을 정도로 기적이 일상사가 되는 것을 체험케 하심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뜻을 곰곰 생각해 보고 하나님 나라가 흥왕하길, 주의 말씀이 힘있게 전파되길 원하심의 뜻도 곰곰 생각하는 그런 지혜를 구하여야함을 기도하게 됩니다. 정말 귀한 질문에 너무도 귀한 답변의 말씀이 은혜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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