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성택(聖擇) 된 이유는 무엇인가?

조회 수 2292 추천 수 65 2006.01.19 21:05:38
운영자 *.108.170.228
[질문]

노아 시대에 모든 인간이 패역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노아는 당대의 의인 이었다고 (창6:9)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었는가요? 또한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답변]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노아 당시의 상황을 봅시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므로”(창6:5) 하나님이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창조한 모든 생물과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하셨습니다. 정말 그 때에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괘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고,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했습니다.”(창6:11,12) 생각과 계획만 악할 뿐 아니라 그 악한 것들이 실제로 패괘한 행위로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전지역에 걸쳐(온 땅)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모든 혈육 있는 자) 그랬습니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노아 한 사람만 성경은 “의인”이라고 그것도 “완전한 자”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과연 하나님은 어떤 점을 보고 그를 택하셨을까, 또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나아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의아심이 생길 만 합니다. 그도 분명히 아담의 후예로서 여러 결점과 허물이 많은 한 죄인임이 분명했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홍수 후 술에 취해 장막 안에서 하체를 드러내고 자는 잘못을 저질렀지 않습니까?(창9:18-27)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할 때는 일차적으로 윤리적인 죄를 짖지 않은 착한 자를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완전한 자라고 해서 단 한번도 죄를 짖지 않고 결점과 허물이 하나도 없는 자라는 뜻도 아닙니다. 말씀 그대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자였기에 의인이며 또 그 동행함이 완전했기에 완전한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과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졌고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모든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참가하고 있으며 나아가 하나님은 항상 자기와 함께 하셔서 언제, 어디, 어떤 환경에 있던지 보호하고 인도해 주심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과 동행함에 아무 하자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외로 많은 신자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 말씀 드린 대로 신자가 믿음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에는 전혀 하자가 없고 또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동행(同行)은 하나님의 내재(內在)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세상 끝 날까지, 땅끝까지 함께 하시는 것은 그분의 내재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떠나는 적이 결코 없습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이 신자의 속에 항상 내주(內住) 하고 있지 않습니까?

동행(同行)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우선 함께 길을 가야 할 두 사람의 의견이 전적으로 일치해야 합니다. 즉 최종 목적지가 같아야 할 뿐 아니라, 출발지와 가는 길과 방법과 속도마저 같아야 합니다. 이중 하나만 틀려도 동행이 아닐 수 있습니다. 대전에서 똑 같이 서울로 향해 출발했는데 한 사람은 남쪽으로 다른 사람은 북쪽으로 가면 최종 도착지도 당연히 다를 뿐 아니라 가는 여정을 함께 걸어간 적이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방향으로 가되 가는 수단이 달라도 그렇습니다. 대전서 서울을 향해 북쪽으로 동시에 출발했지만 각기 버스와 기차를 따로 타고 가면 결코 동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는데 이도 동행은 아닙니다. 출발지, 가는 수단, 도착지, 도착 시간 모든 것이 같지만 그 중에는 산으로 오기를 원치 않았던 자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발지, 가는 여정과 수단, 목적지 모두가 같아도 스스로 자원하며 기쁨으로 항상 대화하며 가야 참된 동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영혼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있어도 신자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살지 않으면 그분이 탄식하십니다. 또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을 때는 강권적으로 방향을 바꾸려고 간섭하지 않습니까? 이런 경우를 두고 결코 동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동행은 항상 내재가 전제되지만 내재가 항상 동행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행이 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자신을 향한 그분의 뜻과 계획에 확신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평생동안 그분의 인도대로만 살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분의 말을 듣고 믿어서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성경적 의인의 정의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두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노아와는 조금 달리 완전한 의인은 아니었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기는 믿었는데 그대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자녀를 기다리지 못하고 종과 첩을 통해 인간적 방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성취하려는 잘못을 저질렀고 그 죄과를 받았습니다. 그러다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칠 때에 비로소 그의 의는 완성이 되었고 하나님과 완전한 동행도 이루어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는 테스트를 통과한 것입니다.

이제 노아가 왜 의인인지, 왜 하나님과 동행함에 완전한 자인지 밝혀졌습니다. 그는 홍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그대로 믿었으며 120년에 걸쳐 자기 전재산을 들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우직할 정도로 그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당시의 패역한 세상 사람 모두로부터 미치광이, 바보라는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았겠지만 오직 믿음으로 견뎌내고 하나님이 명하신 그대로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준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의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을 두고 그분의 뜻대로만 따랐기 때문에 동행함에 완전한 자가 되었습니다. 인격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의인이고 완전한 자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그가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노아 자신의 노력과 훈련의 결과가 절대 아닙니다. “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5:29) 이미 노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통해 인류를 물의 심판에서 구원할 계획을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하나님이 땅과 인간을 지었음을 한탄하신 중에도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던”(창5:8) 것입니다. 그의 현실적 생애만 보호한 것이 아니라  믿음도 하나님이 키워주셨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생기고 또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죄 하에 태어난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도 않으므로 그분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 주권으로 택하여 부어주는 은혜를 맛볼 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가장 약소한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신7:7) 아무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 될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꼭 선택하셔야만 했던 어떤 요인은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은 인간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두고 선택하시지만 그런 결정과 간섭에는 필연적인 근거가 있고 또 그 모든 과정과 결과는 완벽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아가 구태여 성택 된 이유는 추측컨대 그의 우직하고도 순수한 성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추측에만 의존한 사변적 해석이라고 비난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뜻은 그의 윤리적 인격적 자질이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며 나아가 그가 근 100 여년이나 세상의 온갖 수모를 겪어낸 것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아브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데도 우상 숭배의 죄악이 들끓는 곳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 죄악에 대해 분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갈 바를 모르지만 당시로선 생명과 기업을 보존해줄 울타리를 다 끊어버리고 과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우직함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노아나 아브람이나 둘 다 세상에선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바보 소리 듣고도 하나님만 바라 본 자이기에 의인이 된 것이며 또 그런 기질적인 바탕을 감안해 하나님이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그런 기질을 가지게 된 것, 나아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순전히 따를 수 있었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론의 여지는 절대 없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 자신을 계시하시고 먼 장래의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믿음마저 그분이 성숙시켜 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노아가 의인이며 당세에 완전한 자며 하나님과 동행하여 인류 구원의 조상이 된 근거와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다는 것으로 답변에 대하겠습니다.      

1/19/2006

이준

2006.02.14 06:11:36
*.34.115.123

목사님. 결론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알기고 싶었읍니다. 또한 종은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도 지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쓰실 것을 정하시고 지으셨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말씀 중에 노아가 방주지은 기간을 종이 알기에는 결코 120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120년이라는 확증이 있으신지요

운영자

2006.02.16 00:50:53
*.104.228.223

목사님 의견을 같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은 제가 착각했습니다.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고(창5:32), 또 세 아들을 낳은 때에 홍수에 관한 예언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으며(창6:10,11), 그가 육백세에 홍수가 났으니(창7:11) 사실은 길어야 백년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120년이라고 한 것은 톰슨 2 주석성경의 창7:6의 주석에 480세에 홍수 예언을 들었다고 해 놓은 것을 보고 그대로 인용한(600-480=120)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는 480세에 예언을 들은 근거 구절로(창6:13)을 들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년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톰슨 성경이 잘못 된 것인지, 아니면 480세에 홍수 예언을 들었다는 근거가 혹시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지 목사님이 아시면 오히려 저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잘못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의 글도 그에 따라 고쳐 놓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이준

2006.02.16 02:47:16
*.50.254.31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김의환박사님이 그랜드 주석에서 증거로 벧후2:5절을 말씀하시는데 종의 소견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주지으라는 명령을 들은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성경적 증거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잘못 듣고 말한 것을 성경을 억지로 붙이려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사료되며

성경적 추론으로
노아의 방주지은 기간은 세 아들을 낳은 후로 본다면 95년은 결코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복

2022.06.24 13:38:51
*.6.205.86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홍수로 인류를 한번 청소하실려는 계획을 하셨고, 인류의 보존을 위해 오직 은혜로 노아의 가족을 택하셨다는건 이해했습니다.




1, 노아가 100년이 걸리는 시간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인류에게 회개를 할 기회를 주셨던게 맞나요?? 결국에는 노아의 가족 외엔 방주를 아무도 못탔는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는걸 발견했습니다. 바로 거리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고있는곳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회개를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또한 회개를 한 자들은 노아의 방주에 탑승할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허나, 방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노아가 누구인지 모르것이며, 방주를 짓는 과정도 단 한번도 못봤을 것이며, 방주의 존재도 모르니 방주를 탑승하겠다는 생각도 단 한번도 못해봤을꺼라 생각됩니다. 가령... 노아가 방주를 짓고있을 당시 이집트에 살고있던 불신자들은 회개의 기회 조차 얻지못했던거 아닌가요?





 

 

 

2, 당시 노아 외엔 모든 인류는 용서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였는지? 현대의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굉장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지만 대홍수전에 노아의 가족 외에는 불신자들을 사랑하시지도 안타깝게 그리고 불쌍히 보시지도 않고 용서할 가치도 없이 그냥 쓸어버려야 하는 존재였나요?? 노아때의 불신자와 현대의 불신자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관점이 왜 다른지 궁금합니다.


 

 

 

 

 

3, 현대의 불신자는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지만, 생애 큰 위기가 닥칠때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종종 선을 베풀어 위인이 될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노아때의 불신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전혀 찾아볼수없었던 타락 그 자체였나요?

현대에 아무리 불신자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려는 모습은 지금의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노아의 후손들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master

2022.06.24 15:09:06
*.115.238.222

1-2번은 같은 맥락의 질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 이상으로 더 구체적으로 추측해선 안 됩니다. 노아 홍수의 원인을 성경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고 선언합니다. 당신의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들의 죄악이 어려서부터 차고 넘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가득함"이라는 원어는 죄악 말고는 아무 것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단 한 치의 불의 불법이 없습니다. 모두를 심판하기로 하셨으면 반드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3. 어쨌든 현 인류가 노아의 후손인 것은 맞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노아와 후손도 포함)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흔적이 양심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심이 인간을 구원해내지 못합니다. 일반적인 선행을 행하기는 해도 하나님의 의를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적 의로움은 상대적이고 불완전하며 심지어 악할 때도 있습니다. 한 사회의 선이 다른 사회의 악이 되는 경우는 지금도 많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에 따른 전적인 은혜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실제로 노아와 그 아들들도 죄를 짓는 연약한 본성을 지녔지만(창9:18-27)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에 따라서 (물론 당시에 유일하게 당신을 믿는 자이므로) 인류 구원의 큰 사명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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