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요가를 배우면 안 되나요?

조회 수 5088 추천 수 123 2008.07.05 19: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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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요가를 배우면 안 되나요?


[질문]

운동 중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가가 근육을 이완시키는 동작 또는 복식호흡을 통해 부교감 신경계의 활동과 체내 림프계 순환을 촉진하여 유익을 주는 건강법이라 하는데 명상을 하지 않고 오직 근육단련과 동작위주의 운동을 하는데도 안 되는지요? 내마음속에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요가를 하면서 그쪽으로 현혹되어 교회를 떠날 수 있어 배우지 못하게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굳이 종교와 결부시켜야 하는지요? 요가는 우리가 정복하고 다스려야할 문화는 아닌지요?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면 되지 않는지요? 기도중입니다.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이 질문의 답은 요가가 순수한 스포츠인지 아니면 종교성이 내포되어있는지 여부만 살펴보면 간단히 나올 것입니다. 오히려 질문자님이 갈등한 대로 비록 요가에 종교적인 면이 있더라도 내 믿음이 확실히 서있다면 다른 종교에 넘어갈 리도 없고 또 그래서 요가의 좋은 점만 취하면 되지 않느냐는 문제에 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가의 실체

흔히 요가를 단순히 건강을 증진하는 인도의 전통적 운동으로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범신론을 믿는 힌두교에서 신과 접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아가 각자가 신이 되는 것까지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시간과 감각을 벗어나 궁극적으로 신과 합일 되는 무아지경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힌두교는 뉴에이지의 근원인데  그 중심에 요가가 서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신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깨끗케 하며 호흡 조종을 통해 근육을 이완시키는 수준으로만 이해합니다. 무아지경을 목표로 하기에 오히려 신체를 죽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소 없이도 몇 시간 동안 살고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이나 부동자세로 서있게 하려는 데서 호흡, 명상, 근육 이완의 여러 방법들이 고안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안들이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건강에 유익한 결과를 낳은 것뿐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요가는 중국 무협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림사 권법과도 다릅니다. 그런 권법은 수양을 잘하기 위해서 신체를 단련하려는 의도인데, 즉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요가는 그런 류(類)와도 정반대로서 가능한 신체를 죽이고 정신마저 잠재워 인간의 영을 우주의 기와 결합시키려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가를 정통으로 배워서 가르치는 곳에선 처음에는 육체적 운동으로 시작해도 반드시 힌두교의 영적 가르침에 대한 강의를 시행합니다. 이에 관해 “새 술에 취한 사람들”(박혜숙저, Praise Publishing 간)이라는 책(p. 55)에선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Swami Sivienanda Radha 는 ‘육체의 자세와 연습은 영적 연습이다. 고차원의 자아와 깊은 접촉을 하기 위한 마음 상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고차원의 자아란 무엇이나 내 속이나 밖의 신과 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Bhagavad Gita 에 있는 Lord Krishna는 요가는 힌두교 천국에 가는 확실한 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Shiva(파괴자라고 알려진 힌두교 신중에서 가장 무서운 신)를 요가의 주인 Yogenhwara라고 부릅니다. 가장 권위 있는 요가 교재의 하나인 Svatmarama가 저술한 15세기 Hathayoga-Pradipika는 Lord Shiva를 최초의 요가 교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가는 힌두교의 신들과 하나 되는 영적 연습이라는 것입니다.

그 책은 또 오늘날의 요가 교사들은 고대에 요가를 가르칠 때에 반드시 일깨웠던 말 즉, “이 요가 연습을 통해 사람들은 의식세계의 변화를 갖게 되어 힌두 신을 갖게 됩니다.”라는 말을 공개적으로는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는 단순히 육체적 연습일 뿐이라고 강조해도 요가(Yog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요가의 주인(Yogenhara)인 파괴자 신을 향한 아니 그렇게 되기 위한 정진임을 끝까지 숨길 수는 없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라.

요가가 힌두교에서 기원했고 또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자기를 비워 우주 만물에 내재하는 영과 합일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기독교 신자는 절대 참여해선 안 됩니다. 나아가 호흡과 근육 운동 또한 원래 고안될 때부터 건강증진 목적이 아니라 영적 수양이므로 그 흉내마저 내선 안 됩니다.  

신자가 명상에는 참가하지 않고 단지 건강증진을 위해서 운동법만 따라 하면 괜찮지 않느냐는 발상은 아주 순진한 생각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반기독교적인 것을 하나라도 일단 용납하기 시작하면 어떤 극단적 이단에 참여해도 된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세상에는 건강을 증진할 수 없는 방법이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요가가 최고 내지는 아주 우수한 방법이라고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요가의 건강상 유익마저 완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자가 꼭 요가를 해야만 할 절대적 이유와 근거가 없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치료의 광선으로 오신 예수님의 권능을 믿고 기도할 수 있는 신자라도 맹장염처럼 우선 수술부터 받아야 하는 것과 요가는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후5:22)고 했습니다. 단순히 신자가 되었릿?윤리적으로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삶을 살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또는 다른 종교의 것은 무엇이든 무조건 배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모든 성경말씀이 그러하듯이 앞뒤 문맥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신약 성도는 평생을 두고 예고 없이 닥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비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악도 가까이 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5:4-6,10) 그러므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눈에는 안 보이지만 흑암의 세력과 하나님의 영적 전쟁터입니다. 그 싸움은 생각보다 굉장히 엄청나며 심각해 세상의 모든 역사에 영향을 끼칩니다. 또 모든 신자는 그 싸움에 하나님의 동역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를 통해 당신의 거룩한 역사를 이뤄나가십니다. 당연히 사단은 이미 자기의 노예로 묶여 있는 불신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오직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려 듭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벧전 5:6) 있습니다. 모든 신자에게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언제 어디서나 훼방합니다. 따라서 신자는 항상 깨어서 말씀과 기도로 영적 분별력을 키우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마귀의 궤계를 대적해야 합니다. 또 그래서 모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에게서만 오며 모든 악한 것은 사단과 그 종이 되어 있는 인간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0-13,18)

신자가 정작 싸워야 할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 즉 눈에 보이는 현상과 사건들이 아니라 그 배경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사단입니다. 요가가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을 증진하는 선한 면이 있는 것 같아도 그 배후의 실체는 참 하나님을 부인하는 흑암의 세력입니다. 멀리 하라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가까이 가지 말거나 가까이 오는 것 자체를 봉쇄하라는 것입니다. 한 미디로 신자는 요가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요가의 잘못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의 것 중에 공중 권세 잡은 마귀의 조종 아래 있지 않는 것이 없지 않느냐는 반발이 신자가운데도 틀림없이 생길 것입니다. 즉, 모든 불신자는 마귀의 종이 되어 있기에 그들이 하는 무슨 일이라도 참여해선 안 된다는 극단적 논리가 발생하지 않느냐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아예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 되기에(고전6:10),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근육 이완에 좋은 점들만 요가에서 본 따 응용한 다른 이름의 체조나 운동이라면 신자가 참여해도 됩니다. 그러나 요가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곳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서야 합니다. 일반인들도 요가하면 힌두교에서 발생한 것으로 단순히 육체 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영적인 명상도 겸한다는 상식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자가 참여하면 기독교가 요가를 인정해 준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아무리 나름대로의 몇 가지 장점이 포함되어 있지만 기독교가  증산도의 기 훈련이나, 절에서 하는 소림 권법 수련회 등에는 참여해선 안 되지 않습니까? 요가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나아가 몸과 정신 건강에 유익해 요가에 참여할 뿐이지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없다고 자신하면 주위의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영적 전투를 할 때도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상 자체가 없기에 그에 바쳐진 제물 또한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신자는 믿음으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믿음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고전8:10)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내 믿음이 확실해 요가를 해도 운동으로 그칠 자신이 있다 쳐도, 그 모습을 보는 믿음이 연약한 다른 성도가 아무런 의식 없이 쉽게 따라 하고 또 요가의 가르침에 현혹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문제에 관해 신자가 대처할 원칙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을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고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25-31)

이 원칙을 본 주제에 적용하면 요가의 명상은 절대 따르지 않고 몸에 유익한 운동만 따로 떼어 와서 하는 것은 괜찮지만, 만약 누가 이것이 요가라고 말하면 불신자든 성도들 앞에서건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고까지 선언했지 않습니까?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고전8:8) 물론 운동도 식물과 같은 성격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기독교나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 절대 참여해선 안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만이 영적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어지거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리가 조금이라도 가려지는 것을 막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싸움입니다.

최근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떳떳하게 “크리스천 요가”라는 명칭을 붙이고 교회 안에서 일종의 에어로빅 운동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를 직역하면 “하나님적인 사단의 운동 요가”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10:21)

출애굽기에는 성막에 쓰이는 모든 기명(器皿)들을 원재료 상태에서부터 깨끗케 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아주 세밀하게 규정되어져 있습니다. 그 일차적인 뜻은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따지면 물건들마저도 단순히 물건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무생물에 불과하지만 사단에게 더렵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선 깎아 만든 우상의 형상과 그 이름은 사단에 의해 이미 추악해졌기에 하나님 앞에 도무지 바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가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하나님 아니 신자와 공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신자가 치루고 있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고 복잡합니다. 단순히 인간의 사고 즉 믿음 안이나 눈에 안 보이는 영역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지역, 사람, 사물, 사상, 철학, 종교 등 가시적 현상과 그 불가시적 배경을 망라해 모든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미칩니다. 오히려 이 땅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에 안 보이는 힘에 의해 움직여진 결과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이 땅의 가시적인 모든 것도 하나님 아니면 사단에 속한 것 두 종류뿐이지 그 중간지대에 속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단에 속한 것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하나라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흑암의 세력에 온전히 붙잡히게 되거나 최소한 사단이 궤계를 부릴 빌미와 여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능력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기에 아예 그런 기회를 주어선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이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4-18)

분명히 너희는 “부정한 것을 만지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건에도 사단의 권세가 미친다는 뜻입니다. 요가를 배우는 학원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여러 도구나 비품, 나아가 요가라는 이름 자체에도 사단의 더럽고 추한 권세가 넘치도록 작용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요가를 가까이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뿐이어야 합니다. 운동이 목적이 아니라 전도가 목적이며 운동은 단지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굉장히 예민한 문제로서 믿음이 굳건한 자가, 그것도 요가에 관해 아주 세밀하고도 전문적으로 연구한 이후가 아니면 함부로 시작할 성질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신자는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하다가 듣지 아니하면 멀리 하는”(딛3:10) 것이 최선입니다. 나아가 그들을 전도하더라도 앞에서 강조한대로 자칫 기독교가 요가를 인정해준다는 오해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합니다.  

세속 문화를 정복하는 길

오늘날의 세대에는 신자가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세속적인 문화가 너무나 많습니다. 또 그 대부분이 사단의 세력에 의해 조종되지만 겉으로만 봐서는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자는 최소한 기독교를 대적 내지 반대한다는 명백한 의미가 있는지, 또 그런 물건이나 상징을 사용하거나 이름을 내걸었는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물론 주 안에 있는 자가 믿음으로 성령에 의지하여 흑암의 세력을 대적하면 반드시 최종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얻을 순간까지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일부 가려지고, 주위 연약한 신자를 실족케 할 수 있으며, 정작 본인도 영적으로 더렵혀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령한 신자라도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는 교묘하고도 음흉한 사단의 실체를 매번 어디서나 정확히 분별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요가처럼 사단과 연계된 것 사실만 확실하다면 그 실체를 알려고 할 필요도 없이 아예 멀리 해야 합니다.    

대신에 신자는 무슨 일을 하던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뜻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빌 4:8-9)

성경에는 신자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준과 지혜가 완전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신자는 무시로 기도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으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단을 대적해 이기는 방법에는 그 정체를 드러내게 해서 직접 맞대고 싸우는 것과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 안에서 말씀대로 경건하게 사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후자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세속 문화를 정복하려 하거나 세속 문화의 장점만 따서 기독교에 접목시키려 하기보다는 성경대로 무슨 일에든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정결하며, 사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신자는 술, 담배, 도박, 섹스, 마약 등에 의지하지 않고도 인생을 얼마든지, 아니 훨씬 더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불신자들 앞에 실제 삶으로 내보여야 합니다. 말하자면 요가가 아니라도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건전한 운동만으로도 더 건강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실제로 운동은 그 종류보다는 얼마나 성실하게 자기 몸의 증상과 체력에 적합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나아가 신자는 어떤 질병, 환난, 실패, 시험, 유혹, 죄악이 자기를 괴롭히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의지하여 이겨내어야 합니다. 모든 질병과 건강 악화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주범이므로 환난 가운데 기도와 말씀으로 극복할 뿐만 아니라 더 감사하고 기뻐하여서 그런 것들로 건강이 손상가지 않고 더 건강해지는 모습을 세속 문화 앞에 보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선 요가를 비롯해 어떤 운동도 실질적인 건강증진의 해결책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죄나 쾌락에 더럽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게 거룩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영혼 뿐 아니라 지정의와 육신을 다 포함해 즉, 전인(全人)을 건강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신자더러 모든 것에 참되고, 경건하고 옳아야 한다는 권면 바로 앞에 어떤 말씀이 있습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모든 일에 염려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모든 일이란 길흉사 모두를 포함하며, 특별히 염려하는 일은 환난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기뻐하고 오직 감사함으로 주께 의탁하면 신자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고 합니다. 결국 육신의 건강을 지키는 첫 걸음이자 최선의 길도  환난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재삼재사 강조합니다. 아무리 하나님 나라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닐지라도 혈과 육에 의해 그 나라가 조금이라도 훼방을 받는다면 신자는 혈과 육의 문제에서마저 철두철미하게 성경의 가르침대로만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17-23)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질문자님께서 신자가 요가를 해도 되는지 궁금해진 것 자체가 이미 혈과 육의 싸움을 넘어 사단과 대적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신자가 요가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7/5/2008

미소천사

2008.07.07 08:00:56
*.131.201.235

목사님 안녕하세요?
답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주안에서 강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라의 웃음

2013.01.08 22:12:37
*.109.85.156

너무도 섬세히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는 동안 정말 많이 몰랐던 것, 그리고 잘못 이해하여 왔던 것들이 생각되어져 얼굴이 붉어집니다. 영적 분별력의 부족이 어쩌면 저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성경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영적분별력이 부족한 경우도 많지만 스스로 교만에 빠져서 넉넉히 이겨낼 수 있으리란 생각들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요가를 왜 배우지 말아야하는지의 답변 속에서 정말 경계해야할 부분들이 이 세상엔 너무도 많기에 신자들의 영적 전쟁터인 이 곳에서 너무도 안일하게만 대처하려했던 모습들을 회개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들은 배우고 배우며 자신의 교만, 무지, 이기심, 탐욕들이 성경에 적용되어져 지속 깨어져야만 하고, 지속 부숴져야만하고, 그리고 방향이 전환되어져야만 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세세하신 설명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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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일상에서 접하는 우상숭배 문제들 [4] 운영자 2008-10-08 2216
126 전도할 때 예상되는 두 질문에 대해 [1] 운영자 2008-10-05 2100
125 장례식과 우상숭배에 관하여 운영자 2008-09-22 3831
124 올림픽과 신자의 관계는? [3] 운영자 2008-08-29 1999
123 오늘날도 선지자적 기능을 특정인이 수행 할 수 있는지요? [7] 운영자 2008-08-23 2276
122 본교회 아닌 다른 곳에 헌금하면 안 되나요? 운영자 2008-08-16 3465
121 인격적 만남이란 무슨 뜻인가요? [5] 운영자 2008-08-11 26476
» 신자가 요가를 배우면 안 되나요? [2] 운영자 2008-07-05 5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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