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28:1) 모든 명령을 다 지키는 축복과 저주

조회 수 789 추천 수 24 2013.11.16 2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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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명령을 다 지키는 축복과 저주


내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극명하게 대조하여 생생한 그림처럼 묘사합니다. 문제는 이 은혜로운 말씀이 온전하게 가르쳐지지 않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신자들이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기보다는 하나님이 조금 과하게 허풍을 떤 것처럼 여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다(5,6잘)고 약속했지만 실제 삶에선 그런 은혜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 그런 복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냥 “하나님을 잘 믿으면” 그렇게 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여러 의식과 행위를 잘하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깁니다. 주일 예배는 물론 기도나 성경공부 모임에 성실히 참석하고 교회에 헌금과 봉사를 많이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 일들을 잘했다고 꼭 믿음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자는 마땅히 교회 일을 열심히 하지만 말입니다.

어떤 사실을 믿는다면 그 믿은 대로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가장 흔한 예로 그 무거운 비행기가 공중에 뜬다고 믿으면 안심하고 타야 합니다. 유체물리학을 배워서 비행기가 뜨는 원리까지 알면서도 평생 비행기 여행을 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안 믿는 것입니다. 최대한 양보해도 믿기는 하되 그 믿음이 삶에서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비행기가 뜬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절대 타지 않을 것이니까 믿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을 지키면 복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으면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선 그분을 믿는 것과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동의어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을 지식적 믿음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믿음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모든 것을 함께 의논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아내를 믿지 못하거나, 거꾸로 아내가 자기를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지식적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또 그런 믿음을 가진 자는 신자가 아니라 믿어보려 노력하고 있는 기독교 입문자일 뿐입니다.
      
거기다 하나님은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한두 개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당신의 계명을 준수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모든 명령”을,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지키라는 의미가 명시적이든 아니든 자연히 포함됩니다. 일부 명령을 일부 사람이 특정한 경우에만 지켜도 된다는, 다른 말로 경우에 따라 안 지켜도 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명령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명령을 지키라는 것은 삶의 전반전 측면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면 삶의 전반적 측면에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진리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풍을 뜬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제대로 행하지도 않고 미리 김치 국물만 마신 것입니다. 아니면 한두 개 행하고는 백 가지 다 행했다고 하나님 앞에서 좋게 말해 신자가 허풍을 떨었고, 정확히 말해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당신의 복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부어주시겠다고 합니다. 각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너를 세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1절)와,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9절)와,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12절) 등이 전부 그런 뜻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당신의 성품이 온전하게 드러나는데 통일성과 일관성에서 일절의 모순과 상충을 드러낼 리는 없습니다.  

물론 신명기 28장의 모든 말씀을 개인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율법에는 사회법뿐 아니라 개인적인 도덕법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와 비중을 갖고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전체가 그 모든 명령을 지키길 원하셨고 그러면 이스라엘 국가적으로 그런 복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스라엘더러 세상에서의 제사장 나라 소명을 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4:5-8)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이 큰 나라”,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 “공의로운 큰 나라”라고 강조합니다. 율법의 수신자는 항상 이스라엘이었지, 이스라엘 중 한 사람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를 비롯한 그 이후의 선지자와 왕들도 백성들의 모임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면서 함께 헌신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할 때부터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의 공동체 즉, 광야 교회였습니다. 복을 받아도, 특별히 벌을 받아도 반드시 함께 받았습니다.  

당신의 법을 함께 지키라고 한 것이 사회법과 제사법처럼 함께 지킬 수밖에 없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당신의 백성들더러 당신의 보호와 인도 안에서 순전한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또 그런 공동체는 당신의 율법을 함께 지킬 때만 달성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많은 법을 다 지키지 못하기에 서로 격려, 위로, 권면하고 필요하다면 징계하면서 함께 힘을 합치면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당신께 함께 순종할 때에 당신의 크고 거룩한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써 다른 민족들로부터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라는 인정과 칭찬과 관심과 동조는 물론 동참까지 얻어내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명기 28장을 오늘날의 상황에 대입하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행하라”는 모든 계명에 ‘이스라엘’ 대신에 ‘교회’를 대입하면 됩니다. 모든 성도가 모든 계명을 항상 지켜 행하면 하나님은 전교회적으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수십 배 성장시켜 한국 최고 최대의 교회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속의 모든 공동체나, 타 종교의 공동체들이 거룩하고 의로운 참 하나님만 따르는 기독교 교회 공동체를 바라볼 때에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큰 백성이로다”라는 칭송을 받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개독교’ 혹은 “세속 집단보다 더하다”는 비난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즉, 거룩하고 의롭게 행할 때에는 그 거룩함과 의로움 자체가 가장 큰 복입니다. 그것도 교회가 한 마음, 한 믿음, 한 소망으로, 한 머리 되시는 예수님만 모시고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서로 섬길 때에는 정말로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권능이 넘치는 그분의 나라가 실현됩니다. 또 그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인간으로서 큰 복이 없습니다.

각 개인이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그것도 머리로 남보다 조금 많이 아는 정도만으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겠다고 덤비는 것과 신명기 28장이 의미하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지 않습니까? 본문의 말씀들을 심방이나 개업 같은 개인적 예배의 단골 기도문 혹은 축복의 선포로 얼마나 오용하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적용해도 모든 명령을 다 지키라는 것이 철두철미한 종교인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은 장차 골고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드러날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한 예표와 그림자이기에 오늘날에는 적용 못할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는 모든 계명에, 심지어 제사법과 정결법과 사회법에도, 숨겨져 있습니다. 신약 신자 모두도 그 모든 계명에 드러난 그분의 거룩한 뜻대로 언제 어디서나 따라야 합니다.
    
물론 그 모든 계명을, 그 의미만이라도, 온전히 다 지킬 수 있는 성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단순히 죄를 죄로 알게 해주는 역할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계명을 다 지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아담이 타락한 후 지금까지 이르도록 일관되게 인간에게 바라는 수준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원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바라는 그 수준에서 모든 측면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모든 계명을 다 지킬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차원을 넘어서  필연적으로 그런 신자 자신이 가장 참 인간답게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진실하고 선해지는 지는 인간이 기대, 예측, 상상하는 것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인 줄 더 잘 알면서도 “모든 계명”을 지키라고 명한 것입니다. 당신께서 온전하니까 당신의 자녀도 온전하라고, 당신께서 거룩하니까 당신의 자녀도 거룩해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는 만큼, 더 정확하게는 순종하는 만큼 그분으로부터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인간이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은, 더 정확하게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도 하나님 그분과 항상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신자의 행동과 말은 물론 생각마저 그분의 뜻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복은 물론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 그분을 소망하고 교제하고 누리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그 이상 가는 복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가 뭣입니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것만큼 저주 받은 인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들어와도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신명기 28장은 근본적으로 신자가 믿음생활(그 의미가 정확히 과연 무엇인지 아리송하지만, 흔히 쓰는 말이기에)에 충성하면 복을 받고, 등한히 하면 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가 교회로 모여야 할 이유를, 또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할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 속에 사는 것이 인생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자들이 모인 하나님의 나라임을 세속의 공동체와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게끔 보여주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작금 과연 교회가, 아니 신자 개인이라도 그렇게 하는 모습이 보입니까? 본장은 엄밀히 말해 그러지 않으면 교회로 모일 필요조차 없다는 뜻 아닙니까? 들어가도 나가도 저주를 받는 교회가 될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 이전에 신자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 아무 복을 못 받을 뿐 아니라 인간답게 살지도 못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런 원리는 전혀 모르고 본장을 고대의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조금 과장해서 말씀하신 성가신 계명이라고 여기고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복을 비는 주문 격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11/16/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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