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가 왜 네 권뿐인가요?
[질문]
주님의 제자들은 12명이나 되었고, 누가와 마가 외에도 따르는 이들이 많았을 텐데도 왜 네 복음서만 전해지게 되었을까요? 주님이 생전에 그렇게 원하셔서, 주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에 네 명을 택하셔서, 승천 후 바울의 경우처럼 네 사람에게 접촉하셔서 명했을까요?
[답변]
우선 고대에는 책을 저작하는 일은 힘들어서 흔치 않았습니다. 종이가 매우 비싸고 귀했으며 문자를 제대로 해독하는 자도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왕궁이나 최고 상류계층에서만 전문 필사자를 고용해 오랜 기간에 걸쳐 행할 수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베드로를 비롯해 갈릴리 어부 출신이 주를 이뤘습니다. 열두 제자들 모두가 복음서를 기록할 자질이 있었거나 또 저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에 관한 전기, 교훈서, 등을 특정 제자를 지정해서 기록하라고 생전에 지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자들 스스로 개인적으로 부분적으로 메모해 두었을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공사역 3년은 복음 전파, 치유, 권면, 상담, 교제 등으로 쉴 틈 없이 바빴습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이 공사역 중에는, 심지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할 때까지도 십자가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복음서를 기록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승천하시고 얼마 동안의 초대 교회 시절에는 오늘날과 달리 십자가 구원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한 사실을 당시 사람들 모두가 직간접으로 생생하게 목격한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부활하신 예수를 진심으로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으며 주님처럼 영생이 보장된다는 간단한 진리만 전해도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쉽게 마음을 열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오해했기에 성경을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신자들의 종말관에 관해 올바르게 가르친 데살로니가 전후서가 신약성경 중에 가장 먼저 저작된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차츰 십자가와 부활의 직접적인 목격자와 증인들이 죽고 2세들이 태어났으며, 또 서서히 이단들이 사도들의 사역을 훼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대대로 가르치고 또 이단의 오류를 명백히 밝힐 필요성에 따라서 승천하신 후 20-30년이 지나서야 마태, 마가, 누가가 주님의 사역을 중심으로 복음서를 저작했습니다. 요한은 그보다도 또 한 세대 뒤에 세 복음서가 이미 기록해 놓은 주님에 관한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더 깊이 풀어서 가르칠 목적으로 요한복음을 저작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복음서가 저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다 아셨습니다. 마지막 만찬 때 당신을 대신할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줄 것인데, 성령이 오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깨우쳐 주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요16:5-15) 제자들로선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십자가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스승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자 인간의 몸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 주님이 죄인을 위해 완전한 제물로 성부 하나님께 바쳐짐으로써 인간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주 예수 외에 구원을 얻을 이름을 주시지 않았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기록처럼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여서 십자가 복음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살아 역사하는 원색적이고 강력한 구원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로 염병처럼 복음이 로마제국 전역에 퍼진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복음서를 저작할 필요가 생기자, 성령이(주님이 아니라) 네 사람을 택하여서 성령의 영감을 불어 넣어주셔서 각기 강조하는 주제를 조금씩 다르게 복음서를 저작하게 한 것입니다. 네 저자들도 각자 복음 전파 사역의 체험을 통해서 또 당시의 모든 영적 상황에 따라서 주님에 대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하겠다는 소원이 생겼는데, 그렇게 된 것도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단편적인 기록들도 참고하고, 제자들끼리 서로의 기억을 나누며 이야기들을 정리했고, 무엇보다 성령이 공사역 중에 스승과 함께 체험했던 사역과 배웠던 가르침들을 기억나게 해주었고, 나아가 성령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영적 진리에 부합하게 진술하게 하고, 각 책의 주제와 저술 순서와 구체적인 표현까지 떠오르게 간섭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간단히 정리하자면, 예수님에 대해서 마태는 유대인 독자를 대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구약의 약속을 이루신 메시아로, 마가는 로마인을 대상으로 능력의 하나님으로, 누가는 헬라인을 대상으로 사랑을 베푸신 인자로, 요한은 전체 교회를 대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강조하며 저작한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 복음서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고 끝을 맺었습니다. 주님의 모든 행적은 열두 제자들을 동원해서 기록해도 그 내용이 차고 넘치나 굳이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고 바울이 설명한 대로였습니다. 성령이 택하고 저작하게 한 네 복음서만으로도 서로 조화 보완되어서 예수님에 대해 배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선한 일을 하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마복음 같은 네 복음서를 본뜬 저작물들이 있었으나 내용적으로 도무지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할 수 없어서, 즉 성령의 영감을 받지 않고 인간 저자의 생각으로 임의로 저작했기에 정경화 선정에서 빠졌습니다.
한 마디로 네 복음서를 비롯해 모든 성경은 성령이 주도하여서 저자를 택하고 모든 저작 과정에 영감을 부어주셔서 저작된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
(10/2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