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수로 터널

조회 수 7305 추천 수 328 2007.09.19 17:55:27


 


히스기야의 수로 터널(Hezekiah's Water Tunnel)


히스기야는 주전 716년에 유다의 왕에 올랐다. 당시는 앗시리아 제국이 중근동을 장악했을 때로서 주위 소국들에 대한 수탈과 침략으로 번영을 누렸다. 고대 시리아는 앗시리아에게 주전 732년에, 북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에 정복당했다. 따라서 즉위했을 당시의 히스기야의 주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유다가 세계 최초의 포악한 제국과 맞서 생존할 수 있을지에 집중되었다.

히스기야는 다윗 왕이 주전 1000 년경에 수도로 정한 예루살렘에 거했다. 그 도시는 다윗이  점령하기 2천 년 전에 이미 시온 산의 가파른 경사 위에 세워져 있었다. 시온 산의 주위는 험난한 산과 언덕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다 시온 산 자체도 동, 남, 서 세 방향으로는 깊은 절벽으로 주위 계곡과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험준한 지세 위에 견고한 성벽으로 지어진 예루살렘이기에 가나안 족속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삼하5:6) 외적을 방어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칠만 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시에 최후에 함락시켰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것이 허풍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결코 난공불락이 아니었는데 아주 작은 약점 하나로 물 문제가 있었다. 도시 자체 내의 물은 풍부했다. 시온 산 동쪽 자락에 있는 기혼에서 샘이 솟았다. 그러나 문제는 도시는 산 위에 있는데 반해 물은 산 바닥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나안 여부스 족속이 이 도시를 처음 지을 때에 아주 어려운 군사적 결정을 했어야 했다. 성벽을 산꼭대기에 건설하여 침략군이 가파른 산턱을 올라 올 때에 수비군의 창과 화살 세례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최우선 방안이지만 문제는 물의 공급처가 성벽 밖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만약 원활한 물 공급을 위해 성벽을 산 아래에 건설하면 적군의 침공이 용이해진다.  

그래서 결국 둘을 조화시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성벽은 시온 산등성이에 짖기로 했다.  대신에 단단한 바위를 뚫어 기혼 샘의 바로 위 부분까지 닿는 터널을 성벽에서부터 성 밖으로 약 30미터 길이로 파기로 했다. 또 거기서 샘물까지 4층 건물 높이의 수직 갱도를 파내려갔다. 성안에서 수원을 학보하면서 성벽은 산꼭대기에 지었던 것이다. 이 터널과 수직 갱도를 Charles Warren 이 발견하여서 “Warren 갱도(Shaft)”라고 부른다.(상기도면 참조)

그러나 여부스 족속은 이런 예루살렘 성채의 견고함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다윗과 그 부하 요압이 수구로 침공해 들어오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삼하5:8에 언급한 수구(水口)는 원어로 ‘tsinnor’ 인데 학자 간에 의견이 많지만 대체로 바로 이 Warren 수직갱도(높이 약 12미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요압 군대는 여부스 족속의 수자원 보호 및 성벽방어 비밀시스템인 터널을 이용해 예루살렘을 정복한 셈이다. 다윗 사후 수백 년이 지나 히스기야 왕은 물 문제를 가지고 다시 씨름해야 했다. 우선 다윗 시절보다 도시가 많이 커졌다. 앗시리아에게 북이스라엘이 점령당하는 바람에 피난민이 예루살렘으로 몰렸다. 산꼭대기 성벽에 쌓인 도시로는 그 많은 사람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시온 산 서쪽의 "Tyropoen" 혹은 "Cheesemaker's Valley"에 거주케 되었고 점차 그곳마저 찰 정도로 인구가 불었다. 히스기야는 예상되는 앗시리아의 공격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그곳까지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히스기야는 이 서쪽 계곡과 산언덕 전체를 두르는 성벽을 15ft(약 5미터) 두께로 쌓았다. (이 성벽의 일부가 발굴되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은 두 언덕과 그것을 가로지르는 계곡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혼 샘이 동쪽 성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어서 물 공급 문제는 여전히 골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히스기야는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야심찬 토목 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Tyropeon  계곡 가운데 실로암 저수지를 만들고 기혼 샘에서 예루살렘 성 밑을 통과해 그 못에 이르는 백운석의 수로 터널을 뚫었다. 약 5/1 마일 (약320미터)에 길이의 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물을 안전하게 공급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성경 세 곳(왕하20:20, 대하 32:2-4,30)에 있다. 특별히 대하32:30의 내용은 실로암 터널 벽에 기록된 비문과 일치하고 있다. 그 비문은 인부들이 동서 양쪽에서 작업하여 터널 중앙에서 만나게 된 상황을, “인부들은 서로를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두드렸고, 징이 쪼는 곳을 향해 쪼았다. 그러자 물이 관통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원시적 장비와 기술을 감안하면 히스기야의 수로는 고대 토목공사로선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시온 산 밑의 아주 견고한 백운석 사이로 1,748ft(약 530 m)나 되는 긴 터널을 뚫었다. 수로 바닥은 평평하되 실로암 못까지 거의 감지 못할 정도의 내리막 경사로 이어졌다. 터널의 넓이는 평균 3ft(약 1m)였고 높이는 적게는 5ft(1.5m)에서 많게는 16.5ft(약 5m)였으며 흐르는 물의 깊이는 4ft(약r 1.2m)였다. 터널은 한 사람이 횃불을 들고 충분히 통과할 정도의 크기였다. 약 27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아무 문제없이 기혼에서 실로암까지 물이 흐를 정도로 그 기술이 정교했다.

예루살렘이 그 후로 물이 부족하여 함락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히스기야의 통찰력을 입증할 수 있다. 예루살렘은 당시의 앗시리아 군대의 총공세 앞에 함락되지 않은 몇 안 되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왕하 18:13-19:37, 사36:1-37:37) 비록 바빌론(주선587/586), 로마(주후 70), 십자군(주후 1099)에게 함락은 되었지만 세 번 다 포위 전략(물이 부족케 하는)은 번번이 실패했다. 예루살렘은 오로지 백병전에 의한 처참한 살육으로만 무너졌다.

한 마디로 히스기야는 예루살렘 성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의 전설(the legacy of life-giving water for all times)을 세웠던 것이다.
            
(원전: Hezekiah's Water Tunnel by Lynn Tatum)

9/19/2007

정순태

2007.09.21 00:21:38
*.95.73.2

목사님!
제게는 너무 귀한 자료입니다.
안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한 의문점을 검토 중이었는데 아주 시기적절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감사~~~~~~

이번 주말,
히스기야의 수갱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눌 수 있기를 기다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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