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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뒤집어 읽어도 그런 예수는 없다.” 2003.4. 도서출판나됨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진짜 이유” 2010.10 기독교교문사

첫째 아들이 더 탕자였다.

조회 수 597 추천 수 1 2021.09.25 09: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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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로마제국의 박해가 끝난 이후로 지금만큼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외면 배척당한 시대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등진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됨으로써 퇴폐와 방탕으로 흘러가고 있는 데다 그 조류에 편승한 아니 주도한 흑암의 세력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신자가 마땅히 행할 바를 하지 못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사탄의 훼방이 심해도 교회가 맡은 바 소명에 충성 헌신했다면 이런 정도로 성경의 절대적인 진리가 무시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구동성으로 초대교회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외칩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하면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 안팎이 거룩하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는 것을 보면 그 해결책이 구호로만 그치고 정작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앙 내용은 아주 간단했고 신자들의 삶도 그 신앙처럼 단순했습니다. 신약성경 27권이 교회에서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AD 397년의 카르타고 종교회의 때였습니다. 그 전의 기독교 공동체에선 복음서나 서신서의 일부가 회람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정교한 신학과 교리 체계도 훨씬 뒤에 정립되었습니다.

 

주후 1세기에 로마의 극심한 박해를 당할 때는 성경을 부분적으로나마 읽는 일도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순교하면서까지 역사상 가장 순수하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신자들이 예수님을 자신과 삶과 인생의 진짜 주인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서 살다 죽은 모습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첫째 원인은 죄인을 구원하러 온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 자기 대신 죽으심으로 자기들의 죄가 완전히 씻어졌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하늘 보좌에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 자기들도 이 땅에서 어떤 고난과 박해를 당해도 반드시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순전하게 믿었고 예수님을 따라 살았고 예수님처럼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 채로 맹수에 잡혀 먹거나 불에 태워져도 이제 곧 천국에서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너무나 귀하고 기쁜 소망을 품고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불법적 퇴폐적 이기적 세상 흐름과는 정반대로 주님처럼 정직하고 선하며 의타적인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3-47) 초대신자들의 경건하고 무엇보다 절대적 진리에 따라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교회는 부흥했습니다. 신자들의 믿음은 거룩한 삶으로 승화되었고 바로 그 삶으로 세상을 전도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나 교회 사역을 조금 개혁한다고 초대교회 신앙으로 회복되지 않습니다. 목회자부터 솔선해서 실제로 예수님의 손을 잡고 걸어감으로써 그 삶이 주님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단순히 선을 많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을 자신의 절대적이고도 온전한 주인으로 모심으로써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분의 거룩한 빛이 세상 어두움에 비춰져야 합니다.

 

요컨대 기독교신앙을 도덕이나 종교적 차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신자의 윤리적 선행이 고무 강조되고 최소한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거기다 교회에서의 기독교적 의식과 행위를 더 우선시하거나 중요시하는 모습으로까지 변질 왜곡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삶을 변화시켜보려고 도덕과 종교를 강조하는 의도는 이해해줄 만합니다. 그러나 신자가 되어서도 죄의 본성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칭의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이 역사하여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신자의 현실 삶에 거룩한 능력으로 실체화될 때만 신자가 거룩하게 변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고 기독교가 도덕과 종교 중심이 되다보니 실제로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교제 동행하는 성도들을 발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고 싶은 신자들까지 교회와 목회자가 오히려 방해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 필연적인 결과로 교회와 신자들이 성경마저 그런 관점으로 읽고 해석하려 듭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이 재산을 미리 챙겨서 흥청망청 탕진하면서 온갖 죄를 지었다가 뒤늦게 그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와서 아버지의 용서를 받았다고 단순하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어떤 죄인도 자신의 지난 잘못을 회개하면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이 주도적으로 자기 잘못을 깨달아서 스스로의 도덕적 종교적 양심에 따라 회개한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결코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고 거역 대적했던 죄인으로선 스스로는 회개할 생각이 전혀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성령으로 간섭하여 은혜를 먼저 주어야만 회개할 마음이 생깁니다. 회개해야 할 죄의 본질도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체 전부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것이므로 자기 전부를 완전히 발가벗겨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윤리적 회개는 여타 종교들이 가르치는 구원의 길이며 심지어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본성적 윤리의식에 따라서 수시로 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회개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 십자가 앞에 한 죄인의 옛 자아 전체가 오직 성령의 역사에 따라 철저히 깨트려지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죄로 타락해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있는 인간이 결코 행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따라 그분이 주도하십니다.

 

탕자의 비유만큼 기독교구원의 진리와 여정이 정확히 드러나는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십자가에 주도적 능동적으로 오르셔서 완전한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인류 구원의 길을 열 것입니다. 그 십자가 복음을 예수님은 둘째 아들의 비유로 알기 쉽게 풀어서 제자들에게 미리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완악하게 십자가 복음을 배척할 유대인들의 종교관 구원관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가르치려고 첫째 아들의 비유도 덧붙였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의한 청지기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등도 함께 가르치셨습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에게 총 일곱 가지 비유 시리즈로 구원론을 강해한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포함해 일곱 비유 전체를 십자가복음에 입각해 이십 차례 강해 설교한 것을 모았습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구원 얻는 회개가 과연 무엇이며 그전에 회개를 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엄청난지 다시 정리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무엇보다 초대교인들처럼 예수님을 순전하게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고 예수님처럼 죽는 일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국 엘에이 근교에서 2021년 가을에

 

차례

 

들어가면서

 

(눅15:1,2) 올해를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

(눅15:3-7) 잃어버린 양이 과연 누구인가?

(눅15:8-10) 하나님은 코로나 사태를 기뻐하신다.

(눅15:11-14) 아버지를 죽여 버린 둘째 아들

(눅15:14-19) 아버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던 둘째 아들

(눅15:20,21) 믿음의 본질은 뻔뻔함이다.

(눅15:22-24) 하나님께 반드시 받아야할 세 가지 축복

(눅15:25-30) 최후의 도피성마저 무너뜨린 바리새인들

(눅15:31,32) 인간에게 죽기보다 더 싫은 것은?

(눅15:7,10,32) 그런데도 ‘아직’인가? 그러나 ‘이제는’인가?

(눅16:1-8) 매일 아침 신자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

(눅16:8,9) 친구들 덕분에 천국 갈 자신이 있는가?

(눅16:10-13) 인생을 정말로 자유롭게 살려면?

(눅16:14-18) 목사와 교인이 함께 망하는 지름길

(눅16:19-25) 죽기 전에 인생 역전을 이루라.

(눅16:26-31) 신자인지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

(눅17:1,2) 지옥에 떨어질 사람의 조건은?

(눅17:3,4) 신자가 절대로 행해선 안 되는 한 가지

(눅17:5-10) 마땅한 신자와 못마땅한 신자.

(눅15:1-2, 17:7-10)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맺는 말

 

 

첫째 아들이 더 탕자였다.doc

 

첫째 아들이 더 탕자였다.docx

 

첫째 아들이 더 탕자였다.epub

 

첫째 아들이 더 탕자였다.mobi

 

첫째 아들이 더 탕자였다.pdf

 

 


날마다순종

2021.09.25 16:37:17
*.14.99.25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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