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7) 확증편향이 실질적인 죽음이다.

인간의 타락 담화 (7)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3:5-7)

 

거짓말쟁이가 더 큰소리친다.

 

거짓말이 먹히려면 아주 그럴싸하게 포장하여서 끝까지 진리인양 시치미를 떼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주장만 강력하게 우겨선 방귀 뀐 사람이 화를 낸다는 속담처럼 오히려 거짓이라고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사기꾼은 일부러 자기와 반대되는 의견인 진실을 슬쩍 언급해주면서 교묘한 논리를 동원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거꾸로 덮어씌워버립니다. 그럼 굳이 변증하지 않아도 자기 거짓말이 더 진실처럼 부각되므로 쉽게 속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속은 것을 깨달은 후에 후회해봐야 버스 떠나고 나서 손 흔드는 격입니다. 이브를 속인 사탄의 수법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아무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만 빼고 나머지 모든 과일을 임의로 먹으라고 허락해주었는데도 사탄은 이브의 모든 생각을 금지한 그 하나에 집중되도록 유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진짜일까라고 이브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진 것이 의심의 씨가 된 것입니다. 

 

이브가 그 미끼를 덥석 물자 사탄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따먹어도 절대 죽지 않는다고 정반대로 바꿔버렸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받아 누렸던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은 것입니다. 이브의 마음은 단 하나이긴 하지만 먹지 말라고 금지한 하나님보다 아무래도 몽땅 다 먹어도 된다는 사탄 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몰았으니 그 증거를 제시해주어야만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어야만 알 수 있는 물증은 줄 수 없으니 그럴싸한 심증을 심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브에게 이미 생긴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원망의 불씨에 기름을 부어버렸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5절)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너희가 당신처럼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이 싫어서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도 사탄도 그 실체는 이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선악과를 먹으면 과연 죽을까 염려되었는데 사탄은 절대로 죽지 않으니 전혀 염려할 것 없다고 단정지어 버렸습니다. 거기에 더 보태어서 그것을 먹으면 감히 인간으로선 상상도 못하는 큰 유익과 권능을 갖게 된다고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결과가 생기는데도 먹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동안 임의로 먹은 동산의 모든 과실은 사실상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겉치레에 불과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쓰레기들로 배불리 먹게 하여서 선악과는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게 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진짜 좋은 것은 주지 않으려고 또 주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정녕 죽는다고 거짓말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브의 생각이 하나님이 자기들을 못 믿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워한다는 데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려는 사탄의 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사탄의 말의 반은 진리였다. 

 

사탄은 너무나 영악하게도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하나님과 같은 수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먼저 자기 말도 진실에 바탕을 두었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일이 선악을 알게 해준다는 진리를 더 자세히 설명해줌으로써 이브로 자기 말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인식이 생기게 하여 귀담아 듣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사항은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었을 때나 지금 사탄이 거짓말로 유혹할 때나 아담과 이브로선 선과 악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하나님만이 있었고 또 선악과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과실을 임의로 따먹음으로써 풍요롭고도 아무 걱정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으니까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또 그런 상태가 좋다고 여기고 만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이 선악인 줄 모르고 그 둘의 차이를 비교할 수도 없었고 그런 식의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강조하지만 그 과일 안에 신비한 성능이 숨겨져서 먹기만 하면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과일을 먹었더니 영적으로 더 나빠졌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부부가 오늘날 우리가 이해 적용하는 윤리적 차원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싫어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실상은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닮게 인간을 지을 때부터 윤리적 선악에 대해 기본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양심을 이미 심어놓았습니다. 인간에게 추가로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실 필요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뜻은 오직 하나 당신의 품을 벗어나서 사망하는 일만, 그것이 바로 악이므로 제발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그것을 먹는 순간 눈이 밝아진다고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말까지 보태어서 마치 과일 안에 신령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호도합니다. 천하의 바보였다가 세상 최고의 천재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게 했습니다. 이브로선 생전 처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이 가진 의미가 너무 매혹적이라 서로 대조해서 따져볼 겨를이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사실 하나에만 모든 생각이 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이브가 선악과를 다시 봤을 텐데 여전히 그 모양 색깔 향취 등에서 다른 모든 과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굳이 이렇게 평범한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사탄이 말한 그대로임이 틀림없어! 만약 정말로 먹어서 죽는 과일이면 새빨갛게 혹은 새까맣게 만들고 아주 역한 냄새도 나게 했어야해. 일부러 평범하게 만들어 평소에 무심결에 지나치게 만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하나님은 자기들이 당신처럼 되는 것이 싫어서 먹지 말라고 했다는 사탄의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진리 같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아담과 이브가 자발적으로 기꺼이 당신의 품에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또 그래서 가능한 따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고 모든 과일과 동일하게 평범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것을 교묘하게 거꾸로 뒤집어버렸습니다. 원래 극과 극은 통한다고 완전한 진리를 인용해서 완전한 거짓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완전한 거짓이 이젠 완전한 진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브로선 만약 자기들이 하나님처럼 되면 에덴을 다스리는데 일일이 그분께 물어보거나 의지할 필요가 전혀 없어질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신들이 임의로 관리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에는 하나님이 무슨 일에든 당신을 찾아 물어보게 하여서 당신의 일방적인 뜻대로만 관리하게 했다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점점 자기들더러 임의로 행하라는 말씀도 공치사에 불과하다고 오해하게 되고 선악과는 자신들의 자유를 얽어매려는 족쇄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브의 확증편향(確證偏向)

 

결국 이브가 내린 판단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기들을 싫어했고 그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은 이브가 어떻게 섣불리 그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렸을까 언뜻 의아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담과 이브로선 아직 선과 악을 또 진리와 거짓을 체험해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전혀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 동안 혹시 동산의 다른 동물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겪어보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지라 전혀 실감하지 못했기에 쉽게 넘어간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원망으로 생각이 몰리니까 걷잡을 수 없이 그 방향으로 끝까지 확장된 것입니다. 

 

이브가 하나님이 자기들을 싫어한다고 결론을 내리자 자연히 자기들도 하나님이 싫어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속았다는 기분도 들어서 미워지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졌고 사탄의 거짓말이 자기들을 진심으로 염려해주는 너무나 고마운 충고라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자유롭게 행하던 인간들이 그분과는 한마디 상의는커녕 기도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탄의 거짓말에 스스로를 노예로 묶어버렸습니다. 

 

지금은 포스트모던 시대로 절대적인 진리는 없어졌고 학교에서도 도덕과 인성 교육이 아주 소홀해졌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모든 분야가 아주 복잡하고 치열해졌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SNS 등을 이용해서 자기만의 나라를 구축하기 바쁩니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따를 수 있는 선악 간의 규범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이미 정해 버린 확증편향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이 생겼습니다. 

 

거의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간절히 바랄 때, 또는 어떤 사건을 접하고 감정이 앞설 때, 그리고 저 마다의 뿌리 깊은 신념을 지키고자 할 때는 그 쪽으로만 모든 의사결정과 실행을 하는 편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모으거나,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주장할 때도 편향된 논리나 방법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듯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금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틀렸고 인간을 싫어한다는 확증편향을 이브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아니 필연적으로 선악과가 이전처럼 평범한 과일이 아니라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서 빨리 따먹어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정도를 넘어서 보면 볼수록 더 좋아 보였습니다. 사탄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신기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평범했던 과일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여겨진 것입니다. 원래 금지된 열매가 더 따먹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동안은 하나님과 순전한 교제를 이어왔고 사탄의 훼방이 없었기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먹음직한 것은 과일 자체에 영양분이 많고 맛이 좋은 것처럼 인식되어진 것입니다.  보암직한 것은 모양과 색깔과 향취도 아주 뛰어나 보였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정말로 따먹으면 뭔가 선악을 알 지혜를 줄 것 같았다는 뜻입니다. 사탄의 거짓말에 완전히 넘어가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일을 먹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바보 같은 짓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녀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원죄 아래 태어난다는 성경의 선언은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었더니...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자마자 어떤 현상이 생겼습니까? 우선 육체적으로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육신적 생명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정녕 죽는다고 말씀하셨으므로 다른 뭔가가 죽는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겪게 되는 진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육체적으로 살아있어도 사실상 죽어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에게는 아예 일어날 수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그럼 동물이 갖지 않고 인간만 갖고 있는 것이 죽은 것이므로 육신이 아닌 영혼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영적 죽음에 동반해서 맨 처음 나타난 증상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선악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그분처럼 되기는커녕 자기들이 벗은 줄만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옷을 지어입기 전이라 항상 벌거벗고 있었는데 굳이 지금에서야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결과인데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바로 앞에서 설명한 내용과 연결되는 의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고 합니다. 육신적으로 동일하게 벗은 상태에서 부끄러워하지 아니했다가 선악과를 따먹고서 벗은 줄 알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렸습니다. 그럼 벗은 줄 알았다는 것은 당연히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이브 두 사람에게 생전 처음 수치심이 생긴 것입니다. 뭔가 상대에게 잘못한 것이 있어서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고 자꾸 숨기고 싶어진 것입니다. 

 

둘째로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품을 벗어났더니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모든 차원에서 뭔가 부족해서 허전해졌다는 뜻입니다. 비유컨대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의 담요를 벗어버린 셈입니다. 선하고 진실 되며 아름다운 것들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그분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을 풍성히 공급받았으니 어떤 결핍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했을 것이며 그분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황량한 곳에 버려진 존재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그분 품을 벗어나자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껏 아무 문제없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왔던 것이 얼마나 풍족하고 좋았는지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단호하게 금지시킨 이유를 막상 완전히 발가벗긴 상태를 겪고 보니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계시해준 절대적인 진리를 의심하여 원망하고 거역하게 된 것이 그분께 너무 부끄러워진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이미 버스가 지나간 후에 손을 흔드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사탄의 교묘한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브는 이 너무나 안 좋은 일에 남편을 권유 동참 시킨 일이, 아담은 아내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순순히 따른 일이 정말 부끄러워졌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과수원에 떼 지어 과일을 훔쳐 먹은 후에는 모두가 계면쩍어져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바쁩니다. 아담과 이브도 함께 공모해서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기에 벌거벗었거나 옷을 입었거나 여부와 무관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운 처지가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 몸처럼 지냈던 부부 사이에 이전과 달리 뭔가 틈새가 벌어지고 아주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입니다. 

 

정녕 죽는다는 의미는? 

 

모든 생물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따로 옷을 지어 입는 법은 전혀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각기 처한 환경에서 생존 번식할 수 있는 본능을 이미 다 주어놓았습니다. 그 생존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고 이미 그곳의 기후와 여건에 적합하게 지어졌기에 자기 신체에 다른 것을 걸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는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고 더 중요하게는 오직 본능에 따라 움직이므로 윤리적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해 뭔가로 감출 이유도 없습니다. 

 

죄를 범하면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윤리의식과 또 그것을 감춰보려고 노력하는 이성적 지혜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중에 오직 인간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그 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벗어나는 순간 벌거벗었다고 느껴지게 되는데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이 땅을 다스리게 하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당신을 거역해 죄를 지으면 인간은 반드시 부끄러워지게 되는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한글개역 성경은 “자기들 몸이” 벗은 줄 알고라고 번역했으나 이런 뜻을 확실하게 하려고 개역개정판은 몸을 빼고 대신에 “자기들이” 벗은 줄 알고라고 바꾼 것 같습니다.(7절) 

 

최초 인간의 이 타락 이후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서 서로를 죄인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어느 누구도 남들 앞에 자신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고 그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만인이 만인 앞에 자기만 치장하기에 바빠졌습니다. 그렇게 된 최초 원인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 받아온 참 사랑을 스스로 작심하고 차버렸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끼리 함께 나눠야 할 하나님의 사랑이 선악과 사건 이후로 인간사회에서 실종된 것입니다. 현세대가 상식으로만 판단해도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던 상태와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저희 부부는 은행계좌와 SNS 계정을 모두 공유하고 언제든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서로 감출만한 부끄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완전히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못하는 자를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하는 자를 믿지 못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그분을 사랑하기에 그분 앞에 언제 어디서든 하나도 숨길 것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설령 나쁜 짓을 했어도 담대히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감출 것이 계속 생기거나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도 감추고 싶다면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런 신자를 도무지 신뢰할 수 없어서 참 사랑을 부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선악과를 먹었으나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기는커녕 전혀 꿈도 꾸지 못한 엉뚱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로소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쟁이로 사기꾼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사탄과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는데 역설적 결과적으로 따져서 사탄이 말하는 대로 영적인 눈이 밝아져 선악이 기본적으로 무엇인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소한 사탄은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지 단단히 다짐했을 것입니다. 사탄으로서도 그들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싫어하는 단계에까지 빠트렸기에 더 이상 그들을 조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었던 체험이 그 후의 모든 인간의 심령 깊숙이 견고한 진으로 쌓아져 남아있게 되었기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분별하게 된다는 선악의 실상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 사랑 안에 거하는 부부가, 아니 모든 사람들끼리 서로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럽지 않은 상태가 선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음이 앞서서 그분을 배제했더니 서로 감추고 싶은 벌거벗은 존재가 된 것이 악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도무지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정녕 죽는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사탄의 거짓에 속고 있는 인류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어서 자유롭게 될 필요가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택함 받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자유롭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반발에 대해 주님은 도리어 아브라함이 아니라 마귀가 너희 아비라고 정죄하면서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고 선언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미혹해 영적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당시까지도 여호와를 아는 유대인들마저 마귀가 자신의 거짓말을 진리인양 속이고 있고 그들은 그런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식의 거짓말입니까? 예수님 오시기까지는 물론 지금도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은 선하기에 스스로 혼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라고 믿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이생의 자랑으로 삼고 안목의 정욕을 채우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들만 서로 먼저 많이 차지하려는 일에 매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온갖 다툼이 생기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행동만 하지 않으면 선해지고 또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런 상태가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정반대라고 말합니다. 최초 인간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꾐에 넘어가 절대적 진리이자 선이신 창조주 하나님 그분을 떠나는 순간 그런 헛된 욕심과 어리석은 판단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는 순간 그분의 참사랑의 공급도 중단되므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서 실질적인 영적 죽음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모든 인간이 이 진리를 도무지 모르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스스로 남들보다 의롭다고 자신하는데 그런 자부심이야말로 100% 완전한 거짓인데도 100% 완전한 진리인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인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만 필요하다고 했고 또 의인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죄의 본질이 다르면 죄에서 구원 받는 방안도 당연히 달라집니다. 죄는 인간이 짓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죄의 본질도 달라집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 스스로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믿으면 인간사회 질서를 망가뜨리는 행동만 스스로 고치면 됩니다. 인간의 실상이 스스로 선해질 수 있다고 파악함으로써 죄의 본질도 행동과 말로 범한 잘못에 국한시키는 종교에선 하나님 없이도 선행구원이 가능하고 또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인간의 본질과 그에 따른 죄의 본질을 그와 정반대라고 선언합니다. 인간은 선하신 하나님을 떠나고 외면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또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윤리적 잘못을 범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참 사랑을 몰라서 실현하지 못하니까 언제 어디서나 서로에게 감출 것이 생기는 것이 죄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이 멀쩡하게 살고 있어도 그 내면은 항상 공허하고 갈급해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이 인간실존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 땅의 인간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지혜를 높이는 탐스러움만 평생 추구해도 헛되다는 탄식밖에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부부끼리도 온전한 참 사랑을 실현하지 못하니까 감출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SNS는 물론 돈 주머니를 따로 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도 외부 여건에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연약한 존재인지라 수시로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그리스도 은혜 밖으로 나가면 참 사랑으로 조정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것을 완전히 틀렸다고 정죄하며 서로 싸우다 서로의 감정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줍니다. 작은 실수나 잘못한 행동으로 배우자의 영혼 즉 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여서 헤어지기도 합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이라는 절대 진리가 사라진 현 세대는 의견이 서로 다를 때 협의 타협 조종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져 분쟁만 일삼다 못해 상대를 원수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자기만의 확증편향에 따라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외면하고 보고 싶은 자기만 계속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세에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워진다고 선언한 것입니다.(딤후3:3) 

 

요컨대 사람의 진짜 살고 죽음은 믿은 후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 원망 불신하고 스스로 벗어났기에 그 구원의 길도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생명까지 바치면서 십자가에 분명히 보여주신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 사랑을 외면하는 자들은 평생토록 벌거벗겨져 이 땅에 홀로 던져진 존재로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고귀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 끝까지 모르고 가르쳐주려 해도 더 화를 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6/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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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렘31:31-34)바뀐 것이 없는 예레미야 새 언약-죄인구원담화(6) master 2022-09-04 190
53 (삼하7:8-16)인간에게 없어선 절대 안 되는 것-죄인구원담화(5) master 2022-08-28 252
52 (출24:1-8)하나님과 피 뿌리는 언약을 맺었는가?-죄인구원담화(4) master 2022-08-21 211
51 (창17:1-8)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한가?-죄인구원담화(3) master 2022-08-14 264
50 (창 8:20-22 & 9:8-11)노아 언약에 숨겨진 진짜 의미-죄인구원담화(2) [1] master 2022-08-07 310
49 (창6:1-8)구약시대 사람들을 왜 구원하지 않았는가?-죄인구원담화(1) master 2022-07-31 391
48 (창3:22-24)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 인간-인간타락담화(12-완) [1] master 2022-07-24 406
47 (창3:16-20)인생의 고난이 왜 생기는가?-인간타락담화(10) [2] master 2022-07-03 513
46 (창3:14,15)사탄의 후손과 원수 된 여자의 후손-인간타락담화(9) [4] master 2022-06-26 331
45 (창3:8-13)수동적 하나님 능동적 사탄-인간타락담화(8) [1] master 2022-06-19 245
» (창3:5-7)확증편향이 실질적인 죽음이다.-인간타락담화(7) master 2022-06-12 314
43 (창2:16,17&3:1-4)이브가 사탄에게 넘어간 진짜 이유-인간타락담화(6) [1] master 2022-06-05 321
42 (창2:15-17)선악과 금령의 진짜 의미-인간타락담화(5) [2] master 2022-05-22 317
41 (창2:15-17)죄가 다르니 구원도 다르다.-인간타락담화(4) master 2022-05-15 292
40 (창1:26-28)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는가?-인간타락담화(3) [1] master 2022-05-08 288
39 (창1:26-28)예수 십자가보다 창조주부터 믿으라.-인간타락담화(2) [1] master 2022-05-01 349
38 타락과 구원 담화는 설교로 대체합니다. master 2022-04-25 152
37 (마19:23-26)하나님이 주시는 보화를 받았는가?-인간타락담화(1) master 2022-04-24 265
36 (죄의 본질)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최고로 선한 행위였다. [2] master 2020-11-11 1443
35 선악과 금령 해석의 세 가지 전제 master 2020-10-30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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