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 불가능과 신앙
이치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부터 신앙은 시작된다. 우리는 주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 웃을 사람은 웃어라.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첫째로 근본적 심판이 있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일이 있을 것을 믿고 우리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사람이 한 번 나서 죽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는 것은 정한 이치이기 때문이다(히 9:27). 그러나 이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을 또한 믿는다.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봄으로써 그와 비슷하게 변화될 것을 우리가 믿는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고후 3:17~18)
이 말씀대로 이 추한 것도 변화될 것을 믿는다. 인간성의 속사정을 눈여겨 보며 또한 세계 역사가 전개됨을 꿰뚫어 보면서 현실의 슬픔에 실망한 영은 모름지기 장차 올 것을 다시 한 번 기다리며 바라보라.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1 3:1~2)
노(老)사도 요한이 말한 대로 우리의 희망을 거기 둔다. 그리고 개체의 성화뿐 아니라 세계의 새로운 질서도 글자 그대로 우리가 기다리니 무릇 새 것, 옳은 것, 평화로운 것은 주 예수만이 주실 수 있는 까닭이다. 보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1~4)
이것만이 우리의 모든 생존의 이유가 된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현실에 권태를 느끼며 실망에 빠지려는 참된 사람들이여, 오래지 않아 나타나려는 이 영광의 날을 바라고 기다리시라. 힘을 가다듬어 불가능한 자리를 믿어 돌진하사이다. 내 영혼아, 오직 주를 갈망하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해 하듯이 내 영아, 주를 갈망할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