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아마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단어일 것입니다.
찬송 속에 늘 등장하는 낱말이기도 한 회개...
꼭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방법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정말 '구원에 이르는 회개' 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저 스스로에게도 묻는 질문입니다.
1). 회개는 말씀을 듣고 알고 깨닫는 것이다!
내가 죄를 지었는데 그게 얼마나 큰 죄인지를
말씀의 거울을 통해 비추어 알고 깨달아야 비로소 회개할 수 있습니다.
알아야 회개을 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절대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죄를 깨닫는 방법은
말씀으로 내 삶과 행위를 비추어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또 늘 성령충만하여 기도해야지만
내 영혼이 거룩해져서 더러운 것을 깨닫고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2).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죄의 방향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완전히 돌아서는, 리터닝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죄의 길은 넓고 편합니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길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말씀의 길, 진리의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회개란 세상과 죄의 넓은 길을 버리고 완전히 돌아서서
예수의 길, 좁은 길을 좇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하니하는 나무마다
도끼에 찍혀 불에 살라집니다.
그래서 회개를 하되 우리 삶 가운데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삶 자체를 죄에 종노릇하지 말고
오직 의의 병기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산 제사요,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4). 피흘리기까지 죄와 세상과 싸워 이겨야 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12:4).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말로만 회개했다 고백하고
그냥 울고 불고 통곡한 다음, 또 같은 죄를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며
주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회개가 아닙니다.
아무리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날마다 매순간순간마다 성령충만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를 했다고는 하나
같은 죄를 또 반복해서 지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죄를 반복했다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자꾸만 반복하는 그 죄를 어떤 마음으로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사람의 경우 보통
두가지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의 경우는
"나는 죄를 회개 했으니까 주님이 다 용서해 주실거야" 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다가 또 죄짓고 또 말로 회개하는 경우.
두번째의 경우는
죄 때문에 또 넘어져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죄책감이 들고
죽고 싶을 만큼 그런 괴로운 심정이 들면서, 차마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심경에 처해 있다가, 주님의 은혜로 인해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경우,
이 두가지 경우는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었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은 같지만
그 마음의 본질은 다른 경우입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첫번째와 두번째 경우가 다른 것은
눈물이나 죄책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번째의 경우는 제 아무리 입술로 회개하고 방언으로 ?라?라 기도한다 하더라도
결코,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번째의 경우에는 설령 또 한번 넘어졌다 하더라도
분명 주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결국 죄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죄 때문에 또 넘어졌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욱더 그 죄를 미워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만 의지하며 붙들고 나아가 기도해야만 합니다.
회개는 죄와 세상을 미워해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지 않고는 절대로 진실된 회개를 할 수 없습니다.
죄가 싫고 미워야 그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성령님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이지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죄를 사랑하며 죄를 즐기고 있으면서
어떻게 회개라는 것을 할 수가 있을까요?
가령 도박을 좋아하는 교인이 있다고 해봅시다.
돈과 사업장을 다 탕진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주님 앞에 다시는 도박 안할테니
다시 사업의 환경을 열어달라는 거래형식(?)의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몇년 후 이분이 다시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 살만큼 사업이 잘되었습니다.
근데 다시 도박에 빠졌습니다.
또 다시 전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자 이분이 참다운 회개를 한 분일까요?
이분은 도박을 싫어하는 분일까요?
아니면 죄를 미워하는 분일까요?
도박이 그렇게 좋은데 회개한걸까요?
물론 회개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고, 아무런 감정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개를 말로만, 눈물로만, 감정으로만 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말로 죄를 자백해야 하고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과 슬픔에 의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하지만 절대 빠져서는 안될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철저히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에서 완전히 돌이키고 돌아서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죄를 완전히 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회개로 시작해서 회개로 끝이 납니다.
회개하지 않는 신앙인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이김으로써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신실한 주님의 신부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