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귀를 데려오라신다. 심부름하는 제자들의 맘은 어떠했을까? 이제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면 예수님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앞날은 훤한 핑크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얼마나 행복에 젖어 있었을까? 나귀를 데려오면서도 과연 겸손하게 나귀주인에게 양해를 구했을까 싶다. 어깨 으쓱거리며 예수님이 쓰실 것이라며 큰소리라도 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속내는 분명 나중에 자신이 얼마나 유명해져 있는지를 알도록 마치 스타가 팬들에게 시선 마주쳐 줌이 아주 큰일해준 양 거들먹 거리면서 그 나귀를 나꿔채 듯 데려오진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데려온 나귀위에 자신들의 겉옷을 올려 놓아드렸을 때에 그 맘은 어떠했을까? 십자가에 돌아가시며 그 구원을 완성하시려는 예수님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려 알 수나 있었겠는가? 그저 나귀위에 자신의 옷이 걸쳐져 있음이 자신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오지 않으려나 싶어 너도 나도 뒤질세라 열심히 자신의 옷을 벗어서 올려놓진 않았는가 싶다.
나의 옷은 걸레조각 보다도 더 낡아 이젠 살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헐벗었음을 몰랐다. 이 더러운 넝마조각을 가지고 불쌍한 이웃, 헐벗은 이웃의 몸을 좀 따시게 해주고 싶다며 덮어 주려고 했었다. 이렇게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가지고 감히 이웃들을 덮어준다며 더 더러움만, 더 추함만, 더 헐벗은 모습만 연출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긍휼, 그 긍휼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죄인이건만, 이웃사랑의 방법을 너무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 무지함을 가지고서 헐벗음이 더 헐벗게되도록 어줍잖이 생각하고 행동한 것들이 너무도 부끄럽다. 마치 십자가 지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거들먹 거렸던 그 제자들처럼... 이 더러운 옷, 자신의 옷, 정말 더러워 넝마조각이라 불리기 조차도 과분한 이 옷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고요히 내려놓고 이 영혼을 받으십사 기도 드려본다. 이제부터는 성령님의 조명하여 주심으로 얼마나 넝마진 옷인지를 더더욱 알고 회개하며 예수님의 옷, 그 귀한 옷을 감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