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2:41-46) 매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가? 

구원 얻는 믿음 (5)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마22:41-46)

 

그리스도 논쟁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장 바리새인들이 주축이 되어서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요8:53)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라고 다그쳤습니다. 주님이 당신을 구원과 심판을 나누는 하나님과 동격의 위치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주님은 “아브라함도 당신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주님이 계셨다면 과거시제로 내가 ‘있었느니라’고 해야 하는데 “내가 있느니라.(I am)”고 현재형으로 말했습니다.(요8:58)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때도 현재형으로, 또 바리새인들과 논쟁하고 있는 그 현장에도 현재형으로 계신 존재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반발하는 이유 그대로 당신은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백성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I am.”의 헬라 원어 “에고 에이미”는 떨기나무 불꽃으로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가르쳐 준 당신의 이름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출3:14) 

 

당시 극도로 흥분했을 바리새인들로선 예수님이 현재형으로 표현한 그 숨은 의미까지는 정확히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신에 삼십 대 초반의 랍비가 이천 년 전 사람인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니까 귀신 들려 정신이 이상한 자로 취급하고서 돌로 쳐서 죽이려 들었습니다. 주님의 정체성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이런 반발과 분노가 공사역 내내 확대되어서 결국은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만든 것입니다. 

 

본문은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시비를 거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거꾸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42절)라고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은 자’라는 뜻인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인데, 예수님에게만 적용되는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물은 주님의 숨은 의도도 당신께서 영원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다시 확실하게 밝히려는 뜻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야곱의 유언을 통해 유다 지파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창49:8-12) 또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다윗 왕과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약을 맺었기에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삼하7:1-17) 그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윗의 아들이라고(The Son of David) 즉, 육신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에 대해서 주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45절)라고 반문했습니다. 까마득한 손자뻘 되는 사람에게 선조 다윗이 주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으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렇게 고백한 시편 말씀을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라고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바리새인들로선 예수님의 말씀에 가부 간의 어떤 답도 할 수 없어서 난감해졌습니다. 다윗이 잘못 말한 것이라고 하면 구약성경을 부인하는 결과가 됩니다. 다윗의 말이 옳다고 하면 아브라함도 후대의 메시아를 볼 수 있다는 뜻이 되므로 이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꼬투리 잡았던 자기들이 틀렸다는 뜻입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해석 적용하는 방식에 일관성이 없어질 뿐 아니라, 예수님이 당신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옳다고 시인하는 결과가 됩니다.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 질문을 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유대 대중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과 바리새인과의 논쟁이 계속 이어졌는데, 성경을 잘 모르는 백성도 당신을 다윗의 후손 즉, 메시아라고 환영하는데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너희들은 왜 그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나아가 너희가 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아도 좋은데 왜 아무 잘못 없는 나를 죽이려고 모의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로선 더더욱 한마디도 대답하 못 하고 물러갔습니다. 그날부터 감히 주님에게 묻는 자도 없었다고 해서 주님의 말씀을 수긍한 것이 아니라 자존심이 크게 상해 시기심과 증오심만 더 늘어난 것입니다. 이 논쟁은 마지막 고난 주간에 있었기에 이후로 그들은 주님을 어떻게 죽일지 구체적인 모의를 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곧바로 남아 있는 일반 유대인 무리와 제자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일곱 가지 잘못을 통렬하게 지적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은 듣되 행위는 절대 본받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마23장) 

 

그리스도의 정체성

 

주님의 이 질문이 이전에 아브라함 건으로 귀신 들린 자라고 멸시받았던 일에 대해 앙갚음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당신께서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논리정연하고 우월하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뜻도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사역 내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멸시 박해를 받았으며 죽이겠다는 협박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 그들에 맞서 싸우려거나 심지어 야단친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고 죄 많은 인간의 실상을 잘 아시는 하나님으로서 아무리 당신께 잘못하는 자라도 연약한 인간과 대놓고 다투는 것은 당신의 성품은 물론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완전히 상충됩니다. 실제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은혜를 원수로 갚은 그들도 사탄에 미혹되어 너무나 비참한 처지에 빠져 있음을 알기에 오히려 용서를 빌어주었습니다. 그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주었지 않습니까? 

 

주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한마디 대답도 못 하고 떠난 후에 그들을 저주하는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이 갈 데까지 가서 절대 돌이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 것은 이미 결정해 놓고 그 구실과 방법만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주님이 남은 무리에게 너희는 그들을 닮지 말라고 했으니 사실은 후대의 신자들에게 종교 지도자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위선에 대해 미리 경고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 

 

주님의 다윗에 관해 질문한 것도 바리새인들보다는 그 자리에 함께하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정확히 가르쳐 주려는 뜻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감동되었기 때문이라고 풀어주었습니다. 만약 다윗에게 성령이 역사하여 자기 후손인 메시아에 대해 주라고 칭할 수 있었다면,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에게도 성령이 역사하여 자기 후손으로 올 메시아에 대해 알게 해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는 당신의 말씀을 이 다윗의 시편에 견주어서 잘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고백이 없었다면 너희가 나를 미쳤다고 비난해도 되지만, 이 시편은 물론 구약성경 전체를 잘 살펴보면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라고 했는데 앞의 ‘주’는 성부 하나님이고 이어지는 ‘내 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그의 원수를 그의 발 아래 둘 때까지 천국 보좌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으니까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최초 인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금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거역 대적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그분과 영적으로 단절되는 사망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브가 사탄의 거짓 유혹에 넘어간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는 당연히 그리스도이며, 그럼 사탄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되므로, 다윗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발 아래에 둘 원수도 바로 사탄입니다. 

 

결국 성령의 감동을 받은 다윗은 그리스도가 사탄을 멸하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하나님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복음은 선지자를 통해 성경에 계시 된 약속으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나 성결의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롬1:2-4)

 

예수님이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고 선언한 뜻이 무엇입니까? 원죄 하에 태어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어떤 죄인도 당신을 순전히 믿고 따르면 죽음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서 그분과 영원토록 충만한 은혜 가운데 교제 동행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

 

정작 문제는 처음부터 주님을 미워했던 지도자들보다 주님을 다윗의 후손이라고 열렬히 환영했던 백성들이 며칠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왔으니 하나님이 다윗 왕과 언약한 대로 이스라엘의 왕권을 영원히 세워달라는 자기들의 요구를 주님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이라는 한 개인에게 로마를 물리쳐 달라고 요구할 정도라면 주님의 큰 능력을 온전히 인정하고 확고히 믿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있었어도 로마를 대적하기에는 턱없이 숫자가 부족했고 제자들도 사실은 백성들과 똑같은 생각으로 주님께 똑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백성들의 주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에 기대가 무산되자 실망도 너무 커져서 분노와 증오로 바뀐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로마를 물리쳐 달라고 요구한 까닭이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얻고자 하는 뜻만이 아닙니다.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도 중요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당신의 택한 백성을 이렇게 오래 고통 속에 두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 윤리로나 하나님의 공의로 따지면 무력으로 약소한 이스라엘을 점령하여서 수탈하고 억압하는 로마제국은 분명히 사악했습니다. 거기다 온갖 우상을 숭배하며 도덕적으로는 지극히 타락한 사탄의 나라라 심판받아 마땅한 대상이었습니다. 

 

유대인들로선 현재 자신들이 겪고 있는 모든 비참한 현실이 전부 로마의 책임이라고 즉, 자기들 외부의 인간 사회의 잘못과 갈등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만 물리치면 현실적 안식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더 선해지고 종교적으로 더 경건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자가 가롯 유다였는데 로마 멸망 같은 의로운 일은 의로운 인간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실천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큰 능력을 지닌 인간 영웅이 출현해서 인간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아주길 기다렸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대 대중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그리스도 즉, 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리새인들처럼 단순히 다윗의 인간 후손이라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메시아가 되어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실 줄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

 

반면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진단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영적인 죽음이 모든 인간의 실존의 영역 속에 완전히 뿌리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고서 스스로 자립하려는 순간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주신 참 생명과 그분을 닮은 인간 본연의 형상이 완전히 이질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선악과 금령을 주신 목적이 겁을 주어서 당신께 무조건 복종시키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품을 떠나는 순간 어떤 선한 것도 맛볼 수 없고 오직 허무와 갈증만 생길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전에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동안에는 그 부부는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감출 만한 잘못이라고는 하나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등을 지자 곧바로 수치심, 죄책감, 공포심에 휩싸였고 자기들이 스스로 아무리 없애려 해도 줄기는커녕 늘어만 갔습니다. 급기야 서로 자기 몸처럼 사랑했던 부부 사이가 서로를 비난하며 자기 혼자만 살려는 너무나 추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본성이 아브라함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마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거짓되고 부패해졌고 그 부패한 마음에서 산출하는 것들로 인간 사회가 추악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 개인이 변화되지 않으면 인간 사회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같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의롭게 되리라고 믿었으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보시기엔 너희들도 그들과 똑같은 사회의 온갖 모순과 죄악을 만들어내는 죄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로마를 물리칠 정도가 되면 이스라엘도 로마 같은 괴물이 되어야만 하고, 마찬가지로 또 다른 이스라엘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로마를 물리쳐 달라는 유대인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 어떻게 됩니까? 사사 시대에 매번 다른 종족에게 시달리던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를 물리칠 전쟁 잘 치르는 왕을 요구해서 사울을 세워준 것과 같은 실패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족속의 모든 세대의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함으로써 처참한 실패만 했다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조차 앞장서서 계속 하나님을 반역했다는 기록입니다. 그것도 어떤 민족도 누리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초자연적 엄청난 은혜를 수없이 받고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완악한 그들을 벌주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주고 또 그들의 죄가 당신의 인내에 한계가 차면 징계했다가 또다시 당신의 백성이 고통으로 울부짖으면 용서해주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들을 향한 본심이 재앙이 아니라 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용서는 제발 진심으로 회개하고 겸손히 당신께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호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 대적함으로써 큰 실패만 겪었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약시대의 인류를 완전한 실패와 죽음 가운데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택하신 남은 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성령이 역사해 그리스도를 믿게 해서 구원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의 인간적인 뜻대로 행하도록 허락했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 절대적인 절망에 빠지도록 했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자신했던 자기들부터 철저히 무너지게 함으로써 똑같이 타락한 인간들 사이에선 어떤 소망도 찾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들로 오직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만 소망하게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이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 이뤄진 이 짧은 대화가 의미하는 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는 인간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창조 때 아담과 이브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여자의 후손으로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라고 제자들에게 깨우쳐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 너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신이 바로 구약성경 전체가 예언한 그리스도로 영원한 현재의 방식인 “에고 에이미(I am.)”로 너희의 선조 아브라함과 다윗과도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무나 엄청난 사실이자 대단한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정말로 하나님 그분이 죄에 찌든 인류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직접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류 역사에 그 이상 의미 있고 은혜가 넘치는 사건은 없습니다. 또 신자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주님이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 이후로 오직 인간을 거룩한 존재로 만들려는 목적으로만 인류 역사를 이끌었다는 뜻입니다. 완전한 진선미이신 하나님은 인간만 당신과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당신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비록 아담이 타락할 줄을 아셨어도 자유의지를 주어서 자의에 따라 기꺼이 당신을 따르기를 소원했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라는 타락을 회복하고도 더 넘치는 은혜가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 내내 인간을 향한 그런 뜻과 계획을 단 한 순간도 접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로마보다 더 악독했던 니느웨에 요나를 보내어 회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로마도 당신의 긍휼을 베풀어야 할 불쌍한 죄인으로 보셨기에 유대인들의 요구를 거절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주변 여건이 풍족해진다고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 고난과 갈등이 인간의 의로운 도덕적 노력과 경건한 종교적 수행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하나님의 사랑이 실종된 대신에 자기만 높이려는 탐욕과 교만이 가득 차서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바람에 온갖 죄악을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룬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풍요가 한세대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형제와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참극과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는 타락의 발판이 되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에게 향하신 뜻은 오직 하나입니다. 너희에게 언제 어디서나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오로지 당신의 참사랑이자 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뜻을 온전히 눈으로 보게끔 하나님 그분이 이 땅에 직접 오셨습니다. 제자들마저 그 뜻을 모르고 자기들 목숨만 건지려고 당신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또다시 먼저 그들을 찾아가서 성령을 부어주시고 구원하여서 세상을 변화시킬 당신의 상속자로 다시 세워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자를 향한 그런 뜻과 계획은 당신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꿀 때까지 전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본문에 비추어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믿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로만 그치면 도덕 선생이자 경건한 종교가일 뿐입니다. 주님에게서 구원 얻는 방안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무엇이든 인간이 행할 수 있다는 잘못된 고집과 교만이 여전히 살아 있는 셈입니다. 구원조차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신의 의로움으로 자기가 쟁취하려는 것이며 그러니까 혹시라도 죄를 지으면 심판으로 떨어지지 않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와서 죄에 빠진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을 실제로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야 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는 요한의 고백과 동일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로 삼 년간 동고동락했으나 오늘날의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선 안 됩니다. 요한처럼 예수님을 육신적 접촉으로 보고 만진 자는 인류 전체를 따지면 지극히 소수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럴 수 없었으나 예수님의 때를 보았습니다. 성경이 확정되어 있고 성령이 내주하여 역사해주는 오늘날의 신자도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다윗

 

아브라함에겐 하나님이 직통으로 계시해주었으나 그 뜻까지 구체적으로 계시해준 적이 없습니다. 갈대아 떠날 때도 갈 바를 몰랐고, 사라를 두 번이나 이방의 왕들에게 빼앗겼을 때는 지옥 같은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며, 그 후의 롯과 이별, 가나안 전쟁, 소돔의 심판, 마지막에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등등, 그 모든 경우에 하나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눈앞에 거대한 절벽이 가로막히는 것 같고 사방이 깜깜해졌을 것입니다. 그는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선하게 마무리 지어준 후에야 비로소 그분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었고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 차츰차츰 알아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여정이 어떠했으며,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풀었는지 성경을 통해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야곱, 요셉, 모세, 다윗, 이사야, 다니엘, 등의 인생을 줄줄 외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과 죄에 빠진 인간을 섬기신 모습과 가르치신 천국 복음을 정확히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완악한 불신자였으나 성경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예수가 과연 어떤 분인지 알아보려고 성경을 진지하게 탐구하다 성령의 역사로 그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자들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신구약 성경 66권이 사실은 현대의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직통 계시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지금 나를 만나주시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시오. 그리고 십자가에 실현된 예수님의 권능과 은총을 지금 나에게 부어주십시오”라고 겸손하고도 절실하게 고백한 후에 성경을 펼쳐야 합니다. 다윗처럼 “내 주여 나의 원수 되는 사탄과 사망과 죄악을 당신의 발 아래에 멸망시켜 달라”고 기도한 후에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을 성령 안에서 실제로 성경을 통해 인격적으로 만나고 매일매일 조금씩 그분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는데 그의 이 고백이 그 증거입니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8-14)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행위에 따른 구원과 심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과를 동에서 서로 즉,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멀리 옮기셨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죄를 씻을 수 없는 연약한 체질을 잘 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 죄과를 완전히 씻으시고 다시는 그것에 대해선 문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다윗도 주님의 때를 보고 기뻐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주님과 개인적 인격적으로 만난 후에 주님이 너무 좋아서 주님과 교제 동행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천 년 전의 성육신한 역사적 예수님이 아니라 성경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나에게 직통으로 계시하시는 말씀 앞에 자기 존재, 삶, 인생 전부를 바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만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므로 그분과 동행하면 삶에 활력 기쁨 평강 자유가 넘치나, 잠시라도 그분의 손을 놓으면 기다리는 것은 눌림, 좌절, 실패, 절망, 죽음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런 믿음이 아직 없다면, 즉 예수님과 일대일 인격적 관계를 갖지 못한다면 다시 강조하건대 성경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실제로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고 나의 인생에 간섭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 징조, 표식을 달라고 기도해도 됩니다. 아니 일상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응답이 된다는 것만 따져보면 너무나 큰 기적이지 않습니까? 주님이 나를 알고 있고 내 소원대로 기꺼이 인도해주셨다는 확실한 증거이지 않습니까?

 

지금 기독교와 신자가 세상 앞에 힘을 못 쓰는 이유가 신자들이 매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복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나, 그 복음에 삶에서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매일 십자가에 자신이 올라가 죽고 자기 속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야 하나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베뢰아의 교인들이 성경이 그러한가 날마다 상고했다고 합니다.(행17:11) 그들이 성경에서 무엇을 알아봤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인지,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정말 사실인지, 또 그 부활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곰곰이 따져본 것입니다. 그 결과 자기들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서 당장 현실의 고난은 물론 로마의 박해도 얼마든지 이겨내며 세상 앞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을 실감하고 맘껏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마저 나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 그분이 나와 항상 함께하시고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내 편이 되어주신다는 확신입니다. 한마디로 마음 턱 놓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그런, 표현이 죄송하지만 똥배짱입니다. 한 번 곰곰이 따져보십시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당신의 전부를 다 내주었습니다. 그럼 나의 전부를 당신에게 내어놓으면 당신께서 다 책임져주신다는 보장이지 않습니까? 어폐가 있지만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그럴 뜻과 계획이 아니라면 굳이 십자가에 죽을 필요까지 없지 않습니까? 거기다 우리가 그분을 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와 참사랑으로 교제하려는 소망과 열정에 따라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럼 그분이 기어이 또 반드시 우리를 거룩하게 완성 시킬 것 아닙니까? 

 

(3/2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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