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11-16) 성화의 목적도 모르는 신자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0)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1-16)

 

성화의 목적

 

오래 신앙생활을 했어도 성화에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성화란 예수 믿는 신자만이 행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행해야 하는 평생의 과업이라는 인식이 없거나 크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인들이 행하는 성화와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타 종교인들에게도 성화가 나름대로 평생 과업이긴 하지만 그 종교에서 가르치는 계명을 지키는 일에만 최선을 다합니다. 나중에 죽은 후에 그 신(神)에게 심사받아서 구원을 얻기 위한 목적인데 일종의 천국 보험에 드는 셈입니다. 그 종교의 가르침이나 그들 나름의 의로운 삶을 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으며, 그들의 성화는 죽은 후를 대비하는 자기 수양으로 그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만이 죽은 후가 아니라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통해서 구원을 미리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은 후에 반드시 신자로서 행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신자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 없거나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으면 혹시 구원이 취소되거나 큰 벌을 받는 것은 아닐지 염려합니다.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다른 종교인들처럼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심지어 구원까지 의심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구원받은 신자가 평생토록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가르치는 본문을 성화와 연결해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교회를 온전히 세울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라서 대체로 교회론(敎會論)이 그 주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저작한 열셋의 서신서에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표현이 총 164회 나오나 에베소서에만 35회 사용하고 있기에 오히려 기독론(基督論)을 가장 강조하는 책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과 교회 안의 성도들의 사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성도 개인의 삶도 반드시 그리스도 중심으로만 이뤄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본문이 속한 4장도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1절)라고 시작하므로, 신자가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을 설명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그(예수님)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16절)라고 말씀을 맺습니다. 

 

몸은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고, 각 지체는 그 모임을 구성하는 개별 신자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조직체 교회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머리인 그리스도에게 지체로서 붙어 있기만 하면 되니까 어떤 형태가 되었던 구원받은 신자들 간의 모임이나 또 그들의 상호 관계를 망라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신자 개인도 그분의 몸이자 교회인 셈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지시(뜻)대로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신자를 거룩하게 다스리고 있는 모든 차원과 영역이 그분의 몸입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절)고 했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닮아서 자라야 하는(15절) 목적이 바로 그의 몸인 신자의 공동체를 바로 세우는 것(16절)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12절에서부터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그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신자가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의 최종 목적이 신자 개인의 자기 성숙보다는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화란 신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온전히 세우는 과업을 평생토록 행하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신앙생활은 자기보다는 다른 이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다른 종교의 성화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웃을 하나님과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이 온 율법과 강령이라고 가르치신 뜻이 바로 그것이지 않습니까? 신자 개인이 도덕적 종교적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은 성화의 과정이지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신자 개인은 당연히 자라야 하되 그것으로 그치지 말고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연히 신자에게도 큰 유익이 됩니다. 

 

이 땅에 임한 천국

 

물론 신자라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신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은 잘 압니다. 땅끝까지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당신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마28:20, 행1:8)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주변 불신자들을 보면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교회로 인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사탄의 종이 되어 있는 그 영혼이 너무 안타까워서 진정으로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면 기다리는 것이 비참한 지옥 형벌인 데다 이 땅에서의 인생도 평안이 없고 절망 가운데 죽음으로 치닫는 여정에 불과하다고 불쌍하게 여기는 그런 절실함이 부족합니다. 대체로 기독교적인 계명을 의무적으로 실천하려는 차원으로 접근합니다. 어떤 면에선 그 불신자보다 자기가 섬기는 조직체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키려는 목적이 더 우선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실행하는 일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전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부터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대비하면서 “회개하라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선포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마태복음에서 천국은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녔으나,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했으니까 이미 이 땅에 천국이 도래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선 같은 의미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가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영광스러운 영역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 땅과 모든 인간을 영원토록 당신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다스리는 모든 시공간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창조 이후로 종말까지 중단 없이 꾸준히 실현되고 있는데, 굳이 예수님이 강력하게 도래했으니 제자들더러 침노하라고 명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장차 종말 때에 완성될 천국의 모형을 신자들의 공동체를 통해서 이 땅에 세울 것이므로 모든 신자더러 그 일에 평생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신자들의 모임은 물론 신자 개인의 삶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천국의 모범을 실현하게 해서 아직 당신을 모르는 이로 자기도 그곳의 시민권을 얻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화의 방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성화의 최종 목적이라고 밝혔으니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본문에서 찾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라고 권합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는 공동체를 건설하려면 신자 각자가 당연히 그리스도를 닮아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에서 영어로 perfect로 번역되었는데, 주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에 찌든 인간이라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주님을 완벽하게 닮기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영어로 전치사 unto가 붙었고 우리말로 ‘이루라’와 ‘충만해지는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번역했으니 계속 진행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점점 자라면서 충만해져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주님을 믿고 아는 일에서부터 온전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완전히 알아야겠다는 간절한 소망과 순전한 믿음과 뜨거운 열정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기도해야 합니다. 종말적 천국에 이르기까지 평생토록 열심히 그분을 알고서 그 앎에 따라서 믿어야지, 신앙생활이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행하는 취미생활이 되어선 절대 안 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목적이어야지 자기를 세우려고 해선 안 됩니다. 

 

그 일에 성도들이 하나가 되라는 권면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더러 일치단결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주님을 알고 믿는 내용에서 서로 틀리거나 다른 부분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했듯이, 본문 말씀도 그러하듯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또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가르치신 내용과 행하신 사역과 궁극적으로 이룬 열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준다고 하니까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행하기만 해선, 즉 다른 종교 식으로 자기 혼자서 천국 입장권만 얻는 식의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화란 예수님이 베푸셨던 아가페 사랑을 평생토록 이웃에게 실현하는 씨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말하자면 주님이 이 땅에서 걸었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인데 그러려면 모든 면에서 주님을 닮아가야 하며 또 그러려면 주님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더 정확히 알면 알수록 주님을 더 많이 닮아갈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앞에서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고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준 것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성화는 성경이 가르치는 계명을 지켜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선한 행위를 하나씩 실천하는 씨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라는 한 인물을 닮아가면서 그분이 살았던 인생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씨름입니다. 정말로 삶의 모든 차원에서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신자의 인격체 전부가 바뀌어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 같은 신적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를 믿어 새로운 사람이 될 때는 내가 천하의 죄인이라는 사실을 생전 처음 깨닫고 예수님을 인격적인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분리되어 원수였다가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해하여 이전과는 달리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느냐가 그 후로 열심히 행할 일입니다. 

 

말하자면 자기를 최고로 높이려는 죄의 본성이 여전히 살아 있기에 이웃에 대해서 인간적인 사랑밖에 하지 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또 조금만 노력하면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의 15가지 행동 지침(고전13:4-7)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지 않습니까? 자세히 따지면 따질수록 이웃은커녕 내 아내나 남편은 물론 내 몸에서 난 자식마저 그 열다섯 중에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항이 별로 없습니다. 무엇보다 절대로 끝까지 참아주지 못합니다. 그에 반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만이 그 지침 모두를 완전하게 실현했음을 성령의 간섭으로 생전 처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천하 죄인 중의 괴수이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고백을 생전 처음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가 쉽게 간과해버리는 사항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죄와 싸워 이기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열심히 행한 일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당한 고통과 수치를 끝까지 참아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핍박한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또 믿지 않았던 이유는 주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더러 주님을 믿고 아는 일에 온전해져야 주님을 닮아가면서 주님이 살았던 삶도 따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세상의 고난과 박해와 수치를 죽기까지 참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또한 다른 종교와 가장 다른 기독교 성화의 특징입니다. 

 

어른이 되는 성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는 과정을 너무 어렵게 여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본문은 오히려 아주 쉬워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이제부터, 즉 예수를 믿은 후로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어린아이였으나 신자가 됨으로써 어른이 되었거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적, 지식적, 감성적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어린아이와 어른을 대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니까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래서 아이와 어른으로 비유 대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야 할 까닭을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4절)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잘 빠지고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서 요동했다는 것입니다. 현실적 궁핍과 고난 때문에 삶이 요동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속임수는 불법과 부정과 거짓을 합법과 공정과 진실인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간사한 유혹은 세속적인 쾌락이나 죄악에 빠트리려는 사람과 세상과 사탄의 시도입니다. 신자로선 당연히 이 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의롭게 살라는 가르침이 교훈인데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말라고 합니다. 불신자 때도 나름대로 선하게 살기 위해서 도덕과 종교의 교훈을 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갖 풍조’라고 표현했으니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서 바뀌는 교훈들입니다. 그 내용이 일시적 부분적 상대적이고 심지어 악하기도 해서 아무리 그 교훈대로 살아도 삶이 요동쳤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만이 요동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이고 나머지 모든 도덕과 종교의 계명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헬라 이방인들과 각지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도 나름대로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으며 대놓고 악을 저지른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인간사회에서 현자로 존경받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랐고, 유대인들은 성전 제사를 지내고 모세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자기 속에 충만하게 채워지는 안식, 평안, 자유, 기쁨, 만족, 행복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너희들이 그때를 되돌아보면 영적으로 어린이였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재확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기 전에 과연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었는지 회상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 후로 하나님과의 일대일 친밀한 교제 동행이 가능해졌기에 영적인 갈증과 허무가 비로소 해갈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평생토록 행할 일은 오직 예수님만 믿고 아는 일 하나뿐임을 너희가 더 잘 알 것이므로 그 일에 더욱 열심을 내라고 재촉한 셈입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아는 것만이 요동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꿔 말해 신자는 무슨 일을 해도 그분 안에서만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졌기에 인간은 서로 아가페 사랑으로 섬겨야만 비로소 삶이 요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런 진리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1,32,39)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 섭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선한 것은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특별히 인간은 그분 대신에 이 땅을 다스릴 청지기 직분을 맡았습니다. 죄로 타락해 그분을 외면 부인 대적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다시 그분의 자녀가 된 신자는 이제 그분을 대리하는 청지기 직분이 되고자 하는 소망과 열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바꿔 말해 본인이 진정으로 소원하면 그 일을 감당하는 데에 필요하고 충분하게 모든 선한 것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충만하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살아 있는 죄의 본성과 세상의 온갖 훼방과 사탄의 유혹이 날마다 우리를 삼키려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과의 교제를 더 친밀하게 깊이 쌓아 나가고 그래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나가야 합니다. 성경에 계시 된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나갈수록 그분의 일을 감당할 열정이 더 생기며, 당연히 그분을 더 닮아가며 주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을 더 많이 따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타락의 끝까지도 갔던 어거스틴은, “인간의 심령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안식을 얻을 수 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라고 본문과 똑같이 실토했습니다. 천국을 침노해서 차지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신자는 그렇게 발견한 그리스도가 주는 안식을 혼자서 누리지 말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은사대로 성화하라.

 

신자가 평생 이룰 성화인 이웃 사랑의 목적은 사탄의 노예로 묶여 있는 자들로 더 이상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린이를 영적인 어른으로 바꾸는 것이 성화의 목적입니다. 모든 이로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알아서 그 사랑 가운데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모든 이와 그런 사랑으로 섬기는 관계로 만들어서 끝까지 거룩하게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가 머리이고 그분의 백성들이 지체로 붙은 그분의 몸,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본문은 신자가 그럴 수 있도록 각자에게 합당한 은사를 각기 다르게 이미 다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로 부르셨는데(11절) 단순히 교회 조직과 직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자는 목사와 교사 둘뿐이고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셋은 교회 밖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은사에서부터 성도 사랑보다 이웃 사랑을 더 강조한 셈입니다. 

 

이 단계에서 지금껏 성화를 번번이 왜 실패했는지 스스로 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열심히 이웃을 도와주면서 섬기고 기도도 해주고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화를 이뤄나가는 방식에만 주로 관심을 쏟았지, 성화의 최종 목적에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고 또 몰랐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그분의 영광, 그분의 의를 나의 삶과 인생을 통해서 내 주변에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겠다는 열정이 있었습니까? 특별히 나라는 인격체 자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이라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그리스도의 빛을 발견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신자가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전도하고 구제하고 선을 베푸는 것도, 지금껏 해온 일들을 엄밀히 잘 따져보면 자신의 영적 유익과 의로움을 키우려는 목적이었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각자에게 은사를 주었다고 선포합니다. 바꿔 말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지 않으려면 은사가 필요 없습니다. 신자 개인만 의로워지려면 성령의 내주로 충분합니다. 굳이 성도마다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반드시 교회와 다른 이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신자가 각기 다른 은사들이 함께 사용하여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각 신자가 윤리적으로 착하게 살고 종교적 계명을 지키면 자기들만의 종교 왕국은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 죄인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목적으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길은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 하나뿐입니다. 세상 풍조에 요동하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어떤 어려움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으면서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화는 그래서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리고 확장해 나가는 평생의 여정이어야만 합니다. 

 

끝까지 참는 성화

 

초대 교회 교인들의 삶이 바로 그러했지 않습니까? 역사상 가장 전도가 잘 된 때인데 교회, 성경, 목사도 딱히 없었을 때입니다. 오직 각자가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성령의 인도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랑만 전했고 본인들도 그 사랑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핍박에서 오는 고통과 수치를 주님의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서 끝까지 참았습니다. 산 채로 맹수에 잡아 먹히거나 불에 태워져도 곧 만날 주님을 소망하며 찬양을 부르며 기뻐할 정도로 그들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 권력, 지식, 교훈, 종교로도 얻을 수 없었던 평안과 기쁨을 예수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 실현해 보였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정말로 예수님께만 붙어 있었기에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동적 초자연적으로 열매를 맺게 해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 높이기 위해서 자기는 죽고 예수님만 살아나게 했습니다. 그들에겐 처음부터 끝이 오직 예수였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신자가 되어서도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썩어서 죽어가는 열매만 맺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의를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영적으로도 자신만 성숙 되려는 욕심이 앞서선 오직 절망뿐임을 많이 체험했기에 자기를 세우는 일이 너무 싫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고난과 수치를 단순히 의지적으로 참아낸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제 곧 만날 예수님을 생각하니 너무 기뻤고 어서 빨리 천국의 더 좋은 장막에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세상에서 최고로 수치스러운 자리까지 떨어졌어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그리스도의 몸을 이 땅에서부터 건설하는 일꾼으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너무나 영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도덕군자가 되거나 교회 안에서 중직을 맡아서 성실히 섬기는 일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습니다. 성화는 신자 각자가 소금과 빛이 되어서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더 나아가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완전히 죽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나라가 새로 맺힌 수십 배의 알곡으로 더욱 굳건히 세워지고 또 확장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나만의 고유한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실감하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도덕군자나 종교적으로 신실한 신자가 되려 해선 지금껏 그랬듯이 성화는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려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면 자연히 이웃을 사랑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열정과 소망을 키워나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입니다. 특별히 자기가 받은 믿음과 은사의 분량대로 해야 합니다. 은사란 자기만 가진 특성과 능력인지라 행하면 즐겁고, 그래서 아무리 행해도 지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은사를 사용해 그분의 몸을 세우는 성화를 이뤄나가면 지금과는 달리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예이지만 다시 들겠습니다. 금실이 좋았던 신자 부부 중 남편이 먼저 돌아갔습니다. 혼자 남은 아내는 인생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낙심에 빠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담임 목사에게 상담했습니다. 목사님은 주님께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럼 평소에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녀는 수프 하나는 누구보다 더 맛있게 끓일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수프를 끓여서 이웃의 아픈 사람이나 부랑인에게 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행했더니 정말로 삶에 활력과 기쁨을 회복했고 복음까지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미 주님께 받은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으로써 그리스도가 주는 평안과 특별히 삶의 목적을 회복한 것입니다. 은사가 방언 신유 같은 초자연적이고 영적으로 신령한 능력만 뜻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천성적으로, 하나님께 받았다는 뜻임, 한두 개씩의 장점과 재능이 있기 마련인데, 바로 그 재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 사랑을 위해서 사용하게끔 성령이 인도해주면 은사입니다. 

 

결론적으로 성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1)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지 않습니까? 지금껏 자기를 거룩하게 만들려 했던 성화는 일단 잊어버리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살아가십시오. 요컨대 자기를 거룩하게 하기보다는 이웃부터 거룩하게 세우는 성화를 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만이 행할 수 있는 그런 성화를 말입니다. 

 

(9/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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