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5:22-33) 부부는 성화의 최고 동반자이다.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비결 (1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5:22-33)

 

성화와 인간관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신자로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성화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세히 주의해서 하나님을 알고서 그분의 뜻을 따르는 지혜 있는 자로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세월을 허랑방탕하게 허비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피차 복종하라고 권했습니다.(15-21절) 모든 죄는 사실상 인간관계가 굽어지는 데서 발생하고 또 죄로 인해서 인간관계가 굽어집니다. 따라서 성화의 본질은 순전한 사랑으로 피차 복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피차 복종하는 구체적인 모습에 관해서 바울은 본문에서부터 6:7까지 세 가지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서 설명합니다. 인간관계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바울은 아주 간략하게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상전과 종 사이 셋만 예로 들었습니다. 오늘날에 비해서 당시의 생활상이 아주 단순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가장 먼저 부모를 둔 자녀로 태어나서 부모의 양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이제 자신이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고서 성인이 되도록 키웁니다.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이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가지 환경에서 이 세 가지 인간관계로만 이뤄지는 셈입니다. 가정은 부부의 결혼 생활과 부모 자식의 관계로 나눠집니다. 모든 직장에는 어떤 형태로든 상전과 종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결국 이 세 관계가 모든 인간의 일생을 대변하기에 신자더러 이 세 관계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자의 삶에선 스스로 도덕적 계명을 지키는 것보다, 자기가 처한 위치와 신분에서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바울이 사람 사이의 관계만 안 틀어진다면 악을 행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신자는 악의 모든 모양도 버려야 하지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나빠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도덕보다 사랑

 

성화에서 올바른 인간관계를 도덕적 계명의 순종보다 더 중요시한 첫째 이유는 인간의 선한 행동이 겉만 의로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매번 예를 들 듯이 바리새인은 사람들로부터 의인이라는 칭찬을 많이 받았으나 예수님에게 유일하게 위선자라고 큰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남들 앞에서만 자기를 높여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는 영악한 의도로 선행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특별히 구제를 많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어쨌든 피차 좋은 일이 아니냐고 단순하게 판단해선 안 됩니다. 그들 선행의 목적이 다른 이를 진심으로 돕기보다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은연중에 자신이 부자이고 인자하다는 사실을 자랑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우습게 여기려는 의도까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겉모습만 보았으나 영혼의 깊은 속까지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자존심 덩어리이므로 비록 선행일지라도 조금이라도 자기를 높이려 들면 주변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존심이 상해져서 시기 질투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주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열심히 행하는 도덕적 종교적 선행 때문입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면 틀린 내용은 하나도 없고 다 옳지만 각기 자기들 옮음의 기준에만 비추어서 상대가 틀렸다고 비판 정죄합니다. 

 

인생사에서 규범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다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 않으며, 반대로 모두에게 적절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라도 규범적으로 옳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자식이 지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서 방과 후에 온갖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가 훤히 알고도 당장 훈육하지 않고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자식이 계속 망가지는 모습을 모른 척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엄청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청개구리 우화에서처럼 부모가 야단치면 미숙한 자녀는 오히려 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본인이 무엇이 나쁘고 잘못되었는지 체험적으로 깨달아야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되기에 그러는 것이 정서적 영적 성장에 훨씬 유익합니다. 

 

거기다 부모에게 좋거나 옳다고 해서 자식에게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스스로 좋아하거나 용납이 되는 일만 하기 마련입니다. 그 일을 행하면 자기에게 손해임을 절감해야만 행하지 않습니다. 바보가 고집이 세다는 속설처럼 영적으로 너무 어리석은 인간은 두들겨 맞아야 겨우 정신을 차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혹은 함께 배려해야만 합니다. 신자만 일방적으로 손해 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자답게 상대의 유익을 위해선 언제나 무엇이든 양보하고 희생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관계의 황금률로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고 산상수훈에서 가르쳤습니다. 이때도 상대의 입장부터 배려하는 일이 율법과 선지자, 즉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참된 이웃 사랑이 바로 신자가 평생토록 이룰 성화의 본질이라고 주님은 그때 이미 선언한 것입니다. 

 

만약 자기를 위해서 상대가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피차 복종은 쉽게 이뤄집니다. 그러려면 서로 ‘상생’(win win)할 수 있는 목적과 방향에 따라서 자신을 가장 적절한 위치에 두어야 합니다. 현재의 인간관계 안에서 자기가 감당하고 있는 정체성과 역할부터 제대로 깨달아서 상대가 반드시 받아야만 될 합당한 대우를 베풀어야만 합니다. 요컨대 도덕적 옳음보다 따뜻한 사랑이 인간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고 권면한 것입니다. 자기 위치와 역할을 순전히 지켜서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달성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차원에서 부부 사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항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복종

 

바울이 부부 관계를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매우 적절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고 생육 번성하라는 첫째 축복을 실현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부모 없이는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인간 사회에 가장 먼저 만든 제도입니다. 누구나 어린아이로 태어나 자기 성장을 위해서 가르침을 받는 일차적 직접적 스승이 부모입니다. 따라서 부부 관계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면 인간 사회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상황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이런 세대에서 소금과 빛이 되려면 가장 먼저 본문의 가르침부터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부부 관계 가르침을 많은 신자가, 다른 성경을 볼 때도 그러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고 치웁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부터 먼저 나오니까(22절) 기독교는 남성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므로 현대인에게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종교라고 비난합니다. 성경을 그런 식으로 읽고 싶은 대로 골라서 읽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선 안 됩니다. 자기 생각에 성경을 뀌어 맞추려 하지 말고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자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아내더러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지만, 남편도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25절) 곰곰이 한 번 따져보십시오, 복종과 사랑 중에 어느 쪽이 더 힘들겠습니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사랑이 복종보다 훨씬 더 힘듭니다. 거기다 본문에 앞서 신자는 모두 피차 복종해야 한다고 이미 가르쳤습니다.(21절) 그러면 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그것 하나만 행하면 되지만 남편은 그것 외에 사랑을 하나 더 보태야 하는 셈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 모든 남편이 아내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아내로선 선뜻 내키지 않더라도 가정의 경제권을 가진 남편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평생을 남편에게 군말 없이 복종하다가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하면,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고 자식들 봐서 참아주었으니 이혼하자는 아내들이 종종 있습니다.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적들에게 육체로는 복종할 수밖에 없었으나 정신을 빼앗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복종은 얼마든지 가장할 수 있으나 사랑을 거짓으로 하는 사람은 바람둥이나 제비족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부부끼리 단순히 사랑하고 복종하라는 권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말씀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신자 부부끼리는 물론이고, 혹시라도 신자가 불신자 배우자를 대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정체성과 역할에 따라 상대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자니까 윤리적으로 불신자보다 더 순전하고 더 성실하게 복종하고 사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크리스천 부부 세미나에선 본문에 따라서 주로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는 방법 위주로 훈련시킵니다. 예컨대 취미생활을 함께 즐겨라, 사랑한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하루에 세 번씩 하라, 남자와 여자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알아서 적절하게 반응하라, 등등을 가르칩니다. 분명히 부부 사이를 좋게 해주는 상당한 효과가 있으나 대체로 얼마 안 가서 시들해집니다. 

 

신자 부부가 정작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데도 거의 모든 부부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부부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라는 똑같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는 모두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죽어 마땅한 천하의 죄인이었으나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만 구원받았습니다. 신자는 여전히 용서받은 죄인이며 불신자는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실체를 정확히 발견하여서 새롭게 거듭난 자가 신자이고, 아직도 자기는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썩어가는 옛 자아에 머무르고 있는 자가 불신자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가 되어서도 불신자 때와 똑같이 자존심이라는 죄의 힘에 여전히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을 부인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반면에, 불신자는 여전히 자존심을 높이는 데에 모든 정열을 쏟아붓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피차 복종하려면 가장 먼저 이 사실부터 정확하게 또 심각하게 인식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도 부부가 계속 자존심을 살리려 발버둥 치는 죄인이요, 그것도 전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똑같은 신분이라고 서로가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부부  

 

아담의 타락 이후에 모든 결혼은 죄인끼리의 결혼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똑같은 죄인이라서 결혼해서도 평생 죄 가운데서 서로에게 죄를 지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크리스천 부부에게 적용되는 절대적 사실이자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결혼 생활 내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고 그 문제부터 확실하게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 사랑입니다. 에로스 사랑만으로는 결혼을 온전하게 지속하지 못합니다. 각자가 자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긍휼과 사랑이 없이는 한 시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으며 또 그래서 상대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처절한 고백이 매 순간 있어야 합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서로에게서 사랑과 복종을 받기 전에 먼저 자기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영적 수준을 정확히 깨달아야만 합니다. 

 

바울은 그래서 아내더러 교회가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또 남편도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권한 것입니다. 언뜻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므로 교인들의 머리가 되는 그리스도의 위치처럼 격상했으며, 그 반대로 아내의 위치를 머리인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낮춰 놓은 것 같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은 남성 우대 사상을 전혀 지지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 개그로 남자는 흙에서 만들었으나 여자는 남자의 뼈로 만들었기에 그 재료부터 여자가 훨씬 고급이고 튼튼하기에 기독교는 오히려 여성을 우대한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고, 남편에게도 “이와 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와 예수님의 관계는 부부가 서로 복종하고 사랑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한 유비일 뿐, 신분과 위치에서 우열이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신자라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된 위치를 정확히 알고서 회개했을 뿐 아니라, 주님이 그런 죄인인 자기를 조건 없이 용서해 준 은혜를 입었기에 그분께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교인들을 위해서 당신의 몸을 주면서까지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런 관계처럼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자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해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을, 신자 아내로서 남편에게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을 하면 서로가 얼굴을 붉힐 일이 적어질 수밖에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부부 사이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유비한 더 중요한 이유는 부부를 하나님이 세운 교회로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부가 서로 복종하고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따로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 가정을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야 합니다. 혹시 한 쪽이 불신자라고 해도 결혼의 목적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을 가정 안에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신자끼리 결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어쩌다 불신자와 결혼하게 되더라도 평생토록 배우자로 예수님을 알게 해주어서 함께 가정 안에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신자 부부라는 공동체의 머리는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에게 머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30절)고 말한 것입니다. 문맥상 남편에게 해당되는 설명이지만 신자 부부라면 아내도 당연히 그러하며, 불신자 아내라면 남편이 책임지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새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만들기 전에 가정을 먼저 만들었으며 가정이 타락하자 그것을 회복시키려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 신자가 가장 먼저 행할 일은 창조 때 하나님이 제정했던 이상적인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도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이로 죄에서 구원하여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참인간다운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참인간으로 회복된 신자는 가장 먼저 부부 사이부터 타락 전 창조 때로 되돌려야만 합니다. 

 

최초의 결혼

 

그 첫걸음은 남편이 아담이 타락하기 전 이브를 사랑했던 모습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이브를 자기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찬양하며 자기 몸처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28절)고 명합니다. 단순히 신자답게 최고의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31절)라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한 육체가 되었는데 남편이 어떻게 자기 몸인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1,32절)고, 신자 부부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라고 다시 강조했습니다. 일반인들의 결혼에는 그런 의미가 전혀 없고 아예 그런 진리조차 모르니까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 부부가 태초의 죄로 타락하기 전의 모습으로 회복되면 죄로 타락한 이 땅도 회복되며,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은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신자가 반드시 알아서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큰 비밀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제정하신 의미를 다시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했으니 결혼하여서 가정을 꾸릴 책임이 우선적으로 남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부부가 피차 복종하되 남자는 아내를 사랑해야 할 의무를 하나 더 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는데, 남편이 자기를 당신의 몸처럼 사랑해 준다면 어떤 아내가 그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여 키워야 하기에 남편이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다시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비하한다고 여겨선 안 됩니다. 하나님 안에선 부부 사이에 그 신분, 위치, 권능에 전혀 차별이 없고 단순히 각기 맡은 역할만 다를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일차 축복인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은 결국 아내가 주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여자가 더 오래 살고 생활력이 강해서 현실의 고난에 더 잘 견디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엄마에게 모성애라는 인간 사랑 중에 가장 아가페와 닮은 본성도 함께 주셨습니다. 어머니만은 자식을 위해서 얼마든지 어떤 경우에도 곧바로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다. 자기 몸속에 자식을 열 달이나 품었기에 자식은 자신의 분신이라 자기 몸도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려면 그와 같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엄마의 역할을 잘하도록 외부 위협에서 보호하고 먹고 입을 것을 조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더더욱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여자와 한 몸을 이뤄야 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하므로 결혼하면 마마보이처럼 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남편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혼자서 당당하게 수행하면서 자기 부모보다 더 좋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룬다는 의미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흔히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마음도 몸도 하나라고 그럴싸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오래된 부부일수록 마음도 몸도 따로 놀고 그냥 정 때문에 겨우겨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지로 한 몸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이 각자가 상대에게 맞춰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됩니다. 

 

불신자는 1+1=2의 수식대로 두 배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결혼합니다. 혼수품으로 한 살림 장만하고 맞벌이하면 수입도 늘어서 생활이 윤택하게 되길 바라고 사랑도 연애 때보다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는 그런 기대에 부합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2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1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이혼율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지 이미 오래이며 그 첫째 이유가 성격 차이와 불륜입니다. 돈이 많아진다고 피차 복종이 잘 되는 법은 없고 돈이 가져다준 여유로 자기를 치장하며 서로 자기 자존심 세우기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잘못을 성격 차이라고 포장하고 또 그래서 불륜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입니다.

 

결혼한 결과가 한 몸이어야 하니까 신자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결혼 방정식은 0.5+0.5=1입니다. 각자가 혼자 있어선 50%의 역할밖에 못 하므로 둘이 합쳐야만 완전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는 0.5밖에 안 된다고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고서, 한시라도 나머지 0,5가 없으면 온전한 남편과 아내가 될 수 없다고 절감해야 합니다. 자존심을 세우느라 자기가 0.5가 되기 싫어서 1은 아니라도 0.7이나 0.8 정도라도 되려고 하면 둘 사이에 0.2나 0.3만큼의 갭(gap)이 생겨서 경쟁 시기 다툼의 소지가 생깁니다. 

 

부부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이므로, 손과 발이 몸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손과 발은 둘 다 있어야 하고 하나라도 없으면 온전한 몸이 되지 않습니다. 손은 절대로 발을 열등하다고 무시해선 안 되고 발도 손을 더 우월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손가락 하나 없는 것보다 발가락 하나 없는 것이 생활하기에 훨씬 더 불편합니다. 지금 세대는 하나님을 등지다 못해 아예 실존조차 부인합니다. 부부가 창조주가 부여한 서로 다른 정체성과 역할에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는 결혼관을 쓰레기통에 내팽개친 지 오래입니다. 

 

천국까지 함께 가라. 

 

그런데 사실은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 굳이 교회가 가르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크리스천 부부는 타락 후의 결혼이라서 각자가 철두철미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피차 상대의 허물과 죄부터 기꺼이 덮어주고 씻어주어야 합니다. 서로 역할이 다른 반반끼리 합쳐서 하나가 되었기에 모든 잘못의 책임도 반반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더 잘났고 옳은지 따질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도 가정을 세울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남편이 먼저 감당하라고 명합니다. 남편더러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했듯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라”(26,27절)고 명합니다. 단순히 부부 사이를 더 좋게 하려는 뜻이 아니라, 자기 가정을 흠이 없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신자는 자기 가정을 세상 사람이 분명히 봐서 알 수 있도록 천국의 모형으로 가꿔나가야 합니다. 

 

너무 어렵게 여길 것 없습니다. 부부는 반드시 천국까지 같이 가야 하므로 한쪽이 중도에 탈락해선 안 됩니다. 서로 죄를 씻지 않으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부가 진정으로 함께 천국까지 가고 싶다면 서로의 죄부터 씻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영원토록 기거해야 하는 천국에서도 잘못의 원인이 어디에 있던 계속 서로에게 앙심을 품고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국에선 제발 서로 모른 척하자는 심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주셨습니까? 천국까지 인도해서 영원토록 당신의  참사랑 안에서 아름답고도 거룩한 교제를 계속하자는 뜻 아닙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었고, 신자 된 후에도 계속해서 내주하신 성령이 역사하여 죄 씻음의 은혜를 회개만 하면 베풀어 주지 않습니까? 나중에 주님이 신자와 얼굴로 맞대면하여 교제할 때 서로 부끄럽지 않게 하려는 뜻입니다. 주님 쪽에선 부끄러움이 전혀 없으니까, 신자 부부는 천국에서 넘치는 기쁨으로 주님과는 물론 서로가 교제하기 위해서 매일 서로에게 그래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십자가 복음에 대한)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천국까지 함께 갈)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고 명했습니다. 사랑의 책임을 맡은 남편이 아내를 천국 동반자로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신자 부부는 가는 순서는 달라도 천국에 꼭 함께 올라가겠다는 소망 열정 믿음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슬픔도 아픔도 없이 오직 희락과 사랑만 있는 곳에서 영원토록 함께 지낼 것을 꿈꿔야 합니다. 만약 그런 확신과 소망이 있다면 어떤 잘못과 허물도 서로에게 상처와 앙금으로 남지 않도록 기꺼이 씻어줄 것입니다. 

 

저희가 사는 이곳 은퇴 촌에서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믿음과 무관하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며 가장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신자 부부는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천국까지 함께 가려면 수시로 솟구치는 자존심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부부 사이에 자존심을 죽이는 싸움에 성공한다면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선 더욱 쉽게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존심 덩어리인지라 어떤 관계를 맺어도 서로의 자존심이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맞부딪히게 마련입니다. 부부는 그렇게 될 기회와 시간이 가장 많고 서로에게 기대하는 수준이 가장 높기에 서로 사랑하고 복종하기가, 즉 자기 자존심 죽이기가 가장 힘든 것입니다. 

 

지금 스스로 솔직히 자문해 보길 원합니다. 기혼자라면 정말로 현재의 배우자와 천국에 꼭 같이 가고 싶습니까? 그러면 지금의 모습으로 천국에 가서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미혼자라면 잘 생기고 건강하고 인격도 좋으며 근사한 직장에 믿음도 좋은 배우자를 소망하고 기도하기 전에, 자신부터 철두철미 죄인이며 내가 기도해서 장차 만날 배우자도 철두철미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습니까? 신자가 피차 복종하고 사랑할 수 있는 첫걸음은 인간이란 서로에게 항상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요 자존심 덩어리라는 진리부터 잊지 않는 것입니다. 

 

(9/24/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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