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6-11) 초림보다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 2024년 성탄 주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6-11)

 

갈릴리 출신 제자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40일간 교제한 후에 승천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당신의 증인으로 세워줄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빨리 성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제자들은 구름이 가리워 스승이 보이지 않는데도 하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승천하시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자세히 보고 싶은 뜻도 있었을 것이나, 그보다는 스승이 계속 땅에 남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아마도 아리마대 요셉의 빈 무덤에 있었던 두 천사였을 것임,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어서 빨리 주님의 당부대로 따르라는 추궁이었습니다. 갈릴리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위치했던 사마리아의 북쪽 변방으로 헬라 도시 데가볼리와 가깝습니다. 그래서 정통 유대인들은 갈릴리 출신을 이방인 취급했고, 로마인도 식민지 이스라엘의 시골 사람들이라고 멸시했습니다. 

 

두 천사의 추궁은 이제부터 너희는 더 이상 멸시를 받던 갈릴리 시골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너희가 바로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주역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제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당장 시작하라고 재촉한 것입니다. 천사들의 다그침을 받자, 제자들은 번쩍 정신이 들어서 마가의 다락방에 백이십 여명이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자들로선 아직 주님이 왜 십자가에 죽었고, 또 부활했으며, 나아가 승천하셨는지 그 뜻을 어렴풋이만 알았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현실적으로 회복되길 바랐는데 주님은 전혀 다른 방식의 회복을 기다리라고 하니까 과연 그 회복이 어떤 모습일지도 매우 궁금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깨우쳐 줄 성령이 그 해답을 줄 것이므로 그 오심을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 열흘 후 유대의 삼대 절기인 오순절에 맞춰서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갈라지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강림했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을 대신해서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이 땅의 모든 족속을 영적으로 주관 통치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택하신 죄인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여서 죄에서 구원해 주는 사역을 행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

 

제자들도 성령을 받자,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일은 뒷전이 되었고 십자가 복음만 증거하는 자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가장 먼저 신기한 현상이 자신들에게 일어났습니다. 평생 배워보지 못한 지중해 각 나라의 방언으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골고다에서 ‘걸음아 나 살려라’하며 뿔뿔이 도망가기 바빴던 때와는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놀랄 정도로 과감하고도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갈릴리 겁쟁이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충만히 임해서 증인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예수님부터 갈릴리 지역에 속하는 나사렛 출신이었고 그곳 어부들 중심으로 제자로 삼아서 주로 그곳에서 사역했습니다. 결국은 로마인과 유대인이 합작하여 갈릴리 사람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다와 로마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제자들도 성령을 받자, 복음을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의 갈릴리가 영화롭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사 9:1) 온전히 실현된 것입니다. 

 

주님의 수제자답게 베드로는 성전 뜰의 중앙에 서서 자기들이 방언하는 현상에 대해서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대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증거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이방인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죽게 만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지막 날의 구원자이자 심판자로 오신 하나님이므로 그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주님을 죽인 유대 당국의 본부이자 사령탑입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대제사장에게 순간순간 보고됩니다. 바로 그런 곳에서 베드로는 대제사장을 필두로 유대 관원들과 그에 부화뇌동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예수를 죽였다고 선포했습니다. 말하자면 대제사장에게 대놓고 네가 무죄한 피를 흘린 살인 죄인들의 수괴이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오라는 다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메시지는 정죄의 심판으로만 그치지 않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원수라도 당신만의 무한하고 조건 없는 긍휼로 용서해 주시니까 제발 주님의 그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호소였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에 취해서 배가 부른 유대 지도자들이 그에 응할 리는 없고 오히려 사도들을 더더욱 미워했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의 역사로 양심에 찔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곧바로 세례를 받은 백성이 그날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주님이 대제사장 관저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중에 혹시 자기 목숨이 달아날까 봐 두려워서 대제사장의 하녀에게조차 스승을 극력 부인했던 베드로로선 엄청난 반전입니다. 사나 죽으나 자기를 위해 죽으신 주님께 자기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섰습니다. 오십일 남짓에 정반대의 사람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자신의 의지와 양심을 갈고닦아서 그렇게 될 수는 절대 없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자신의 옛 자아가 죽어 없어지고 새 사람으로 완전히 거듭난 것입니다. 

 

그가 부활 예수를 전하기 시작하자 유대 당국이 예수 이름으로는 아무 강론도 하지 말라고 본격적으로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취급 당하는 것을 크게 기뻐했습니다.(행5:41) 그 후로 사도들 모두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복음만 전함으로써 처참하게 순교 당했습니다. 계시록을 기록하도록 보호해 준 요한 사도만 자연사했으나 그도 밧모섬 감옥에 유배당한 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순교하게 하는 성령

 

결과적으로 그들이 받은 성령의 권능은 죽음에 맞설 수 있는 담대함이었습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제자들이 다 순교 당할 것을 미리 아셨을 것이므로 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서 성령을 주신 셈입니다. 만약 성령의 권능이 순교를 이겨내는 힘이라고 미리 알았다면 제자들이 혹시 이전처럼 다시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발적 동의 없이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그냥 기계처럼 이끌려서 순교를 당한 것입니까? 

 

둘 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으로부터 당신과 같은 환난과 핍박을 당할 것이라고 미리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공사역 중에도 유대인들이 주님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것을 여러 번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없는 지금  환난과 핍박이 당연히 더 따르리라고 단단히 각오했습니다. 거기에 성령을 받자, 그에 대한 불안 염려는 사라지고 오히려 평안이 넘쳤기에 담대해진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한 내용은 오직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입니다. 성경은 훨씬 뒤에 저작되었습니다. 실제로 자신들이 목격 체험 동참 각성한 내용을 있는 사실 그대로 간증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본문 이전에도 변화 산에서 주님이 영화롭게 변모하고, 또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가 소생하는 현장에 동참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은 사두개 파를 제외한 유대인들은 사람은 죽으면 음부로 내려가서 아무 의식 없이 잠을 자다가 마지막 날의 부활을 기다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포함한 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스승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너무나 신기하고도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절대 끝이 아니고, 의식 없이 잠만 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이뤄진다고 믿었던 부활이 스승에 의해서 지금 눈앞에 이 땅에서부터 실현된 것입니다. 마침 그때 예수가 바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음성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성령을 받자,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과 교제도 나눈 터라, 예수님이 바로 마지막 날의 사람을 구원과 심판으로 나누어서 부활을 주실 하나님이심을 완전히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방언은 마지막 날의 주인이신 주님에 의해서 성령을 받은 결과라고 설명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는 것까지 목격한 후로는 자기들도 모세와 엘리야처럼 되고 싶다는 천국에 대한 열렬한 소망으로 가슴에 가득 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다 천사들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다짐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공사역 중에도 같은 예언을 여러 번 했음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초기에는 자기들 세대에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오해했으나 금방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정확히 알게 된 것입니다. 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때 불시에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완성해 주신다는 뜻이므로, 모든 유대인의 현실적 소망도 주님이 실현해 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어떤 것도 자기들이 주님의 증인으로 섬기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의 권능에 붙들린 초대 교회의 일반 신자들도 똑같았습니다. 맹수에게 산 채로 먹히거나 나무에 묶여서 불에 타 죽을 때 오히려 감사의 찬양을 불렀으며 그 모습을 본 로마 시민들이 크게 찔림을 받았다고 전해지지 않습니까? 터키의 지하 동굴에서 수백 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죽어도 천국으로 올라가며 또 때가 되면 부활할 것이라는 확신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스데반 집사가 최초의 순교를 당할 때 천국 문에서 자기를 영접하는 예수님을 보고선 그 얼굴이 천사처럼 아름답게 변했지 않습니까? (행6:15) 변화산에서의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얼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는 절대로 당신만의 일방적인 조종이나 강압적인 독재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모든 일에 성령의 선도적인 인도가 있지만 반드시 신자의 자발적이고 기꺼운 순종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그것도 신자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 특별히 예수 십자가 복음의 경륜에 합당하게 반응할 때만 일어나는 법입니다. 

 

천국만 소망하는 제자들

 

제자들이 지금 하늘을 빤히 쳐다본 까닭도 어쩌면 이 참에 자기들을 모세와 엘리야가 있는 하늘로 데려가 주길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변화산에서부터 베드로는 그곳에 장막을 짓고서 거주하길 원했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당연히 당신이 계신 천국으로, 더 아름다운 장막을 예비해 놓고서 끌어 올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바로 그러지는 않고 이 땅에 당신이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며 남겨 두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로 당신의 증인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삶이 얼마나 활기차고 아름다운지 이 땅만이 전부라고 믿는 세상 사람들 앞에 내보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죄에서 구원해 줄 목적이었다면 죽은 후에 당신께서 기뻐하셨던 자들을 낙원으로 이끌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이 땅에서부터 옛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줍니다. 신자더러 예수님을 믿어서 완전히 바뀐 새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옛사람으로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새 사람의 삶이 얼마나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온전히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된 유일한 근거가 십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뿐이라고 자신이 체험한 바대로 잘 설명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삶을 바꿔 말하면 세상의 멸시와 박해에 굴복하는 것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교제 동행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 싫다는 뜻입니다. 천국을 지향하며 사는 것은 이 땅에서 사는 삶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당시의 현실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천국으로 도피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로마 세상의 세속적 향락과 죄악은 물론 음란한 우상 숭배의 타락에 치를 떨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권력자들이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자들을 착취하여 호의호식 하고, 약소국을 침략 정복해 식민지로 만들고, 그 백성들을 노예로 붙들어와서 자기들의 사치스럽고 안락한 삶에 그저 한갓 물건 같이 장식품으로 학대 소비하는 모습이 너무 싫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점점 지연되었음에도 사도를 비롯한 초대 교인들은 차라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욕을 받았으면 받았지, 당시의 세상 타락에 동조 타협 변질될 수는 절대로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달프고 소외되고 박해를 받아도 주님과 말씀과 기도로 매일 친밀하게 교제하는 삶이 너무 좋았던 것입니다. 결국은 세상에서 아무 이름 없고 빛도 없었던 초대 교회 교인들의 그런 거룩한 삶이 세상 최고의 권력자인 로마 황제의 항복을 얻어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현실적 회복이 주님의 당부대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았더니 비록 시일은 늦어졌어도 부분적인 모습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도 당연히 세상에서 살아야 하므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건실한 직업을 갖고서 최대한 성실하게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돈도 열심히 벌고 현세대의 발전된 문명의 혜택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방식으로 돈을 벌고 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려면 평생토록 천국 소망이 확실하고 뜨거워야만 합니다. 천국에서의 보상을 기대하기 이전에 범사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기쁨을, 최소한 세상이 흔들 수 없는 평안을 충만하게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증명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재림의 의미

 

윌리엄 바클레이라는 신학자가 주님이 정말로 다시 오신다면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고 했습니다. 가정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주님이 다시 오지 않거나 신자들이 재림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재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사건이 인류의 종말이라기보다는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인류의 심판과 구원이 완성되는 사건으로서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인류가 멸망하고 없어지는 종말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인간이 주도하여 인간이 기록하던 역사는 더 이상 없습니다. 현재의 이 땅과 정반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진실하며 선한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한 종교의 종말관일 뿐으로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비방합니다. 노아의 때에 그랬다가 전부 심판받았음에도 말입니다.

 

인류 전체로 따지면 재림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궁극적인 완성이나, 개인적으로는 죽어서 천국 가는 순간이 자기 인생의 종말로 실질적인 재림입니다. 이 둘의 시기와 방식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결정 시행하십니다. 역사에 종말이 있기에 인류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정해야 하듯이, 천국이 있기에 신자 개인도 정말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이 이 땅 삶의 근거요 목적이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신자 인생의 최종 목표로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이어야 합니다. 변화산 사건에 주님이 제자들을 동참시킨 뜻은 신자는 미래의 확정된 재림이 이 땅에서부터 이미 실현된 범주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천국을 이미 소지한 자답게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현실 삶이 고달파서 감사와 기쁨을 훼방하려 들면 쉬지 말고 기도하면 됩니다. 성령님이 세상을 이길 위로와 힘을 다시 가득 채워주십니다. 

 

많은 신자가 일류 대학 입학, 세계적인 회사 취직,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 등을 이루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과연 천국 입성을 그런 열정과 노력으로 준비하고 있습니까?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거룩하게 살면서 그 열매는 성부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고 있습니까? 동료 성도들과 불신 이웃을 주님 사랑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고 있습니까? 최소한 그러면 세상 최고 권력자 로마 황제가 굴복하는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진리라도 믿고, 아니 알고는 있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의 증인으로 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기독교라는 종교나 특정 교회의 증인으로 사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일을 통해 어떤 결과를 이뤄냈는지 세상 앞에 말이 아니라 삶으로써 증명해야 합니다. 공사역 중에 주님이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과 같이 끝까지 원수도 사랑하며 기도해 주고 당신의 목숨을 세상 사람 앞에 내어주었던 그런 삶이어야 합니다. 초대 교인들과 사도들은 천국을 소망하면서 천국만을 향해서 걸어갔기에 당당하게 그럴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심지어 성령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난 신자임에도 아직도 갈릴리 시골 사람처럼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신자가 꽤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긴 하지만 평생을 두고 그 은혜만 죽도록 붙들고 있는 신자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의 증인으로서 땅끝까지 가라고 분명히 명했음에도 골고다 언덕 주위에만 계속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신자가 되었으므로 주님의 일을 하고 싶어는 하나, 구원해 주고서도 왜 이런 고난만 겪게 해서 그 일을 못 하게 하느냐는 의심과 불만에 묶여 있습니다. 또는 자기만 높이려는 원죄 하의 본성에 계속 져서 넘어지므로 그저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간구만 합니다. 이처럼 골고다 언덕에 머무는 것은 이미 지나온 뒤만 되돌아보는 신앙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빈 무덤을 지나서 앞으로 한 발이라도 나아가야만 참신앙입니다. 매일 아침 주님이 승천하신 감람산 언덕에 서서 천사로부터 갈릴리 사람아 왜 하늘만 쳐다보느냐고 다그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절대로 산자가 당신의 긍휼만 바라고 엎드려 있게 하려고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 안에서 살라고 죽으신 것이며 그래서 오순절에 성령의 권능을 입혀준 것입니다. 성령은 신자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동안에는 끝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순교까지 감당할 수 있는, 즉 죽음을 이겨내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권능이지 않습니까?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었던 주님과 똑같은 삶을 살아서 최대한 많은 복음의 열매를 갖고서 천국에 입성해야 합니다.

 

뒤는 돌아보지 말라.

 

이번 주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 주일로 교회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회상 감사 경배합니다. 주님의 초림이 없었으면 우리는 없었고 여전히 흑암 가운데 아무 소망 없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시체였을 것입니다. 주님의 초림으로 나 같은 천하의 죄인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준 것은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큰 은혜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로 그것만 감사하라고 하지 않았고 다시 올 것이므로그 동안에 당신의 증인으로 살라고, 아니 성령을 받으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마지막으로 당부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삶이 절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나 초대 교회 신자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가능합니다. 지금은 주님을 육신으로 대면하지 못해도 성경 안에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즉 후대 신자들이 성경을 통해서 당신을 만나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진리를 정확히 깨달을 수 있고 재림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자세히 간증할 여유는 없지만 로마서 강해 설교를 듣는 몇 달 동안 가슴을 치고 눈물로 회개하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믿은 후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면 앞서가시는 그분의 따뜻한 손길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저는 신자 된 것이 일생일대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는 말씀을 전할 목회자가 된 것이 더 크게 기쁩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말씀을 전할 수 있으니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고귀한 은혜입니다. 최대한 오래 살면서 한참 글을 쓰고 있을 때 죽거나 주님이 다시 오시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소원을 품고 있습니다. 

 

현세대는 철학 문화 사상 도덕 과학 모든 면에서 역사상 최고로 발전한 때입니다. 오늘날 서민의 삶이 이전 왕들의 삶보다 더 호사스럽고 풍족하며, 이전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하던 신세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누구에게 물어봐도 살만한 의미와 가치가 더 많아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더 아름다워졌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절대적 진리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에 인생에 아무 소망 없이 그저 순간순간 말초적으로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감히 말하건대 제 나이가 70살 중반에 가까워지니까 정말로 예수님 밖에는 인생에 아무 소망이 없다고 나날이 절감합니다. 목사라서 말하는 상투적이고 종교적인 치사가 절대 아닙니다. 목사가 된 후로도 저 또한 현실 삶의 실패와 환난을 남들 만큼 많이 겪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만이 저의 피난처요 구원의 산성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 어떤 것도 위로조차 안 되었습니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도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변해서 끝까지 믿을 수 없습니다. 부모도 자식을 버릴 수 있으나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분께 언제든 원수가 되어도 하나님 쪽에서 인간을 원수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뒤를 돌아보는 시간마저 아깝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도 아주 소중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침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숨결을 느끼고 성령의 조명으로 성경을 깊이 깨달음이 너무 즐겁고 가슴 벅찹니다. 신자 모두가 말씀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말로 천국을 지향하며 살아가느냐가 예수 믿은 후의 신자의 정체성이자 삶 전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뒤엣것은 잊고서 앞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처럼 천국과 부활과 주님의 재림을 확신한다면 세상 어떤 것도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죽음도 불사하게 만들지만 그 전에 죄로 타락하고 영적으로 혼탁해진 세상부터 너무 역겹고 싫어지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영원히 살아계신 주님과 말씀과 기도를 통해 깊고도 친밀한 교제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아직도 세상의 구정물 속에 빠져 허덕이는 주변 영혼들을 보면 예수를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해줍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재림을 너무 성급히 기다린 것이 문제였으나, 지금은 아예 먼 미래로 마치 없을 것처럼 밀어낸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과 신자의 성령으로 거듭남은 이미 지난 과거의 일입니다. 구원 후로는 이 땅에 도래한 천국 안에 거하면서 천국을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침탈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번 주에 주님의 초림만 기념하면 반쪽 성탄절이 되고, 재림도 열렬히 소망 실천해야만 완전한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12/2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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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2]

(롬8:31-34) 올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았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2) / 2024 송구영신 예배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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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9
  • 조회 수 129

(행1:6-11) 초림보다는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행1:6-11) 초림보다 재림을 기념하는 성탄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1) / 2024년 성탄 주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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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22
  • 조회 수 213

(행1:6-8) 혼란한 비상 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0)

(행1:6-8) 혼란한 비상시국에 신자가 취할 행동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20)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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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5
  • 조회 수 250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느2:17-20) 하나님을 청소부로 만드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9)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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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08
  • 조회 수 145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9)

(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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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 조회 수 2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8)

(롬1:16-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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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 조회 수 240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7) [1]

(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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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0
  • 조회 수 357

(왕하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6) [2]

(왕하 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6)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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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3
  • 조회 수 333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1]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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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7
  • 조회 수 248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5) [2]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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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0
  • 조회 수 340

(막1:14-20) 참 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6) [1]

(막1:14-20) 참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6)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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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3
  • 조회 수 324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창26:1-6)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사는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4)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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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6
  • 조회 수 222

(고전1:18-25) 원색적 복음이 실종된 기독교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5)

(고전1:18-25) 원색적 복음이 실종된 기독교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5)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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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9
  • 조회 수 206

(왕하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왕하 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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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2
  • 조회 수 332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4)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새롭게 읽은 신약성경 (1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보라 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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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15
  • 조회 수 301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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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8
  • 조회 수 501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1) [1]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11)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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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 조회 수 248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0) [2]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0)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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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8
  • 조회 수 262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3)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신자로서 첫걸음 예수를 믿고서 교회에 출석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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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1
  • 조회 수 215

(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2)

(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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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4
  • 조회 수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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