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는지요?

조회 수 3080 추천 수 117 2007.06.22 01:21:07
운영자 *.104.231.208
[질문]

신앙생활 중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 올립니다.
저의 기도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내일 이 땅에 재림 하신다고 계획하신 일을 저의 기도로 인하여
늦춰질 수도 있는 건가요?  아직 세상에 구원받지 못한 이가 너무 많으니  하나님 조금만 더 연장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늦출 수도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기도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바꾼 분이 계신가요?

[답변]

많은 신자들이 궁금해 하지만 잘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주제입니다. 또 종종 강단에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도와 하나님의 뜻과의 상관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아서 마치 인간이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는 것 같은 혼동이 옵니다. 나아가 자기 뜻을 끝까지 고집하며 기도하면 만사형통 될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킵니다. 질문자께서는 심판의 연기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맞는 주제로 질문하셨지만 대개의 경우는 자기 개인의 현실적 문제에만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따라서 더욱 올바른 이해가 절실한 것 같습니다.

신앙 문제에 혼란이 생기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항상 인간 중심으로 문제를 접근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그분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신앙은 인간 스스로 추론하고 철학하는 개념이나 사상이 아니며, 도덕적 종교적 계명을 지키고자 수련 정진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인격적 절대자로서 경배의 대상이 있고 그분과 상호 인격적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절대적 전제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하며 또 그러기 위해선 그분의 관점에서 범사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분의 품성을 알아나가되 실제 체험으로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겪은 체험들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인지 아닌지를 성경 말씀에 비추어 잘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실제 체험으로 겪어야 한다고 기도하여 응답 받으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인간이 스스로 추측하여 그분을 알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하나님 쪽에서 먼저 자신을 보여주셔야만 그것도 드러난 영역에 국한하여 극히 일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발견할 줄 알아야 올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럼 신자의 기도로 인해 당신의 뜻을 바꾸는지 아닌지 하나님의 관점은 과연 어떠할까요?

우선 성경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라고 말합니다. 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7)고도 합니다. 그래서 신자의 기도를 그것도 선한 목적과 동기의 기도라면 하나님의 뜻이 설령 그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들어주시는 것이 맞습니까?

성경은 또 동시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14:24,27)라고도 합니다. 나아가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나의 입에서 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 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 하였노라.”(사45:23)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세운 뜻을 굽히는 법은 전혀 없는 것이 맞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둘 다 맞습니다.

인간의 이해력에는 한계가 있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불신자 시절의 습성이 남아서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에만 사고를 제한시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선 믿음이 근본적으로 성숙해지기 어렵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신자는 매사를 반드시 하나님의 입장에서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해서 그분의 원래 의도하신 뜻이 바뀌거나 없던 뜻이 새로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동일한 사건과 현상 안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더 깊고도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해서 전혀 무지하거나 치졸한 수준에 머무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얼마든지 영적으로도 신령해질 수 있는 은사와 재능을 그분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사단의 방해로 그 능력이 막혀 있었지만 구원 이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의 깊은 사정까지 통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둘 다 정답이라고 해서 세상에서 말하는 상대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세상은 가뭄이 계속되면 농사에 해롭다고 하는 반면에 포도가 익기에는 좋다고 하듯이 동일한 일을 두고도 선과 악이라는 정반대의 견해로 나뉩니다. 하나님에게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그분의 관점에선 선한 것은 동시에 여럿이 충만하게 있거나, 아니면 악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할 뿐입니다.

이 질문의 대한 답도 ‘예스’는 좋은 뜻, ‘노’는 나쁜 뜻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선한 의미이지만 단지 하나님 쪽에서 보면 그 답이 ‘노’이지만, 인간 쪽에선 ‘예스’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을 뿐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그 거리가 너무 멀어 빛이 도달하는데도 8분이 걸립니다. 인간이 보는 태양은 항상 8분 전의 태양입니다. 만약 엄청난 거인이 있어 한 발은 지구에 다른 한 발은 태양에 두고 있다면 태양과 지구를 항상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인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이 위대하시고 우주의 중심에 계신 분입니다.

다른 말로 그분은 시간 자체를 만드셨기에  시간의 영역에서 초월해 있는 분입니다. 따라서 그분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없고 항상 현재만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모든 것이 그분의 뜻과 계획안에 있습니다. 당연히 인류의 미래까지 전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기본 인식을 전제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더 실감나게 비유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여의도 광장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며 기어가고 있는 개미라면 하나님은 63 빌딩 옥상에서 그것을 내려다  보면서 개미의 전체 일정과 향방을 조정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개미는 때로 앞에 장애가 나타나면 그 너머를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 장애를 넘어보려 애를 쓰다가 도저히 안 되면 둘러서라도 갑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신자 개미가 간절히 기도하면 그 장애를 하나님이 없애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원래의 뜻은 그 장애를 개미가 자기 힘으로 넘을 만큼 영육 간에 강건해지는 것이었지만 너무 힘에 부쳐서 그대로 두면 탈진하거나 포기할까 봐 장애를 없애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이 바뀐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장애를 마련해 놓습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강건케 하고자 하는 뜻에는 전혀 바뀐 것이 없습니다. 육상 선수의 장애 넘기 실력을 늘리도록 트랙에 허들의 높이를 갈수록 높이거나 같은 높이 허들을 간격을 좁혀서 놓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나아가 개미더러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게 하는 궁극적인 일정과 방향에도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했던 개미 신자의 입장에선 기도했더니 장애물이 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성경의 예

마침 궁금해 하신 대로 성경에 너무나 좋은 예가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간  하나님께 거룩한 율법을 받고 있는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며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모세에게 통보했고 모세는 그 계획을 취소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출 32:7-14)

그들은 하나님이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숭배한 목이  곧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10절) 노아의 심판 때처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이고 오직 모세의 후손으로만 다시 이스라엘을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간절히 기도한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4절)

그럼 정말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의 후손만으로 새 이스라엘을 세우려 했을까요? 아닙니다. 모세가 기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13절)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것을 왜 하나님께서 번복하시렵니까라고 따진 셈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15:16)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사백년간 노예 살이 하다가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당신의 입으로 맹세하셨습니다. 만약 모세의 후손으로만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또 다시 40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아브라함에게 공수표를 발행한 셈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로 헛되이 돌아가게 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모세가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32:12)라고 기도한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큰 기적으로 애굽에서 구원해 낸 백성을 진멸해 버리면 불신자 애굽이 볼 때에 여호와가 헛수고를 했을 뿐 아니라 신경질적인 하나님으로 여길 것 아니냐고 따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습니다. 단 한 치라도 훼손당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신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당신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이끄십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던 또 중간에서 일부는 죽더라도 개미로 줄지어 여의도 광장을 반드시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게 만들듯이 말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뜻을 돌이켰다고 하는 표현들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입니다. 인간더러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만 따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별히 신자가 죄를 회개하면 미쁘신 그분은 즉각 용서하시고 예비해 놓으셨던 심판 내지 징계를 유보하십니다.

때로는 신자로 근심케 해도 그분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지만 개미가 장애물을 넘어 도저히 볼 수 없듯이 막상 어려운 상황을 겪는 신자로선 하나님의 세밀한 뜻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친구처럼 의논한 모세마저 그랬습니다. 만약 인간이 장애 건너편에 평지가 펼쳐진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또 그 장애가 얼마든지 스스로 넘을 수 있는 정도라면 절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인간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하나님이 계시해 주는 범위 내에서만 알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뜻을 바꾼 것처럼 이해되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되어야만 더 열심히 기도하고 그분을 찾게 됩니다. 사실은 그것조차 하나님이 미리 의도하신 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그것을 강조하면 신자들이 자기 뜻만 고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그분의 능력만 의지하려 듭니다. 신자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관점에선 결국 당신의 전체적이고도 궁극적인 뜻 안에서만 응답해 주십니다. 그분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영원토록 자존하는 분입니다. 오직 당신의 뜻에만 당신이 영향을 받지 세상 어느 것으로도 그분의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신자가 아무리 스스로 계획하고 소원하는 일들을 기도하면서 이뤄나갈지라도 일생이 그분의 절대적 주권 아래 인도받는 것입니다.  
    
신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심판의 연기

예수님께서 내일 이 땅에 재림 하시려는 계획이 신자의 기도로 인하여 늦춰질 수 있는지, 아직 세상에 구원받지 못한 이가 너무 많으니 심판을 조금만 더 연장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늦춰주시는지에 관한 의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선 당신의 계획과 뜻을 변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신자의 관점에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그 계획을 늦추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의  시점이 언제인지 또는 연기가 되는 것인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지 않습니까? 미리 알 수 있으면 그 때에는 모두 두려워서라도 하나님을 믿는 척 할 것입니다. 또 연기 될 수 있다고 확신하여도 신자가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소지도 분명 생길 것입니다.

대신에 신자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죄인의 영혼을 바라 볼 때에 오로지 안타까운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솔직히 그 사람의 앞날부터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전하는 것을 지체하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아니 전하는 신자 자신의 생명도 언제 하나님이 되돌려 가실지 모르는 판국에 예수님의 재림까지 연기하려고 할 여유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질문자께선 분명 재림의 시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전도하고 있는 대상이 계속 완악하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빨리 죽던지, 구원 받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어쩌나 염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럴수록 신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연기하기보다는 자신의 할 바부터 서둘러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에게 범죄한 이스라엘의 사죄를 위해 모세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32:32)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동족의 구원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바로 신자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대하더라도 취해야 할 십자가를 지는 모습입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리라 내 사자가 네 앞서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바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33-35절)  

아무리 모세가 대신 죽겠다고 기도했지만 그 이름을 지우는 것은 하나님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라 기도로 변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멸에서 모면하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모세의 기도로 진멸하려는 뜻이 변경되었지만 궁극적인 당신의 뜻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 죄를 물으셔서 징계하시되 언제 어떻게 하실지는 오직 당신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고 모세에게마저 딱 잘라 말했습니다. 하나님 쪽에선 당신의 뜻을 변경한 것은 없지만 인간 쪽에선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신약에도 똑 같은 경우가 나오는데 그 결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바울도 동족 이스라엘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끝까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차라리 저주를 받겠다고 나섰지만 하나님이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하나님의 한 가지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일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11:7,14,25)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롬11:29)기에 당신의 궁극적인 뜻과 계획이 변경, 연기, 취소되는 법이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후회하심이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신자는 택함을 받은 자를 모르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누구에게라도,  재림 연기의 가능성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미혹된 영혼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더러는 완악한 자가 나오더라도 하나님의 더 크고 풍성하신 경륜이 따로 있다는 것마저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즉 신자는 기도하면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연기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마저 하나님이 다 예정해 놓으신 일로서 당신의 원대하고도 거룩한 계획안에 포함되어 있기에 그 계획 자체는 바꿀 수 없음도 확신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이 원래 계획 해 놓으신 일정에서 연기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 개인의 입장에선 단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도록 전하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만큼의 일정은 얼마든지 연기 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나 신자에게나 오직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안타까운 중심일 뿐입니다.

6/2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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