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공자, 소크라테스의 구원여부는?

조회 수 267 추천 수 0 2014.10.22 20:04:04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의 구원여부는?


[질문]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는 예수님을 몰랐지만 로마서 2;13,14에 의하면 양심에 따라서 심판을 받았을 테니까 천국에 간 것 아닙니까?

[답변]

로마서 2:13,14의 뜻은?


이 질문은 로마서2:13,14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구절을 제대로 해석했다면 이런 질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그 구절은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구원을 설명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14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리라.(15절))”(롬2:13,14)

성경구절 중에 본문처럼 ( )로 묶어 놓은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1) 원어나 도량형이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보충설명, 2) 앞 진술에 대한 추가 설명, 3) 초기의 권위 있는 사본에는 없었으나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이는 구절, 세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본문의 경우는 3번 용도에 해당됩니다.

즉, 소수의 일부 사본에만 있어서 바울 저작이라기보다 그 제자들이 본문의 뜻을 더 명확하게 하려고 보완한 구절입니다. 만약에 보충하고자 하는 의미가 로마서 전체가 말하는 진리와 상충이 된다면 추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후대 학자들도 구태여 그 구절을 삽입할 필요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요컨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원리가 이 구절로 인해 바뀌기는커녕 보충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강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본문에는 구원과 관련된 직접적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먼저 14절은 이방인이 본성으로 유대 율법에 규정된 일을 할 때에는 그 본성이 자기에게 율법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해야 하고 행하지 말아야 할지를 양심이 자기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5절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는 율법이 의와 죄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듯이 율법 없는 자의 양심도 자신의 행위를 선과 악으로 나누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양심이 자기를 정죄(본문에선 ‘송사’로 표현)하고, 의를 행하면  선한 일이라고 인정(본문에선 ‘변명’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선행을 하면 뿌듯함과 기쁨이 생기는 반면에 죄를 범하면 수치심과 죄책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유대인에게 율법이 행하는 기능을 이방인에게는 본인의 양심이 대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양심에 따라서 행한다면 구원해준다는 뜻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요컨대 바울사도는 이 두 구절을 통해 율법이나 양심이나 구원의 통로가 결코 되지 못함은 마찬가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과 양심을 구원과 연결시키면?

유대인의 율법과 이방인의 양심을 구원 문제와 연결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우선 율법의 경우 원칙적으로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다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완벽하게 율법대로 살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첫째 기능은 사람들로 죄를 깨닫게 합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4:15) 또 아무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면 율법은 결국 모든 사람들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로 이끕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이방인의 양심이 유대인의 율법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는 원리는 구원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율법처럼 원칙적으로 이방인이 자신의 양심대로 완벽하게 살 수 있다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봤듯이 로마서 2:15는 분명히 선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양심이 자기를 송사(정죄)한다고 즉, 완벽하게 양심대로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입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한국의 이순신, 세종대왕 그 어떤 위인들도 예외는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아무리 큰 업적을 남겼어도 그 개인의 도덕성에서 하자가 없다고는 절대 보장하지 못합니다.

로마서는 그래서 인간 중에 율법과 양심을 온전히 지키는 자가 아무도 없다고 변증합니다. 율법이든 양심이든 어느 기준으로 따져도 의로운 자는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지금 질문하신 구절의 바로 앞부분을 보십시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2,13)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 율법 없다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율법 있는 유대인도 율법이 있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해야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합니다.

바꿔 말해 유대인이 율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에 유대인이 이방인에 비해 도덕적 영적 우월성을 자랑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과 심판의 기준은 율법과 양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범죄 했는지 아닌지 여부뿐이라는 것입니다.

최초인간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원죄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의 본성에서 자유로울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며”(롬5:12),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게”(롬5:21)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구속을 절실히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율법은 그래서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왜 절실히 필요하며 또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는 이유와 근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 양심의 치명적 결점

아담의 원죄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의 영혼은 타락했습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의로운 인간일지라도 양심 자체가 불완전하기에 선악의 온전한 기준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택하여 완전한 선과 악의 기준으로 당신의 율법을 수여하실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 이전에도 죄는 있었지만 율법으로 죄를 죄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양심에는 근본적으로 선을 추구하고 악은 멀리하려는 성향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닮게 인간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도덕성을 인간에게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 영혼이 타락했어도 창조 시의 하나님의 형상이 순수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양심의 형태로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최대한 양보하여 인간 양심이 하나님의 율법에 버금할 만큼 선을 지향한다고 해도, 민족과 문화에 따라 상대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지역과 종족에선 의로 여기는 행위도 다른 곳에선 오히려 죄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쉬운 예로 서구사회에선 자식이 부모의 이름을 막 불러도 전혀 허물이 아니지만 한국에서 그랬다간 큰 불효로 여기지 않습니까?

양심이 갖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양심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양심 자체가 한 죄인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가 많습니다. 불신자들이 흔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게 산 적이 없으니 하나님 믿을 필요 없다.”고 큰소리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마저 성전에서 이와 비슷한 자랑을 했습니다. 자기는 악행을 하지 않고, 세리처럼 로마에 협조하지도 않고, 금식과 십일조 같은 종교 생활에도 충실하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기는 죄인이오니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눅18:9-14)

바리새인은 자기 양심의 판단만으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긴 것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기는 하나님의 의에 기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죽을 죄인이므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소망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에게 의롭다하심을 베푼다고 즉, 구원을 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자기 양심만으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당할 만큼 자기를 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만과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 양심이 불완전하거나 상대적일 뿐 아니라 양심 자체가 원래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자기가 선하기에 스스로 자기 나름의 양심을 만들었고 또 그에 따라 살기에 자기는 선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수시로 양심대로 살지 못하고 있어 자주 양심의 가책을 느껴도 온전한 회개는 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런 불완전한 양심대로 살아도 천국 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도덕적 성숙도는 둘째 치고, 하나님을 경배 감사하기는커녕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 자도 하나님이 구원을 준다는 불합리한 뜻이 됩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과 아무 관련 없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큰소리친 자가 죽고 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상급을 받겠다고, 아니 받아야만 한다고 덤비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비유하자면 자기 경험으로만 어떤 기술을 터득한 자가 규정에 정해진 기능과 자격을 다 갖추지 못했음에도 국가기관의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인간 양심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또 그 양심으로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음을 실제로 보여준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당시에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의로웠던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가장 지혜로웠던 로마 권력이 합작하여 아무 죄도 없고 오히려 죄인들마저 조건 없이 사랑한 예수님을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사형시켰지 않습니까?  

********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양심은 이방인에게 율법이 유대인에게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또 실제로 100% 완벽하게 양심대로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다 양심 자체가 타락되었고 불완전하며 상대적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도 양심대로 따르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개인적 관계도 없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을 주실 리는 없습니다. 이방인이 양심대로 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원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가 절대 아닙니다.

부처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 이 원리에 대입해 보면 그 구원여부를 이 답변을 읽는 분들께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성경문답 사이트의 비슷한 주제의 아래 글들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3 “이 순신 장군은 죽어서 천국 갔는가? 지옥 갔는가?”, #47  “구약 백성들은 어떻게 구원 받았나요?”)

10/8/2014

 

상기 글에 대해서 만약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절대자 혹은 인간보다 상위적 존재에게 죄 사함을 의탁하는 경우가 있다면 구원이 어떻게 되는지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답변드렸습니다. 

 

*******************

 

성경은 구원은 반드시 성령의 간섭이 있어야만 한다고 선언합니다. 무엇보다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구원의 진리부터 그러합니다.(요3:3) 아브라함의 경우도(그 전에 에녹과 노아도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셨음)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먼저 찾아와서, 처음에는 틀림없이 직통계시였을 것임 그 후로는 성령의 교통으로, 불러내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의 인생이 완전히 전환되어서 그분의 뜻을 따르는, 비록 중간에 몇 번 넘어졌어도, 삶을 평생 동안 살았습니다. 당연히 그는 여호와가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세상 만사는 물론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만의 계획으로 이끌고 계심을 확신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절대자, 혹은 인간보다 상위의 존재를 찾아서 사죄함을 구한다고 해서 구원받는다고 단판단해선 안 됩니다.(우상숭배도 우상 신에 의한 죄 사함의 절차는 있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여서 그 삶과 인생 전체를 당신께서 거룩하게 인도해주어야 구원 받은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누가 그런 은혜를 누렸는 지는(이스라엘 밖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로마서 1-3장에 따르면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종들이 따라나와서 사병 군대로 가나안 연합 전쟁에 참여했고, 다니엘의 영향을 받은 동방박사 혹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그곳의 또 다른 인물들, 나아가 에스더와 모르드개로 인해 여호와를 알게 된 인물들이 아브라함 같은 신앙을 가졌을 수도 있으리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을 따라 나온 이방 족속들도 있었고 율법도 그들 가운데 우거하는 이방족속을 절기와 제사에 참여하길 원하면 동일하게 대우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누구를 택해 구원을 주실 지는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만의 소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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