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자유는 없다

조회 수 2761 추천 수 352 2005.05.11 05:22:12
며칠 전 어떤 분이 세 살 백이 막내 아들을 일주일간 유치원을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일주일에 150불이나 되는 수업료를 선불로 지불해 놓았는데도 말이다. 사연인즉 너무 말을 안 듣고 부화를 돋구어 구두 숟갈로 몇 대 때렸더니 시퍼런 멍 자국이 몸에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려서 유치원 선생이 대소변을 보여 줄 때에 들키면 큰 일 나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둘째 아들이 중학교 시절에 키가 갑자기 크느라 등에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성장 흔적이 생겼다. 한 번은 건강 진단을 받으려 병원을 갔더니 의사가 아버지는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청소년 때라 혹시 담배, 알코올, 마약 심지어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는가 알아 보기 위해서였다. 또 등에 있는 그 흔적이 마치 채찍이나 허리 끈으로 맞은 것 같아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는지도 물어 본 것이다.

어떤 중년의 한국교포 남자가 심장 쇼크가 와서 진찰을 받아 보니 당장 입원해 수술하지 않으면 큰 일 날 참이었다. 그러나 불법체류에 의료 보험도 없어 도저히 입원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는 딱한 사정을 들은 의사가 어쨌든 빨리 종합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이 병원에 왔다 갔다는 소리는 절대로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미국에선 아이가 학대 당한 사실을 누구라도 발견하게 되면 신고하지 않는 자가 법에 걸리게 되어 있다. 심지어 어떤 주에선 길거리 지나다 남이 강도 당하는 것 같은 어려운 형편에 처한 것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가면 그 사람이 벌을 받게 되어 있다. 또 운전석 옆 앞 자리에 앉힌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자 그 부모가 살인 방조로 잡혀 들어갔다. 주마다 조금씩 세부 규정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세 살 미만의 아이는 뒷 좌석에 카시트로 고정시켜야 하고 국민학생들도 반드시 뒷 좌석에 앉혀야 한다.

특별히 환자가 생명이 위험한 줄 알고도 그냥 집으로 돌려 보낸 의사는 면허도 취소되고 살인 방조죄로 잡혀 들어간다. 인간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회라서 그렇다. 지금 지율 스님이 단식 근 백일째로 생명이 위독하다고 한다. 당장에 강제로라도  무조건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 노동쟁의 현장에서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 자살하려 들면 경찰을 동원해서도 막으면서 왜 이번에는 가만히 있는가? 미국 같으면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잡혀 들어갈 참이다.

지금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논할 계제가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노동쟁의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고 난 후에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논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또 노도쟁의 때는 정치적으로 골치 아프니까 말리고 이번에는 역으로 예민한 종교 문제라 손을 놓고 있다면 사람의 생명을 두고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한 것 밖에 안 된다. 한국 사회와 전국민 전체가 살인방조죄 아니  간접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천성산의 환경보호 여부와 정치적 이해 관계 같은 것들은 나중에 따져도 된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죽어 가는데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는가? 자기 자식이나 부모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사람이 모든 자유를 누려도 단 한 가지 자유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을 자유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한 것이므로 자유를 없애려는 시도 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나아가 어떤 이유였건 간에 같은 인간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자유는 짐승이라면 몰라도 인간에겐 더더욱 없다.

경제적으로 잘 먹고 잘 산다고 사회가 성숙된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모든 제도와 법령이 보장되고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선진국이다. 정치인들 종교인들이 위로한다고 방문해서 생색이나 내려 들지 말고 지금 당장 앰블런스와 119 구조대를 불러라. 그리고 정치인들은 정쟁에 허송세월 하지 말고 이 참에 남이 죽어 가는 것을 외면하는 자를 벌주는 법부터 만들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족(蛇足): 다행스럽게도 이 글을 쓴지 하루 만에 지율 스님이 단식을 그만 두었다. "스님 단식 그만 둔 것 정말 잘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자연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자연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함부로 훼손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구 상에 인간이 단 한 명도 없다고 가정하면 그 지구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지구보다 더 고귀한 존재이기에 그래서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데 우리 모두 서로 양보해가며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남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체 하는 자를 벌 주는 법은 언제나 만들어질 것인지....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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