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예찬

조회 수 186 추천 수 0 2016.09.12 09:08:23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얼음이 있을 뿐이다. 

 

중략 

 

“보라, 청춘을 !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讚美)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管絃樂)이며, 미묘(微妙)한 교향악(交響樂)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다.” 

 

 

민태원의 유명한 수필, 청춘예찬의 일부분이다. 이 문인(文人)에 의하면 이제 “시들어 가는 노년”에 접어 든 내 심장은 더 이상 물방아처럼 고동치지 않고 내 피는 끓지 않는다. 몸은 쇠약해졌으며 피부는 탄력을 잃었고 야망도 욕망도 사그러졌기에 내 눈은 더 이상 이글거리며 타오르지도 않는다. 웅대한 관현악 같고 미묘한 교향악 같고 뼈 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와 같은 생의 찬미도 내 귀엔 이젠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청춘이란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 가슴은 여전히 설렌다. 그러니 청준을 볼 때면, 그 강건한 몸과 생생한 피부와 타오르는 눈동자를 직접 볼 때엔 어떻겠는가! 하지만… 그렇다, 이젠 그 설렘에는 반드시 아릿한 비애와 아픔이 따른다. 내가 돌아갈 수 없는, 알 수 없는 시간의 영역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때론 눈시울이 젖기도 한다. 고 김광석이 불러 유명해진 “서른 즈음에”에서 이 곡의 작사작곡가인 당시 삼십대 중반의 강승원이그렇게 읊조렸듯이,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니요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하여 그때로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지금 돌아보면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짓을 그대로 반복할 것이고, 아무리 그 “황금 시대를 영원히 붙잡아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노년의 나이로 돌아와 그때를 그리워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노래가 끝나고 내가 회상에서 깨어나고 눈시울의 물기가 마르고 설레던 가슴이 진정된 후에는, 더 이상 내가 철없고 속좁고 참을성 없고 그래서 실수 많던 그 시절에 붙잡혀 있지 않고, 살아 온 세월만큼의 깊이와 여유를 지닌 노년에 와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이 들어 좋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조금 더 젊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이와 함께 잃은 것들만—꿈, 근육, 체력, 정력, 정열, 시간, 기회 등등—헤아렸었는데, 지금은 나이와 함께 얻은 것들을—지혜, 인내, 관용, 아량, 사랑, 여유, 깊이, 이해심 등등—헤아려 보게 된다. 그날 번 돈을 헤아리는 재미와 기쁨이 큰 것처럼 이것은 내게 큰 기쁨과 재미를 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 청춘의 때는 그리 자랑스럽지 못하다. 내 스무살 청춘의 한창 때에 지금의 내 나이의 어느 노인이 (그땐 그 나이가 정말 “노인”이었다) 자신의 지난 삶을 후회많은 삶이라 자평하는 말을 들으며, 난 결단코 저 나이에 내 지난 삶을 후회하진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되돌아 보면 여기 저기에 후회되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날더러 청춘의 때로 되돌아 가게 해 주랴 물으시면, 아니라고 정중히 거절할 참이다. 

 

2016.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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