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1:6)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아는가?

조회 수 912 추천 수 47 2009.12.16 15: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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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아는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1:6)


성경을 읽다보면 때로는 너무나 풍성한 의미를 지닌 단어나 구절이 의외의 곳에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묵상하며 자세히 읽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음은 당연히 성령님이 성도와 함께 하셔서 깨우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깨우침의 내용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과 연관된 것입니다. 현실적 처세술이나 도덕적 종교적 훈계 정도라면 성령의 깨우침이 아니라 인간적 판단일 뿐입니다. 성령님은 성도와 세상에게 그리스도를 온전히 그리스도답게 드러내는 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인사말에서 교인들이 가진 소망을 칭찬하는 중입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생긴 소망입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어디에 있던 것이라고 합니까?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럼 사실상 누가 가졌던 어떤 소망입니까? 하나님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어 구원시켜야겠다는 소망입니다. 또 “쌓아둔” 것이니까 오래 전부터 당신께서 열망하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시종일관은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복음을 믿어서, 말하자면 자신의 의지적 결단과 헌신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복음을 듣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동시에 성령이 간섭하여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야만 됩니다. 그 깨달음에 대한 인간 내면의 반응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복음이 너희에게 먼저 이르렀고, 또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너희 쪽에서 복음을 찾거나 깨달아 믿기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이뤄지기에 참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하늘에 이미 쌓아둔 소망이라면 구원은 태초부터 계획해 놓으신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사후약방문 격으로 어쩔 수 없이 급조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예수라는 위대한 선지자의 놀라운 사역과 십자가 죽음을 보고 사후에 부활시키고 메시야로 인정해 준 것이 아닙니다. 또 최초 인간 아담이 당신의 계획과는 달리 타락하는 바람에 인류를 다 죽일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동원된 대체 방안도 아닌 것입니다.  

요컨대 한 잃어버린 영혼의 구원은 인간보다 하나님이 더 열렬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잃어버린 영혼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 사실은 관심도 없었습니다. 사단에 미혹되어 흑암의 노예가 되어 죄를 탐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 상태에서 그분을 외면, 부인, 심지어 저주하고 있었는데 어찌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땅에 쌓아둔 구원에 대한 소망은 인류에겐 어차피 없었습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에 그러합니다. 혹시라도 겉모습만으로는 구원과 비슷해 보이는 아류들이 지상 종교에 있었다 해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세상의 더 확실한 주인이 되는 방안을 강구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그 열망이 때가 차매 성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실체를 완전히 드러냈습니다.  죄인들로만 가득 차 어두웠던 이 땅에 찬연한 빛을 드러내며 천국이 침노한 것입니다. 당신의 소망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결실을 맺었고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소망이 이 땅에 실현된 것이 복음이라면 복음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그분의 은혜와 권능이 수반되게 마련입니다. 사단에 아무리 강력하게 묶여 있는 흉악한 죄인이라도 얼마든지 그 결박을 단숨에 깨트리며 구원해 낼 수 있습니다. 또 일단 구원한 자를 당신께서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깎으시고 다듬을 것입니다. 토기장이이신 그분이 당신 뜻과 계획에 맞는 토기로 반드시 빚어 만드실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복음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타났다고 바울이 칭찬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6절) 먼저 “너희 중에서와” 즉, 성도들 간에 참사랑으로 섬기는 온전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또 “온 천하에서도” 즉, 그 공동체를 보는 모든 이웃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어제까지 죄 가운에 빠져 있던 사람도 은혜를 깨닫기만 하면 바로 이 서신을 쓴 바울처럼 그날로 거룩한 열매를 맺어 온 천하에 널리 퍼트리며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비진리나 거짓은 하루아침에 정반대의, 그것도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설령 열매 같은 것이 맺혀도 썩어질 거짓일 뿐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성령의 외적 은사가 강력하게 역사해야만 복음의 열매가 맺힐 것이라고 미리부터 주저 염려하실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놀랍고도 위대한 권능을 강조하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마치 성령의 외적 은사를 받은 자만이, 아무리 그 은사를 강조한다고 해도,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 되어버리니까 말입니다.

대신에 복음이 하나님이 하늘에 오랫동안 쌓아둔 “그분의 소망”이라면 이 땅에서 못 이룰 열매가 과연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깨달아지는 참 복음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성령의 권능은 충만하게 함께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얼마든지 우리 중에서와 온 천하에 복음의 열매를 맺고 자라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말입니다. 열매 맺는 일이 바로 구원 받은 첫날부터라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성경공부하고 기도모임에 참석하고 제자훈련을 받아야, 심지어 성령 은사 받는 연습(?)을 해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구원 첫날부터 그렇다면 이 또한 인간의 실력과 자질로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이 신자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지 않습니까?    

다른 모든 종교와 달리 구원 첫날부터 열매를 맺는 일이 가능한 이유 또한 복음은 하늘에 쌓아둔 하나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큰 권능이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뿐 아니라 그분의 소망이기에 인간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으로 가져야만 할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영원한 소망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복음 없이는 썩어 없어질 존재로 끝날 뿐입니다. 복음만이 죄인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여 참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합니다.  

참 복음 안에 들어온 자는 자연히 그 온전한 복음의 생명력으로 인해 자라고 열매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가 가만히 있어도 성령이 다 알아서 열매 맺게 해준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복음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깨달아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그 은혜를 허물려고 한 시도 놓치지 않고 훼방을 합니다. 예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바로 사단과 손잡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복음은 하늘에 쌓아둔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는 날부터 열매를 온 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놀라운 권능이 함께 합니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그 소망이 결실된 열매이며 구원 받은 날부터 영원토록 그분의 은혜와 권능 속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 속에서 결코 내침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양이면 예수님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 이 세상에서 문제될 것이라곤 신자에겐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또한 소망을 오직 하늘에만 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2/1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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