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1:5-7) 자화자찬이 너무 심한(?) 바울

조회 수 770 추천 수 38 2010.03.03 0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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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이 너무 심한(?) 바울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살전1:5-7)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의 서두에서 안부를 전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예수님과 자신을, 정확히는 사도들을, 거의 동격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 우리와 주를 본 받은 자가”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교인들이 본받을 모델로 자신과 주님을 함께 들었습니다. 심지어 자화자찬이 지나치다 못해 우리를 주님에 앞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말을 너무 쉽게 한 것 아닙니까?

마케팅 전문가에 따르면 가장 효과적인 광고 수단은 친구나 친지에게 제품을 소개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소 믿을 만하다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주어야만 그런 사이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 유명 가정용품 회사는 연결자(connector)로 불리는 75만 명을 별도로 관리하며 활인 쿠폰과 신제품 샘플을 수시로 보낸다고 합니다. 본인에게 혜택도 주면서 주위 친구나 친지에게 나눠주며 소개하라는 취지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경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3,14) 주의 이름을 부르려면 믿어야 하고, 믿으려면 알아야 하고, 알려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반드시 전파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파가 단순히 말로 교리를 전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전한 내용이 진리인지 온전한 증험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예의 연결자는 신제품의 샘플을 직접 써보고 그 효용성을 체험한 후라야 다른 이에게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해선 아무리 친구나 친지 사이라도, 비록 다른 사람에 비해 신뢰성은 있지만, 온전한 확신을 주기 힘듭니다. 신제품을 구매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하니까 더더욱 그렇습니다.  

바울도 지금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능력과 성령으로 전파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 이적을 보였다는 것입니까? 성령의 외적 은사를 보임으로써 그 전하는 진리에 신뢰성을 더 보태었다는 뜻입니까? 물론 바울의 사역에 그런 이적과 은사는 수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바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 받은 자가 되었으니”라는 서술에 주목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성령의 간섭으로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거듭나게 되었고 또 그래서 어떤 환난도 견디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모습으로 주님과 바울이 이미 본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본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바울도 오직 천국을 소망하며 살았기에 현실의 어떤 환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의 본을 받은 믿음이 마게도냐와 아가야까지 소문이 날 정도가 될 만했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그들이 우상을 버리는 본을 보였다고 칭찬합니다.(9절)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우상을 버렸는데 환난을 당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너희 믿는 예수가 그 우상보다 능력이 약하다고 비난 내지 조롱할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진짜를 만났기에 가짜에 대한 미련은 추호도 남지 않았고 아직도 가짜에 속고 있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서도 아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고 또 그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갖고 있던 신앙을, 비록 헛것이었다 해도, 버리고 새 신앙으로 바꾸려면 당장 큰 손해와 부담이 따르리라 여길 것입니다. 정말 진짜 중의 진짜라는 확신이 심겨지지 않고서는 여간해선 그럴 수 없습니다. 결국 복음 전파의 핵심은 상대로 예수님이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임을 확신시키는 것인데 전하는 자부터 그 확신을 갖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율법과 성전제사를 준수하는 신앙만이 진짜고 나사렛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단 중의 이단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 앞에 완전히 항복한 후에는 누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인지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당연히 가짜를 버리고 진짜로 열렬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제품 샘플을 써보고 진짜 효능이 좋다면 회사가 구태여 권유하지 않아도, 심지어 응분의 보상을 해주지 않아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친구와 친지에게 자랑할 것 아닙니까? 신자도 바로 그런 진짜 복음의 연결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참 복음 안에서 직접 살아본 체험에 바탕을 두고서 말입니다. 세계 최고의 진품을 소개하는 자라면 아무리 그 칭찬이 과해도 과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칭찬이 분명한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소개하는 데에 어떤 과찬이라도 과찬에 속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자기의 사도됨을 내세우려 자신과 주님을 같은 선상에서 예를 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환난을 감당하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에만 초점을 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노력, 자질, 능력으로 환난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간섭에 의해서 복음을 확신한 까닭이었습니다. 주님과 자신을 동격의 역할모델로 세운 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만 자랑한 것입니다.    

그는 살아계신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자신과 함께 함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환난을 당해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가르쳤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본을 보였기에 복음이 참 복음으로 교인들에게 받아들여졌고 교인들 또한 그런 본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엄연한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고 그대로 실천했는데 누가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바울의 본을 보고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았더라도, 교인들도 살아계신 예수님의 권능과 은혜를 직접 경험했는데 어찌 바울의 본대로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컨대 신자는, 특별히 사역자는 바울처럼 다른 교인들에게 나와 주님의 본을 받으라고 큰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과장이 섞인 큰소리나 종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남들 앞에 설명하라는 것입니다. 능력과 성령으로 종교적 큰 업적을 성취해 보이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환난과 핍박 가운데도 소망을 잃지 않고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며 복음대로 살고 있는 본을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과연 예의 연결자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형통과 안위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실제로 체험하는 그대로 남에게 전파해 주고 있습니까? 이를테면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다른 말로 우상을 버려도 아무런 손해와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쉽게 말해 세상 방식대로 살지 않아 온갖 불이익과 환난을 당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대신에 오히려 주님만 따르는 기쁨과 능력이 훨씬 크고 좋다고 확신하는가 말입니다.

혹시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은혜를 자신부터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또 그 이유는 자신부터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 연결은 되어 있지만 그 연결 통로에 뭔가 불순물이 끼여 있기 때문입니다.  

3/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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