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3:14,15) 신자가 정작 행해야 할 일은?

조회 수 557 추천 수 20 2011.07.19 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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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정작 행해야 할 일은?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3:14,15)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나면서 앉은뱅이를 은과 금을 주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은 자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했고, 그 모습을 본 유대인들은 그가 어떤 자였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랬습니다. 신자는 자신이 믿음으로 고난에서 구원 받은 그 권능과 은혜를 주위 사람으로 확실히 보게 해서 심히 기이히 여기게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불신자들은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 앞에 결코 쉽게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 원인은 여럿입니다. 우연의 일치로 일어났다고 여기거나, 다른 종교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고 지나치거나, 아니면 여전히 자기와 무관한 남의 일일뿐이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절실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이 위급한 일에 빠졌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해 구출 되는 체험을 해야만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람은 화장실에 갈 때와 갔다 올 때의 생각이 달라지는 존재입니다. 얼마든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히6:4,5)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기적을 기이히 여기는 자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마디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날 전도할 때 흔히 하듯이 아무 자격 공적 없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운을 떼었는데 그 내용이 실은 아주 심각합니다. 전도하려다 오히려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더러 전혀 무죄하고 오직 선한 일만 행했던 자를 죽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모두가 살인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자랑하고 문자적으로 지키려했던 율법으로만 따져도 마땅히 사형감입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 빌라도 총독마저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그 앞에서 부인"(13절)하기까지 했습니다. 모함하고 위계하여 재판을 굽게 만든 죄까지 지었습니다. 단순히 법질서를 어긴 정도가 아니라. 예수를  무조건 죽이고야 말겠다고 떼거지로 덤벼든 것입니다. 도무지 구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사도는 그들이 그와 똑 같은 죄를 거푸 지었다고 말합니다.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였습니다. 살인자가 살아날 길은 도피성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고의성이 전혀 없이 실수로 죽인 것이 확증될 때에 한해서입니다. 바라바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법으로도, 사실은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한 법으로 유명함, 사형 받아 당연했습니다. 살인자를 살려준 것은 간접적으로 그 살인에 참예했기에 또 다른 살인죄를 저지른 셈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빌라도마저 유대인들의 요구가 양심은 물론 상식 밖임을 확신하기에 재고해보라는, 내용적으로는 그 죄를 회개하라는 뜻의, 제안마저 거부하면서 말입니다.

간단하게 살펴보았지만 골고다 십자가 사건 하나에만도 그들의 죄는 너무나 크고 많으며 복잡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성경 진술(렘17:9)의 증거로도 이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지금은 유대 땅의 최대 스캔들이었던 골고다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지 꽤 지났습니다. 그날 밤 빌라도 법정에서 왜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정신없이 소리쳤던지 그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에 콩깍지가 덮여 앞뒤를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는 때늦은 후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로마제국에 반기를 들려 시도한 적도 없었고, 유대 사회에선 바리새 율법과 전통을 조금 위반한 정도였지만 크게 문제 삼을 만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이런 저런 혜택을 베풀었고, 나아가 많은 이들이 예수로 인해 육신은 물론 그 심령까지 깨끗해지는 은혜를 받았기에 말입니다. .  

사도는 그 예수가 바로 그들 조상의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신 메시야였다고 선언합니다. 골고다는 단순히 온전한 의인은 죽이고 온전한 죄인을 살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을 죽였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칭인 여호와도 바로 부르지 못해 아도나이로 바꿔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만약 예수가 정말로 여호와의 독생자라면 자기들이 한 짓이 얼마나 엄청난 잘못인지 깨닫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예수 죽인 죄목이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그분 이름을 모욕한 정도를 넘어 바로 그분을 죽인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는 부활 승천하여 지금 이 땅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을 통해 나면서 앉은뱅이를 한마디 말로, 실은 단지 그리스도라는 이름만 인용했는데도, 완전히 낮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음을 자기들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앉은뱅이를 낫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정도는 상식으로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여! 예수가 메시아라면 그분을 죽인 저는 영영히 주께 저주 받아야 합니까? 솔직히 십자가 다음 날 아침에 깨니까 왜 전날 밤에 그렇게 광분해서 설쳤는지 저도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여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두렵고 떨림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려는 바로 그 순간 베드로의 설교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렇게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17,19절)라고 이어졌습니다. 너희가 사탄의 음흉한 거짓에 잠시 놀아났던 일은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이젠 주 예수만 믿으면 그 두렵고 부끄러운 심령이 유쾌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이 설교를 접한 청중 중에 끝까지 예수에 대한 반감을 가진 자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의 현장에선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는 법입니다. 이 날에 자신이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한 자들이 약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진정으로 예수께 항복해 구원 얻거나, 완악하게 예수를 거부하여 멸망으로 치닫는 자 둘로 확연히 갈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가 제대로 전해지면 바울이 말한 대로(고후2:14-16) 상대는 반드시 생명과 사망 둘 중의 하나의 냄새를 맡게 됩니다. 영적으로 크게 찔림을 받거나 역으로 하나님에 대한 큰 반발이 생깁니다. 예수를 진정한 구주로 받아들이거나, 더 미워하게 되는 두 가지 반응뿐입니다. 그 중간 회색적 반응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정말 모든 이를 영원한 생명과 죽음으로 나누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갈림길입니다.  

만약에 이방인인 빌라도마저 예수를 살려 주려 하지 않았다면, 바라바가 그분 대신에 살아나지 않았다면, 베드로가 지금 이 앉은뱅이를 그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지 않았거나 못했다면, 나아가 구약 성경이 이미 예수님과 연관해서 다 그렇게 되리라고 예언을 하지 않았다면,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단순히 유대인들이 어쩌다 저지른 한 번의 잘못으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또 그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고서 다음부턴 그러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반면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 주변에 전개되어진 모든 상황과 사건들을 보십시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데 너무나 충분하고 완전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정체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습니다. 그분이 행하신 사역의 결과 또한 너무나 엄청나고 풍성한 은혜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려 십자가에 직접 죽으셨던 것입니다.  

우선 골고다 현장에서만 죽어 마땅한 바라바는 살리고 당신께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완벽한 섭리 안에서 유대인들의 잘못이 오히려 그분의 정체성을 입증했습니다. 또 이미 살펴본 대로 엄청난 죄를 저지른 모든 유대인들을 용서해달라고 성부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죄인을 구속하는 당신의 공의와 사랑이 사람들 눈에 명확히 보이도록 이미 골고다에서 다 드러내셨습니다. 구태여 로마서 같은 서신서가 필요 없이 조금만 따져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당시는 아무도 복음의 비밀을 몰랐고 뿔뿔이 흩어져 죄 많은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 가버렸습니다.

주님으로선 당신을 죽였던 죄인들의 꽉 막힌 영적안목(靈眼)을 성령의 간섭으로 열어주어야 했습니다. 사도를 통해 생명의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틀림없이 이 날 회개한 오천 명의 유대인들은 성령의 신비하고도 따스한 힘이 자신들을 감싸고 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고, 자기들이 그분에게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잘못을 "몰라서 한 짓이니 내가 다 용서한다."는 내면으로부터 주님의 미세한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분이 메시야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평강과 자유와 기쁨이 심령 가득히 채워졌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죽어 마땅한 자들이 오히려 그분으로부터 세상이 감당치 못할 새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 성전에서 앉은뱅이의 기적적 치유를 바라본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실은 바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면서 앉은뱅이요, 장님이었습니다.  골고다 현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십자가에 달려 있었거나, 그 아래에 있었다 해도 예수를 못 박으라고 소리쳤을 자들입니다. 솔직히 예수를 까닭 없이 얼마나 미워했습니까? 그분을 거부, 배반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가 밥 먹여 주나?"라고 저주했던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은 태초부터 택하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시어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신자가 세상 앞에 꼭 해야 할 일은 바로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입니다. 이웃들로 단지 기도 응답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이히 여기게 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분의 이름으로 새 생명 가운데서 실제로 풍성하고도 아름답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부터 예수님의 죽음 앞에선 정말 죽어 마땅한 자였지만 그분의 부활로 인해서 살아 마땅한 자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내 삶을 남들이 봤을 때 죽었다 되살아나지 않으면 저런 정반대의 변화가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여기게끔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죽었다 깨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 믿는 자들의 삶 같이 살고 싶다는 찔림과 도전을 주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 안에 있다면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답다는 측면에서 세상이 전혀 감당 못할 참 생명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7/1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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