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26:16-21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조회 수 647 추천 수 60 2009.09.11 04:51:34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  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대하26:16-21)


유다 왕 웃시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장 대신에 분향하려 하다가 여호와께 벌을 받은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현대인으로선, 또 종교 개혁이후의 만인 제사장직을 인정하는 신약 이후의 신자들로선 언뜻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또 왕이 그렇게 하나님에게 열심을 갖고 스스로 분향하려 한 것을 두고 평생 문둥병으로 지나게 하다니 벌을 주어도 너무 심하게 주었다 싶습니다.

구약의 엄격한 제사장 제도와 세세한 율법의 규정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신자라면 율법을 자구 하나하나까지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것은 지키고 어느 것은 안 지켜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또 다 지키되 어느 것은 더 중요하게 어느 것은 덜 중요하게 지켜서도 안 됩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스스로 판단하는 교만한 자리에 서선 안 됩니다.

또 신자가 아무리 선한 목적과 동기를 가졌더라도 신자가 그 일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하나님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만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온갖 상처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해 나가는 그 인격적 관계를 하나님은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해가 안 되는 명령이라도 일점일획도 빠트리지 말고 그대로 따르라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도 인간적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지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당신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을 그토록 세세하게 규정해서 정확하게 지키도록 하여 현실에서도 무슨 일을 만나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훈련을 미리 쌓게 하는 것입니다.

또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구약시대에 비록 이스라엘에 왕을 허용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국가였습니다. 국가적 중요사가 생길 때마다 대제사장을 통해 당신의 뜻을 물어야 했고 또 왕도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대제사장의 추궁을 받아야 하고 율법대로 왕을 통제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허용했습니다.

왕이 하나님께 분향하려 했던,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지나쳤던 별 것 아닌 잘못과  평생 문둥병이라는 징벌을 단순 대비해서 하나님이 너무한 것 아닌가라고 의아해 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전쟁을 눈앞에 두고 여호와께 제사는 지내야 하는데 늦장 부린 사무엘 대신 제사를 지냈던 사울에게서 왕위를 뺏어 다윗에게 준 벌은 더 심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그것도 신자의 생명이 달려 있는 진리임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안 지키면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 안에 있을 때에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또 그 생명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안 지켜 벌 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유익이자 축복이기에 기꺼이 지켜서 그 은혜를 율법대로 온전하게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웃시야의 경우에는 단순히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지나쳤던 것만이 아닙니다. 사방 대적을 물리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자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한”(16절) 것입니다. 혹시 때때로 성전에서 제사 지냈던 다윗과 솔로몬같이 위대한 왕들의 반열에 자기도 함께 서고 싶었던 욕심이 발동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두 왕은 기도나 희생제 같이 대제사장의 직분이 아닌 일만 했지 명시적으로 아론 반차의 대제사장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 적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그는 대제사장의 역할까지 겸임하는 인근의 왕들처럼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분향하려 하다가 제사장에게 노를 발했습니다. 제사장은 아마도 이미 향로를 집어 든 왕에게 이왕에 잡은 것 율법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옆에서 충고해 주었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향로를 놓으시라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런 제사장들에게 “감히 왕에게 왠 잔소리냐?”고 화를 낸 것입니다. 자기를 통제하는 자가 아무도 없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벌을 보면 그의 탐욕을 알 수 있습니다. 문둥병이라는 징벌을 대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나게 해서 단순히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직을 침범한 것만 깨우쳐 준 것이 아닙니다.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국민을 치리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성전과 왕궁 두 곳에서 다 멀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권과 신권 둘 다 거머쥐려 했던 그의 심중을 하나님은 정확히 꿰뚫어보시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각기 내리셨습니다.

웃시야로선 오히려 둘 다 완전히 놓쳐버린 셈입니다. 뒤늦게나마 제사장 말을 들었더라면 왕권은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때 늦은 회개란 없습니다. 언제든 잘못을 깨닫는 즉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원칙은 너무나 정확합니다. 정확하게 심은 대로 거두게 합니다. 율법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상하거나 징벌하게 한 대로이며 또 그 벌이 절대 엄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가 관영할 때까지 참으시기는 하지만 일단 벌을 주시면 추호도 지체, 양보, 타협, 호도, 절충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세밀하고 정확하고 엄중하고 공평하며 신속하게 벌을 줍니다. 당신이 얼마나 엄위(嚴威)하신 분인지 분명하게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두렵고 떨리는 경외감과 겸비함으로 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겁을 주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뜻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벌을 주시되 반드시 그 잘못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벌을 주셔서 자신의 잘못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가 입술로 세밀하게 회개의 고백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징벌 원칙이 과도한 손해 배상 청구를 막을 뿐 아니라, A라는 잘못에는 a의 벌을  B라는 범죄에는  b라는 심판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죄를 범하면 반드시 그 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상태로 돌려놓고 나아가 더 나아지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지은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신자의 진심에 바탕을 둔 구체적 회개가 따르지 않으면 더욱 거룩한 자리로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벌을 받고 보면 최소한 ‘이’와 ‘눈’에 관한 죄는 다시는 범하지 않게 됩니다. 나아가 그런 하나님의 심판의 원칙, 아니 그 속에 담긴 풍부한 축복을 알아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와 비슷한 범죄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한 치의 어김없이 살아야 합니다. 한 치라도 어기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인내가 차고 또 당신이 판단하셔서 벌을 주어야 할 때다 싶으면, 반드시 한 치 이상의 징계가 따릅니다. 얼마나 공평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까?  

5/1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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