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4:1-4 교회분쟁의 온전한 해결책

조회 수 519 추천 수 20 2009.09.19 20:04:31
교회분쟁의 온전한 해결책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1-4)


바울은 분쟁에 빠진 고린도 교인들에게 오직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 충성해야 한다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던 괘념치 않은 까닭도 오직 주께 충성하였고 그 최종 판단을 주님이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컨대 모든 성도가 궁극적 심판자이신 주님께 충성하면 분쟁은 자연히 없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역으로 분쟁이 생기고 잘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바울처럼 주께 충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인이 바울처럼 열심히 헌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갓 믿은 신자도 많고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할 여러 사정이 있는데 모두 그렇게 하라는 것은 무리한, 어쩌면 잘못된, 요구이지 않습니까? 물론 당장 전도나 봉사에 나서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의 자세를 가지라는 원론적 요구겠지만 사실 그것마저 현실적으로는 어차피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럼 교회 분쟁에 대해 교회나 성도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적 권면이 불완전할 리는 없고 또 실현 불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현대 교회들도 일단 새 교인이 등록하면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변화시켜 충성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합니다. 소정의 교육을 거쳐 교회 직분을 맡깁니다. 또 교회 봉사는 잘하는데 삶의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심령에 견고한 진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 내적치유를 통해 그 원인을 제거하려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대교회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프로그램이 많은데도 당시 같은 부흥은커녕 교회 안의 분쟁마저 여전히 끊일 사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성경이 말하는 충성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군 대신에 교회의 일군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나아가 교회일군이 자칫 담임 목사에 충성하는 일군으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서두에 고린도 교인들더러 자신이나, 베드로나, 아볼로 말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해라고 확실히 밝혔지 않습니까?  

물론 처음부터 목사가 의도적으로 또 노골적으로 자기에게 충성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목사 자신이 교회에 충성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로 착각하는데다 교회 운영에 담임 목사가 거의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또 교인들이 선한 의도로 목사에게 충성 단합하여 교회에 아무 문제없고 성장이라도 하기 시작하면 아예 그렇게 하는 것이 목사나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께 크게 충성하는 것인 양 굳어져버립니다.

간혹 초기에는 순수한 동기로 가르치고 양육한 목사도 교회가 부흥하면 자신의 프로그램과 운영방식이 아주 훌륭하며 온전한 방식이라고 판단하기에 결과적으로 목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로 간주되어집니다. 반대로 그런 목사에게 조금이라도 불충하면 하나님께도 당연히 불충이 됩니다. 결국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든 교회의 머리가 예수가 아니고 담임목사가 되면 교회는 반드시 언젠가는 분쟁이 발생하거나 끊어질 리 없습니다.

그럼 예수가 머리가 된다는 구체적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꾸 아주 신령하게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슨 일에든 모든 성도가 기도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하나로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는 너무 어리석다 못해 웃기는 생각 아닙니까? 예컨대 교회의 여유 재정을 선교에 쓸지 건물 신축을 할지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로 합치 되지 않으며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히려 기도했기에 서로 자신들 계획이 하나님 뜻이라고 우기다 분쟁으로 치닫고 그 해결책마저 자기들 주장이 옳다고 하니 분쟁만 덧나지 않습니까?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서 충성해야 할 내용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합니다. 그럼 또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신령하게 기도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어서 그 비밀을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충성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럼 분쟁 당사자들 모두가 기도해봤더니 하나님 일이라고 주장하는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 셈입니까?

바울이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책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자기에게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어떤 이야기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교회 안에서 가장 신령하고 똑똑하고 의롭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아무리 도덕적, 종교적, 영적 양심에 찔릴 것 하나 없을 정도로 정말 성실히 예수께 충성했지만 그것만으로 절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로소 작금 교회 분쟁의 당사자들이 취하고 있는 대책이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명료하게 밝혀졌습니다. 대개는 자기들이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여 교회가 부흥하는 방향으로 결정 내린 것은 하나님께 영광 되는 일이며 그 최종적 판단도, 다른 말로 자기들이 옳다는 것은, 주님께서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로 기도해서 결정한 선교나 교회신축 양 쪽 다 하나님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 바울은 완전 반대입니다. 자기가 옳아도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조건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에선 교회 안의 어느 누구가 언제 무슨 일을 하든, 당연히 담임 목사를 포함해,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무리 선교나 교회신축 같이 복음이 확장되는 일을 하더라도 성도 간에 분쟁하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완전히 위배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음 전파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께만 충성한다는 뜻은 오직 십자가 복음 안에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믿었으니 신자답게 거룩해지고 주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까? 물론 맞습니다. 그보다 더 본질은 평생토록 복음의 근본 출발부터 절대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는 절대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게 잘못이 없다 해도, 아니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해도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남들이 내게 어떤 판단을 내리든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추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제야말로 교회에서 서로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하다가 분쟁에 빠지고 해결이 안 되는 더 확실한 이유가 나왔습니다. 남들이 내게 이상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그저 억울하고 분해서 못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다 누가 뭐래도 나는 아주 잘 믿고 있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올바른 신자이기에 주님이 내 편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다는 의미는 십자가 복음 안에서 정말로 모든 사람을 불쌍하다고 절실히 여기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인이 되었으니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 일을 하자 없이 열심히 하고 있어도 본인부터 죄인 중의 가장 큰 괴수요 더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철두철미 인식한 바탕에서 남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은 십자가 위에서 철저하게 부서져 있는 것이야말로 충성의 본질입니다. 또 성도들이 다 그렇게 바뀌는 것이 예수를 교회 머리로 모시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는 정말 바뀌어져야 합니다. 가장 먼저 담임 목사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어쩌면 목사의 믿음부터, 교회운영 방식보다는, 새롭게 바꿔야할지 모릅니다. 아무리 인격적으로 하자가 없고 영성이 풍부하며 설교 말씀이 좋아 교회가 부흥했다 해도, 그렇지 않은 목사는 더더욱, 여전히 그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다는 진실 된 고백이 평생토록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자신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대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야 하며 그런 비방을 한 자를 더 불쌍히 여겨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런 자세가 되어 있는 목사를 찾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지 않는 한에는 현실적으로 교회 분쟁이 없어지거나 줄 수는 결코 없습니다.  

당연히 교회의 교육프로그램이나 내적치유의 내용도 바뀌어져야 합니다. 아니 예배, 기도회, 성경공부, 전도, 선교, 봉사, 교제, 구제 등 교회의 모든 행사의 내용과 시행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이 더 깊이 새롭게, 새롭게 안 되면 계속 반복해서라도, 가르쳐지고 증거 되고 실천되어져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 중에서도 내가 죽고 상대가 사는 십자가만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범죄 하기 전에는 아담이 동산 중앙에 서있는 선악과를 언제든 볼 수 있었듯이 어떤 교인이라도 교회 안에 일단 들어오면 십자가만 보여야 합니다. 담임 목사, 장로, 집사, 구역장, 자신은 시야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자신과 베드로와 아볼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자기 이름으로 세례 주지 않은 것만도 큰 다행으로 여겼지 않습니까? 아담이 선악과에서 시선을 돌리자마자 범죄 하였듯이 교회에 십자가가 사라지면 바로 분쟁으로 돌입하게 된다는 인식이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내적치유의 경우는 반드시 복음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내적치유 자체가 복음이 아닙니다. 모든 내면의 견고한 진은 죄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의 바탕에서 죄의 본질부터, 최소한 병행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작금 이뤄지는 내적 치유는 심리적 상처, 학대, 눌림, 묶임 등을 씻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런 내면의 왜곡은 신자가 된 후에도 평생 동안 반복해서 생깁니다. 과거의, 특별히 어렸을 때의 흔적을 없앴다고 심리적 상처가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 매년 내적치유를 해야 하므로 자칫 정기적인 심리적 한풀이(?)로, 그것도 주로 기존 신자들이 참여하는, 변질될 수 있습니다. 평생 잊어지지 않고 용서 못할 것 같은 상처는 복음 안에서만 치유되지 않습니까? 또 바울이 복음으로 변화되어 남의 판단에 괘념치 않게 된 것이야말로 실제로 치유된 모습이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반드시 복음 안에서 원죄부터 씻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이 십자가 안에서 얼마나 고귀하게 바뀌었는지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온전한 내적치유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울처럼 자신의 어떤 것으로도, 예컨대 신실한 신자로서 내적치유와 제자훈련에 참석해 은혜를 풍성하게 받고 새롭게 헌신했어도, 하나님께 그것으로는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확신부터 갖는 것입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마땅히 죽을 죄인임을 절감하기에 평생토록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드는 것입니다.

교회분쟁은 당사자들이 해결하겠다고 덤벼들어선, 아무리 작정금식기도한 후라도, 절대 쉽사리 해결되지 않습니다. 모든 교인이 남들의 판단에 대해 진짜로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이미 분쟁이 크게 벌어진 와중에서 말입니다. 교회 안에 십자가부터 바로 세워 모든 구성원이 진정으로 예수를 머리로 모시어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게 하거나, 혹시 발생하더라도 인간이 나서서 해결하려들지 말고 복음부터 다시 새워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항상 죄의 본질과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예수님의 거룩한 십자가에 비추어 가르치며 참 회개로 이끌어야 합니다. 모든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며 혹시 그러지 못하고 있으면 진정으로 아주 비통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도 작금 교회에선 죄나 회개를 말하면 교인이 모이지 않는다고 염려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을 모아서 회개케 하는 곳이지 종교적 행사로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의로워진 것처럼 가장케 만드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숫자가 늘지 않더라도 오직 십자가만 증거 하면서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아주 비참한 죄인이며 또 그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숫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얼마든지 늘 수 있다는 뜻입니다.

11/29/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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