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2:22-27 비만증에 걸린 교회와 신자

조회 수 647 추천 수 30 2009.09.19 20:32:27
비만증에 걸린 교회와 신자


“이 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의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2-27)


오래 전에는 오르간을 연주하려면 무대 뒤에 한 사람이 숨어서 큰 주름상자로 바람을 불어 넣어주어야 했습니다. 한 연주자가 무대에 서서 “이제 제가 연주할 곡은....”이라고 소개한 후에 의자에 앉아 건반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대 뒤에서 “‘제가’ 연주할 곡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라고 고쳐 말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몸과 지체 또 지체들 간의 관계는 이와 같습니다. 연주자는 바람 불어주는 자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바람을 불어주어도 연주하지 않으면 힘만 낭비한  셈입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연주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눈은 보이는데 귀가 안 들리면, 또 귀가 들려도 눈이 안 보이면 한 인간으로서 구실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교회에 목사, 장로, 교사, 성가대 같은 직분 맡은 자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교회로서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교회가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는 그런 직분을 일일이 다 세울 수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목사가 없어도 교회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실제로 그랬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모든 지체는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다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필요치 않는 자는 아무도 없으며, 복음으로 변화되지 않을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의 모든 일은 오직 예수님이 이루시는 것이지 지체들의 공로나 업적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직분의 구별이 없었던 초대교회가 오히려 지금보다 교회로서 역할을 더 잘 감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예수님만이 교회를 이끄신다는 증거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실제로 교회를 이끌고 있다면 한 명이라도 소중하지 않게 여기실 리는 없습니다. 만약 교회가 성령의 역사 대신에 조직 체계나 프로그램을 앞세우고 한 죄인을 살리려는 예수님 대신에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인간이 일하기 시작하면, 도리어 하나가 되지 않고 나뉘며 또 교회의 역할도 잘 감당하지 못할 것은 너무나 자명(自明)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한 몸이 되라는 것은 교회 안에 일단 들어온 지체 하나라도 죄로 실족하거나 복음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성전 건축 혹은 연간 몇 % 성장 식의 조직체 교회의 비전을 이루는 일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그런 일이 중요하지 않고 그렇게 안 되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님, 교회가 하나 되는 본질과는 사실상 연관이 없습니다.  

본문은 약한 지체는 더 강하게 해주라고 권하고 이미 강해진 지체는 따로 더 강해질 것이 없으니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를 존귀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먼저 지체 각자가 영육 간에 아름답게 되라는 것이 몸의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초점입니다. 당연히 몸은 아름답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체들이 아름답게 되면 몸은 자동적으로 아름답게 되지 몸을 아름답게 한다고 지체마저 꼭 아름다워진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장 교회다워야 하는 모습을 이만큼 잘 설명하고 있는 말씀도 없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전체 균형이 깨지고 같이 아프게 됩니다. 생손가락 앓는 경우만 보더라도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아무 일을 못할 정도로 아프지 않습니까? 우리 몸에 일단 병균이 침범하면 지체들이 유기적 자동적으로 협력하여  전체 면역체계가 활발하게 작동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어떤 이유로든 힘들어 하는 성도가 있으면 전 교인이 자동적으로 함께 그 고난에 동참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도와주어서 같이 일어서야 합니다. 구태여 어떻게 도우며 누가 그 일을 맡느냐 등은 의논할 필요조차 없어야 합니다. 다른 지체의 아픔이 자기 머리가 아닌 가슴에 차야 합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우월의 비교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 기쁨에 동참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고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단 한 사람도 시기 질투하거나 열등감에 빠지는 일이 없이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자리이지 않습니까? 결코 불가능한 모습이 아닙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제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라.” 초대 교회에선 정말 문자 그대로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경제적 궁핍을 면하도록 구제에 열심을 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들은 구제에 너무 바빠 말씀과 기도에 등한히 되니까 일곱 집사를 세워 그들로 전담케 했습니다. 교회는 일반적 구제 기관과는 다릅니다. 도덕적인 훈련소도 아닙니다. 가난한 자가 불쌍해서 인간적 정의로 도우려 해선 한계가 있습니다. 가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도움 받는 자뿐만 아니라 도움 주는 자도, 어쩌면 더 많이, 체험하는 곳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정미한 기록입니다. 초대교회가 온전한 하나가 되어 지체들끼리 서로의 아픔을 자동적으로 돌보게 되는 근거와 원인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34절) 상기에 인용한 초대 교회 모습을 설명하는 구절의 중간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여 각 지체의 심령에 주님의 마음을 심어주니까 아무도 강권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7-39)고 말했습니다.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이웃도 같은 크기로 자동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교회에서 만은 지체간의 교제나 사랑에 인간적 의가 아닌 성령이 역사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의 교회 모습은 어떠합니까? 몸은 하나가, 그것도 너무나 근사할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되다 못해 비대해졌습니다. 지체들마저 그런 몸을 닮아 비만증에 걸렸습니다. 날렵한 신자 대표 겨우 몇 명만 골라 선교, 구제, 봉사에 동원하고 모두가 나태에 빠져 있습니다. 나아가 혹시라도 자신들의 게으름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죄책감을 없애려 그러는지는 몰라도 외부적으로는 한 몸이 되어 열심히 활동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지체들 간의 면역장치가 자동으로 작동되는 모습은 찾기 힘듭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 받는 법이 없습니다. 그럴 수조차 없습니다. 너무 크진 교회 안에 지체들끼리 아픈지, 아니 누구인지조차 모릅니다. 교회 활동은 주일날 담임 목사의 원맨쇼를 보고 오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사랑해도 이웃은 사랑하지 않는 신자의 당신을 향한 이런 사랑을 하나님 당신께선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요?

9/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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