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젖과 단단한 식물

조회 수 1122 추천 수 31 2012.06.30 09:13:16
                        
♣ 히5:11-14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첫 손주 녀석이 7개월 되었을 때 약 2주간 보살폈던 적이 있습니다. 하는 일이라곤 ‘놀고 먹고 싸고 울고 자고’의 고고(gogo)의 삶이 전부였지만, 마냥 귀여웠습니다. 때로는 버지기로 싼 것을 온 손에 묻혀가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나 그래도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습니다.
  
이 녀석에게 이유식을 먹여주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젖 빠는 식으로 혀를 놀리다보니 절반 이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한 숟가락 먹이고는 다시 여러 번 걷어 먹여야 했습니다. 그래도 제비처럼 벌리는 입을 보노라면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한편, 서른이 다 된 고모도 조카 녀석을 매우 좋아합니다. 외갓집에서 양육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해서도 그렇지만 유난히 사랑합니다. 힘껏 조카를 돌보려 애씁니다.

그러나 이 고모의 행동은 어린 조카와 비슷비슷합니다. 엄마가 먹여주는 반찬들을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이 거의 습관이다시피 되었습니다. 가끔 친한 손님이 있을 때도 무심코 먹여주고 받아먹다가, 가고 난 후에는 창피하다며 부끄러워하기도 합니다. 비록 ‘말만한 처녀가 할 짓이 아니다!’라며 놀리지만, 모녀의 행동을 보며 늘 풋풋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조금 더 지난 과거를 회상해 봅니다. 우리 앞 세대들은 어린애가 이유기를 지날 때, 주로 할머니들이 밥이나 반찬을 씹어서 먹였습니다. 조금 더 크면 김치 등을 입으로 빨아서 먹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할머니들끼리의 농담입니다. 손주나 손녀 돌보기 싫으면 며느리 보는 데서 밥을 씹어 먹이면 된다고 합니다. 질겁한 며느리가 다시는 자식 돌봐 달라 부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록 옛날 어른들이 자손을 애정으로 키우는 한 방편이었으나, 위생상 결코 권장할 일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가급적 병균이 침투하지 않도록 위생적인 이유식을 제조하여 먹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타당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모든 밥은 반드시 씹어서 먹여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가 성행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오직 목사만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일반성도는 그냥 목사가 해석하는 것만(씹어서 먹여주는 것만) 받아먹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목사 지위 보호의 방패막으로 간주되는 이 논리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성경과 정반대되는 망상입니다! 일반성도는 평생 목사의 해석만 받아먹으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속뜻은 아주 간략히 요약됩니다. 예수님의 직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 지파입니다. 따라서 율법으로는 결단코 대제사장이 되실 수 없으십니다.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것입니다(시110:4).

율법에 얽매여 있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 진리는 너무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해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참 성도에게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불과했습니다. “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비유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몇몇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초보(아르케)란 시작 또는 출발의 뜻으로서 ‘기본원리’를 의미합니다. ‘스토이케이온’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는 데 뜻은 ‘기본요소, 기본원리’로서 동일합니다.

○ 젖(갈라)은 우유로서 ‘아이에게 적합한 유동식’을 의미합니다만, 여기서는 복음의 기본적인 부분을 암시합니다.

○ 단단한(스테레오스)은 ‘견고한, 확고한, 진실한’의 뜻을 지니며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성인들의 음식’을 의미하며 나아가 ‘완전한 그리스도교 지식’을 암시합니다.

○ 음식(트로페)은 ‘자양물’의 뜻입니다.  

○ 어린아이(네피오스)는 ‘유아, 미성년자’입니다. baby 또는 infant입니다.

○ 장성한 자(텔레이오스)는 ‘완성된 자, 완전한 자’입니다. full age 또는 the mature입니다.  

○ 지각(아이스데테리온)은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영적 은사’로 말하기도 합니다.

○ 연단(귐나조)은 ‘연습하다. 훈련하다’의 뜻입니다.

○ 분변(디아크리시스)은 ‘분별하다. 식별하다.’의 뜻입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헬라어 살핀다고 고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한글로 한번 읽으면 뜻이 다 통하고 영어 성경 한번 읽으면 충분합니다.

이미 짐작하듯, “젖”은 “어린아이”를 위한 것입니다. 장성한 자의 음식이 아닙니다. 장성한 자의 음식은 “단단한 식물”입니다. 이 단단한 식물은 먹기도 쉽지 않고 소화도 용이치 않습니다. 맛도 덜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입니다.


교회에 등록하여 수 년이 지나고 수십 년이 지나, 장로도 되고 안수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었다면, 이는 결코 영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분명 ‘장성한 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장로나 안수집사나 권사일수록, 목사의 말씀 해석 외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성경은 정 반대를 말씀하시는 데, 어찌하여 성경과 다른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요!

이것은 철밥통 줄을 꽉 움켜쥐고 있는 삯군 목사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때문입니다. 아니 거짓 교사들의 협박에 굴복 당한 것입니다. 거짓 영에 사로잡힌 목사일수록, 성경을 제대로 아는 일반성도들의 바른 해석을 견디지 못합니다. 아주 완강히 반대하며 심하면 ‘이단’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입에 치명적인 차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가 태어나서 젖을 먹고 이유식을 먹고 연한 음식을 먹다가 드디어 딱딱한 음식을 먹기까지에는 적어도 이삼 년이 걸립니다. 아이의 소화력이 강해질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약한 소화력을 보상하는 방법으로서 할머니가 음식을 씹어서 먹이곤 했던 것입니다. 일차 제대로 씹어서 소화가 잘 되도록 하는 지혜였던 것이지요. 비록 위생상으로는 불결했을망정 과학적으로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까지 언제나 씹은 밥만 받아먹는다면 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스스로 숟가락질 할 나이쯤 되면 점차 딱딱한 음식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순리일 뿐 아니라 진실이기까지 합니다.

교회에 갓 등록한 초신자는 영적인 어린아이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목사의 씹어서 먹이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 뜻을 깨닫고 감응하게 되는 때가 되면 그때부터는 목사는 절대 음식(성경)을 씹어서 먹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 스스로 씹어 먹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일반성도 역시 자기 힘으로 먹으려 애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소화불량에 걸려 설사도 하고 병원신세를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에 겁먹을 게 아니라 자꾸자꾸 시도해서 익숙해져야 합니다. 가끔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야 목사를 찾아 서로 토론하며 연구하여 바른 뜻을 찾아내면서 신앙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와 일반성도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한 국면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성경의 참 뜻에 순순히 동의할 정도로 깨어있는 목사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지요! 우리 주위에는 젖타령이나 할 줄 알았지 단단한 음식은 깨물기만 해도 큰일 날 것처럼 지레 질겁하는 목사들만 넘쳐날 뿐인 듯합니다. 막막합니다.

이선우

2012.07.06 17:15:17
*.199.239.19

정순태 형제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귀한 말씀 감사!)
그럼에도 저를 포함한 대다수 평신도의 경우, 단단한 식물은 구하지 않고 젖만 찾는 유아기적 사고를 아직도 가지고 있으니,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점, 스스로 나약해진 것 아닌가 반성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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