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1:1-22 인간의 우연과 하나님의 필연 11/17/2017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1:12)
에스더서는 여호와 하나님 이름이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 유일한 책이다. 또 이방족속을 너무 잔인하게 죽여서 하나님 말씀으로 부적합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보호하고 복을 주었다는 미개한(?) 책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그 백성의 신실한 헌신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본문은 그 서론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말해 준다.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당대의 패왕(霸王) 아하수에로가 모든 관리와 백성들을 위해 무려 백팔십칠 일 동안 엄청난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 맨 마지막 날에 왕은 아리따운 왕후 와스디를 모든 사람들 앞에 자랑하려고 잔치에 나오길 청했으나 왕후가 거절해버렸다. 바로 여기가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되는 시발이다. 왕후 나름의 이유 있는 거절이었고 왕과 신하들이 그에 마땅한 후속조치를 취한 것 같아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 그들의 생각 판단 결정 시행이 일상에서 벗어났다. 상식과 이성에 상치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간섭한 것이다.
우선 왕후는 여인들을 위한 잔치를 베풀면서(9절) 국모로서 내조를 하고 있는데 호출이 오니 바쁘다고 이유를 밝혔을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은 왕 개인을 위한 것이지 관리나 백성과 이방 왕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순결한 마음 내지 자부심의 발로였을 수 있다. 왕이 술만 취하면 왕비를 불러내어 자랑하는 습관에 질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잔치는 평소 연회와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왕의 호출을 거역하면 직계 왕족도 처형당할 수 있음을 와스디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왕후 또한 연회로 술이 취했던지, 어리석게도 자존심 내지 고집을 너무 내세웠던지 둘 중 하나다. 평소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왕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잔치를 배설한 목적이 자신의 위대함을 온 천하에 알리려는 것인데 반년 동안의 잔치가 왕후의 한 마디로 완전히 거품이 되었다. 하늘을 찌른 것은 그의 위엄이 아니라 분노였다. 왕의 기분이나 맞춰 출세한 신하들이(14절) 간언하기를, 첫째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관리와 백성들에게 잘못했다고 한다. 와스디는 자기 미모는 왕 개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는데 정반대로 해석했다. 둘째, 이 일을 여인들이 알면 일반가정에서도 남편을 무시하는 일이 예사로 일어날 테니 “남편이 집을 주관하고 자기 민족 언어로 말하게 하라”고 아예 법으로 규정하자고 제의한다. 이는 구태여 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요 관습이다. “자기 민족 언어로 말하라”고 한 것이 흥미롭다. 제국이 크게 확장되어(1절) 이방인과 통혼이 많았던 모양이다. 와스디도 이방인이었을 수 있고 평소 자기 미모에 빠진 왕의 총애만 믿고 신하들을 멸시하여 그들의 미움과 질투를 사고 있었던 같다. 지금 왕 왕비 신하들의 모든 행위가 관습 상식과 상충되고 순식간에 아무 반대 없이 일어났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 행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우연으로 보일수록 반드시 하나님의 필연이 배경에 있다. 설령 모두가 술 취한 탓이라 해도 그렇게 만드신 분은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