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드개 때문에 유대인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 타당한가요?
[질문]
에스더서에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아서 유대인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물론 모르드개가 아말렉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있지만 하만은 페르시아의 제2인자인데 하만의 입장에서 보면 신하가 자기에게 예를 갖추지 않으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에게 절하는 것은 신으로서가 아닌 상관으로서의 예를 갖추는 것 더군다나 궁중에서 신하로서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이 전멸당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하만과 그 일족이 전멸을 당하지만 참 아이러니 합니다.
성경의 사건을 통해 과정과 함께 그 결과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일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만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하였다면 유대 민족이 전멸의 위기를 겪지 않고 살았을 거고 모르드개는 모르드개대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살고 하만은 하만대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살았을 텐데... 지금도 일본은 과거의 행적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여전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본의 정부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한국인 한 사람이 이런 일본에 대한 정서를 가지고 일본의 수상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로 인해 일본 정부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를 한다면 한사람의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봐야 하는지요? 성경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실을 적용하려 하니 좀 억지적인 비교가 되었습니다만 성경을 읽다가 사건의 발생 ㅡ 경과 ㅡ 결과를 통해 이런 생각들이 들때가 있습니다.
[답변]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아서 하만이 심히 노했고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고 여기고 유대인 전부를 말살하려는 흉계를 꾸몄습니다. (에 3:1-7) 그래서 모르드개 개인의 불충한 행위로 인해 유대 민족이 전멸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 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성경은 사건의 발생-경과-결과를 정확히 따지며 읽어야 합니다. 모르드개로선 자기는 죽어도 좋으니 어말렉 사람 하만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는 어찌되든 전혀 개의치 않고 설령 목숨을 잃더라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충성하려 했다는 뜻입니다.
그로선 하만이 자기가 절하지 않았다고 유대인 전부를 말살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입니다. 당시 모르드개가 아닌 어떤 유대인이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 전적으로 그 이후의 모든 사태의 원인과 책임은 하만에게만 귀속된다는 뜻입니다. 하만의 잘못을 정확히 알고 따져야지 모르드개의 잘못을 논하는 것은 올바른 성경독법에서 초점이 벗어난 것입니다.
만약 하만이 처음부터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민족까지 전부 멸하겠다고 공표했다면 모르드개도 민족을 위해서 잠시 치욕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성경의 요셉, 다니엘, 다니엘의 세 친구의 예에서도 보듯이 자기 민족에 대한 실제적인 위협이 발생된 뒤에는 누구라도 그래야 합니다.
질문에서 예를 든 일본정부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경우도 한 개인의 잘못을 다른 한국인에게까지 확대 적용해서 핍박한다면 일본 사람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물론 에스더서의 경우와, 일본정부와 한국인의 예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관계가 있었다는 점은 감안해야만 합니다만 어쨌든 개인의 잘못을 민족 전체로 확대 적용한 자가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방족속의 왕이라도 처음부터 그런 비상식적 비윤리적 명령을 허락해줄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으니까 하만은 그와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이 더 심해졌습니다. 모르드개가 계속해서 전혀 숙이지 않자 그것을 빌미로 해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왕의 권위와 자존심에 적극 호소해서 그런 조서를 받아낸 것입니다.
요컨대 처음부터 그런 비상식적인 명령을 내릴 왕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추론을 하셨지만 성경의 해석은 항상 개연성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추정해야 합니다. 결국 형제님이 말씀하신 원리인 사건의 발생-경과-결과를 그대로 지키지 않고 오히려 그 순서를 거꾸로 추적했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또 하나 개연성 있는 추측은 심지어 하만이 왕의 자리까지 넘보는 자인줄 그가 이미 눈치채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에2:21-23) 성경은 원래 장절의 구분이 없이 이어져 있기에 기록된 순서에도 서로 관련된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명시적 기록이 없어서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왕에게 직접 절하지 않으면 왕은 독단적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신하 신분에서 자기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이려 모의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을 왕과 같은 위치에 두었다는 뜻이 됩니다. 설령그런 마음이 없었다 할지라도 왕에게 큰 공을 세운 모르드개를 함부로 죽이려 해선 안 됩니다. 이미 왕을 그리 높이지 않는 습성이 그의 마음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하신 대로 하만은 평소에 모르드개에게는 물론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었으며 이런 일이 아니라도 언제든 핑계만 생기면 유대인들을 핍박할 사람이었습니다.
알다시피 하만의 선조 아말렉 족속은 이미 하나님에게 진멸되었어야 할 민족이었습니다.(삼상15장), 사울이 그러지 않았기에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15:23)고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세운 왕을 당신께서 내친 이유입니다, 당신에게 거절한 것을 우상에게 절한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사울이 아말렉을 살려둔 것이 사탄에게 협조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육백 년 후에 이스라엘이 거꾸로 아말렉에게 전멸당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울이 그 때 하나님께 순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때에 하만이 큰 악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전멸하는 위험에 몰아넣을 것까지 다 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말씀에 복종하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못한 사건을 회개하라는 의미로 사울을 폐위시켰고 그런 당신의 뜻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가르쳤습니다.
모르드개는 자기 민족의 역사와 구약성경에 능통했습니다. 당연히 여호와에 대한 믿음과 타국에 포로로 잡혀와 우거하는 자기 민족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대단했던 사람입니다. 에스더의 왕비 간택을 주도한 일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따라서 그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사태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모르드개가 조금 양보하면 되었지 않나 싶지만 그럼 모르드개는 여호와께 불충한 자가 되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자를 통해서 유대민족을 구하는 종으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태가 이렇게 악화 일로로 치달은 것은 하나님이 그 배경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울 때에 진멸했어야 할 아말렉을, 비록 인간의 종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훨씬 후대에라도 반드시 심판을 하여 당신의 공평과 정의를 바로 세우십니다. 수산 궁과 성내의 모든 사람과 사정을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이 당신만의 완벽한 주권과 섭리로 반드시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지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믿음과 특별히 자기 민족의 안위를 항상 염려하는 자기 생각에 따라 행했을 뿐이지만 그것과 전혀 상충하지 않는 하나님의 완벽한 드라마에 주역으로 그분께 쓰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본문이 속한 앞뒤 문맥과 해당 책의 전체 내용과 성경의 다른 책들과도 연결해 해석해야 합니다. 질문자님이 “성경의 사건을 통해 과정과 함께 그 결과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일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성경해석의 첫째 원칙입니다. 역으로 말해 성경 인물의 특정한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것도 인간적 선과 악의 윤리에만 기준하여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2/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