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을 정녕 위반한 적이 없는가?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3:21,22)
불신자들 가운데 자기는 기독교의 십계명을 어긴 적이 없으니 예수님을 구태여 믿을 필요가 없다고 큰 소리 치는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고 있고,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증거, 이웃의 집을 탐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식으로 말하면 율법으로도 능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바울의 변증대로 그 사람의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을 수 있을 것이며 십자가 복음은 하등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완성시킨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자들의 잘못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미 예리하고도 통렬하게 지적하셨다는 사실이 너무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15:4-6)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부모 공경을 등한시해도 된다고 가르치고 실천했습니다. 부모공경을 덜해도 될 만한 구실만 만들어 준다면 언제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실제로도 부모 무덤 앞에서 죽을죄를 지은 불효자식이라고 진심으로 울지 않는 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습니까?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1,22) 형제를 바보라고 욕하는 자도 사실은 살인죄를 저지른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증오와 저주를 잔뜩 품기는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살인은 그것이 우발적으로 튀어나온 것으로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살인죄를 수도 없이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28,29) 마찬가지로 마음으로는 누구나 간음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간음과 살인을 사형으로 다스렸기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모든 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선포한 셈입니다. 그야말로 율법과 복음 둘 다, 즉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는 십계명을 위반한 적이 없으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큰 소리 치는 이유는 그런 범죄 행위를 하지 않아서 감옥에 간 적이 없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러나 행위는 마음에서 나오지 몸이 단독으로 스스로 범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혹여 죄를 범해도 몸이 나쁘지 자기 마음으로는 그럴 뜻이 없었다고 강변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정말 그렇다면 눈을 빼고 손을 자르라, 그렇게 해서라도 죄를 안 지을 자신이 있으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어법적인 비유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그렇게 해도 죄에서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으며 나아가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저주하시기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뜻은 차라리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심판을 면하고 죄 씻음을 얻는 구원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8-20) 죄의 권세가 너무나 교묘하고 강력하기에 단순히 의지적 노력으로 생각을 다스린다고 해서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이라고 합니다. 생각과 마음을 분리했습니다.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지만 그 생각은 또 각자의 마음에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율법을 어긴 것은 외적 행동일 뿐이지 정작 죄의 본질은 그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은 죄를 범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죄인이기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담의 원죄 하에 태어나 그 마음이 완전히 썩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행동이 아니라도 마음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십계명을 위반합니다. 악한 생각 가운데 살인 간음 음란 도적질 거짓증거 훼방을 짓습니다. 신자도 크게 예외는 아닙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대로 그 중에서도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가장 많이 위반합니다. TV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나보다 나은 자들을 얼마나 속으로 욕합니까? 탐내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 중에 유일하게 생각으로 짓는 죄입니다. 아무리 행동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어도 마지막 열 번째 계명에는 누구나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으로 쳐도 누구나 반드시 걸리는 계명도 하나 있습니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적은 없지만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의 부조리, 부정부패, 죄악에 대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 양 아예 눈을 감아버리지 않습니까? 물론 나와는 상관없겠지만 그럼으로써 이웃이 어떤 피해라도 입는다면 거짓 증거 한 것과 방불합니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모든 죄수들은 한 결 같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죄를 더 많이 지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지 순간적 감정을 참지 못해서 우발적 행동으로 치달았다거나, 자식을 사흘이나 굶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담장을 넘었다거나, 억울하게 당한 것이 너무 분해서 분풀이를 조금 했다거나, 돈이 없어서 재판에 졌을 뿐이라는 등 적절한 핑계가 다 있습니다. 그들의 변명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옥 밖에 있는 자들도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과 똑 같은 죄를 마음속으로 범하고 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지 사회적 위신과 체면 때문에, 아주 잘 봐주어 쥐꼬리 같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마음을 조금 더 절제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넷을 빼면 도덕적 죄는 여섯 개 뿐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결코 위반해선 안 되며 그래서 인간 사회가 바르게 형성될 수 있는 최소한의 규범이라는 뜻입니다. 불신자의 눈에 아주 간단하고 시시해 보여 위반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 소리 칠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정말로 그런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 당신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그 여섯 계명에서조차 자유로울 자 하나 없다고 인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바울은 성경이 우리 모두를 죄 아래에 가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감찰하여 그 벌거벗은 실체를 당신 앞에 완전히 드러내었습니다.
사람들이 십계명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자기에게 그런 중한 죄를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일 뿐입니다. 분명 맞는 말이자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지배하는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자기도 모르며 스스로 주체할 수도 없다고 흔히 실토하듯이 생각과 마음은 다르고 마음이 생각을 지배합니다. 그런 실토는 사실은 자기 선한(?) 의지로도 도저히 통제 안 될 정도로 마음이 타락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불신자는 자기 생각에 죄지을 의도가 전혀 없었기에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성경의 규정을 수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실제로는 자꾸 죄를 범한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내면은 선하고 육체가 나쁘다는 핑계를 댑니다. 나는 운전한 적이 없는데 차가 혼자 사고 냈다고 우기는 꼴입니다. 그들은 타락한 영혼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성경의 이 놀라운 진술을 보십시오! 이 말씀에 육체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다 죄를 짓게 되고 생각을 다스리면 죄를 안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인의 사상을 인정해주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다르다고 분명히 구분했습니다. 생각으로는 죄지을 의도가 없었는데 육체가 말썽이라면, 당연히 육체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거나 또 못한다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육신이 생각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의지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상태가 육신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얼마든지 죄를 안 지을 자신이 있다는 자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그런 자들이 죄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고, 즉 사망이라고 엄숙히 선언합니다. 실제 그런 이들은 자기 내면은 선한데 몸이 문제라고 핑계 댈 정도로 죄를 범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은 필요 없다고 우기지 않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얼마나 정확하고도 소름끼칠 만큼 두려운 지적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으므로 그들이 자신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모든 인간의 실상입니다. 율법으로는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 있게 지킬 수 있다고 큰 소리 칩니다. 사실은 인간에게는 그 하나라도 제대로 실행 할 능력이 애당초 없다는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하나님은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라는 뜻보다는 오히려 도무지 그럴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달으라고 준 것입니다. 십계명 하나만 봐도 어찌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구원될 수 있다고, 다른 말로 예수가 필요 없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습니까? 예수 없는 인간들이 너무나 어리석지 않습니까?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신자도 죄에 관해선 불신자와 똑 같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능히 의를 이룰 자는 예수님 외에는 영원토록 한 명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의존하지 않고는 인간의 의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다른 말로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이 우리의 영, 생각을 지배하는 마음을 새롭게 해주지 않으면 십계명조차 도저히 지킬 수 없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스스로 생각을 다스리는 정도로 의를 실현하려 하지 말고) 영을 좇아(일생을 두고 오직 주님만 따르겠다고 성령의 인도로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십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려고”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십자가 복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얼마나 은혜로우며 풍성합니까? 십계명 정도는 자신 있게 지킬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던 자가 그것조차 도무지 지키지 못하는 천하의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제가 소망하는 것은 오직 주님의 긍휼뿐이라고 날마다 순간마다 간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6/12/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