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그물과 예수님

조회 수 219 추천 수 0 2019.02.24 08:57:17

베드로의 그물과 예수님

 

[질문]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5:6)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21:11) 베드로의 그물이 처음에는 찢어졌지만 두 번째는 찢어지지 않은 의미가 궁금합니다.

 

[답변]

 

질문자께선 성경의 의미를 깊이 따져가며 읽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사로 여기고 넘어가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둘 다 예수님의 메시아로서 권능을 드러낸 것이라고 간단히 해석하고 넘어가도 되는 내용인데도 말입니다. 이처럼 비슷한 사건들은 서로 비교해 뭣이 다른지 따져보면 더 깊은 의미를 알 수 있기에 아주 좋은 묵상 습관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더러 고기를 잡으라고 두 번을 명했고 베드로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두 번 다 고기는 아주 많이 잡혔기에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른 점은 첫 번은 그물이 찢어지고 두 번째는 안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두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황의 차이를 유추하면 각기 특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궁금증은 제일 먼저 본문을 앞뒤 문맥과 잘 비교해 보면 거의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제자로 부른 예수님

 

먼저 주님이 베드로를 제자로 부를 때에는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베드로가 아직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잘 모를 때였습니다. 물론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긴 했으나(눅5:3) 첫 만남인데다 한 번의 가르침으로는 메시아는커녕 랍비(스승)로 모시기도 힘듭니다.

 

지금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못 잡았습니다. 갈릴리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어부가 그랬다면 일반인은 아예 고기 잡으려고 시도조차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벌써 고기 잡는 것을 포기하고 그물을 씻으며 어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밤에 고기를 잡으려 했다면 그 때가 가장 좋은 시간인데 지금은 해가 뜬지 한참 지났습니다. 또 그물이 닿을 수 있는 적당한 수심이어야 하는데도 일부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은 전문가로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요구였습니다.

 

그럼에도 방금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정도까지는 인정하고서 군말 없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아마도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수십 년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은 물론 어부 특유의 직감 등이 아예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 밑의 고기들마저 주관하고 또 그러려면 호수의 조류까지 작동하는 분이라는 점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물이 아니라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아니 그 호수의 고기 전부도 단번에 잡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는데 주님의 주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아직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도 당신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또 그의 인성이 어떤지 테스트 해보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마음의 상태까지도 주님은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대신에 당신을 따르고 순종할 때에 얼마나 큰 권능을 맛볼 수 있는지 보여준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하늘의 축복을, 또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를, 그물이 찢어질 정도 즉, 인간의 일상적인 수용의 한계를 넘을 정도로 부어주시겠다는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베드로를 사도로 세우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과 세 번째로 만났습니다.(요21:14)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에게 주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말을 전하라고 명했습니다.(마28:10) 제자들은 그 말대로 먼저 와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갔으나 밤새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요21:3) 멀리 서계신 주님을 아직은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중에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요21:4,5) 새벽 미명이라 누구인지 확실히 보이지 않았고 또 멀리 떨어져있어서 목소리도 분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부에게 고기를 사러 온 고객으로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객이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면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멀리서 호수의 물이 흐르는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여겼을 수 있고 단순히 왼쪽에 있던 그물을 오른 쪽으로 옮기라고 했으니 쉽게 따랐습니다. 이번에도 고기가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요21:6)

 

아무리 물의 흐름에 따라 고기가 움직여도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그렇게 많이 잡힐 리 없다는 정도는 어부인 베드로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 순간 첫 번의 그물이 찢어진 사건이 분명히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 사러 온 고객이 아니라 먼저 갈릴리로 가라고 하신 주님이 자기들을 만나러 오신 줄 깨닫고 주님을 맞으러 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요21:11)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찢어져야 함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이 또한 주님이 하신 이적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큰 능력은 이미 너무 많이 봤습니다. 부활하신 그 자체만으로 메시아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고기를 구워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면 고기가 도망가고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첫째 의미는 부활신체가 허깨비가 아님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제자들과 식사교제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께서 인간의 영혼만 아니라 육신까지 충만하고 완전하게 해주시는 주님이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처음 베드로를 제자로 부를 때에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세우시겠다고 했습니다.(마4:19) 더 이상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필요 없습니다. 또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당신만을 택하여 따라야 했습니다.(눅18:28-30) 주님은 베드로의 눈앞에서 그물을 일부러라도 찢어버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사도로 세워야 할 시점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상징적 의미를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면 안 됩니다. 어떤 큰 고기라도 아무리 많아도, 다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찢어지지 않는 튼튼한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식사를 마친 후에 베드로가 당신을 세 번 부인한 잘못을 용서하시면서 세 번 다 “내양을 먹이고 치라”고 명한 것입니다. 또 그런 본으로 지금 제자들과 고기를 구워서 함께 식사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지하공동묘지에서 예배 볼 때에 교인임을 나타내는 암호가 물고기 표호였습니다. 헬라어로 “예수가 주님이시다.”는 문장의 단어 머리글을 모으면 물고기(익투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세웠고 지금 질문하신 두 번의 기적과도 연관되는 표호입니다.

 

그래서 물고기는 앞으로 예수 믿는 신자들을 뜻하고, 그물은 그들을 담는 교회라고 해석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은 먼저 분리될 수 없는 교회의 통일성을 상징하며, 또 아무리 다양한 부류의 죄인이라도 포용해야만 교회이고, 나아가 그 일을 감당할 자가 베드로 같은 사도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두 번 다 주님은 고기를 넘치도록 잡게 했습니다. 첫째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연적으로 터졌고, 둘째는 그물이 터져야 함에도 주님이 터지지 않게 했습니다. 신자가 순전한 믿음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해야만 그분의 역동적인 역사에 동참하여 풍성한 열매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두 사건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물이 찢어졌고 안 찢어졌던 까닭은 각각의 상황이 달랐기에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도 달랐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제자로 삼아 천국복음을 가르치기 위해서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는 데에, 두 번째는 초대교회를 세울 사도이기에 앞으로 감당할 사역과 교회의 본질을 계시해주는 데에 초점이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12/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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