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연예인의 학창시절 친구들을 찾는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연예인이 옛 기억을 더듬어 친구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며,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는데, 상대방이 내민 손을 잡고 “반갑다, 친구야!”라고 말하면 진짜 친구이고,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가짜 친구이다.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그 순간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던 나는, 마치 내 친구를 찾듯이 그 곳에 내 모습을 그려 넣으며 어릴 적 벗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얼마 전 비록 얼굴을 대면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반갑다, 친구야!”라고 손을 내밀며 다가와 준 어느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손을 잡고 ‘교동 초등학교 26회’ 인터넷 카페에 첫 발을 내디뎠다. 소싯적 아련한 추억에 빛 바랜 사진들이 연결고리가 되어, 나를 정든 교정의 놀이터로 단번에 이끌어 주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야말로 동심의 세계를 나눈 친구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는 불혹을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30여 년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와 같은 마음이 그 작은 공간에 흐르고 있었다. 17세기 스페인 작가 그라시안은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인생을 갖는 것만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새롭게 펼쳐질 또 하나의 인생을 바라보는 감격이 나에게도 밀려 왔다.

카페의 ‘출석체크’라는 메뉴를 통해, 많은 친구들이 그날의 출석을 체크하며 간단한 인사말로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어떤 친구는 내가 안고 있는 육체의 고통을 듣고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의숙아! VD=R이란 것을 아니? ‘Vivid Dreams should be Realized.’ 생생한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야. 나는 오늘부터 질병에서 다 나은 네 모습만을 생각하며 바라볼 거야. 그 꿈은 곧 현실로 이루어져 너는 꼭 나을 거야. 그러니까 절대 희망 잃지마….”

하나님을 모르는 그 친구의 권면은 내 가슴에 새겨진 소망의 말씀을 더 견고히 붙들게 해주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브리서11:1)

나는 또 ‘쪽지쓰기’라는 메뉴를 보며 오래 전 내가 썼던 한 쪽지를 떠올렸다. 이성친구에게 관심이 쏠리던 6학년 때, 나는 한 남자친구에게 쪽지를 썼다. “나랑 친한 친구가 되자!”라고 쓴 것 같은데, 전하지 못하고 그냥 호주머니 안에 숨겨 두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 뒤, 아버지의 책상 위에서 그 쪽지를 발견한 나는 부모님께 들킨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 잠을 못 이룬 기억이 난다.

어느 작가는 “동서고금을 통해 써진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들의 기본적인 주제는 ‘같이 놀래?’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같이 놀래?”(Want to play?)는 서로 다른 둘이 하나가 되어, ‘같이 놀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화합의 ‘손 내밈’이라는 것이다.  

오늘 나는, 멀리 있는 나를 찾아와 같이 놀자며 손 내밀어 준 사랑하는 죽마고우들을 위해 쪽지 한 장을 쓴다.

“나의 가장 좋은 친구, 나의 예수님! 제 친구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그들의 단짝 친구가 되어 주세요. 그들에게 “친구야! 같이 놀래?”라고 손 내밀어 주세요. 저에게도 그렇게 다가와 주셨잖아요. 만약 누군가가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갑다, 친구야!”라고 말할 때까지 쉬지 않고 끝까지 손 내밀어 주세요. 제 친구들에게도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 온전한 인생을 갖게 해 주세요.”

이 쪽지를 띄운 오늘 밤, 나는 답장을 기다리며 잠 못 이룬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괄량이 소녀 같은 쌍둥이 미아와 정아, 달리기를 잘했던 씩씩한 순애와 영미, 5월의 소년 같은 순수하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던 세혁이와 진태,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할 뻔 했지만, 지금은 함박웃음을 한껏 안겨주는 상철이와 믿음의 동역자가 된 사랑의 전도사 원준이, 카페 안에서 주말지기 짝꿍이 된 진솔한 마음의 소유자 상범이, 30여 년 만에 만나서도 이름 대신 별명을 불러준 경환이, 언제나 곰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웅배, 대학 1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나 명동길을 걷고, 함께 우산을 쓰고 향교(鄕校) 돌담길을 걸었던 지용이, 어린 내 작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건네려 했던 쪽지의 주인공 영균이, 어릴 적 꿈을 좇아 한 길을 달려간 볼이 발그레한 인형을 닮았던 효정이,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은 십년지기 수진이…. 그리고 아직도 내 기억의 보물상자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친구들과 앞으로도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어 줄 나의 친구들 때문에...


하람맘

2010.11.11 07:42:28
*.195.4.108

와 ~ 정말 부럽네요. 너무 좋으시겠어요. 저도 그때 친구들이 생각이 나네요. 다들 무얼하고 사는지... 한국 나오면 다 만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아이들에 각자 처지가 있으니 친구들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 더라구요. 정말 감사하네요. 소녀같은 우리 집사님 얼굴까지 발그레하며 좋아하실 것 생각하니 정말 신나요. 참 ! 몇일전에에 집사님 책 또 주문했어요 ^^ 집사님이 보고 싶어서...ㅋㅋ

김순희

2010.11.11 12:28:37
*.165.73.38

시간이 지나갈 수록 초등학교 친구들이 제일 그리워집니다.
그냥 마냥 좋았던 친구들...
집사님, 정말 좋으시겠어요. 그런 친구들과 다시 연락이 되어지니 말입니다.
더욱이 그들을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정순태

2010.11.13 00:35:29
*.216.63.196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VD=R 친구를 포함, 절친들을 만나셔서 기쁘시겠습니다.
곧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정담 나누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가슴 두근거린 쪽지 사건, 이동주 집사님도 아시는가요? 무척 궁금~~~ ^^

이선우

2010.11.13 09:13:18
*.222.242.101

저도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 다시 한번 가봐야겠네요.
젤 좋은 친구 예수님을 위한 친구 만들어주기 프로젝트, 아~쟈!

임화평

2010.11.13 11:57:34
*.175.255.106

소마당에서 다망구(술레잡기)하며 놀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소마당이 왜 소마당인지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소들을 운동 시키고 놀게하는 마당인것을 동무들과 소똥냄새 맏고 소똥 밟으며 그렇게
놀았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동무들이 그립고 소똥냄새가 그립습니다
오늘 밤은 고향생각이나 목청것 불러야 겠습니다

원집사님 좋은 글 감사하고요 집사님 가정위해 늘 기도합니다
죠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원의숙

2010.11.13 20:15:45
*.235.212.216

모든 분들께 '네'와 '감사합니다'로 마음을 전합니다.
동심 속에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기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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