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너무나 짝사랑을 하신다. 늘 오해하고 심술쟁이처럼 화를 내는 우리 인간들을 향해서 왜 그렇게 사랑을 구걸하시는지... 구원하시려 이 누추한 세상에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오시어 그 살점까지도 그 피 한방울까지도 남김없이 주시고는 이제 그리스도의 영을 보내시어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손을 내미시며 애절하게 사랑을 구하신다.
너무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는 그 사실을 늘 뒤늦게 그것도 아주 조금밖엔 깨닫지 못한다. 마치 긴 회초리 손에 들고서 누가 컨닝하는가 싶어 매서운 시선으로 학생을을 감시하는 무서운 시험감독 선생만 같았던 하나님. 조금만 아프다고 칭얼거리기라도 하면 저 복도에 나가 물양동이 손에 들고 벌을 서라고 호통치는 호랑이 선생처럼 느껴졌던 하나님이였다.
공의의 하나님께선 도무지 죄를 보실 수가 없으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곤 이 더럽고 추악한 죄악을 모두 다 그 위에 쏟아 부으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시어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이젠 없는 듯, 이젠 깨끗해진 듯 바라 보시며 이렇게 또 사랑을 구걸하시건만.
사도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애끓는 사랑을 본다. 환난 당해 어려워진 성도들이 시험하는 자들에게 혹여 시험 당할까, 그 믿음에 흔들림이 있을까 싶어 참다 못하여 디모데를 보낸 심정을 본다. 그것도 부족하여 직접 저들을 만나 부족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해주고파 밤낮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을 본다.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맘을 보게된다.
지금도 그 사랑,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햇빛처럼 내리쬐는 그 사랑을 이렇게 받으며 살아가는데 나는 얼마나 수시로 오해를 하는지 모른다. 바울의 심정으로 가르치는 분들을 마치 긴 회초리 들고 두터운 안경 너머로 감시하는 기숙사 사감 선생처럼 느끼고 있는지, 왜 늘 젖먹이 어린 아기의 수준에서 머물고만 있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 듯, 이웃의 사랑도 얼마나 오해를 하고 있는지, 사도바울의 심정으로 애끓 듯 바라보는 이웃들의 사랑을 나는 왜 깨닫지도 못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