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기록된 이후(구약, 신약)
성경을 연구하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해석한 주석을 통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니
다소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구절은 난해하여 많은 논쟁들도 있습니다.
그럼 과연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전문 신학자들처럼 그렇게
성경(자신들이 기록한 것)을 깊이 연구하고
해석을 했을까요,
특별히 난해구절에 대해?
그리고 이 기록된 글(성경)을 받거나 보거나 들은 사람들(초대교회 사람들)은
과연 그 글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했을까요?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까지
일반적인 내용은 오늘의 성도들도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부분이지만
난해한 내용
특히 영적인 깊은 내용들은
과연 성경 기록자들이 이해를 하고
기록했는지 궁금합니다.
아님 성령의 감동으로 그냥
성령의 도구로 기록을 했는지
성경의 저자들 모두가
그렇게 깊은 신학(학문적, 지적?)적
능력이 있지는 않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나 목회자가
굉장히 심도있게 의미 부여를 히면서
성경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난해 구절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초대 교회
특히 수신자 입장에서 설명을 하셨습니다.
성경 기록자들의 입장은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저자들의 믿음의 기본 내용은 초대교회 신자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저자들은 전부 사도들인데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사역과 기적의 현장에 동참했고 무엇보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직접 목격자들이었습니다. 부활 후에도 주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직접 사도는 아니라도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또 나중에 아라비아에 들어가서 약 삼년 정도 혼자서 진리를 연구했습니다.(갈1:17) 따라서 사도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부활주라는 체험적 확신은 당연히 아주 더 강했을 것이며 아무래도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구약 성경의 한 가지 주제는 예수님에 인한 인류 구속사이므로 비록 일부 성경 구절이 난해하게 보여도 (구약도) 십자가 복음으로 해석하면 풀립니다. 그리고 요한은 밧모섬에서 순전히 계시(대부분이 묵시)를 통해서 요한계시록을 저작했으므로 실제로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확정적 해석은 유보되어 있는 것입니다.
PeaceTiger님이 정확하게 답변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질문의 의도에 맞춰서 몇 가지 첨언하자면....
성경은 시간적으로 1500 여년 간 직업 신분 배경 등이 각기 다른 약 40명의 저자들이 개별적으로 저작한 것을 후대에 집대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저작한 책 외에는 다른 성경을 연구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에는 모세오경을 참조했을 수 있고 신약시대는 복음서를 상호 참조한 것 같은 예외는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저작할 경우 일반적인 책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저작의도를 갖고 전체 개략을 정한 후에 몇 번이고 그 내용을 검토 수정하는 절차를 거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직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대언했으므로 오늘날 신학자들처럼 학술적으로 깊이 연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부 구절들이 난해하게 여겨지고 해석이 나뉘는 이유는 성령에 의해 계시된(원칙적으로 저자 자신의 사상이 아니라는 뜻임) 하나님의 영적인 진리와 장래 일에 대한 예언 등을 계시 받은 그대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께서 이 땅과 인간을, 특별히 신자를 어떻게 다스릴지에 관해서 육하원칙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계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난해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경을 오늘날처럼 그 전부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모세 오경을 비롯한 구약은 갖고 있었으나 신약은 복음서 일부와 서신서 일부를 서로, 그것도 숨어서 회람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나는 역사부터 있었기에 성경의 영적 진리보다 십자가 복음을 실제 체험적 지식으로 소지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순전히 믿었고 자신들도 주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면 부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기보다는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사흘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라는 체험적 진리에 자신들의 목숨을 거는 신앙이었습니다.
성경은 천오백 여년에 걸쳐서 저작되었듯이 그 진리를 깨닫는데도 저작완성(집대성은 다시 3백 여년이 지남)부터 종교개혁 때까지 거의 동일한 기간이 걸렸습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거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아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30,31) 성경은 물론 특별히 십자가의 도는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그것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입니다.(성경에도 그런 뜻의 설명이 종종 등장합니다.)
1. 오타였습니다. 수정했습니다. - "성경은 천오백 여년에 걸쳐서 저작되었듯이 그 진리를 깨닫는데도 저작완성(집대성은 다시 3백 여년이 지남)부터 종교개혁 때까지 거의 동일한 기간이 걸렸습니다."
2. 성경은 66권에 저자가 40명이 넘습니다. 그렇게 단순히 이해해선 안 됩니다. 성경에 난해한 구절들이 있는 까닭은 일차적으로 PeaceTiger님이 답변드렸듯이 저작 당시와 비교해서 시대적 공간적 간격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당시 역사적 배경과 사회 문화 종교 적 상황과 무엇보다 원어 자체의 용례들을 후대 사람들이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각자들의 수고와 연구 끝에 이제는 난해한 구절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요컨대 저자들이 저작할 때부터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기록했기에 후대 독자들에게도 난해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성경저자들은 저작 내용도 모른 채 무조건 받아쓰기 하듯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저자의 모든 배경, 경험, 지성, 영성, 믿음 등을 그대로 활용하게 하면서도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정확히 드러나도록 영감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작 당시에 자신들이 기록하는 내용이 당시 상황에 비추어서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다 알고 있었고 독자들도 그런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약저자들은 십자가 구원진리를 오늘날 어떤 최고 신학자보다 더 분명하게 체험적으로 알고 또 확신했습니다. 그러니까 순교까지 기꺼이 담당했습니다. 자기도 잘 모르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거는 바보는 없습니다. 그 복음이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먼 장래에 대한 일부 계시만(대표적으로 다니엘, 에스겔서 일부와,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진술에 한해서) 구체적인 장소 시간 방법 등만 몰랐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날에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은 예컨대 마지막 환난, 주님의 재림, 신자의 부활, 영광스럽고 영원한 왕국 등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가까운 장래에 대한 예언을 할 때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먼 장래의 일까지도 함께 중의적으로 상징적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물론 자신이 저작한 내용이 먼 장래에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는 몰랐습니다. 어쨌든 당시 상황에서 저자가 자기 저작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 66권을 일반신자들도 주석이나 성경해석학 책을 이용해서 각 책별로 체계적으로 접근해서 정확히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각 저자마다 특정 주제에 대한 특별한 영감을 주셨기에 각 저자도 그 특정 책을 저작할 때는 주제와 내용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독자들도 각 권마다 개별적으로 저자의 신분 배경 개인적 경험 지성 등을 알아야 하고,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시대상황을 공부해야 하고, 저자의 의도와 강조하려는 신학적 주제 등을 찾아서 그에 맞추어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번역된 내용이 이해하기 힘들거나 애매하면 원어의 뜻도 찾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기본 교리를 배워서 PeaceTiger님의 말씀대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와 상호 비교 연결해서 더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마지막 날에 대한 묵시 부분에서만 그 영적 진리는 저자도 알고 있었으되 구체적인 시간 장소 방식만 몰랐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모든 교리는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바탕을 둡니다. 삼위일체(Trinity)라는 용어자체는 성경에 없으나 후대의 신학자들이 그것이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증거하는 진리라고 확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와 성령에 대해서 구약에도 예언과 언급이 있었지만 성육신과 오순절강림이 있은 이후에 저작된 신약성경에서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저자가 그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 진술한 것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성자와 성령의 신성에 대해 표현한 것을 후대의 신학자들이 상호비교하여 교리로 정립한 것입니다. 예컨대 성자의 신성에 대해선 영원성(사 9:6, 요 1:1-2, 계 1:8, 22:13) 편재성(마 18:20, 28:20, 요 3:13) 전지성(요 2:24-25, 21:17, 계 2:23) 전능성(사 9:6, 빌 3:21, 계 1:8) 불변성(히 1:10-12, 13:8) 성부에게 속한 모든 속성(골 2:9)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관해서도 편재성(시 139-7-10) 전지성(사 40:13-14-롬 11:34, 고전 2:10-11) 전능성(고전 12:11, 롬 15:19) 영원성(히 9:14) ) 성령을 예수님과 동일시 함(행 16:6-7) 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신약시대 사도들이 오늘날의 삼위일체교리처럼 체계화된 교리로 정리하고 있지는 않았어도 성자와 성령의 신성에 대해선 전혀 의심이 없었고 또 그렇게 진술했습니다.
완전하게는 아니어도 시공간적으로 많이 떨어져 문화적, 언어적 맥락으로부터 멀어진 오늘날의 현대인 신자들보다는 더욱 직접적으로 그 의미가 와닿았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들은 일차수신자였으니까요. 물론 영적 차원의 깨달음은 그 시대에도 성령으로 인도받는 참 성도들에게만 가능했겠죠.
다만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서 이해하기 더 용이한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성경이 아직 다 완성되기 이전의 시대에는 온전한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퍼즐이 맞춰지지 않아 성경의 풀리지 않는 난제들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신비들은 하나님의 역사 운영과 경륜이 찬 뒤에야 비로소 풀리게 되었죠. 그런 측면에서 아직 계시록까지 완비되기 이전의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사도들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가 더 큰 혜택과 특권을 누리고 있는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완비 및 정경화 이후의 교회를 기준으로 해도 오늘날의 교회가 깨달음에 더 유리한 성경의 진리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종말론입니다. 이 분야는 과거 중세 아니 근대까지만 해도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비로소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마지막 때가 가까웠다는 방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