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성적범죄로만 접근하지 말라.

창세기 강해 (#17)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2:18-23)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가는 교회와 신자

 

많은 신자들, 특별히 목회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예수를 믿으면 아담의 원죄에서 구원을 받았다고는 가르친다. 그러나 그 구원의 의미가 하나님이 신자로 창조 직후 타락 전의 상태로 되돌려주셨다는 점은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를 믿어도 평생토록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는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성화를 이루어도 죄에 완전히 무관한 창조 직후의 상태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 있는 동안에 구원의 확신을 심어준 뜻은 신자를 향한 당신의 소망이 죄가 없는 상태를 지향하며 살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은 후 신자의 첫째 목표가 되어야 한다. 과연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렇게 가르치기라도, 아니 그런 인식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다. 도리어 최근 주일 설교에서 죄, 심판, 지옥 같은 단어는 교인들에게 혐오감 부담감을 준다는 이유로 사용금지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 기독교 외부나 일부 자유주의 교파에서 창조 기사의 사실성 진리성에 시비를 걸어도 교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제대로 변증도 못한다. 많은 신자들이 창조는 심정적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 이야기 정도로 여긴다. 창조에 대한 대표적 비난은 이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1장과 2장의 내용이 상충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두 기록 사이에 모순은 전혀 없다.

 

창세기 1장은 창조 사건 자체를 객관적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반면에 2장은 창조에 부여한 하나님의 뜻, 당신께서 이 땅의 피조물 특별히 인간을 다스리는 원칙을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후 첫날에 아담과 함께 안식을 누리며 앞으로 이 땅에 세우실 당신의 나라의 아름답고 풍성하고 영광스런 청사진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바로 2장, 그 중에서도 본문의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본문이 남자 혼자 있는 것이 외로우니 이브를 만들어 아담과 결혼시키고 함께 가정을 이루어 아들 딸 낳고 잘 먹고 잘 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런 의미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전부라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짐승에게 주신 축복 수준에 머무는 셈이다. 거기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는 정도를 구태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강조할 이유는 없다. 타 종교나 도덕에서도 가르치며 심지어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인간의 본성상 저절로 깨우칠 수 있다.

 

돕는 배필이 아니라 조력자

 

본문을 자세히 보면 “돕는 배필”을 두 번 언급하고 있다. 우리말 개역성경에는 18절에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돕는 배필을 주셨다고 한다. 그러다 20절에선 구체적으로 한 개인 “아담이 독처”하기에 돕는 배필을 주셨다고 한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그렇게 번역되어 있다.

 

알다시피 아담은 최초 인간의 이름인 고유명사로, 혹은 남자나 사람이라는 일반명사의 뜻을 다 포함한다. 그렇다고 어느 쪽으로 번역해도 된다고 무심코 넘어갈 계제가 아니다. 지금 이 단계에선 여자를 창조하기 전이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은 사실상 할 수 없다. 본문에서도 이브를 창조한 후인 23절에 가서야 남녀 구분을 하고 있다. 사람이라고는 아담뿐인 상황이다. 아담과 다른 짐승을 구분하여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18절에선 사람이라고 번역해야 타당하다. 영어성경도 사람 전체를 나타내는 뜻으로 ‘man’으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첫 번째의 “돕는 배필”이 꼭 부부사이에 적용할 필요는 없다. 성경은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가르친다. 영어로는 ‘helper’라고만 번역되어 있는데 히브리 원어도 단순히 ‘돕는 자’라는 뜻이다. 최근의 한국어 번역도 ‘조력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말 ‘배필’-아내라는 구체적 의미는 없다. 따라서 18-19절은 가정이라는 혈연관계의 작은 집단을 넘어서 인류 전체 공동체가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이다.

 

사람이 독처(獨處)한다는 우리말 어감이 언뜻 홀아비 같은 느낌이 들지만 한자말 번역이라서 그렇다. 장소를 뜻하는 처(處)를 사용해 어떤 곳에 단순히 혼자 있다는 의미다. 원어로도 그냥 be 동사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해 함께 있도록 한 것이다.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이다.

 

본문을 다시 자세히 보라. 하나님이 조력자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며 그가 어떤 일을 행해야 하는가? 아담이 에덴동산의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즉,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을 다스리는 청지기 직분 때문이다. 그 일을 혼자선 감당하기 힘드니까 조력자를 붙여주셨다고 성경은 19-20절에서 명확히 기록하고 있지 않는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온당하게 유지 발전해야 할 소명이 인류전체가 갖고 있다. 그럼 그 일에 함께 힘을 합하지 않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사람은 이 땅에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부터 거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필로서 조력자

 

반면에 20절은 인류 전체를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담이라는 최초 인간 개인에게 주는 돕는 배필의 의미다. 하나님은 남자인 아담에게 첫 조력자로 여자인 이브를 붙여 주셨다. 조력자가 많아야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데 생식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조치였다.

 

이는 또 아주 심각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이 이 땅에 건설할 당신의 나라의 최소 단위이자 시작하는 공동체가 가정이다. 또 그런 가정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이 소망하는 인류가 생육 번성해나가는 모습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크리스천에게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신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이 땅의 하나님 나라가 바로 남편과 아내 부부 사이에서부터 실현되기 시작한다. 신자 부부는 너무나 고귀하고 막중한 결합니다. 정말로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하게 가꾸어 나가야만 한다.

 

한 가정에서부터 하나님만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면 사실상 교회는 필요 없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기 전에 가정부터 만드셨다. 정확히 말해서 최초의 가정을 사실상 교회로 만들었다. 아담이 타락하니까 지금과 같은 조직체 교회가 불가피하게 생긴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목사이고 식구들이 교회 멤버인 가정을 원하셨다. 실제로 이스라엘 족장들이 그랬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이 되었다. 모두가 가정교회였다.

 

유대 종교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율법과 성막과 희생제사법을 받은 후에 생성되었다. 아무리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가정이라해도 모든 인간이 아담 타락 후 하나님을 온전히 모르고 본질상 그분의 진노 아래 있었다. 하나님으로선 교회를 제정하여 당신을 올바르게 계시해주고 교육 훈련시킬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본문의 18절에서 20절 전반까지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번영하려면 모든 인간이 서로 상생 협력하라는 것이다. 또 20절 후반에서 23절까지는 인류가 그런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최적의 방안이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 주변을 살펴보라. 온갖 범죄 타락 정서적 불안과 절망의 원인과 시발이 사실상 훼파된 가정에서부터 아닌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실종된 것 아닌가? 본문이 말하는 서로 돕는 조력자는 멸시하고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 우대하기 때문 아닌가?

 

성경을 파괴하는 자들

 

그런데 본문을 동성애 지지하는 성경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리는 사역을 처음에는 동물과 협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물을 아담에게 이끌어 와서 붙여주셨다는 것이다. 아담이 점차 외로워하고 힘들어하자 여성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양성생식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단성생식 즉, 동성애자였다는 것이다. 영어로 ‘man’으로 번역된 것을 인간전체를 지칭하는 뜻으로 보지 않고 남성으로 한정하며 성경을 왜곡시킨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역성경이 ‘사람’으로 번역한 것은 아주 옳았다.

 

성경은 분명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고 선언하고 있다.(19절) 이름이 갖는 유대교적 의미는 그 존재의 가치와 정체성을 정하는 것이다. 에덴동산의 모든 피조물이 그 관리자인 아담의 지시를 따른다는 뜻이다. 아담과 짐승이 힘을 합쳐 관리하라는 의미는 전혀 없다. 이 구절을 동성애 지지의 근거로 삼는 것은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동격으로 두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스스로를 짐승 수준으로 비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동식물은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암수로 나뉘며 그들 간의 생식으로 번성한다. 한마디로 인간 외에는 동성애가 없다. 자연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었음에도 하나님을 끝까지 거역하며 타락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를 봐도, 정확히 말해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비춰볼 때에 너무 치사하고 추하지 않는가?

 

이런 주장이 얼토당토 않는 것은 창세기 1장에 명백한 증거가 있다. 성경구절로 동성애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면 성경은 분명히 그 반대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서두에서 창세기 1장은 창조사건의 객관적 기록이라고 밝혔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했다.

 

창세기 2장은 창조에 부여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다. 창조의 신학을 기술한 것이다. 하나님이 남자를 먼저 만들었는데 혼자서 수고하는 것이 애처로워 한참 있다가 여자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본문은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서로 사랑해야 하며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도와 번영하라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혼자선 너무나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은 혼자서 독불장군처럼 굴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 말대로 인간의 사고하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인간은 반드시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가정과 가문과 종족과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 또 그런 모든 사회적 인종적 구분을 넘어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청사진이었다. 본문은 인간은 절대 혼자 살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되 인간의 이해를 돕고자 시간적 순서를 첨가해 설명했을 뿐이다.

 

동성애자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신자.

 

모든 생물은 자웅끼리 번식하고 생물학적으로 동물에 속하는 인간도 처음부터 그렇게 디자인 되었다. 사람은 그 방식만으로 번성하고 서로 돕고 살라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무엇보다 아주 단순한 진리다. 다른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없다. 이는 특별히 동성결혼이 완전 합법화된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

 

작금 기독교에선 이 문제를 단순히 성도덕 차원으로만 접근한다. 하나님이 싫어하고 금지한 죄라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만약 동성애를 그런 맥락에서만 반대하면 신자들도 흔히 짓는 간음, 이혼, 포르노 같은 성적타락과 크게 무엇이 다른가? 그것들도 하나님이 싫어하고 금지한 것 아닌가? 죄송하지만 카톨릭 신부들이 어린 소년과 성관계를 가진 것은 동성애에다 미성년자 성폭행이라는 더 심한 죄를 지은 것 아닌가?

 

사람들이 또 일부 개신교인들마저 간음을 큰 죄로 여기지 않고 있는 실상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타인에게 직접적인 신체적 경제적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으로 폭행하지 않고 서로가 좋아서 합의했기에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배우자와 자녀에게 정서적 피해가 극심한데도 자신이 극복해야 할 개인적 책임이라고 얼버무린다.

 

이제 겨우 청소년 유아들인데 어떻게 그 큰 상처를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사람들을 서로 돕는 조력자로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본문의 뜻조차 전혀 모르는 것이다. 부모도 자녀에게 조력자로 서야 한다. 자녀를 노엽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자를 성적 범죄로 비판하기 이전에 신자들부터 자신들의 성적타락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가정을 하나님의 뜻에 기초해서 정말로 아름답게 가꿔야 하고 이웃에게 진정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솔직하고도 엄격하게 말하면 거의 대부분의 신자가 동성애자를 단순히 성적 범죄자라고 손가락질 할 자격조차 없다. 신자라면 부부끼리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 이웃도 예수님처럼 섬겨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님 말씀대로 예쁜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한 번도 품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을 단지 그 행위만 가지고 잘못했다고 지적, 비판, 비난, 정죄할 수 없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도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셨다. 동성애자는 물론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카톨릭 신부에게도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자는 저를 필두로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서로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주고 원수도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돕는 배필의 의미이다.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동성애

 

동성애는 성적범죄 이전에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 창조의 청사진에 비춰서 판단 반응해야 한다. 신자 부부가 이혼하면 자녀에게 극심한 정서적 고통을 준다. 본문이 말하는 서로 돕는 조력자 역할을 부모 자식 사이에도 수행하지 못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동성애자 부부의 경우에도 동일한 상황이 일어난다.

 

최근에 동성부부의 자녀들 중에, 동성애 전의 결혼해서 태어났던 입양을 했던, 일종의 양심 선언을 하는 자가 나타났다. 자기들 부모의 삶을 찬동하지 않고 대신에 불편하고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실토했다. 무슨 의미인가? 인간은 창조된 의도대로 양성 간의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는 것을 도덕 종교 교육 없이도 본성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모든 사람이 속고 있는 원리가 하나 있다. 자기 자녀가 어느 날 동성애자라고 고백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자가 이젠 다수가 되었다. 그중에는 신자들도 상당수 그러하다. 이는 죄인을 사랑해야 하는 십자가 원리와 상충되지 않는다. 반면에 자기 자녀가 동성애자가 되길 바라느냐고 물었을 때는 과연 당당하게 예스라고 대답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아마 대다수 미국인들은 그것은 자녀 개인의 자유이자 책임이므로 그들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동성애를 싫어하느냐 좋아하느냐 진지하게 답변해보라는 것이다. 저는 감히 단언컨대 아직은 자녀가 동성애자가 되기를 좋아한다는 대답이 훨씬 소수라고 믿는다. 심지어 동성애자 중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미국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사법부는 법을 어긴 여부만 판단하는 곳인데 입법부처럼 새로운 규정을 만든 것을 넘어서 도덕적 기준을 제시했다. 그것도 아직은 동성애 반대가 대다수인 점을 묵살하고 그랬다. 대다수 국민들도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지 동성애 자체를 찬성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우위에 두는 몇 명의 대법관이 자기주장대로 전국민을 오도 것이다. 법관의 근본 소명과 의무를 무시한 것이다. 지금 무엇이 진짜 본질인지 망각, 아니 분별조차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영적 분별력은 점점 쇠퇴해가고 흑암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동성애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 더 남았다. 하나님 앞에 진짜로 죄가 되는 요소다. 모든 생물, 인간을 포함해서 자웅끼리 교섭으로만 생육한다. 동성끼린 후손이 생기지 않아 번성할 수 없다. 동성애는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을 인간이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생명을 보존 유지 계승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에 대한 첫째 의무다. 만약에 생명을 이어갈 의사가 없다면 엄격히 말해 이 땅에 존재할 이유, 의미, 가치가 없다. 물론 그 점을 동성 부부도 잘 알기에 고아, 장애아, 미혼모의 자녀 등을 입양해서 정상부부보다 더 큰 사랑으로 양육을 한다.

 

그럼에도 성경원리로는 동성부부는 분명히 생명의 번창과는 무관하다. 그 입양한 자녀들로 본을 받게 하고 사람들로 그 첫째 잘못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 한국의 한 여성 블로거가 바로 그래서 “죽음의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예리하게 지적했다. 성적범죄를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파괴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주관하는 생명의 분야를 침범한 것이다. 정말 동성애가 옳다고 주장하려면 자기 생명을 걸어야 한다. 바로 이런 창조의 관점에서 동성애는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라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신자가 행할 바는?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어차피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을 대하는 신자들의 태도다. 우선 동성애라는 행위의 죄와 동성애자라는 인간 죄인을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주님 안에선 그들이 우리보다 더 특별하고 추한 죄인이 결코 아니다. 신자들도 성적 타락이 심하다. 심지어 교인 중에 자살하는 자도 있다. 엄격히 말하면 술 담배만 해도 사실은 자기 육신의 건강을 해치는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자해하는 것이기에 그분의 창조 목적을 위반한 것이다.

 

신자는 죄는 극도로 미워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지만 죄인은 끝까지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들을 교회에서 받아들여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 교회가 그러지 않으면 그들 영혼이 치유될 곳은 없다.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권능이 아니면 용서는 물론이고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예수 십자가 구원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완전한 사랑이요 길이자 진리이며 생명이 되는지 인식조차 없다.

 

그들은 특별히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이 창조에서 돕는 배필을 주신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 동성애가 죄라고 알 수는 없고 죽음의 문화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이 이슈는 절대로 도덕과 종교로 해결될 차원이 아니다. 참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러 오신 예수님 십자가만이 해결책이다.

 

신자가 정작 행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정말로 부부 간에 참 사랑을 해야 한다. 성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간음 이혼과 담을 쌓아야 한다. 자녀들에게도 부모는 군림하지 말고 돕는 배필 즉, 조력자로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정서적인 학대 상처를 절대 주지 말아야 한다. 신자의 정상 가정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고 진실한지 불신 가정, 특별히 동성 부부가 눈으로 보게 하고 샘이 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신자 가정이 앞서서 버려진 불쌍한 어린이들을 입양해서 키워야 한다. 말세에 무정한 자가 많아진다고 했다. 실종된 사랑을 가정에서부터 회복하여 사회 전반에 참 사랑을, 참 생명을 전파해야 한다. 그래야만 죽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 이것이야말로 구원 받은 후에 타락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죄와 끝까지 싸우는 참 모습이다.

 

한 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신자들이 동성결혼 합법화로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절망하고 있다. 예수님 당장 오셔서 이 땅을 고쳐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는 너무나 어리석은 신앙이다. 예수 십자가 권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동성애라는 죄가 예수 십자가 참 생명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되듯이 인류의 심판과 구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시작하고 결론짓는다.

 

세상의 문화와 법률과 정치가 아무리 하나님과 반대로 타락해져가도, 아니 그럴수록 신자는 복음 안에 살고 있고 복음을 전하면 된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뿐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힘도 믿음뿐이다. 또 그 믿음은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때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예수 십자가 복음만이 이 절망적인 세태를 영적으로 바로 세울 수 있다. 신자가 겨우 이런 일로 절망하고 있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절망적인 상태가 됨을 신자들이 모르고 있다. 신자가 진정으로 부부끼리 사랑해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또 이웃을 예수 사랑으로 섬겨서 그것을 확장하라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7/1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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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철학은 창조주를 만난다. (창세기 강해 #11 -창2:4-7)

진정한 철학은 창조주를 만난다. 창세기 강해 (11)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耕作)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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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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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인생의 첫째 가는 소명 (창세기 강해 #10 - 창1:26-28)

신자 인생의 첫째 가는 소명 창세기 강해 (10)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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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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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 첫째 증거 (창세기 강해 #9 - 창1:31)

믿음을 가진 첫째 증거 창세기 강해 (9)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이 가장 먼저 훈련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어쩌면 영어를 숙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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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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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을 기뻐할 수 없다면 신자가 아니다. (창세기강해 #8 - 창1:20-23)

환난을 기뻐할 수 없다면 신자가 아니다. 창세기 강해 (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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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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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양날 선 검 (창세기 강해 #7 - 창1:9-13)

한국교회의 양날 선 검 (창1:9-13) 창세기 강해 (7)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물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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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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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이 남아 있다면 신자가 아니다. (창세기 강해 #6 - 창1:14-19)

열등감이 남아 있다면 신자가 아니다. 창세기 강해 (6)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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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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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열정으로 되돌아가려면? (롬1:1-4)

초대교회의 열정으로 되돌아가려면? (롬1:1-4) 부활절 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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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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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계 최고임을 확신하는가? (창세기 강해 #5 - 창1:9-13)

당신이 세계 최고임을 확신하는가? 창세기 강해 (5) http://youtu.be/rMSIX3C2UKU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

다윈에 앞서 진화론을 주장한 세상 모든 종교 (창세기 강해 #4 - 창1:9-13)

다윈에 앞서 진화론을 주장한 세상 모든 종교 창세기 강해 (4) http://youtu.be/qHjkSiEz-O0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

조물주는 믿어도 창조주는 믿지 않는다. (창세기 강해 #3 - 창1:6-8) [2]

조물주는 믿어도 창조주는 믿지 않는다. 창세기 강해 (3) http://youtu.be/opQj6Y6sXwM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

귀신은 좋아도 하나님은 싫다. (창세기 강해 #2 - 창1:1-5) [2]

귀신은 좋아도 하나님은 싫다. 창세기 강해 (2) http://youtu.be/ASb2eX056xc (클릭하시면 You-Tube 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환원 불가능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가? (창세기 강해 #1 - 창1:1)

환원 불가능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가? 창세기 강해 (1) http://youtu.be/eCSGTueOyA4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창조적 진화론? 저는 서른세 살에 완전 무신론자 집안에서 ...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의 참 뜻(2) (마태복음강해 #258-完: 마28:17-20) [2]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의 참 뜻(2) 마태복음강해 (258-完) http://youtu.be/IiltnYNxUe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의 참 뜻(1) (마태복음강해 #257 - 마28:17-20)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의 참 뜻(1) 마태복음강해 (257) http://youtu.be/lEzdZEu44xU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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