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은 야곱인줄 알고 있었다(?) (창27:18-29)

야곱 바로 알기 (3)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 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18-29)

 

시력이 약해진 이삭

 

야곱은 집에서 키운 염소새끼로 요리를 만들어 이삭에게 대접하며 에서인 것처럼 아비를 속여서 장자권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 아이디어는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나왔지만 야곱이 그녀의 지시에 무조건 따른 것은 아닙니다. 그의 나이가 이미 77세였음을 감안하면 본인의 확고한 주관에 따라 행한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야곱의 속임수에 대해 이삭이 반응하는 내용인데 마찬가지로 이삭이 137세였음을 감안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만큼 노쇠하기도 했지만 이 일 후로 43년이나 더 살았을 만큼 정정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합니다.

 

비록 137세이긴 해도 죽음 직전에 이르지 않은 아버지와 77세 된 아들 사이에 장자권을 두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한다는 자체부터 너무나 어색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본문을 자세히 따져보면 지금껏 배워온 내용과는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삭이 너무나 엉성하게 속아넘어갔다는 것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발단을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다”고(창27:1) 합니다. ‘눈이 어둡다’는 히브리어 ‘카하’는 영어 dim으로 번역되었듯이 시력이 약해지다, 어두워지다, 희미해지다는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 잘 보지 못한다는 뜻이지 완전히 실명된(blind) 것이 아닙니다.

 

이삭이 가까이 오라는 말을 두 번 했듯이(21절, 26절) 틀림없이 야곱으로선 들키지 않으려고 조금 떨어져서 작은 소리로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력이 약해지면 나머지 감각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예민해집니다. 미각 후각 촉각 셋은 직접 접촉해야 알 수 있으나 시각과 청각은 외부 자극에 대해 자동적으로 작동됩니다. 시각이 약해지면 가장 먼저 청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에서와 야곱의 기질과 성격이 정반대라고 증언하고 있기에 이란성 쌍둥이가 거의 확실한데 그럼 많은 측면에서 아주 다를 수 있습니다. 설령 음성이 거의 같다고 해도 두 아들과 무려 77년 간 함께 살아왔기에 야곱의 말투, 억양,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등을 종합해서 판단하면 에서와 구별 못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삭은 무려 다섯 번도 넘게 에서인지 재확인했습니다.

 

다섯 번의 확인 문답

 

우선 야곱이 아비의 방에 들어가 “내 아버지여”라고 부르자 이삭이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18절) 내 아들아라고 먼저 말한 후에 누구인지 확인했습니다. 약간 떨어져서 작은 소리로 말했을 텐데도 아들의 음성인 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청력이 거의 정상수준임을 뜻합니다.

 

야곱이 에서라고 밝히자 이삭은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절)라고 물었습니다. 평소에 즐기던 고기이므로 특정 종류의 짐승이고 그것을 잡으려면 어디에 가야하고 그리고 잡아와서 요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까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의 이성이 잘 작동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다”(20절)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순조롭게 만나게’ 했다는 말의 히브리원어 ‘카라’는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를 구하러가면서 여호와께 순조롭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말과 동일합니다.(창24:12) 그 의미는 어떤 일이 우연히 생긴 것 같지만 사역동사 형식으로 하나님이 배후에서 역사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계획을 세워서 시행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와 간섭이 있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이삭에게 아주 익숙한 말이었습니다. 야곱이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아비를 안심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야곱도 그만큼 항상 기도하면서 여호와의 거룩한 통치를 받고 있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로 둘러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좋은 이삭으로선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여호와 신앙이 온전치 못한 에서의 입에서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야곱더러 가까이 오게 해서 만져보고 에서인줄 확인하겠다고 했습니다.(21절) 에서는 몸에 털이 많고 야곱은 매끈하기 때문에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야곱과 리브가는 이삭이 그러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염소의 털가죽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온 야곱에게 이삭이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절)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에서에게 털이 많다 해도 염소가죽으로 덮은 것과는 다릅니다. 지금 리브가와 야곱은 에서가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하므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고 많이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염소의 털로 사람의 털처럼 완벽하게 위장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삭이 만약 야곱의 손을 잡고 오래 쓰다듬었다면 에서에게 갑자기 털이 더 많아졌고 냄새도 약간 다르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야곱이 손을 슬쩍 내주고 빨리 뺐거나 이삭이 야곱이 걸친 털옷만 스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심쩍었든지 이삭은 “참으로 내 아들 에서냐?”라고 물었습니다.(24절)

 

그런데 가까이 와서 말하니까 아무리 작게 말했어도 이삭은 야곱의 음성이라고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보다는 야곱의 음성이라고 먼저 강조했습니다.(22절) 사람은 누구나 더 확실한 사항을 먼저 말하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야곱의 음성이라고 의심해오다가 이젠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지금 모든 정황은 야곱임을 말해주고 에서라고 판단되어질 것은 급하게 갖다 붙인 염소의 털가죽뿐입니다. 틀림없이 이삭의 심정이 아주 복잡 미묘해졌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두 가지 힌트

 

이삭의 다섯째 말(27절)에 그런 심정이 은연중에 드러났습니다. 야곱을 가까이 오게 해서 입을 맞추고 향취를 맡은 후에 장자로 축복했는데 첫마디가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였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에서는 사냥꾼으로 산에 사는 야생동물을 잡지 밭에 사는 가축을 잡을 리 없습니다. 밭의 향취라는 것은 에서에게 전혀 합당하지 않는 포현입니다.

 

물론 장자권의 핵심이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이니까 그렇게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28절에서 하나님이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곡식으로 축복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분명히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에게서 나는 향취가 밭의 향취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평소에 밭에서 주로 일하는 아들 야곱에게 장자권을 주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만약 에서라고 완전히 속았다 해도 앞으로는 사냥을 그만두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가문을 번창시키라는 뜻이 됩니다.

 

진짜로 결정적인 사항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다섯 번이나 미심쩍어했다면 야곱을 그 자리에 불러와서 삼자대면 하면 모든 문제는 곧바로 간단히 해결됩니다. 상식적으로 따져도 장자권을 수여하는 유언집행의 자리라면 모든 가족의 입회하에 이뤄져야 합니다. 쌍둥이 아들뿐이니까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이삭은 다섯 번이나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되묻기만 하고 네 동생 야곱을 불러오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을 더 좋아하는 리브가는 거짓말 할 수 있으니 집안의 종들을 따로 살짝 불러 확인 시키면 됩니다. 그런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성경은 나중에 모든 사정이 다 드러난 후에 이삭의 반응에 대해서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27:33)

 

심히 떨어서 이삭이 큰 충격을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속였다는 것은 이미 다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라고 뒷북치는 듯한 말만 했습니다. 거기다 야곱의 장자권을 ‘반드시’라고 강조하면서까지 기정사실화 시켰습니다. 이삭이 아비임에도 장자권을 번복하지 않은 것은 문서가 부족했던 고대에는 구두 약속이 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야곱의 잘못을 꾸짖으며 분노하는 반응을 보여야 하나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었다고 했는데 이 또한 석연치 않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만든 별미를 자주 즐겨왔는데 이번에는 리브가가 요리했습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요리의 맛이 다를 텐데도 아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27절에서 밭의 향취라고 말한 것은 염소 새끼 요리를 먹고 난 이후입니다. 아무래도 야생의 짐승과 가축은 그 맛이나 향취가 다를 것입니다. 이삭이 자기가 먹은 고기에서 밭의 향취 즉 가축의 냄새가 난다는 뜻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삭의 당시 생각과 모든 정황을 구체적으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항만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삭이 다섯 번이나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서도 야곱과 삼자대면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언약의 첫 수혜자를 지정하는 막중한 일을 그 많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한 아들의 말만 듣고 행했습니다. 아무리 아비의 말이 절대권을 갖는다 해도 한 명의 증인도 세우지 않고 유언을 했습니다.

 

지금 이삭은 배다른 형 이스마엘이 죽은 나이에 이르자 감회가 남달라져서 미리 유언을 하려 합니다.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삭은 그 의심스러운 상황을 간단히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임신 중에 리브가에게 예언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삭이 잠시 멍청해져 그런 생각을 못하는데도 성령은 전혀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것입니다. 그 전에 하나님이 이삭에게 너무나 상식적인 이치조차 떠오르지 않게 만든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관점을 넓혀라.

 

본문을 인간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치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광대하신 주권과 섭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지금 이삭의 나이가 137세, 야곱의 나이가 77세가 되었는데 그 숫자 각각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거기다 지금 이삭의 여러 번에 걸친 의심도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두 아들끼리 맹세하며 맺은 장자권 계약에 대해 아비가 확실히 보장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중요한 목적이나 의미가 실현되는 일이 여러 번 겹쳐서 일어나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차남이 어머니와 짜고 비열한 수단으로 아비를 속여서 장남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천륜을 위반하는 큰 죄입니다. 성경은 그 추악한 사건을 마치 자랑하듯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따져서 믿음의 선조의 부끄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기독교에 전혀 도움이 안 될 텐데 있는 그대로 까발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부간에 신뢰 존경 사랑하고, 자식은 순전한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형제들은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구태여 도덕교육을 받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에서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체험적 진리입니다.

 

이삭이 처음부터 의심하고 계속해서 확인했으나 야곱은 끝까지 시침을 떼었습니다. 거짓말은 한번 해버리면 들키지 않으려고 또다른 거짓말로 둘러대야 합니다. 야곱에게 아들로서 해선 안 될 일이라는 양심의 가책이 생기지 않았을 리는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 안에 그런 양심을 깨닫는 기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도 십계명의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여섯 가지 계명은 천륜(天倫)으로 간주해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천륜이란 인간이 스스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심어준 것으로 어기게 되면 자연히 죄책감이 든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었다는 성경의 선언은 사실상 세상 사람들도 시인하고 있는 절대적 진리인 것입니다.

 

성경이 기껏 누구나 잘아는 도덕율을 가르치려고 이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이 그 진리를 몰라서 남편이자 아비를 속인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성경을 저작했다면 이 사건은 포함시킬만한 성격이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자 그 뒤에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역사했고 그래서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절대적 진리가 있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그분께서 당신의 절대적인 뜻과 계획을 계시 해놓은 책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 성경을 볼 때는 가장 먼저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 당신의 뜻을 어떻게 드러내며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이끌고 계시는지에 모든 묵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순적한 하나님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인생은 이 사건으로 정반대의 두 방향으로 극명하게 나눠집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벽하며 거룩한 뜻이었고 그래서 리브가에게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해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불려 나온 창세기 12장 이후로 지금까지 이 가문이 겪게 된 모든 과정을 살펴보십시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은 적이 없고 어느 한 장소도 하나님이 부재한 적이 없습니다. 단순히 함께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에 합당한 여건을 미리 조성한 후에 그 장소와 시간까지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을 이루는 데에 가장 합당하게끔 일관되게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그분의 택한 백성들은 실수와 잘못 투성이이고 심지어 수시로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정말로 깜박 속았다쳐도 차남에게 장자권을 준 것은 눈이 잘 안 보인다는 핑계로 넘어갈 수 없는 큰 잘못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이삭도 음식 종류만 달랐지 장자권을 고기 요리 하나처럼 너무나 값싸게도 취급했습니다. 이것이 그냥 우연의 일치이겠습니까?

 

리브가가 출생의 비밀을 남편 이삭에게마저 비밀로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비밀로 했다면 에서의 신앙교육을 잘못시킨 것은 전적으로 이삭의 책임입니다. 미리 알았다면 이삭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범할 뻔 했으나 하나님 당신께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모든 과정을 이끈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평소 성품과 믿음을 감안하면 지금껏 살펴본 대로 제 삼의 가능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삭이 내심 야곱인 줄 알았거나 의심이 전혀 제거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평소에 에서를 자식으로는 사랑해도 여호와의 장자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던 터라 못 이긴척하고 넘어갔을 수 있습니다. .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가장 기본적인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너무나 광대하심과 그에 대비되는 인간의 너무나 초라함이 그것입니다. 신자가 정말로 믿음으로 확신하고 행했던, 도덕적으로 의로운 뜻으로 했던, 나아가 실수로 잘못을 범했던, 심지어 죄인 줄 알면서도 행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당신의 뜻을 기어이 이루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무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했어도 광대하신 그분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때와 방식으로 진행될 뿐입니다.

 

야곱이 사냥감을 순적하게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 뜻이 우연히 만났지만 배경에 하나님이 역사한 것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신자의 일생을 이끄는 하나님의 방식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가 기도한 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과 시기대로 응답해주는 것만을 순적하다고 여깁니다. 그런 경우는 사실상 극히 드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길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이 여전히 개인적 인간적 세속적 욕심과 자랑과 교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기도하고 있는 제목들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정말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진지하게 따져보십시오.

 

솔직히 병을 고쳐달라거나 현실 고난에서 건져달라는 것 빼고는 거의 기도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신자들의 실상입니다. 그 두 가지는 내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은 병원에 가서 고치면 되고 그 전에 자신이 자기 몸을 마음대로 낭비 혹사한 탓입니다. 그런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며 의사들이 진단과 처방에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현실적 어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따져보면 자기 욕심 실수 판단착오 성급함 무계획 등이 원인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들을 잘 분별해서 고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기도란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내 뜻을 수정 포기해나가는 씨름이지 내 뜻대로 무조건 하나님이 따라오라고 떼쓰는 행위가 아닙니다. 물론 무엇이든 기도할 수 있으나 기도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순적한 역사에 자기 전부를 온전히 의탁하고 마음 턱 놓고 그분을 순적하게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의 일생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우연처럼 여겨지는 일이 아무리 많더라도 단 하나도 빠짐없이 필연 즉, 하나님의 순적한 인도만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악을 막아야 하는가?

 

본문 사건을 두고 야곱이 더 큰 악을 막기 위해서 작은 악을 범했다고 단순히 판단해선 안 됩니다. 에서에게 장자권이 넘어가서 집안이 완전히 망해버리는 것보다 이런 사기를 쳐서라도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목적만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만사는 하나님이 주관하며 그 결과는 인간이 미리 예측할 수 없습니다. 거기다 죄로 타락한 인간이 악의 크기를 정확히 분별하지 못합니다. 더 큰 악을 막으려 작은 악을 행하려는 것은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이라 인간 신자가 행할 성격이 아닙니다. .

 

더 큰 유익을 얻기 위해 약간의 악한 일은 해도 된다고 하면 대부분의 경우에 인간의 완악한 본성이 더 많이 작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윤리적인 판단과 실천을 현실 상황에 끼워 맞추는 것은, 전문 용어로 상황윤리는,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이 행하는 차원입니다.

 

신자는 달라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즉, 아무리 큰 환난과 재앙이 있는 상황이라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하나님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분의 언약 안에 이미 들어온 그분의 자녀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적하게 행하시는 하나님 그분만 따라야 합니다. 야곱이나 리브가도 하나님의 하나뿐인 가문이 우상숭배로 타락하하여 그분의 언약에서 벗어나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선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면 우리가 갈 곳이라곤 이 땅에서 한 곳도 없으며 차라리 죽겠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세상 궁정에서 천 날보다 가난하더라도 여호와 품 안에서 하루가 더 좋다는 것만이 그들의 모든 행위를 결정짓는 기준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백성들을 모아놓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도착이 늦어지자 자기가 주관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선지자의 꾸중을 들은 사울은 백성들이 흩어지고 당신은 오지 않고 블레셋은 전투준비를 완료한 것을 보았기에 할 수 없어서 제사 드렸다는 핑계를 댔습니다.(삼상13장)

 

사울은 하나님 대신에 사람들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 세상에서 형통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빼앗아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범사에 기도하면서 당신 뜻대로 행할 다윗에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그와 똑같은 하나님의 일을 리브가와 야곱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대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야곱에게 인간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던, 77세가 넘도록 가나안 여자에게 눈도 주지 않고 홀아비로 지내는 앞뒤가 꽉 막힌 골통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하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장자권이 이어지도록 역사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면 방법이 나빠도 된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하갈로 이스마엘을 낳게 한 일이나, 야곱이 속여서 장자권을 얻은 일로 인해 나중에 자기들이 큰 피해를 입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악도 그냥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비록 당신을 위해 한 일이라도 분명하게 잘못한 것은 그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합니다. 이런 원리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어떻게 행하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는 완벽하게 이뤄진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믿음이란 세상이 아무리 죄악으로 타락하던 이번 코로나 사태 같은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쳐 요동치던 간에.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완전하신 섭리에 자신의 전부를 완전히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영적인 분별력이 어리석어서 앞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도 때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침묵만 하는 것 같아도, 우리 나름의 믿음과 판단과 열정에 따라서 그분의 영광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그럼에도 또 그러려면 먼저 그분의 완전하심 전지하심 광대하심 오묘하심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오직 자기의 중심을 그분께만 맞춰야 합니다. 사람 대신에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자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습니다. 이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시간까지 당신께서 순적하게 조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인생을 당신이 정하신 일정표에 따라 당신의 거룩한 목적이 달성되는 방향으로만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분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 길에서 벗어나면 강권적으로 즉, 고난에 빠트려서라도 되돌려 놓습니다. 더더욱 그분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항은 성경을 읽을 때에 거의 그러해야 하듯이 마지막 결론입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물려준 장자권의 핵심은 현실적 축복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을 다시 분명하게 강조한 데 있습니다.(29절)

 

에서는 28절의 땅을 준다는 축복만 받으려 했지 열방 앞에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겠다는 29절의 영적축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삭이 야곱이 에서인 줄 완전히 속았다 쳐도 장자권을 축복하면서(27-29절) 에서의 이름이나 연관되는 언급을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 축복을 야곱에게 주려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순적하신 하나님이 순적하게 행하신 거룩한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매 순간에 이런 순적하신 하나님을 분별하고 그분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며 겸손히 살고 있습니까? 쉽게 말해서 아무리 극심한 고난이 닥쳐도 그분의 오묘하고도 완벽한 은혜와 권능이 더 풍성히 숨겨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까?

 

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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