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깨어서 기도하고 있는가?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평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뜻하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가 한국에서 작금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2007년 동명(同名)의 영화 이후로 너도 나도 그런 리스트를 만들어 최선을 다해 실천할 것을 인생 목표로 삼을 정도다.
그러다 최근에는 ‘YOLO’가 그 유행을 대신하다 못해 광풍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인생은 오직 한 번만 살 수 있다(You only live once.)는 의미의 영어문장에서 첫 글자만 딴 줄임말이다. 이 격언(?)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2011년 Drake의 ‘The Motto’라는 곡에서 훅(hook-반복으로 외치는 후렴구)으로 나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번 밖에 못 사는 짧은 인생을 자기 멋대로 행하며 살자는 의미의 관용어 내지 모토다.
언뜻 둘 다 아주 바람직한 생각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매우 잘못된 사상이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선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하거나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 못했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그 리스트에 하나님의 뜻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좋은 것만 열거한다면 신자에겐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신자는 버킷리스트를 작성 실천하되 주님이 맡기신 소명에 따라야 한다.
또 YOLO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뭣이든 자기가 하고 싶다면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감정과 개성을 따르다 못해 상상 못할 기행(奇行)도 마다 않는다. 다른 이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물론 재산 인격 생명을 손상하는 일도 자행한다. 예컨대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것이나, 전설적인 Bonnie & Clyde처럼 은행 강도짓을 하거나, 콘서트 장에서 총기난사 내지 폭탄 테러를 하는 것들도 포함된다. 이왕에 죽을 것 화끈하게 할 것 다 해보고 죽자는 것이다.
YOLO의 반대되는 것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 돌아온다는 환생(還生) 사상이다. 실제로 인생을 여러 번, 아니 두 번만이라도 거푸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아무도 첫 생애는 선하게 살고 두 번째를 YOLO로 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2의 기회가 있으니 처음부터 바로 즐기려 들 것이다. 아니면 처음은 버킷리스트로 둘째는 YOLO로 살지 않겠는가?
바꿔 말해 YOLO는 자신의 탐욕과 죄악을 위장 내지 호도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번 사나 여러 번 사나 결국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기분대로 살려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가뜩이나 쾌락과 죄악을 즐기고 싶었는데 마침 적절한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 YOLO를 처음 생각한 서구사회에선 아주 잘못된 사고방식이자 가치관으로 오래 전부터 낙인찍혔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진 자를 어리석다고 치부하고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한국은 이제야 아주 멋지고 추구할만한 삶의 방식이라고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은 따로 있다. 버킷리스트 열풍이 2007년에 시작되었는데 2011년 즉 5년도 안 되어 YOLO로 바뀌었다. 버킷리스트는 아무리 개인적 여행 취미활동이라 해도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좋은 일로 어쨌든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반면에 YOLO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다. 누가 뭐라 해도 내 하고 싶은 일은 한다는 즉, 남들이 싫어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이미 함의(含意) 하고 있다. 남이야 어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대한 양보해도 버킷리스트가 극단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자신의 재산 건강을 잃어도 좋다는 의미다.
어떻게 5년 만에 한국 국민의 생각이 이렇게, 그것도 사악하게 급변할 수 있는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특유의 냄비 근성 때문인가? 남들이 하면 모두 따라해야 하는 체면 의식 때문인가? 물론 그럴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해 서구인들 평가대로 어리석은 탓이다. 생각이 자주 바뀌고 남을 모방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확고하게 서있지 않다는 뜻이다. 정말로 가치와 의미 있는 것을 정말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Hell 조선(朝鮮)”도 젊은이들 사이에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지옥 같은 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도무지 살기 싫어서 한국을 탈출하겠다는 의미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안정된 삶이 아무리 봐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크다. 또 그래서 아이 출산은 물론 결혼조차 하지 않고 YOLO의 삶을 즐기겠다고 한다.
버킷리스트, YOLO, 헬 조선, 이 세 화두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뜻이다. 더 정확히 말해선 돈이 자신의 주인이기에 돈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고백이다. 버킷리스트는 열심히 돈을 목표로 살다가 조금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YOLO는 그 의미가 극단적으로 치달은 면과 반대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전망이 도무지 서지 않으니까 다른 차원에서 대리 만족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헬 조선은 한마디로 돈을 잘 벌 수 있는 나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돈에만 가치와 의미를 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어리석어서 잘 모르는 엄연한 사실이 하나 있다. 인류의 모든 역사와 지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이다. 해 아래서 행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는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에게 정말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을 멀리한 필연적 결과라고 선언한다. 인간을 지으신 이를 떠나서 즉, 그 지어진 목적대로 살지 않는데 어떻게 기쁨과 만족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불신자들을 탓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이 지경이 되도록 지금껏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고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도록 신자들을 교육 훈련시켰어야 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대속 구원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와 권능만 의지토록 해야 하지 않는가? 부활 소망을 붙들고 세상의 죄악 죽음 사탄의 세력과 당당히 맞서 싸우도록 십자가 군병을 양성했어야 하지 않는가?
한국 신자들, 특별히 청년신자들도 이 세 열풍에 동참하고 있음은 여러 경로로 확인 된다. 우리끼리 모여 습관적 형식적인 주일예배를 드린 것 말고는 교회가 한 일이 없다. 아니 교회가 앞장서서 어떻게 하면 돈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지 고상하고 경건하게 위장하는 방안을 가르치고 있다. 정말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졌다고 실감되기 시작한다.
베드로는 가까워진 그날을 위해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갈수록 타락하는 죄와 대형화되는 자연재앙을 막아달라고만 기도해선 많이 부족하다. 겨우 몇 년 만에 버킷리스트에서 YOLO로 바뀐 사람들의 영적상태와 그 배후에 훼방하는 사탄의 검은 손에 주목해야 한다. 교회와 신자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하루 속히 회복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예수 십자가 외에 인간 문제의 해결 방안은 절대로 없다.
11/9/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