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면 잘못인가요?

 

[질문]

 

제 아들이 교회 모임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시작하고 마칠 때도 그러는 것은 잘못이 아니냐고 따졌습니다. 영어성경 킹제임스버전에 manner, how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기도의 형식과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지 기도문으로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 같이 암송하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기도문을 아무생각 없이 외우는 건 잘못이지만 그 뜻을 깊게 묵상하며 암송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는데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마태복음6:9을 한글성경(개역개정)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영어 KJV는 “After this manner therefore pray ye: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라고 번역했습니다.

 

우선 KJV를 비롯한 일부 영어성경에 manner, how로 번역된 원어 "후토"의 어원은 단순히 thus, therefore, what, so 등의 뜻입니다. 정형화된 형식이나 방법이라는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그 앞에 “그리고, 그래서, 그 때, 이제, 그러므로”를 뜻하는 접속사 '운'을 이미 사용했기에 뜻의 중복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번역한 것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그리고 (혹은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는 의미라고 보면 됩니다. 한글성경은 킹제임스흠정역만 “이런 식으로”(영어 manner를 살려서)라고 번역했지 나머지 전부가 “이렇게”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성경 ASV, RSV 등도 우리말 성경처럼 간단하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중언부언으로 기도한다”(마6:7)는 것은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meaningless repetitions)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자기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 기도를 왜 어떤 목적으로 응답해주는지, 어떤 믿음의 자세로 무엇을 간구해야 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말을 많이 해야만 즉, 치성을 많이 바쳐야 응답이 잘 되는 줄 알고 구구절절 온갖 핑계 변명 요구 간청 등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도 무슨 내용의 간구를 왜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말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형식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고 기도 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기도는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와 경배를 드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9절) 기도할 첫째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입니다.(10절) 그 뜻은 나라가 임하는 것 즉, 이 땅에 당신을 아는 백성들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는 일용할 양식을 조달하는 일이 아주 절박했고 생업의 전부이다 시피해서 현실적 문제와 고난에 대해서 구해야 합니다.(11절) 기도의 응답은 오직 당신의 백성과의 순전한 언약관계에서 이뤄지므로 신자는 자기 죄를 사해달라는 간구를 해야 하며(12절), 앞으로도 죄에 빠지지 않고 영적으로 성숙해지도록 보호와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감사로 끝을 내야 합니다.(13절)

 

물론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는 이런 순서와 내용을 꼭 지킬 필요가 없으며 그 문구 그대로 암송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럼 정말로 형식적인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자기만의 절실한 내용에 대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기도하면 됩니다. 그럼에도 그 내용은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자기를 통해 실현되어야 하는 것들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할 내용들을 자신의 현실 삶에 적용하여서 무엇이든 성령의 인도를 구하며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도에서 관건은 기도에 포함될 내용이지 그 형식은 아닙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대로 자신에게 실현되길 간절히 바란다면 천천히 그대로 낭송하며 기도해도 됩니다. 예컨대 너무 위급하거나 정식으로 시간을 따로 내어 기도할 수 없을 때에 걸어가면서, 일하면서 주기도문을 암송해도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은 교인들 중에 그대로 온전히 믿지 않거나 아직 정확한 내용을 모르면서 형식적으로 따라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고 암송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주기도문은 그 내용에 동의하지 못할 신자들이 없고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도제목들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비롯한 교회 모임에서 함께 천천히 묵상 암송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구절 암송을 잘한다고 다 바람직한 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암송 대회가 말씀의 뜻을 잘 모르고 참가하는 자들이 있다면 자칫 암기력 경연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주기도문도 암송이 잘못이 아니라 뜻을 모르고 그저 따라 외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4/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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