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구체적인 모습
신자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자다. 장래에 죽어서 가는 천국을 미리 이 땅에서 맛을 보아야 하며 또 주위에 자신들의 삶을 통해 보여 주어야 한다. 신자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불신자와 세상 앞에 드러내어야 할 천국의 실체는 그럼 과연 어떤 것인가? 실제 천국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한 마디로 집약하자면 그것은 찬양과 경배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8-11)
천국의 하나님 보좌 앞에서는 밤낮 쉬지 않고 오직 찬양과 경배만 있을 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예수님의 12제자를 합한 24장로 즉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사들과 함께 모여 영광을 하나님과 그 어린양에게 돌리는 경배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곳이 천국이다. 영원한 찬양이 천국의 실체다.
신자가 천국을 이 땅에 실현한다면 바로 이 모습이 이 땅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밤낮 쉬지 않고 찬양을 해야 한다.천국은 종일토록 찬양을 할 수 있고 나아가 시간을 초월한 곳이라 영원토록 하나님께 경배를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선 신자가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야 할 주어진 삶이 있고, 금요일 저녁 찬양예배나 주일 예배 같은 공식적 행사만으로는 천국 같은 찬양을 실현하지 못한다. 신자의 일상생활 가운데 찬양을 하지 않으면 ‘영원한 찬양’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일하면서 밥 먹으면서 누워 자면서 곁에 찬양 테이프를 항상 틀어 놓고 따라 불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찬양은 노래라는 형식을 통한 찬양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찬양은 말 그대로 찬양 즉 칭찬(praise)이다.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이 찬양이다. 하나님을 칭찬하는 가사에 곡조를 부치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든, 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든, 하나님을 칭찬(Praise)하고 그 분께 자기 삶의 모든 가치를 돌리면(worth + ship=worship) 바로 그것이 찬양이다.
우리보다 먼저 천국의 영광을 맛보며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맛 대면하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합창한 찬양의 가사가 어떤 내용인가? "주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이 가사를 내 것으로 만들어 이 땅에서 부르면 천국의 찬양이 된다. "주께서 나를 지으시고, 내 주위의 만물과 만사가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영원한 찬양으로 밤낮 쉬지 않고 부르려면 바로 이 가사가 뜻하는 바가 우리 삶의 기준, 인생관, 가치관으로 변화되면 된다. 구태여 찬양 테이프를 안 틀어 놓아도 된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주님의 지으신 바이므로 그 속에 주님의 뜻이 반드시 있다는 생각이 흔들리지 않으면 영원한 찬양이다. 혹시라도 그 생각에 의심이 들고 불평불만이 있거나 그것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기준으로 살면 어떤 결과가 되는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믿음이 떨어지기 이전에 우리는 찬양을 잠시 멈춘 것이다. "밤낮 쉬지 않고"가 "중간에 쉬고"라는 말로 바뀐 것이다. 천국의 실체가 가려진 것이다. 천국은 신자가 아니고는 이 땅에 드러내어질 수 없다. 신자가 찬양을 중단하거나 잠시 쉬면 천국의 빛을 가린 것이다.
찬양 밴드가 훌륭하고, 인도자가 좋고, 음악 실력이 뛰어날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그럴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부르는 찬양에는 음치가 있을 수 없다. 전부 최고의 소프라노나 테너로 청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나님과의 교통에 단 하나의 티끌과 불순물이 섞일 수 없다. 모든 죄와 부패와 모순과 왜곡과 질곡이 제거된 이후에 부르는 찬양은 그 질적 수준이 도저히 이 땅의 수준과 비교가 안 된다.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만 맞대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어 우리의 음성과 음색, 노래실력 마저 바뀐다. 그야말로 ‘나팔소리’ 같고 어쩌면 하나님의 음성처럼 ‘많은 물소리나 큰 뇌성’처럼 바뀔런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땅에서 부르는 우리의 찬송은 아직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 여전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의 음성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탁하고 갈라지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 속에 우리의 죄의 찌끼가, 세상살이의 시름과 한탄이, 상처 받은 심령의 분노와 갈등이, 심지어 영혼의 눌림이 포함될 수 있다. 노래 실력과 반주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때는 사람과 세상과 사단의 조롱과 멸시와 핍박과 방해가 우리의 찬양의 목소리를 죽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오히려 이 땅에서 힘들고 넘어질수록 그것들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능력뿐이다. 우리가 이기지 못하는 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이 땅을 통치해주시는 길 뿐이다. 오직 천국(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뿐이다. 천국은 이 땅에서 신자의 찬양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천국의 찬양이다.
천국 찬양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실력과 믿음의 강도가 아니라 밤낮 쉬지 않고 부르는 영원한 찬양이다. 아무리 우리 목소리가 때로는 힘이 없고, 때로는 우렁찰지라도 계속해서 부를 때만이 이 땅에 천국이 실현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 같은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실력이 아니다. 순진한 마음이다.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그 마음이다. 즉 영원한 믿음이자 영원한 찬양이다. 교회가 할 일은 그 모든 소속원들을 어린 아이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어린아이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토록 하게 해야 한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 찬양이 나오지 않는가? 그럼 벌써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가 할 일이 아니라 신학자나 종교가가 할 일이다. 신자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 길은 찬양뿐이며 그 분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과는 다르지만 모든 것이 그 분의 지으심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심에 선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이 사실을 언제 어디서든 의심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찬양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