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뛰어 넘을 수 없는 두 가지
“이는 하나님을 알만 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1:19)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은 한 변보다 크다는 수학적 공리는 논리로, 또 물은 수소와 산소가 2:1의 비율로 섞여 있다는 것은 실험으로 입증됩니다. 눈에 안 보이는 바람의 존재도 그 나타나는 현상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고래로부터 수도 없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만인이 아무 반발 없이 수긍할 수 있는 입증은 없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인간의 실험 대상이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또 수학적 공리는 일반적으로 그 반대 논리가 완전히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입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논리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건 그 정당성을 결정할 준거 자체를 인간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논리적 변증은 끝없는 논쟁으로 이끌 뿐입니다.
그리고 바람과는 달리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일정한 범주로 묶어 그 귀책사유를 확실하게 하나님에게 돌릴 수 있는 합의가 도무지 도출 될 수 없습니다. 예컨대 밤낮이 있고, 달이 한 달 주기로 모양이 바뀌고, 밀물과 썰물이 있는 현상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한 것이라는 합의는 쉽게 해도 그 배경에 하나님이 있다고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절대 입증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존재성을 믿으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어떤 논리적 변증이나 종교적 교리에 관한 사전 언급을 완전히 배제한 채 아예 태초부터 존재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바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은 당신을 알만한 것을 당신의 피조물, 즉 인간과 자연 속에 이미 심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지구의 자전, 공전까지는 밝혀냈지만 그것의 배경까지는 파고들지 못합니다. 논리나 실험의 영역을 넘어 서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실험은 몰라도 논리로 따지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 도달되는데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지구상에 가장 큰 동물 긴 수염고래는 길이가 30미터, 무게가 175톤, 심장이 포크스바겐 자동차만합니다. 지구를 좁은 양 헤집고 다니려면 그 만한 크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타이타닉 같은 대양 항해용 배의 엄청나게 큰 엔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만든 어떤 배보다 더 정밀한 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프리만 다이슨이라는 과학자가 “자연 법칙의 특징은 가장 위대한 수학적 단순성과 아름다움”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자연은 너무나 질서정연한 체계라 그 배후에 완전하신 설계자가 없이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를 한번 가정해 봅시다. 진화란 우연에서 출발해 우연으로 발전한다는 체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현상도 우연인 상태여야 합니다. 즉 질서(cosmos)가 아닌 혼돈(chaos)의 체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럼 논리적으로 따져서 현재 상태가 질서이면 창조가 맞고 혼돈이면 진화가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끼리는 현재 상태를 질서와 혼돈, 둘 중 하나로 합의가 도저히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입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자는 자연이 질서 있다고 보며 불신자는 혼돈하다고 보지 않습니까? 더 정확하게는 불신자도 자연은 대체적으로 질서 있다고 보지만 지진, 태풍, 해일 같은 악천후와 그로 인한 피해로 인해 하나님이 있다면 절대 이럴 수 없다고 비방하기 바쁩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하나님이 인간 내면에 심어놓은 당신을 알만한 것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 의지로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두 가지 벽이 있는데, 1)인간의 외부 세계와 2)인간 내면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자연 재앙을 비롯해 지구의 자전 공전 같은 현상은 인간의 통제 영역 밖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며 인간과는 별도로 이미 존재해 있었습니다. 인간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여러 생각들도 스스로 계획한 것도 아니며 의지로 조절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이 생각하는 기능을 갖겠다고 작정해 생각이 생긴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간도 자연도 아닌 제 삼의 절대적 존재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제 불신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이유가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인간 외부가 우연 즉, 혼돈일 뿐 아니라 자기 내면도 우연 즉, 혼돈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들끓는 변덕과 솟구치는 탐욕들로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무엇을 해도 공허와 갈급을 채울 길이 없습니다. 염려, 불안, 초조가 끊이지 않습니다. 결국 불신자의 평생은 자기 외부도 혼돈이요 내부도 혼돈인 채로 흘러갑니다. 향방을 모르는 달음질과 허공을 치는 싸움으로 끝이 납니다. 우연에서 시작해 우연으로 마치기 때문에 혼돈은 필수적입니다.
신자는 당연히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외부도 질서요 내부도 질서가 잡혀서 평생을 보내는 자입니다. 반드시 향방이 정해져 있고 열매를 맺는 싸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인도만 따르기에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지금 당신의 내면과 외면이 공(共히) 질서입니까 혼돈입니까? 혹시라도 혼돈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하고 말씀 보지 않아서입니까? 아닙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을 질서 있는 분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때때로 생기는 환난으로 인해 그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정해 주신 향방을 아직도 못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바칠 소명을 붙들지 않으면 절대로 그분을 제대로 따를 수 없습니다.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자기 외부와 내면의 혼돈을 벗어날 길은 오직 질서의 하나님께 질서 있게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질서 있게 만드셨기에 지금도 그 질서를 바로 잡아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4/30/2007